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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노트] 엄마, 아빠, 감사해요
Bio통신원(곽민준)
‘엄마, 아빠, 감사해요. 저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셔서.’
어릴 적, 매년 어버이날 편지에 빠지지 않고 적던 문장이다. 지금 보면 참 성의 없는 이야긴데, 당시 초등학생으로서 내 마음을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적절한 문장은 없었다. 그래도 머리가 좀 크고 나서는 이런 유치한 문장으로 부모님께 마음을 전하지 않는다. 사실 편지란 것 자체를 안 쓰게 돼서 저런 말을 할 기회조차 없는 것이라 갑자기 죄송스러운 마음도 드는데, 뭐 어찌 됐든 낳아주고 길러주셔서 감사하다는 유치한 표현에는 이제 감흥이 떨어졌다. 아니, 떨어졌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말이다.
생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생기는 ‘발달 단계의 문제’와 이 문제가 일으키는 ‘태어난 이후의 실질적 증상’ 간의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파악하는 것은 발달 질환 연구자들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다. 나도 연구실에서 국소적인 지역에 발생하는 대뇌피질 발달 과정의 구조적 문제가 난치성 뇌전증 등 태어난 이후의 증상을 어떻게 유발하는지에 관심을 두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를 위해 IUE 실험으로 엄마 쥐 배 속에 있는 발달 단계의 태아 뇌에 원하는 DNA를 주입한 후1, 유전자 변형 쥐가 무사히 태어나 엄마 젖을 먹고 자라기를 기다렸다가 여러 가지 실험을 진행한다.
처음으로 내가 IUE 실험을 진행한 새끼 쥐가 태어나기로 예정된 날, 설레는 마음으로 평소보다 일찍 랩에 나왔다. 도착하자마자 급하게 주머니 속 핸드폰과 지갑을 연구실 책상 구석으로 집어던졌고, 곧바로 실험복을 대충 걸친 후 장갑과 마스크를 제대로 낄 여유도 없이 일단 손에 든 채로 뛰듯이 걸어 쥐방에 도착했다. 그리고 기분 좋은 마음으로 새 생명의 탄생을 축하하려고 했는데, 아니, 이게 뭘까? 왜 새끼 쥐가 없는 거지? 약간 당황스러웠다. 분명히 오늘이 임신 19일째 출산예정일이고, 예정대로 엄마 쥐의 배는 아주 홀쭉해져 있다. 그런데 도대체 새끼는 어디로 간 걸까?
어제까지만 해도 빵빵하던 엄마의 배가 다시 홀쭉해진 거로 보아 일단 새끼가 배 속에 아직 남아있는 건 아닌 듯했다. 그럼 태어나지 못하고 어젯밤 배 속에서 죽은 걸까?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아마 태어나기 직전에, 혹은 태어나는 도중에 새끼가 모두 죽어버린 것이라고.
그런데 모든 걸 포기하고 시무룩해진 표정으로 쥐방을 나서려던 바로 그 순간, 상당히 이상한 광경이 발견되었다. 쥐가 사는 케이지 바닥에 깔아준 톱밥 한쪽 구석에 꽤 많은 양의 피가 묻어있는 것이 아닌가! 어제까지만 해도 없었던 자국이니 아마 수술 후유증은 아닐 것이었다. 도대체 피가 어디서 난 걸지 궁금해하며, 긴장된 마음으로 피가 묻은 톱밥을 살짝 들춰봤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흉측하게 몸이 부스러진 새끼 쥐의 사체가 톱밥 아래에 묻혀 있었다. 혹시나 해 톱밥의 다른 부분들도 들춰보았더니, 역시나 몸 일부만 남아있는 다른 새끼 쥐들 사체의 잔해가 여럿 발견되었다.
너무 끔찍한 광경을 본 탓에 새끼 쥐의 출생을 축하해 주려던 원래 목표는 까맣게 잊은 채 충격에 휩싸여 랩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멍하니 자리에 앉아 있는데, 내 기분을 전혀 모르는 건지 랩장 누나가 해맑게 웃으며 내 자리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쥐들 잘 태어났어?’
너무 밝게 웃으며 묻길래 나를 놀리는 건가 싶어 순간 욱할 뻔했지만, 간신히 이성의 끈을 잡고 이 사람은 내 상황을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아무렇지 않은 척 방금 있었던 일을 상세히 설명했다. 나는 나름 큰 충격을 받은 일이었으므로 굉장히 격앙되어 상황을 이야기했는데, 의아하게도 내 말을 듣고 있는 랩장 누나의 반응은 그리 격렬하지 않았다. 그냥 오늘 하루 있었던 일에 관한 이야기를 듣듯이 너무나 평온하게 내 끔찍한 기억을 받아들였다. 그러고 내뱉은 한 마디,
‘자주 있는 일이야. 엄마가 새끼 잡아먹는 건.’
충격적이었다. 물론 예상은 하고 있었다. 사체 대부분 누군가 파먹은 듯이 끔찍하게 몸 일부가 떨어져 나가 있었고, 심지어 어떤 사체는 머리가 사라진 채 몸만 남아있었다. 죽은 새끼들을 제외하면 그들의 어미가 그 케이지 안에 있던 유일한 생명체이므로 엄마가 새끼를 잡아먹었을 거라는 걸 어렴풋이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 얘기를 직접 전해 들으니 참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죄 없는 랩장 누나에게 괜히 따지듯이 물었다.
‘어미가 새끼들을 왜 잡아먹는데요?’
‘스트레스받아서 그런 것 아닐까? 우리가 IUE하면 어미 배를 열어서 한 시간 넘게 수술을 하잖아. 정상적으로 애들을 키울 수 있을 리가 없지. 또 새끼가 많이 없으면 원래 잘 안 키워.’
엄마가 힘들어서 새끼를 키우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그냥 버려둔 후 죽으면 잡아먹는다는 것은 너무나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게다가 새끼를 키우기 위해 드는 비용과 새끼를 키워서 얻을 수 있는 유전적 이익을 본능적으로 계산해 새끼 수가 너무 적으면 굳이 양육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사실도 아주 충격적이었다. 내 상식에서는 부모가 새끼를 낳으면 정성스레 양육하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었는데,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나니 굉장히 혼란스러워졌다.
약간 화도 났다. 출산 후 생존율이라는 내 연구를 방해하는 새로운 요소가 생겼기 때문도 있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태어나게 한 새끼의 생명을 책임지지 않는 어미 쥐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IUE를 하지 않은 일반 어미 쥐들은 대부분 새끼를 정성스레 잘 키운다. 새끼 쥐가 태어난 날 바로 세상을 떠난 이 안타까운 일의 책임을 누군가에게 묻는다면, 그 대상은 사실 어미 쥐가 아니라 수술을 진행한 나여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렇게까지 생각이 흐르고 나니, 어미 쥐한테 났던 화가 누그러지고 오히려 그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득 또 다른 분들에게도 죄송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초등학생 때 매년 부모님께 썼던 어버이날 편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른이 된 20대 중반의 나에게 ‘낳아주시고 길러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은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뻔한 한 마디였다. 새끼 쥐의 안타까운 죽음을 목격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러나 부모가 자식의 양육에 언제나 최선을 다하지는 않는다는 걸 알게 된 바로 그 순간, 당연하다고 생각해온 나를 길러준 행위에 대한 부모님의 은혜가 정말 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부분 부모는 자신이 낳은 아이를 책임지고 잘 키우니 그게 당연하다고 여겨왔지만, 아니었다. 한 생명을 키워 낸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새끼의 수가 충분하지 않으면 어미 쥐가 아예 포기해야 할 정도로 자식 양육이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인간 사회에서는 돈마저 상당히 많이 필요하다. 평범한 모든 이들이 하는 일이니 당연하다 생각해왔지만, 평범한 부모가 된다는 것 자체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생쥐 가족의 안타까운 최후를 보고 나니,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건 긴 시간 나를 위해 시간과 노력과 돈을 아낌없이 투자해 온 평범한, 그러나 위대한 두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걸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렇게 질병 모델 쥐의 태어난 이후 증상을 살펴보려던 내 첫 시도는 허무하게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덕분에 잊고 살던 소중한 존재에 대한 감사함과 그 감사함을 잊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한 죄송함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어쩌면 내가 얻게 된 이 단순한 깨달음이 실험 결과로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지식보다 훨씬 소중한 것이지 않을까? 이 짧은 글이 쑥스러워 이제는 쓰지 못하는 편지를 대신해 내 마음을 잘 전해주기를 기대한다. 낳아주시고 길러주셔서 감사한 나의 진심을.
[참고]
1 IUE에 관한 간단한 설명은 지난 연재를 참고하기 바랍니다.
'[랩노트] 한 달 실험이 날아갔다' https://www.ibric.org/myboard/read.php?Board=news&id=319458&SOURCE=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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