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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리의 육아일기] 이제 시작
Bio통신원(닥터리)
© pixabay
아이가 9개월째 접어들었을 즈음에 나는 드디어 박사학위를 받았다.
6년간의 박사과정 동안 진로, 결혼, 출산 등 인생의 굵직한 이벤트가 있었고, 그때마다 여러 가지 다른 성격의 고비가 있었지만 어쨌든 무사히 그 시간을 감내하면서 대학원 생활의 마무리를 하게 되어 감사할 따름이다.
연구실에서 ‘언니, 누나“와 ‘이 박사’라는 호칭이 엇갈리는 시절 나의 진로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원래는 우리 선배들이 그랬듯 박사학위를 받고 나면 당연히 외국으로 포닥을 나가야지 생각했었는데, 공무원인 남편은 함께 다녀오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고, 어린 딸아이와 둘만 떠나는 것 또한 내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무엇보다 가족이 떨어져서 지내야 하는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부대끼고 좌충우돌하더라도 오롯이 함께 하는 가족이고 싶었다.
결국 교수님과 오랜 논의 끝에 기존 연구실에서 포닥 생활을 하며 연구를 지속하기로 했다.
박사과정 때 연구했던 주제에 이어서 한참 신경계 질환에서 뇌혈관장벽 손상에 대한 기전 연구를 재미있게 하고 있었고, 육아 하나만도 힘든 시절이었기에 새로운 연구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부담은 덜 수 있었다.
박사학위를 받은 후 6개월간은 마냥 신이 났다.
굴레에서 해방된 느낌도 들었고 짓누르던 무거운 짐을 벗은 듯 홀가분했다.
다들 그렇겠지만 대학원을 졸업했다고 해서 일상이 달라지는 것은 거의 없다. 특히 학위과정과 동일한 실험실에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인건비가 약간 올랐다는 것과 소속된 대학과 학생 신분이 아닌 포닥 신분으로 계약을 해야 한다는 서류상의 이슈를 제외하곤 일상 연구실의 생활은 박사과정 때와 비슷했다.
하지만, 졸업 후 6개월이 지난 뒤부터는 좀 다른 마음이 들었다. 박사로서의 한 해 동안 나는 어떤 결과물이 있었는가에 대한 질문이 고개를 들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한 해 동안 논문을 몇 편 냈지? 이런 질문 말이다. 박사과정생일때는 대학원 기간중에 내가 스스로 아이디어를 내서 작성한 논문이 2편이면 되었기에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학생이 아니기에 매해마다 나의 커리어를 내가 관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연구실 생활을 하다 보면 일년은 금방 간다. 중요한 실험을 하다가 몇 번 꽝이 나면 일년이 훅 가는 경험을 많은 대학원생이 해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논문을 다 썼다고 해도 저널에 submission 하고, reject 당하고, revision을 하고 accept 될 때까지는 1년 이상 걸리는 것이 보통인 현실이기에 앞으로의 나의 연구자로서의 삶에서 프로젝트 관리가 중요해졌다. 교수님이 쓰라고 해서 논문 초안을 적어가는 시절은 지났고 조금씩 self driving 하는 방법을 알아가야 했다.
사실상 연구자로서의 삶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많은 결혼한 후배들이 아이를 언제 낳는 것이 좋을지 묻곤 한다. 새 생명이 탄생하는 축복된 순간은 언제든 환영받을 일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굳이 말해달라 하면 나는 후배들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네가 연구를 오롯이 혼자 진행할 수 있는 역량이 될 때 아기를 가진다면 조금은 더 수월하다고.
연구 진행 역량은 크게 네 단계가 있는 것 같다.
1단계는 실험 기법을 익히는 단계이다. 이것은 그 실험을 method 보고 처음부터 끝까지 재현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이때에는 본인이 실험했을 때 생기는 다양한 문제점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 심하면 같은 실험을 5번 했을 때 5개의 서로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2단계는 실험하면서 발생된 다양한 문제점을 이론적으로, 실제 실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상태이다. 이쯤 되면 본인이 실험을 하면 거의 실수가 없는 단계가 된다. 그리고 효율적으로 시간을 운용할 수 있고 본인이 예상한 대로 실험 시간이 거의 변수 없이 지켜질 수 있다.
3단계는 본인의 연구 데이터를 가지고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는 단계이다. 즉, 문헌과 본인의 데이터를 보고 다음 실험을 계획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시점이다. 또한 이 단계에서는 manuscript 초안을 교수님께 보냈을 때 내가 초안에 적은 글이 70% 이상 살아남는다. 그리고 논문 revision 또한 본인의 역량으로 처리할 수 있다.
4단계는 본인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다른 사람들의 연구를 평가할 수 있는 단계이다. 이 단계가 되면 대학원생을 맡아 가르치고, 논문을 지도해 줄 수 있는 역량을 갖추었다고 본다. 이제 연구실을 운영할 수 있는 단계인 것이다.
나는 후배들에게 적어도 2단계 이상 되었을 때 엄마가 되길 추천한다. 교수님이나 사수의 조언 없이 내가 가능한 시간에 실험을 진행해도 되는 상태가 되어야 적어도 본인 실험이 계획한 시간 안에 정확히 마무리되어 연구와 육아가 공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실수를 줄이는 것이 시간을 버는 것임을 잊지 말고, 누구보다 철저히 실험을 준비해서 실수를 줄여나가길 조언한다.
누구에게나 하루 24시간이 주어지지만, 엄마의 1시간은 다른 사람의 2시간의 가치를 담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못하면 엄마의 삶이 없어질 수도 있다. 만일 남이 두 번 실험해서 성공할 것을 내가 잘 준비해 한 번에 성공하면 나는 남보다 시간을 두 배 확보한 셈이니 연구에 있어서 집중과 준비, 그리고 실수 줄이기가 긴 호흡을 가지고 엄마 과학자의 길을 걸어야 하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부분인 것 같다.
어느덧 딸아이의 돌잔치도 끝나고, 기어 다니던 아기가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면서 드디어 외할머니의 손을 떠나 어린이집을 가게 되었다. 마침 내가 속해있던 대학에 직장어린이집이 생겨 나는 여러 어린이집을 알아보는 수고를 덜 수 있었고, 드디어 나도 학부모가 되었다.
어린이집에서의 생활
이제는 친정엄마의 도움 안 받고 나와 남편이 오롯이 아이를 돌보게 된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 느낌이었다. 아기를 돌보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기에 아기를 엄마께 맡기면서 늘 감사한 마음과 함께 동시에 밀려오는 죄송한 마음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생각에 내심 홀가분했다.
그러나 이런 홀가분한 마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어린이집 입학식 때 받은 유인물을 보니 <어린이집 적응 프로그램>이 있었다.
아이들이 처음 어린이집을 오기 때문에 낯선 환경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내용을 읽어보니 이건 도저히 직장맘이 다 감당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적어도 3주 동안은 (아이가 만약 적응을 못하면 더 길어질 수 있다) 어린이집 프로그램에 올인하기 위해 풀타임 대기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어린이집 적응 프로그램은 총 3주 계획이었는데, 1주 차는 어린이집에 와서 엄마와 함께 1시간가량 교실에 머무르다 집에 가는 것이었다. 교실을 여기저기 둘러보며 익히고, 오전 간식을 먹고 10시면 하원을 해야 한다.
2주 차는 아이들끼리만 교실에서 지내되 보호자는 교실 앞 복도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혹시 아이가 불안해하면 선생님께서 복도에 있는 부모님을 호출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별일 없이 잘 지내면 점심까지 먹고 하원하면 된다.
3주 차는 점심을 먹고 아이들이 낮잠까지 자 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낮잠을 재우는데 아이들이 너무 울거나 보채면 그날은 바로 데리고 하원이다. 그래서 낮잠 자고 깨나는 시간인 오후 2시 반까지 보호자는 밖에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하루 이틀은 나와 남편이 감당할 수 있었지만 3주 동안 대기조로 어린이집에 머무르는 것은 현실상 불가능했다. 결국 나는 친정엄마께 독립한 지 하루 만에 다시 엄마의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까지 몇 번 불가항력적인 상황들로 인해 찾아오는 육아의 고비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그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육아와 연구를 병행할 수 있었던 것은 나를 너무 아껴주셔서 흔쾌히 희생해 주시는 친정 부모님의 도움 덕분이었다. 이 자리를 빌어 우리 엄마아빠께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어느덧 3주의 정해진 적응 기간이 끝나고 본격적인 어린이집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제 우리 아이도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기에 늘 같은 시간에 나와 함께 출근하고, 나와 함께 퇴근했다.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면 자는 아이를 차에 태워 데려가기도 했다. 아침을 못 먹이면 출근길 차 안에서 밥을 김에 싸서 한두 개라도 먹여야 했고, 퇴근길이 막혀 아이가 배가 고플까 봐 매점에서 간단한 간식거리를 사서 가는 길에 먹일 때도 있었다. 집에 도착하면 아이를 방바닥에 내려놓는 동시에 부리나케 밥을 차려 먹여야 했고 때로는 그 시간을 못 기다리는 딸아이를 안고 음식을 하며 요리와 동시에 먼저 익은 것을 골라 입에 넣어주기도 했다.
이제까지는 친정 엄마집에서 지냈기에 평일에 밥할 걱정은 없었는데 아침, 저녁밥을 해서 아이를 먹인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이 직장 어린이집이기에 직장맘을 위한 시스템을 기대했지만 그 직장이 대학교여서 그런지, 아니면 맞벌이가 아니라 보통 아빠가 교직원이고 엄마는 집에 있기 때문이어서 그런지 보통 어린이집과는 좀 다른 시스템이었다.
우선 나는 9시에 출근하고 6시에 퇴근하는 상황이라 8시 반에는 어린이집에 데리고 갔는데, 늘 우리 딸이 1등 등원이다. 그리고 6시 퇴근 후 연구실 건물에서 걸어서 5분 정도 가는 건물이라 6시 5분경에 아이를 찾으러 가면 또 우리 딸만 있었다. 다들 이 대학에 소속된 분들의 자녀들일 텐데 왜 그럴까? 참 이상했다.
직장 어린이집이라 아이들이 모두 나와 비슷한 시간에 오고 갈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출근길에 데리고 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아이들이 엄마나 할머니와 함께 9시 반 정도에 등원하는 상황이었다.
또한 일부는 낮잠 자고 나서 3시 반 정도 되면 할머니를 통해 하원했고 대부분 아이들은 5시 30분에 우르르 하원을 했다.
그때 처음 알았다. 내가 속한 학교의 교원은 퇴근이 5시 30분이었다는 것을.
연구실이 모여있는 의과대학이나 이과대학 건물에서는 늘 사람들이 늦게까지 실험을 하고 있었기에 대학 본부의 행정을 담당하시는 교직원들이 일찍 끝난다는 것을 난 전혀 알지 못했다.
내 아이가 늘 1등으로 등원하고, 늘 꼴찌로 하원해야 하는 상황을 많은 직장맘들이 경험했을 것이다. 특히 데리러 갔을 때 혼자 덩그러니 남아있는 아이를 보는 엄마 맘은 익숙해지지 않는 짠함이 있었다.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그 기억에 마음이 저릿해진다.
이렇게 나는 본격적으로 연구자로서, 직장맘으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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