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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에게 보내는 철학 서신] 1-8 파울 파이어아벤트, 과학 철학의 “우드스탁” (1)
오피니언 갑오징어 (2020-10-13)

일러두기

    에세이 집필에는 다음 번역서를 활용했다. 
: 파이어아벤트, 파울. 『방법에 반대한다』, 정병훈 옮김, 그린비, 2019. 약자를 사용해 AM(Against Method)으로 지시하기로 한다. 
    이 에세이는 저자 사정으로 전체 3~4회로 나누어 개제될 것이다.

 

이제 이 연재는 20세기 중후반을 풍미한 네 명의 과학철학자 가운데 마지막 순서에 오는 파이어아벤트(Paul Feyerabend, 1924~1994)에게 도착했다. 많은 문헌은 파이어아벤트가 나머지 세 명과 이질적인 인물이라는 데 주목한다. 과학적 탐구에 적합한 고유의 방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파이어아벤트, 그리고 그러한 방법에 대해 명시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했던 나머지 셋 사이에 있는 이질성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서술은, 파이어아벤트가 나머지 셋과는 대조적으로 과학에 대해 무언가 이상한, 좀 더 강하게 말해 비합리적인 이야기를 한 것과 같은 효과를 주는 듯 하다. 내가 택하지 않을 또 다른 대조도 가능하다. 포퍼와 쿤을 대조하고, 파이어아벤트를 쿤 이후의 한 변종적 견해로 다루는 것이 바로 그 대조 방법이다. 이런 대조는, 포퍼와는 달리 과학사의 다양한 장면을 단지 ‘발견의 맥락’으로 치부하여 과학의 논리를 반성하는 데서 배제하지 않은 쿤과 그 이후의 성과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 그러나 이 속에서, 파이어아벤트의 독창성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듯 하다. 

나는 포퍼와 파이어아벤트를 양 극단으로 놓고 서술하는 것이 파이어아벤트의 슬로건, 또는 결정적인 기여를 조명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본다. 이는 과학을 통해 인간의 해방과 발전을 실현하기 위한 활동으로 만들기 위해 과학자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두 사람을 서로 반대로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포퍼는 과학자란 비판적 개인이라는 이상에 도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며, 과학을 구성하는 방법과 제도는 이러한 이상을 지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발전해 왔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과학 속에 담긴 비판적 개인이라는 이상을 실현하기만 한다면, 물론 인간의 해방과 발전 역시 달성될 것이다. 쿤과의 소통에서 상당한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파이어아벤트는 이러한 주장을 과학에 대한 일종의 왜곡이라고 말한다. 그는 학계와 과학 훈련의 경직성에 대해 쿤 이상으로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은, 적어도 학계의 경직된 분위기 내에서는 비판적이고 자유로운 개인을 양성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 과학은 심하게 말해 다른 종류의 억압적 제도에 비견할 만한 압력을 구성원들에게 가할지도 모른다. 바로 이런 맥락 속에서, 공격적 발언이 가득 담긴 『방법에 반대한다』는, 과학 속에서 포퍼가 기대했던 이상을 정말로 실현하려면 “무엇이라도 좋다(anything goes)”라는 단 하나의 방법론적 원리 이외에는 믿지 말라고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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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파이어아벤트. 두발의 상태로 보아 『방법에 반대한다』를 집필하던 시절의 모습으로 보인다. 다음 인터넷 출처에서 얻었다. https://www.timetoast.com/timelines/paul-feyerabend-e2a250b6-2c48-4668-b5ad-cf8e32c03d06

 

“철학의 우드스탁”, 그리고 과학과 자유

“『방법에 반대한다』는 … 책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사건[이고], …. 철학의 우드스탁”1) 이라는 해킹의 진술보다 파이어아벤트의 지적 생애와 이 책이 과학철학에 준 충격을 잘 설명하는 진술은 없을 것이다. 우드스탁 페스티벌(woodstock festival, 1969)에서 히피들의 반문화(counterculture)는 마침내 지상에 실현되었다.2)  2차 세계대전에서 전체주의를 꺾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이를 통해 자유의 사도로서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게 다가섰던 미국이라는 국가의 도덕적 권위는 베트남에서의 불명예, 다시 말해 빈약한 무장만을 갖춘 제3세계 인민이 첨단의 작전 능력을 가진 미군에 맞서 보여준 불굴의 저항과 함께 실추되었다. 국가 뿐 아니라, 종교, 가부장을 중심으로 하는 가족과 같은 전통적 제도 일체가 청년들에게는 지극히 보수적인 것으로서 의심의 대상이 된 상황에서, 우드스탁의 경험은 이들 제도를 대신하려는 반문화의 시도를 현실에 구현할 수 있다는 희망의 상징이 되었다. 


“철학의 우드스탁”이라는 말은, AM이 동일한 희망, 또는 방향성을 과학에 대해 사유하던 많은 학자들에게 던졌다는 뜻이다. 달에 도달한 과학(1969)은 절정에 도달했지만, 동시에 수많은 문명적 병폐들의 원인으로 지목받았다. 이러한 병폐의 초점에는 국가가 있었다. 전쟁, 그리고 냉전을 거치면서, 문명을 위협하는 강대한 적을 격멸하고 억제해야 한다는 국가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과학은 유래없는 규모로 관료화되고 국가의 체계 하에서 제어받는 상황 아래 놓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과학 연구의 제도적 배경이 된 국가의 도덕적 권위가 실추된 상황에서, 과학이라고 해서 상황이 특별히 나았을 리는 없다. 결국 해킹은, 과학에 대항하는 반문화라는 방향성이 AM 속에 들어 있다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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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우드스탁 페스티벌의 한 장면. 다음 인터넷 출처의 6번 사진임을 밝힌다. https://www.dw.com/en/woodstock-a-legend-despite-chaos/a-50008163

사실 이러한 논지는, 이미 쿤의 논의에서부터 예견할 수 있는 것이다. 쿤은 과학자로서의 생애 초기, 즉 학부나 석사 과정에서 겪는 훈련은 과학 자체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억제하고, 현재의 퍼즐 조각들이 어떻게 잘 조합되어 있는지, 그리고 학계에서 잘 풀리지 않은 퍼즐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는 과학자들은 적어도 교육을 받는 입장에서는 자유를 (부분적으로는) 억제당하는 경험을 한다는 진술과 동일한 것이다. 파이어아벤트가 개최한 “철학의 우드스탁”에서 울려퍼지는 공연의 주제는, 바로 이러한 억제가 명백한 사실인 이상 현재의 제도적 과학이 그 자체로 자유를 증진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포퍼의 주장을 믿기 어렵다는 데 있었다. 


첫 공연: 존 스튜어트 밀, 혁명이 도그마가 될 때

 

1악장: 도그마의 탄생에 대한 밀의 모형

 

스승이기도 한 포퍼를 폄하하면서, 파이어아벤트가 자신의 우드스탁에 초청한 첫 스타는 존 스튜어트 밀(John Struart Mill, 1806~1873)이다. 밀은 이 무대에서 하나의 혁명적 아이디어가 어떤 과정을 거쳐 진부하고 보수적이며 제대로 점검되지도 않은 도그마로 바뀌어 가는지에 대한 하나의 모델을 우리에게 들려준다.3)  


1)    어떤 주제 A에 대해 새로운 주장 T가 제안된다.

2)    T가 처음 발표되어 이에 익숙하지 않은 적대적인 청중에게 직접 노출된다.

2-1) 생경하다는 이유에서 대부분의 청중은 T를 무시한다.
2-2) 새로운 세대, 기존 주장 S에서 실패를 맛보았던 많은 학자들과 같이, T를 받아들일 동기를 가진 일부 청중은 T를 자신의 연구 주제로 택한다. 

3)    T를 연구한 학자들이 중요한 성공을 보고한다. 

4)    3)을 바탕으로 T가 해당 주제를 다루는 주제 A를 다루는 A’의 논의 대상으로 널리 퍼지고, 이윽고 A’계를 넘어 대중적인 주목의 대상이 된다. 

5)    T를 연구한 성과가 교과서, 대중서, 자격시험과 같은 대중적 매체에도 실리고, A를 다룰 때 있어 T는 결정적인 주장으로 인정받기에 이른다. 

6)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T는 A’의 상식으로 바뀐다. 즉, A를 다룰 때 있어 의심할 필요가 없는 주장으로서 간주되기에 이른다.4)

밀의 공연은 자못 인상적이다. 한때는 혁신적이었던 T는, 그것의 성공과 대중적 전파를 계기로 A 영역에 대한 학계와 대중의 이해를 지배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혁신을 실제로 감행하고 성공을 본 세대는 기존의 상식에 도전하는 비판적 개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배가 지속되는 과정은 교육에 의해 재생산되고, 이 교육은 비판적 개인을 길러낸다는 목적과는 거리가 멀어져 간다. 밀의 서술을 빌어 본다. “…교육은 새로운 교리를 그것을 가져온 심적 과정 없이 이해시킨다. 그리고 점차 그것이 자리를 대치한 교리에 의해 오랫동안 행사되었던 것과 같이 매우 똑같은 억압적인 힘을 획득한다.” 쿤 이후, 많은 과학철학 책의 서두를 장식하는 비판을 밀은 (아이디어를 얻은 영역은 조금 다르지만) 이미 19세기에 하고 있었다는 것이 파이어아벤트의 지적이다.

이 인상적인 모델은 과학이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심원한 비판이다. 많은 과학자들은 자신의 가설과 주장의 영향력을 넓히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을 것이다. 논문 출판, 특허와 같은 제도를 통해 이러한 영향력은 수량화되고, 과학자들은 이들 제도가 유도하는 방식을 반영하여 자신의 영향력을 넓히려 할 것이다. 교과서, 대중서 집필처럼, 학부 교육과 같이 해당 학계로 초심자들이 출입할 수 있는 교통로를 장악하는 방법 또한 중요하다. 선호하는 방법에 대한 차이는 있겠지만, 일정 범위의 청중에게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설득하고 싶지 않은 과학자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영향력의 확대 과정이 어떤 임계점을 넘게 되면, 이 가설은 의심을 받지 않는 교조적 지위를 얻게 된다는 것이 밀의 모델이다.

밀의 모델은, 자못 섬뜩한 역사 철학을 담고 있다. 지금 볼 때 얼마나 혁신적이고 해방적인 주장인지와는 무관하게, 밀의 모델을 따라 상황이 진행된다면, 결국 모든 과학적 주장과 그를 입증하기 위한 노력은 잠재적으로 억압자의 칼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설득을 위한 개별 학자나 학파의 순수한 노력은, 어느 시점이 넘으면 억압으로 변신할 지 모른다. 

아마도 이런 우려에 대한 전형적인 답은, 어떤 설명은 진리, 또는 거의 진리라고 강조하는 데 있을 것이다. 설사 T가 억압으로 변화했다 하더라도, 그 억압이 실재에 기초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가령 상대성 원리를 부정하고 천문 현상을 관찰하고 하늘로 물체를 쏘아 올리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어리석은 노력이며, 진리와 그것이 기반한 실재를 부정하는 노력일 뿐이라는 것이 이들의 입장일 것이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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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존 스튜어트 밀. “철학의 우드스탁”에서 밀이 가장 중요한 학자로 인용되는 것은 마치 락 페스티벌의 핵심 프로그램으로 클래식 공연이 들어간 느낌을 준다. 그러나 음악적 맥락에 따라 클래식 역시 전위적인 충격을 줄 수 있음을 염두에 둔다면, 파이어아벤트가 자유와 인간 개발의 철학자로서 (포퍼가 아니라) 밀을 인용한 것 역시 같은 견지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AM 4장의 주석 2를 참조하라. 사진의 출처는 다음과 같다. https://www.greelane.com/ko/%EC%9D%B8%EB%AC%B8%ED%95%99/%EC%98%81%EC%96%B4/virtue-and-happiness-john-stuart-mill-1690300/

 

2악장: “무엇이라도 좋다”, 그리고 인식론적 아나키즘의 악명에 대해

 

이런 답변에, 파이어아벤트는 철학자다운 한 가지 반론을 준비해 두었다. “어떠한 관념도 그것의 모든 분지까지 검토되지는 않으며, 어떠한 관점도 그것이 가져야 할 모든 기회를 갖는 것은 아니다. 이론들은 그 진가를 나타낼 기회를 얻기 훨씬 전에 포기되고, 보다 시류에 적합한 설명에 의해 대치된다(AM 96쪽).” 이는 어떤 주제에서든 지금 학계에서 널리 퍼진 것과는 다른, 다양한 대안적 설명이 존재할 수 있고, 이들 설명은 너무 이르게 포기된 것일 수 있다는 뜻이다. 일정한 지적 곡예를 거치고 나면, 지상에서 쏘아올린 물체의 운동을 중력의 법칙이 아닌 다른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 과정 속에서 예상치 못한 다른 발전이, 가령 수학에서의 혁신이 일어날 지도 모른다. 이 가능성을 왜 차단하려 하는가? 바로 이 맥락에서 파이어아벤트는 자신의 유명한 슬로건을 꺼낸다. “무엇이라도 좋다(anything goes).”6)

이러한 인식론적 아나키즘은 파이어아벤트의 한 가지 과격한 주장으로 연결된다. 현재 학계가 채택한 최선의 설명이 아닌 다른 설명이 논리적으로 여전히 가능하다는 점, 그리고 이러한 다양한 설명이 발전할 수 있는 틈새가 과학계에 필요하다는 주장으로부터, “사이비 과학”으로 부를만한 여러 시도 역시 동등한 비중으로 매체와 교육 제도에서 다뤄져야 한다는 결론을 파이어아벤트는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철학의 우드스탁”이 이런 귀결로, 다시 말해(파이어아벤트의 예를 들어) 부두교나 중의학의 교설을, 또는 반 백신론자나 기후변화 회의론자들의 주장을 현재 관련 학계가 최선의 가설이라고 생각하는 가설과 함께 가르쳐야 한다는 귀결로 향하는 데 대한 우려가 충분히 가능하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 답하는 소극적 방법은 이것이다. AM은, 모든 기성 권위를 의심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태어난 저술이다. 따라서 이 사회적 여건이 충분히 변화했다면(즉, 기성 권위를 어느 정도 신뢰하는 것이 그것을 의심하는 것 보다 오히려 나을 경우) AM의 결론을 꼭 받아들여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나는 이것보다 더 적극적인 답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7) 물론, 이를 위해서는 파이어아벤트의 주장 범위를 좁힐 필요가 있다. 

모든 진술은 그 한계까지 시험되지 않는다는 말에서 다시 출발해 보자. 그 가운데 어떤 진술은, 밀의 모델에서처럼 언젠가 학계가 의심을 거두는 진술로 선택되게 된다. 이렇게 의심을 거두는 귀결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결단이 설명한다. 다시 말해, <T에 대한 의심은 이것으로 충분하다>라는 판단을 내리고, 이 판단에 따라 T를 사실처럼 받아들이는 것은 단지 증거 뿐만 아니라 결단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어떤 정밀한 측정을 수행하더라도 이러한 결단의 작용은 사라지지 않는다.8) 어떤 과학적 주장이 지배적 지위를 차지하게 된 결과 배후에는 이러한 결단이 자리한다는 점, 그리고 이 결단은 상황이 바뀌었다면 다른 주장에 대해 적용되었을 것이라는 점. 이것이 ‘사이비 과학’에 관용을 요구하는 파이어아벤트의 주장을 최소한으로 축소하여 받아들일 때 남는 부분이다. 

파이어아벤트의 아나키즘을 이렇게 해석하면, “사이비 과학”에 대한 그의 주장을 완화할 수 있는 길도 열린다. 가령 전 인구는 백신을 접종해야 한다는 보건당국의 명령을, 그리고 모든 경제 주체는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한다는 국제 기구의 권고를 의심하는 주장이 있다고 해 보자. 이 주장은, 백신 접종 프로그램은, 그리고 온실가스 감축 프로그램은 백신의 효과나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의 효과에 대한 증거 뿐만 아니라, 이 증거라면 정부의 강제력을 활용하기에 충분하다는 결단에 의해서도 지지된다는 점에 의해 반박될 수 있다. 그리고 이 결단은 사전 예방의 원칙,9) 다시 말해 현재의 관점으로는 그 피해 범위를 통제할 수도 없고 어디까지 피해가 번질지 불분명하여 잠재된 피해의 범위를 추측하기 어려운 위험을 예방하려 할 때 위해 참조할 가치가 있는 원칙과 같이 증거가 불충분한 상황에서 판단에 활용할 수 있는 원칙에 의해 지지되고 있다. 미래에 일어날 피해의 규모에 대한 불확실성이, 그리고 이를 방지해야 한다는 결단이 오히려 정부의 강제력을 동원하게 만드는 이유라는 것을 강조한다면, 백신이나 기후 대책에 대한 회의론은 단지 증거의 불확실성만을 파고들어서는 승리할 수 없으며 당국이 정책적 결단을 내린 이유에 대해서도 반기를 들고 도전해야 승리할 수 있는 주장임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주장이 과학의 방법을 초역사적인 것으로 간주하려 한 동시대의 과학 철학자들이 실패한다는 점을 보여주려 했던 것이 파이어아벤트의 정신인 만큼, “사이비 과학”조차 논쟁의 장에서, 논의의 자유 시장에서 배제할 필요는 없다는 그의 공격적 주장을 오늘의 역사적 맥락과 무관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10)

 

주석

1) AM 7쪽. 이언 해킹(Ian Hacking)이 AM 제4판에 붙인 서문의 문장이다. 

2) 1960~70년대 당시 세계를 풍미한 반문화에 대한 내 지식은 다음 저술에 크게 의존한다. 조지 카치아피카스, 『신좌파의 상상력』, 이재원ᆞ이종태 옮김, 이후, 1999.

3)  밀의 『자유론(On Liberty)』 (19세기 저술이므로 시중에 다수의 번역본이 있다) 2장에서 전개되는 논증을 압축한 것이다. 특히 2절, “억압받는 의견이 오류일 경우”에서 같은 논지의 논의가 전개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주 흥미롭게도 밀은 가톨릭이 신자를 두 부류로 나누고 있다는 점을, 즉 교황청은 성서에 대한 해석의 권한을 독점하고 평신도의 경우 사제를 따르는 것을 의무로 부과하고 있는 구조를 해당 모델을 소개하는 부분 바로 앞에서 소개하고 있다. 밀은 그 결과 가톨릭교회는 “한쪽으로는 자유가 없는 문화를 통해서 폭넓고 자유로운 지성이 등장하는 것을 막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 쪽으로는 자신의 신앙과 교리를 이성에 입각해서 치밀하게 옹호하고 그 반대자들을 반박할 수 있는 지성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박문재 옮김, 『자유론』, 현대지성, 2018, 101쪽)”고 지적한다. 나는 파이어아벤트는 가톨릭에 대한 밀의 언급을 분명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갈릴레이 사례에서 매우 중요하게 등장하는 것이 바로 교황청에 의한 종교재판이기 때문이다. 과격파의 주장 앞에서 천년 넘게 유럽인들의 삶을 돌보던 제도인 가톨릭의 입장에서 볼 때, 갈릴레이의 행동은 새로운 과격파가 보여준 만용에 가까웠다는 것이 파이어아벤트의 지적이다. 세부 논의는 아래에서 계속한다.

4) AM 88~92쪽(3장 후반부)을 재구성한 서술이다. 

5) 바로 이 쟁점으로 인해 과학 철학의 핵심 쟁점이 된 주제가 이 에세이 2부의 주제가 될 “과학적 실재론”이다.

6) AM 69쪽. 1장 최후미.

7) 이것은 한국과 세계의 오늘이 소극적 답변에 동의하기는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8) 물론 이러한 결단을 내려도 좋은 시점은 당시의 기술적 조건과도 깊은 연관이 있을 수밖에 없다. 가령 국제단위계의 수치 오차 범위는 여러 측정 장비들의 기술적 신뢰도에 기반해 결정된 것이다.

9) 유엔 환경계획의 다음 정의를 참고한 진술이다. 
"심각하거나 회복불가능한 피해에 대한 위협이 있을 때, 완전한 과학적 확실성의 부족은 환경 파괴를 예방하기 위한 비용효율적 조치를 유예할 이유로 사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United Nations Environment Programme(UNEP), Rio Declaration on Environment and Development, principle 15.  http://www.unep.org/Documents.multilingual/Default.asp?DocumentID=78&ArticleID=1163


10) 실제 논쟁을 평결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맥락에서 ‘입증 책임’이라는 개념을 꺼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파이어아벤트는 (적어도 AM에서는) 이 쟁점을 전혀 언급하지 않음으로서 그의 아나키즘을 훨씬 더 과격한 형태로 다듬어 내는 데 성공하였다.

 

거대도시 서울 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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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우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

과학철학을 공부했다. 철학이 오늘날의 정교한 지적 분업 체계 속에서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고민하고 있다. 『거대도시 서울 철도: 기후위기 시대의 미래 환승법(워크룸프레스, 2020)』을 저술했고, 의학의 철학을 다룬 책 약간을 번역(공역)했다. 앞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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