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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초보 논문 투고기] 물론이지. 왜 안돼? - 1부
Bio통신원(뉴로)
독자님들이 잘 아시다시피 2020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는 제니퍼 다우드나 (Jennifer A. Doudna)와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Emmanuelle Marie Charpentier) 교수들이 받았습니다.
2020년 노벨화학상 수상자
저는 이 소식을 듣고 원고를 다시 쓰기로 마음을 먹기로 했습니다.
제가 아직은 대학원생입니다만 석사든 박사든 간에 정말로 중요한 자질에대한 내용을 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입니다. 논문을 투고하는 것은 대학원생의 모든 이야기이기도 하니 한 대학원생의 이야기도 쓰면 좋을거라 생각합니다.
이걸 위해, 제 인생 얘기를 조금 쓸까 합니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재미있어했으니 여러분도 재미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때는 2009년, 대학교 신입생인 저는 동아리 활동을 뭘할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 어떤이의 자서전을 읽었습니다. 그 책의 작가는 대학 신문사 기자를 했었는데 대단한 자부심을 보여줬고 힘들지만 보람차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래 이걸 해야겠다”
당시에는 ‘영자신문부’, ‘방송부’ 그리고 ‘신문부’가 있었습니다. 저는 영어실력을 늘릴 생각으로 먼저 ‘영자신문부’에 지원했습니다.
학교가 활동비와 장학금을 주는 동아리들이었기 때문에 입사시험(?) [1]을 치뤄야했습니다. 영작시험이 끝나고 교직원 선생님과 면담을 했는데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왜냐면, 거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대략 3개월 뒤에 ‘방송부’가 새로운 신입생을 뽑는다는 공고를 냈습니다. 워낙 힘들기 때문에 사람들이 정말 많이 나갔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앵커부서, 엔지니어부서, 기자부서에서 공고를 냈는데 당연히 기자부서를 지원했습니다.
면담을 위해서 정말 열심히 준비했는데 거기 인터뷰 당시에 들은 소리가. 대놓고 너무 가식적이란 말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가식적이긴 했습니다.
실패한 인터뷰 후, 교직원 선생님과 면담한는데 영자신문사에서 봤던 교직원을 또 봤습니다.
거기도 선배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못받았으니 당연히 떨어졌습니다.
2번 낙방 후 제 심경
그리고 1개월 정도 뒤, ‘신문부’가 공고를 냈습니다. 시험 문제는 사회 시사에 대한 논술문제와 단어의미를 적는 문제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역시 예상했듯이 그 교직원 선생님을 또 봤습니다.
교직원 : “또 보네요.”
뉴로 : “예, 안녕하세요.”
교직원 : “이번이 3번 째 보는건데 여태까지 왜 떨어진거 같나요?”
정시로 들어와서 인터뷰를 안해본터라 이런식의 압박면접은 처음이었고 약간의 굴욕감도 느꼈습니다만, 방송부 면접 때 들었던 “인터뷰를 잘 못해서 그런거 같다”고 답변했던거 같습니다. 지금도 영자신문부에서 떨어진 이유는 잘 모릅니다.
교직원 : “훈아, 이 학생은 기자하고 싶어서 3번이나 신문방송부를 두드렸어. 그런데, 이런 적극적인 학생을 떨어뜨린다면 우리 대학신문사가 인재를 걷어차는 일이고 욕 먹을 일이야. 뽑자”
그 교직원은 그 신문부의 80학번 선배였고 그렇게, 대학신문사 기자를 시작했습니다. 두드리면 열린다는 느낌이었고 지금도 정말 잘한 선택이라 생각합니다. 실제로, 브릭에서 연재글 공고가 떴을 때, 제가 쓴 수십 편의 기사들이 연재경력으로서 절 선정되는데 큰 힘이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제가 사람과의 질문과 대화에대한 가치관이 많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 학술적인 실력과 질문 내용은 몰라도 저는 질문태도에 있어서는 최고의 대학원생이라고 자부합니다.
세월이 흘러 2015년 대학원생 때, 2015년에 대규모 암학회가 대학교에서 열렸습니다. Cancer immunotherapy에 관한 주제이고 발표자는 neoantigen prediction에 대한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당시에 손을 들어 질문을 했는데 처음에는 제 영어를 잘 못 알아들었습니다. 당황했지만, 표현을 단순화 하여 질문하니 발표자가 답변을 해줬습니다. 질문내용과 답변은 기억 안나지만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던 기억은 납니다.
학회가 끝나고 교수님이 어깨를 툭치면서,
지도교수 : “뉴로군, 오늘 질문하는거 정말 보기 좋았어요. 한국에서 열리는 학회에서 대학원생이 질문하는건 처음 봤어요. 영어는 별로 못했지만, 다른 교수님들이 뉴로 학생이 대단하다고 귀띔해줬어요.”
그후, 제 지도교수님은 종종 “학회에서 질문하는 것은 대학원생에게 잠재적인 새로운 PI들이나 직장상사에게 자신을 알리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적극적인 질문을 하라”고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후 1년 뒤 학회에선 노벨상 화학상 수상자인 아론 시카노바 (Aaron Ciechanover) 교수님이 찾아왔습니다. 제 지도교수님은 그날 사회를 맡았고 학회에서 질문이 안나올걸 걱정하셨습니다.
지도교수 : “학생들은 이번 노벨포럼에서 질문할 내용들 1개 씩 만들어오고 검토 받으세요.”
저는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발표내용을 듣기도 전에 질문할거리를 생각하라니.
결국, 제가 생각해낸 질문은 너무나 초보적인 질문이라 교수님이 새로 생각해와라 했는데 3차례 생각해낸 질문들이 기각 당하고 그날 강의 듣고 질문하겠다고 했습니다.
학회 날, 시카노바 교수가 발표를 마치고 Q&A시간이라고 교수님이 영어로 말했습니다.
그때, 시카노바 교수는 이날 한국인들이 부끄러움이 많아 질문을 안한다고 들었다고 마이크에 대고 농담으로 말하더군요.
지도교수 : “Let’s see. What will happen.”
이 말과 함께 저희는 줄서서 질문했습니다. 역시나, 학생들의 질문은 제 연구실에서만 나왔습니다.
질문은 일종의 훈련이 좀 필요합니다. 저는 너무나 초보적인 질문인지라 쉽게 이해한거 같은데 저를 제외한 다른 학생들의 질문은 시카노바 교수가 이해를 못했습니다. 하지만, 제 교수님은 미리 알았기 때문에 수준 낮은 영어질문을 고급영문으로 즉석 번역해 질문하셨고 그렇게 한국인의 자존심은 지켜졌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자괴감이 섞인 슬픈 것 같기도 한 약간 복잡한 감정이 듭니다.
학회가 끝난 후, 저는 인생샷을 남겨야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교수님들과 대화하던 시카노바 교수에게 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뉴로 : Hello. I am Neuro and a graduate student. It is a great honor to meet you. Can I take a picture with you? (안녕하세요. 저는 대학원생 뉴로입니다. 만나뵙게 돼 영광입니다. 사진 같이 찍어도 될까요?)
시카노바는 웃으면서 ‘Sure why not?’ (물론이지 왜 안돼?)
그렇게, 제 인생 최초로 노벨화학상 수상자와 단독사진을 찍었습니다.
연구실에서 인턴 중이던 학부생이 제게 조용히 와서 묻더군요.
A학생 : “오빠, 노벨상 수상자와 사진찍어도 되요?”
뉴로 : “대가들이 이런 식으로 ‘뭐 해도 될까요?’란 질문 받으면 답변이 뭔 줄 알어?”
A학생 : “뭐라하는데요?”
뉴로 : “Sure, why not?이다. 내가 보여줬으니 너도 하면 된다.”
A양도 그 자리에서 용기를 얻고 가서 자신의 인생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날, 누군가에게 행동할 용기를 준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각주
[1] : 실제로 학교에서 운영하기 때문에 거의 준-교직원과 같다고 선배들이나 교직원들께서 말했습니다.
그림 출처
https://jjalbang.today/view/%EB%88%88/2393
http://www.chemical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50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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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에서 생명과학을 하다가 대학원에서 bioinformatics를 접해 매일 컴퓨터에 앉아 있는 대학원생이다. 최대 고민은 커져가는 뱃살! 그리고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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