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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소설로 읽는 근미래 이야기] 56. 도서관
Bio통신원(과학작가 박재용)
청원군립 오창 도서관에 출장 대출 전담 로봇이 새로 도입되었다. 현영은 일의 반을 덜었다. 일주일에 세 번 대출 신청받은 책을 가지고 집들을 방문하고 다시 수거하는 일은 번거롭기도 했고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로봇이 그 일을 대신한다. 훨씬 효율이 높다. 인터넷으로 신청받은 책을 직접 서가에서 뽑고 방문해서 전달하고 수거까지 한다. 일주일에 삼 일이 아니라 일주일 내내 주말까지 방문이 가능하다.
일이 많이 줄어든 건 아니다. 그 대신 지역 커뮤니티 운영 일이 현영에게 맡겨졌다. 지수가 혼자 감당하기 힘들어했던 일의 일부가 현영에게 온 것이다. 현영은 초등학생 독서모임을 맡았다. 일주일에 한 번 하는 모임이지만 프로그램도 기획하고 방역도 해야 하고 이런저런 준비가 필요하다. 그리고 현영도 일을 줄여야 할 이유가 있다. 아이가 들어섰다. 이제 삼 개월째 슬슬 몸이 반응을 한다. 속이 미식거리고 소화가 잘 되질 않는다. 딱히 입덧이랄 거는 아니지만 먹는 양이 줄고 평소 그리 좋아하지 않던 음식은 아예 먹질 못한다.
헤이 도서관, 이찌에게 동선 전달해 줘
네. 도서관 인공지능이 현영이가 타고 갈 자율주행차에 오늘 배달할 행선지를 전달한다. 오늘이 마을을 한 바퀴 도는 마지막 날.
첫 방문지는 코비드49 양성 반응을 받은 초등학교 6학년 선영이. 증세가 크게 나쁘지 않아 입원하지 않고 동네 격리센터에서 8일째 격리 중이다. 집 앞에 도착하니 홈케어 로봇이 벌써 나와 있었다. 이찌가 연락한 듯.
안녕 여기 책. 선영이가 빌리는 책은 ‘닌자 개구리’ 현영이 책을 넘기자 홈케어 로봇이 받고는 꾸벅 인사를 한다.
감사합니다.
그러면서 반납할 책을 내민다. ‘8과 1/2 정거장에서 만난 그 녀석’
그래 선영이는 어때?
네 열도 이제 내리고 괜찮아졌습니다. 격리센터를 온통 휘젓고 다녀요. 몸이 나으니 나가고 싶어 근질거리나 봐요.
그래? 다행이네. 책은 재미있었대?
글쎄 표정만 봐선 잘 모르겠어요. 유튜브 보면서 춤추다가 책 읽다가 또 춤추다가 그러네요. 오후 3시까지 온라인 수업하는데 그거 끝나면 자꾸 춤만 추려고 해서 문제예요. 어머니가 화상 통화로 야단도 치시고 하는데 직접 오시는 게 아니니 별 효과가 없네요.
그 나이 땐 다 그렇지 뭐 호호
두 번째 집은 혼자 사시는 여든여섯의 할아버지 성하운. 오디오북도 있는데 꼭 종이에 활자를 보고 싶다시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두 권의 책을 청한다. 도서관의 문학 책을 거진 다 보고 있는 중이다. 여든이 되어서 은퇴하고 2년 전에 부인과 사별했다. 한 명 있는 아들은 서울로 직장을 잡아 떠나고 홀로 있다. 아내 병수발을 2년 넘어 하다 본인도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집 앞에 차가 설 때쯤 홈케어 로봇이 마중 나온다. 오늘 빌려가는 책은 ‘고요한 돈강’ 반납하는 책은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 요사인 20세기 러시아 소설을 주로 읽는 중이다. 마침 홈케어 로봇이 정부지원금으로 대여가 되어 그나마 다행인 셈.
안녕하세요. 늘 감사합니다.
호홋 뭐 내 일인데. 그래 할아버지는 어떻게 지내셔?
조금씩 재활운동을 하는데 아직은 한 열 걸음 정도 걸으시면 쉬셔야 해요. 그래도 꾸준하게 하시니까 조금씩 나아지네요. 드시는 것도 이전보다 조금 늘었고.
그래 쉽게 좋아지진 않으시겠지. 그래도 네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에이 뭘요 할아버지께서 저를 얼마나 아끼시는지 제가 오히려 항상 고마워요.
아이고 말도 참 잘하지. 그래 다음 주에 보자. 아 아니, 다음 주부턴 출장 대출 전담 로봇이 올 거야.
아 네 연락받았어요, 현영 선생님과 많이 친해졌는데 아쉬워요.
뭐 어쩔 수 없지. 나도 몸이 점점 무거워지기도 하고. 나중에 할아버지랑 산책이라도 할 수 있게 되면 도서관에 놀러 와.
네 꼭 그럴게요.
세 번째는 마흔여섯의 장현지씨. 심한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거동이 힘들다. 요사인 신약치료로 조금 나아진 모양이지만 그래도 집밖으로 나갈 때마다 전동 휠체어를 타야 한다. 항상 여행에 관한 책을 신청하지만 아마 여행을 떠나긴 쉽지 않을 듯하다. 남편이 버스기사를 하다 자율주행버스가 도입되면서 해고된 뒤 취업이 안 된다. 경상도와 강원도에 일자리가 두어 번 났지만 부인을 돌봐야 해서 포기했다. 농번기마다 농사일을 거들지만 일 년에 반은 실업 상태. 아내의 장애수당과 남편의 실업수당으로 버티는 듯. 그나마 자식이 없어 버틸만 하다고.
안녕하세요.
마스크를 쓴 사내가 책을 들고 서 있다가 현영의 차가 멈추자 인사를 한다.
여기 ‘지도 밖으로 걸어라’ 잘 봤습니다.
현영도 멀리서 마스크를 쓴 사내를 보곤 황급히 마스크를 썼다.
네 안녕하세요. 여기 신청하신 ‘무라카와 하로키와 떠나는 재즈 여행’이에요.
아 감사합니다.
내외하는 것도 아닌데 사내와는 말이 끊어지고 다시 붙이기도 어렵다. 아마도 사내의 어두운 기운 때문이리라.
세 집을 연거푸 돈 뒤 현영은 길가에 차를 세우고 잠깐 차 안에서 쉰다. 운전을 하는 것도 아닌데 이리 움직이다 보면 조금 피곤한 기운이 몰려든다. 아무래도 임신한 영향인 듯.
아파트 단지가 죽 늘어선 오창 신도심 거리엔 차도 사람도 드물다. 원래도 인구가 많지 않지만 근 10년 너머 여러 번 유행한 감염병으로 이전보다 훨씬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배민이며 쿠팡이며 배달 오토바이만이 분주하다. 현영은 유리창을 내리고 잠시 환기를 한다. 우기가 끝나고 일주일쯤 지났나 보다. 제법 선선한 바람이 반갑다. 보조석 쪽 사이드 미러에 할머니 한 분이 폐지가 가득 찬 자율 손수레에 의지한 채 걸어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건 자동화도 잘 되는데 폐지는 왜 자동으로 줍질 않는 거지?
이찌가 말을 받는다. 저건 돈이 안 되잖아요. 로봇을 개발할 의미가 없다고 하더군요.
흠 돈이 되는 건 로봇이, 돈이 안 되는 건 사람이 한다는 건가?
그럼요 어선에선 아직도 동남아 사람이랑 중앙아시아 사람들이 일하고 있어요. 어선용 로봇을 만들어도 리스비가 더 비싸서 선주들이 사질 않는다더군요. 요트용 로봇은 불티나게 팔리고. 아까 두 번째 현지님 남편도 주변 농장에서 어떻게든 일자리를 얻으려고 하지만 죄다 동남아 사람들만 써서 갈 데가 없다잖아요.
그래도 전동 리어카라서 다행이네. 예전에 리어카를 끌고 가는 모습 보면 어찌나 안쓰럽던지. 사실 임신만 하지 않았으면 출장 대출 전담 로봇을 들이는데 반대했을 거야.
오늘도 다니시는데 보니 좀 아쉬워하시는 모습이었어요.
그랬나? 티는 안 내려고 했는데. 내가 가면 보통 홈케어 로봇이 나를 맞이하지만 사실 그 뒤에 선영이나 정하운 할아버지 장현지씨가 나랑 이어지는 느낌이 있거든. 그분들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지. 특히 이북도 대출이 되는데 굳이 종이 책을 대출받겠다는 분들이니 그게 더 하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이 들어.
출산하시고 몸 추스르신 후 다시 하시면 되지 않을까요?
글쎄 로봇이 한 1년은 한 뒤 다시 내가 하게 될까 모르겠네. 피곤하다. 나 잠깐만 눈 좀 붙일게.
네
이찌는 창을 다시 닫고 현영이 좋아하는 파헬벨의 캐논변주곡을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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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의 아주 주관적이고 편파적인 시선으로 과학의 역사 곳곳에 드러난 혹은 숨은 여러 사건을 바라보고 이를 엽편소설 형식으로 씁니다. 소설이니 당연히 팩트가 아닌 점도 있습니다. 감안하고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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