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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소설로 읽는 근미래이야기] 60. 간병인
Bio통신원(과학작가 박재용)
1
마스크 쓰지? 우리 그런 사이 이제 아냐
아 미안 요새 마스크를 좀 싼 걸로 바꿨더니 많이 답답해서.. 사내는 말을 중간에 삼키며 다시 마스크를 썼다.
간단하게 용건만 말하자. 양육비 언제 줄 거야?
빨대가 통과하는 마스크는 요즘 나온 신상품이었는데 꽤나 인기가 있었다. 마스크 아래쪽에 덧댄 부분에 작은 구멍을 뚫려 있어 그 사이로 빨대를 꽂으면 마스크를 벗지 않고도 음료를 마실 수 있었다. 스타벅스에선 아예 앞에 인어로고가 새겨진 전용 마스크를 굿즈로 만들어 팔기도 했다. 둘은 마스크를 쓰고 앉아 한 모금씩 마셨다.
얼마 전에 해고당한 건 알지?
알아
여자의 말투가 약간 누그러지다 다시 딱딱해진다.
하지만, 너 일시금으로 이천만 원 받았잖아. 거기다 매월 월급만큼 실업수당 나오는 것도 알아.
그래 맞아 남자의 말투는 더 낮아졌다.
하지만 지금 이천만 원을 깰 순 없다는 거는 알아줬으면 좋겠어. 언제 취직이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야. 그 사이 내가 빚진 게 좀 있어서 그거 먼저 갚느라 그랬어. 이번 달부터 일단 제대로 넣을게. 그리고 6개월 밀린 건 내가 취직하면 6개월 동안 두 배로 넣어서 처리하면 안 될까?
취직할 데나 있어?
알아보는 중이야. 생각보다 만만치가 않다.
내가 한 곳 소개시켜 줘?
응 어딘데?
노인요양병원. 지금 내가 일하는데랑 같은 재단에서 운영하는데 경기도 가평군에 있어. 한 달에 4000은 될 거야.
좀 멀긴 한데 돈은 되겠네. 400이나 준다니 빡시겠지?
지금 가릴 처지가 아닐걸? 빡시긴 해. 4조 3교대야. 아침 7시에서 오후 3시까지 5일 근무 이틀 쉬고 오후 3시부터 11시까지 5일 다시 이틀 쉬고 밤 11시에서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다시 이틀 쉬고 이게 번갈아가며 이어져. 기본급은 250만 원인데 아마 잔업을 꽤 해야 할거야. 보통 오전 7시 근무조가 오후 7시까지 하는 날이 5일에 2,3일은 될걸. 그리고 오후조할 때 4시간 일찍 출근해서 오전 11시부터 오후 11시까지 하는 날도 한 2,3일 될 거야. 야간 근무할 때도 마찬가지로 4시간 일찍 나오는 날이 있을 거고. 그렇게 합치면 400 되는 거지. 병원에 숙소도 있으니까 밤 11시 끝나면 자고 다음 날 일찍 통근 버스 타도되고. 아니면 기숙사 있으니까 거기서 살아도 된다더라. 기숙사비는 월 10만 원.
흠 괜찮은데? 언제부터 출근이야?
말만 하면 내일부터라도 바로 출근할 수 있어.
2
한적한 산속 하얀 5층짜리 건물 두 채로 이루어진 가평 사랑요양병원에서 일한 지 이제 6개월째. 밀린 양육비는 다 처리했다. 전 아내의 말대로 한 달에 12시간 근무가 평균 열흘은 되었고 쉬는 날 이틀 중 하루는 근무를 해야 하는 환경이었다. 사람이 모자랐다. 사내가 잔업을 안 하면 다른 누군가는 잔업을 더 할 수밖에 없는 상황. 담당 층을 정해 조를 짜고 노동자들끼리 미리 요일마다 누가 잔업을 할지 정해두고 한다. 아주 특별한 일이 없으면 잔업을 빠질 수가 없다. 가평이라는 외진 곳, 노인들을 상대하다 보니 한국말을 제대로 알아들어야 해서 외국인도 안 된다. 남자 병동에는 남자가, 여자 병동에는 여자가 기본이다. 일도 빡세니 일하려는 사람이 드물 수밖에 없다.
1층은 접수대와 사무실 로비와 식당이 자리 잡고 있고, 2층에는 스스로 거동할 수 있는 노인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노인 50명이 거주하는 2층에는 동 시간에 간호사 두 명만 근무하고 있다. 노인 네 명당 케어로봇 한 대씩이 배정되어 있었고, 아주 돌발적인 상황만 아니면 사람이 필요 없다.
3층은 스스로 음식을 먹을 수도 있고 용변을 볼 수도 있지만 거동은 힘든 노인들이다. 노인 두 명당 케이로봇이 한 대씩 배정되어 산책도 시키고, 화장실도 데려가며 식사도 가져다준다. 여기에는 간호사 두 명에 간병인 네 명이 근무하고 있다.
4층은 거동도 못하고 용변도 가리지 못하는 노인들의 자리다. 간호사 네 명에 케어로봇이 노인 한 명당 한 대씩 배정되어 있고 간병인도 다섯 명 당 한 명씩 배정되어 있다. 케어로봇이 노인들의 간단한 운동을 도와주고, 음식을 가져다주지만 기저귀를 갈 순 없다. 로봇은 이전보다 부드러운 움직임을 보이지만 아직 사람만큼 섬세하진 못하다. 시간마다 기저귀를 갈고, 소독을 하는 건 사람의 몫이다. 담당 노인이 설사 증상이라도 보이면 하루 종일 똥냄새를 달고 살아야 한다. 때에 따라선 식사도 숟가락으로 떠먹여줘야 한다. 어떤 날은 12시간 동안 식당에 갈 짬이 나지 않아서 초코파이로 떼우기도 한다. 치매기가 있는 이들도 많아 했던 말을 하고, 또 하고, 울고, 고함을 지르기도 한다.
5층은 호스피스 병동이다. 예전에는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도 있었지만 이젠 금지되었다. 집단 감염은 항상 외부인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 종교인들의 방문도 금지되었다. 오로지 환자 다섯 명당 한 명씩의 간병인들과 간호사 네 명 그리고 정기적으로 검진하는 의사들만이 드나들 수 있다. 호스피스 병동은 조용하고 한 달에 한 명 정도 자리가 빈다. 사라진 이들은 지하 1층의 장례식장으로 옮겨진다.
병실마다 설치된 CCTV는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가족들이 실시간으로 영상을 확인할 수 있다. 아무래도 행동거지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감염병이 수십 년째 계속되면서 가족들의 면회는 한 달에 한 번뿐이니 이렇게라도 확인을 할 수 있게 해준 것. 그나마 개인마다 독립적인 병실이라 집단 감염은 현저히 줄었다. 감염병 단계가 올라가면 근무 환경도 바뀐다. 모두 기숙사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하고, 집에라도 다녀오면 7일 정도 격리상태를 거쳐야 한다. 격리 때에는 기본급만 나온다.
3
법인은 지금 상태가 만족스럽다. 지금보다 간병인들 대우가 나빠지면 수급이 딸려 위험할 수 있다. 다른 요양병원과 비교하자면 그래도 조금 나은 대우를 하고 있다고도 자평한다. 간병인들 사이에서 불만이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지금보다 대우가 좋아진다고 법인 입장에서 좋을 건 없다. 간병인 인력이 늘어나면 관리비도 그만큼 늘고, 무엇보다 일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골치 아픈 일이 늘게 분명하다. 정부로부터 받는 보조비용에 노인 가족들이 내는 비용을 따지면 여유가 없는 게 아니지만, 그 돈은 새로운 요양병원을 새우는 데 써야 한다.
법인은 고급 요양병원을 세울 계획이다. 그곳에는 일인당 한 명씩의 케어로봇과 두 명당 한 명의 간병인이 배치될 예정이다. 인테리어도 좀 더 고급스럽고, 음식도 더 나은 식단으로 바뀐다. 가족들이 내야 할 비용은 월 20만 원에서 월 400만 원으로 스무 배 정도 오를 터지만 그 비용을 부담하겠다는 이들은 줄을 서 있다. 고급 요양 병원 시장은 일반 요양 병원이 포화된 상태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 될 것이다.
사내는 취업을 결정하고 서울의 집을 정리해서 기숙사에 들어왔다. 감염병 때문에 쉬는 날도 시내로 나가는 일은 거의 없다. 그저 같은 기숙사 동료들과 어울려 병원 뒷산을 오르든가, 밀린 잠을 자든가 그도 아니면 기숙사 식당에서 술을 한잔할 뿐이다. 시내는 한 달에 한 번 정도나 동료들과 함께 나간다.
그 사이 몇몇 친해진 이들끼리 이야기를 나눈다. 노조를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 기본급이 올라가면 인력 수급도 쉬워질 거고, 인력 충원이 되면 잔업도 조금 줄어들 건데, 법인이 해주길 기다려봤자 하세월일 거다. 노조를 만들어 단체 협상이랑 임금 협상이라도 해야 뭐가 되지 않겠나.
사내는 예전 경험을 살려 노조를 만드는 방법이나 여러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내심 불안하다. 여기서 또 일을 저지르면 법인에 찍힐 터인데. 이 친구들 믿을 순 있을까? 지금이야 다들 신이 나서 노조 만들 이야길 하지만 막상 관리자들과 붙게 되면 뒤통수칠 놈이 분명히 나타나겠지. 가오 세우다가 또 해고당하면 그땐 어쩌지? 1억은 어떻게든 모아 놓고 뭘 해도 해야 하는데. 가평의 밤은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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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의 아주 주관적이고 편파적인 시선으로 과학의 역사 곳곳에 드러난 혹은 숨은 여러 사건을 바라보고 이를 엽편소설 형식으로 씁니다. 소설이니 당연히 팩트가 아닌 점도 있습니다. 감안하고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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