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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리의 육아일기] 신데렐라가 되다
Bio통신원(닥터리)
200일 사진
출산을 기점으로 나의 생활 패턴은 180도 바뀌었다.
2년 전 결혼을 했지만 랩원들은 내게 결혼한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결혼을 했다고 해서 나의 일상이 달라진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집에서는 달랐다. 설거지만 할 줄 알았던 내가 아침밥을 챙겨 남편과 먹고 나오는 기적이 일어났으니 말이다. 자취한 적이 없는 나는 라면만 끓일 줄 알았을 뿐, 밥도 할 줄 몰랐고, 콩나물국, 계란말이 등등 어떤 요리도 할 줄 몰랐다. 다행히 남편이 5년 넘게 자취생활을 했기에 그 내공을 배워가며 살았다.
저녁은 당연히 연구실에서 먹고 12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들어왔으니 실험실 사람들이 느낄 때 결혼 전후의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밤샘 실험도, 회식도 결혼의 유무와는 관계없는 이슈였다.
불과 10개월 전 아기를 임신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랩원들이 내 앞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고, 회식 때 내게 술을 권하지 않는 것이 일상이 되었을 뿐, 앞서 말했듯 박사과정 막바지 학생으로서 또한 연구실 방장으로서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고, 그 일들을 다 수행하며 생활했기에 임신이 연구실의 일상에 주는 영향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출산 후 내 시간은 나만의 시간이 아니었다.
아기의 일정에 맞추어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정해진 시간에 반드시 퇴근해야만 하는 삶이 되면서 나의 일상은 랩원들과는 전혀 다른 일상으로 셋팅이 되어야만 했다.
게다가 우리 아기는 모유만 먹고 있었기 때문에 나의 하루 일과는 이렇게 펼쳐졌다.
아침 7시 30분에서 8시까지 수유하고 출근한다.
12시에 도시락을 혼자 후루룩 먹고 지하철역까지 10분을 뛰어간다.
친정엄마가 아기를 데리고 12시 30분에 지하철역 수유실로 오시면 20분간 수유하고 다시 연구실로 온다. 6시에 퇴근해서 늦어도 7시에는 아기가 젖을 먹을 수 있도록 늦지 않게 서둘러 귀가한다.
100일이 좀 지난 아기가 3시간에는 한번 씩 먹어주어야 할 모유를 5시간마다 한 번씩 먹기 때문에 나의 퇴근은 절대 늦을 수 없었다. 12시 종 치기 전에 무도회장을 빠져나와야 하는 신데렐라처럼 내 연구실의 하루에는 6시라는 데드라인이 있었다.
사실 우리 연구실에서 이제껏 6시에 퇴근하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 교수님은 8시 전에 출근하셔서 저녁까지 드시고 가시는 일이 빈번했고, 교수님 퇴근 전에 나서는 학생은 아주 아프거나 집안에 중요한 일이 있는 경우였다. 그리고, 일찍 나가야 하는 경우에는 교수님께 그 이유를 사전에 말씀드려야 했기에 구차하게 허락을 구하고 싶지 않았던 우리 학생들은 교수님보다 먼저 퇴근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아기를 핑계(?)로 6시에 연구실을 나서는 내 맘은 늘 편치 않았다.
나와 실험을 같이 해야 하는 랩원들도 나 때문에 서둘러 일을 끝마쳐야 하는 부분에서 불편함이 있었으리라. 이전 같으면 늦게까지 실험을 하고 나서 늦은 저녁 겸 맥주 한 잔을 함께 했을 텐데 그런 생활은 엄마에게 허락되지 않는 생활이었다.
게다가 나는 박사과정 마지막 학기 학생이었고, 학위논문과 디펜스를 준비하면서 박사과정 논문에 들어가는 데이터의 후속 연구 실험을 진행하고 있었기에 실험적인 부분에서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었다.
특히 주말에는 나와 남편이 오롯이 아기를 돌보아야 하는데 토요일 오전까지는 무조건 출근해야 한다는 우리 연구실의 규칙이 있었고, 당시 나는 매주 primary oligodendrocyte culture를 하고 있었기에 약물 처리와 실험하는 날을 주중으로 맞추기 위해서는 반드시 토요일 오전에 oligodendrocyte 분리를 해야만 했다.
분리하는 시간이 보통 4-5 시간은 걸리기 때문에 규칙대로라면 토요일 9시부터 2시까지는 근무해야 하는데, 육아 때문에 그 시간을 내기가 정말 어려웠다. 결국 나는 교수님께 말씀드려 토요일에 내가 가능한 시간에 나와 3시간 이상 근무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일명 탄력근무제였지만 사실 내가 선택한 시간대는 새벽 4시부터 아침 8~9시였다. 아기가 자는 동안 culture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새벽에 나와 실험을 끝내고 출근하는 랩원들과 인사하며 퇴근하는 그런 토요일 아침을 그 실험이 끝날 때까지 약 6개월간 계속 맞이했다.
나는 늘 평일 9시부터 6시까지 9시간 안에 실험실에서만 할 수 있는 일들을 끝마쳐야 했기에 시간을 쪼개고, 여러 실험을 겹쳐서 계획하면서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일을 진행할 수 있을지 늘 고민했다.
예를 들어 Western blot과 동물 수술, 조직 section을 하고, 후배 실험을 봐주기로 했다고 하면 아침에 전기영동을 내리고, gel이 내려가는 동안 동물실에서 수술을 하고 나와서, Transfer를 한 뒤 중간에 조직 section을 한다. section 중간중간 Western blot의 스텝을 진행한다. 후배 실험 봐주는 것도 미리 시간을 정해서 정확히 그 시간에만 봐줄 수 있다고 말해놓고, 그것도 나의 스케줄에 넣는다. 그리고, 내일 실험할 때 사용할 시약을 미리 만들어 바로 쓸 수 있게 한다. 이렇듯 하루하루 연구실에서의 일과는 빠듯하게 돌아갔고, 이따금 즐기던 랩원들과의 수다와 커피 한잔의 여유는 추억이 되었다.
만일 실험적인 스케줄 관리에 문제가 생겨 아침에 와서 buffer를 만들거나, 시약이 어디 있는지 찾는 일이 벌어지면 예상했던 시간을 초과하게 되어 일을 다 끝내지 못하거나 늦어버리게 되기에 실험하기 2-3일 전에 내 실험 프로토콜과 필요 시약을 다 셋팅하여 실험만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주어야 했다. 그리고 아침에 출근하면서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해 머릿속에서 미리 시뮬레이션을 하면서 자투리 시간의 활용을 고민했다.
데이터 정리 등 컴퓨터로 할 수 있는 일은 집에서 아기가 자는 동안 해야 하는 몫이었다. 박사학위 논문 쓰기, 과제 계획서, 과제 보고서, 랩미팅 자료 등등 데드라인이 존재하는 일들은 싸서 집으로 들고 왔다.
이렇게 숨 가쁘게 연구실서 보내다가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여는 순간, 나는 전혀 다른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주은아 엄마 왔다~! 우리 애기 잘 지냈니?”
나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딩동댕 유치원에서 나올법한 혀 짧은 말투로 아기를 안아준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우리 딸내미를 보시던 친정엄마를 해방(?) 시켜 드리고, 고생하셨다 말씀드리고, 아기 젖 먹인 후에 친정집 청소, 설거지를 싹 다 마친다. 그리고 말도 못 하는 아기에게 질문을 퍼붓는다.
잘 지냈는지, 오늘 뭐 했는지, 키 크는 마사지를 하자는 둥, 놀이터에 나가 바람을 쏘이자는 둥.. 계속 일방적인 수다를 떤다.
신기하게도 아기를 만나는 순간부터 나는 완전히 딴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오늘 연구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일까지 교수님께 드리기로 한 보고서를 오늘 밤 어떻게 작성해야 할지...
복잡했던 생각들을 뒤로하고
그저 아기 수준에 맞추어 웃고 떠들다 보면 진심으로 즐거워진다.
자식 얼굴을 보면 피로가 싹 풀린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이런 것일까?
난 피로가 풀리는 것은 모르겠지만,
돌이켜보니 그저 나만 바라보는 어린 생명 앞에서
나도 똑같이 어린아이가 되어 딸과 함께 웃고 떠들던 그 순간이
내 뇌의 휴식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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