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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장비 이야기] 시마즈(SHIMADZU) 제작소 탐방기 - 1편
Bio통신원(분석장비 탐험가)
분석장비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시마즈(SHIMADZU)’라는 회사를 한번이라도 들어봤을 것이다. 히타치(Hitachi), 호리바(HORIBA)와 함께 일본 분석장비를 대표하는 회사다.
시마즈 제작소는 1875년, 시마즈 겐조 시니어가 일본 교토에 설립하였다. 교토는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 1075년 간 일본의 수도였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경주와 같이 많은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지방색이 분명하여 교도시민들은 이 곳에 3대가 살지 않았으면 토박이로 인정하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2002년은 시마즈 제작소에 경사스런 한 해였다. 시마즈 연구원 ‘다나카 고이치’가 노벨 화학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시마즈 제작소에서 연성레이저 이탈 기법으로 단백질 같은 고분자 물질의 질량을 순간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기법을 개발하였는데, 이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이 사건 덕분에 다나카 고이치와 함께 그 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일본 기업 ‘시마즈’도 전세계 대중들에게도 알려지게 되었다. 게다가 다나카 고이치는 노벨상 과학분야 수상자로는 유일하게 대학원 경력이 없는 학사 출신 수상자여서 세간의 관심은 더욱 컸다.
당시 동종업계에서 근무하고 있던 나에겐 분석제조회사 연구원이 노벨상을 받았다는 건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다. 특히 학부졸업 후 분석장비와 함께 평범한 삶을 살았던 그가 노벨상을 받았다는 것은 나의 직업을 친척들에게 자신 있게 말하는 데 일조했다.
다나가 고이치에 대한 관심은 나를 관련 신문 기사를 스크랩하고, ‘레이저 이온화 질량분석 기술’에 대해 조사하고, 그의 저서 ‘다나카 고이치, 자신을 경영하는 생각의 기술’ 를 읽게 하였다.
2007년 봄에 내게 생각지도 못한 근사한 제안이 찾아왔다. 그 당시 내가 관여된 제품에 사용할 목적으로 시마즈 제작소에서 취급하는 옵틱을 검토하고 있었는데, 그 옵틱의 이해를 돕고자 나를 시마즈 제작소로 초청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내가 좀 의아해 하자, 당시 한국 대리점 사장님께서 나에게 살짝 귀띔해 주셨다. 내가 그들의 제품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이것저것 물어본 것이 나를 초청 하기로 한 결정적 계기가 된 것 같다고 하였다. 솔직히 그 부품을 너무 몰라서 이것저것 물어본 것이었는데, 나의 무지한 진정성 때문에 이런 좋은 제안이 들어왔다고 생각하니 창피하면서도 괜찮았다.
아무튼 동경했던 것이 현실이 됐다.
이건 마치 ‘이웃집 토토로’을 보고 열광했던 아이가 ‘지브리 스튜디오’로 부터 초청 받은 기분이랄까?
2007년 10월 15일 드디어 시마즈 제작소로 떠났다. 간사이 공항에 도착해서 열차를 타고 교토로 이동했다. 열차 안에서 바라본 일본의 가을 풍광은 우리나라 의 가을 풍광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저 열차 먹거리 카트에서 전해지는 짭조름한 간장내음만이 지금 내가 일본에 있다고 상기시켜주었다.
교토역에 도착하니 나를 초대해준 후지와라 상이 마중 나와 있었다. 50대 초 중반으로 보이는 그의 얼굴에는 주름과 함께 밝은 미소가 가득했다. 대뜸 유창한 우리나라 말로 ‘반갑습니다.’하며 인사해 나를 놀래 켰다. 상대방의 언어로 인사하는 센스, 말쑥한 정장차림, 유려한 영어실력, 빈틈없는 이대팔 가르마에서 나오는 아우라는 대단했다.
설마 했는데, 이 모습에 난 일본 세일즈맨이 북극에서 냉장고를 팔았다는 애기가 정말 사실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와 나는 바로 저녁식사 장소로 이동했다. 택시에서 내릴 때 택시 요금을 현찰이나 카드가 아닌 작은 종이에 금액을 써서 자연스럽게 택시기사에게 건넸다. 낯선 광경이었다. 물어보니, 시마즈회사는 택시회사와 협약을 맺고 이와 같이 택시요금을 정산한다고 했다. 택시회사가 아무 회사하고 이러한 협약을 맺지 않을 터 인데...... , 교토란 지역에서 시마즈 제작소가 갖고 있는 위상을 택시요금에서부터 느낄 수 있었다.
저녁식사장소에 도착하자, 후지와라 상과 단둘이 오붓하게 저녁을 먹을 거라는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시마즈 직원 4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1명은 시마즈 회사 상무 급 중역 임원이었고, 3명은 내일 교육을 담당하는 연구원이라고 하였다. 중역임원은50대 중 후반 정도로 보였고, 교육담당연구원들은 40대 초중반 정도로 보였다. 반가운 얼굴로 나를 반기며, 나이 어린 나를 상석 자리로 안내했다. 좀처럼 경험하지 못한 상황에 당황했다. 약 8만원 정도되는 작은 옵틱을 배우려 왔을 뿐인데, 왜 이렇게 날 극진하게 대접할까? 의도가 궁금했다.
하지만 소박한 꼬치구이와 오뎅탕과 함께 오간 대화에서 어떤 억압과 강제 없이 그들이 진심으로 나를 맞이 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 연구원은 지갑에서 자기의 딸 사진을 보여주며 자기와 어디가 닮았는지 물어봤고, 다른 연구원은 내가 결혼했냐고 물어봤으며, 또 다른 연구원은 한국에 여행가면 어디 가면 좋을지 물어봤다. 거의 음식을 비웠을 때쯤 난 이 극진한 대접은 그들의 선조 때부터 내려온 일본의 세일즈 문화라 것을 눈치챘다.
저녁식사를 마치자 밖엔 비가 부슬부슬 오기 시작했다. 한 손에 우산 들고 비를 피하면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교토의 소박한 자전거 행렬을 보니 다나카 고이치 상의 소박한 삶이 떠올랐다. 역시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받는 것 같았다.
다음날 오전, 시마즈 제작소에 도착했다.
지진 때문인지 건물은 높지 않고 넓었다. 빨간색 ‘SHIMADZU’ 글자 옆에 위치한 시마즈 엠블렘은 ‘The Circle Crossed’라고 불리며1912년부터 사용한 것이라고 한다. 세련되진 않았지만 오랜 전통을 승계한다는 의지가 담긴 것처럼 보였다.
녹차 한잔을 먹고, 바로 교육이 진행됐다. 어제 저녁을 같이 했던 연구원 3명이 번갈아 가며 각각 한 시간 정도씩 옵틱에 대해 교육 해주었다. 첫 번째 연구원은 옵틱제품이 어떤 식으로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설명하였고, 두 번째 연구원은 제작된 옵틱을 어떤 식으로 평가, 관리, 출하되는지에 설명하였으며, 마지막 연구원은 시마즈의 옵틱제품의 장점, 경쟁사 대비 차별성, 응용분야에 대해 설명해줬다.
일본어로 진행됐지만, 후지와라 상이 중간에서 친절하게 영어로 잘 통역해주어 별 문제가 되진 않았다. 어제 함께한 저녁식사도 소통에 윤활유 역할을 하였다.
3명의 연구원이 각자의 전문분야에 대해 친절히 교육해준 덕분에, 궁금했던 것을 알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제품에 대한 신뢰도도 두터워졌다.
교육이 끝나자, 공장 견학을 시켜줬다. 1층부터 3층까지 둘러 보았는데, 1층에는 시마즈에서 생산하고 있는 분석장비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2층은 옵틱을 만드는 시설이 있었다. 3층은 만든 옵틱을 검사하는 곳이었다.
1층에서 들어서자 시마즈의 분석계측장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연구원들은 지금까지 시마즈에서 만든 장비들이라고 자랑하였다. 분석장비 기술이 뒤떨어진 입장에서 많이 부러웠다.
2층 옵틱생산시설은 모두 자동화 설비와 작업으로 이루어져 있을 거라 예상했는데, 의외로 자동화 시설대신 사람이 직접 손으로 옵틱 원자재를 돌과 같은 곳에 문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벽 쪽 선박에는 예전부터 사용해 왔던 도구와 돌들이 가지런히 정리정돈 되어 있었다. 그들은 예전 것을 어느 하나 버리지 않고 잘 보관하고 있었다. 보관 품들은 한 가지 기술을 통달할 때 마다 기념으로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작은 사소한 것까지 기념하였다.
3층 QC 시설에서는 여러 직원들이 현미경과 육안을 이용해 제작된 제품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갑자기 옆으로 누가 우르르 몰려오면 힐끗 쳐다 봄직도 한데, 그들의 시선들은 모두 제품에 고정돼 있었다. 대단한 몰입이었다.
공장을 마칠 때쯤 후지와라상이 옆에 다른 공장이 있는데 가보겠냐고 물어왔다. 가고 싶다고 했다. 옆의 공장은 더 넓었다. 여기서는 분석계측장비가 아닌 항공기 엔진, 항공기용 헤드업 디스플레이 등이 생산되고 있다고 하였다.
나는 시마즈 제작소가 분석계측기기 제조만 하고 있는 것으로 알았는데, 후지와라 상에게 물어보니, 시마즈 제작소는 항공기기관련 부품, 반도체 제조장치, 의료기기 산업에도 진출해 있다고 하였다.
후지와라 상에게 살짝 물어보니, 항공기 산업 매출이 분석계측기기보다 많다고 하였다. 분석계측기기에서 시작한 기술을 다른 분야에 접목하는 능력들이 대단해 보였다. 아무튼 이번 견학으로 시마즈가 분석계측제조회사만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공장 견학을 마치자 점심시간이었다. 점심은 근처 라멘집으로 가기로 했다. 시마즈 공장을 빠져나오면서 후지와라 상에게 지금 다나카 고이치 상은 어디 있냐고 물었다. 후지와라상은 어떤 건물을 가리키며 저기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저기가 어디냐고 물어보자. 직원 식당이라고 했다.
식사 안하고 있으면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냐고 간청하고 싶었지만, 식사 중인데 갑자기 다가가서 인증사진을 찍자고 떼쓰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하지만 노벨상 수상 후에도 여느 때와 같이 직원식당에서 식사한다는 다나카 고이치 상의 애기를 들었을 때 그의 비범함에 감탄했다.
시마즈 제작소를 나오니, 후지와라상이 박물관을 가자고 하였다. 나는 좋다고 하며, 교토 역사 박물관을 상상했다. 약 10분쯤 택시를 타자 박물관이 보이기 시작했다. 박물관은 도심 한복판에 자리잡았는데, 박물관 간판을 보니 다름아닌 ‘시마즈 박물관’ 이었다.
시마즈(SHIMADZU) 제작소 탐방기 -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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