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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직업 엄마 과학자] #3. 두 번째 슬럼프
Bio통신원(만박사)
경력복귀 지원 사업을 통한 과제가 끝나가기 전에 연구재단에서 공모하는 과제에 선정이 되기 위해, 나는 열심히 제안서를 작성했었다. 마감 직전에 제출하고 며칠이 지나서 연구재단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세부사업단 선정이 적절하지 못한 것 같으니 변경해서 평가를 받아보고 싶으면 신청서를 내라는 내용이었다. 뭔가 잘 되기 위한 징조인가? 불길한 징조인가? 그 이후로 몇 달 뒤, 비선정 통보를 받았다. ‘처음엔 다 그런 거야, 첫술에 배부르랴’ 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추스렸다. 좀 더 보완해서 다음에 다시 도전하자며 스스로를 위로하며 마음을 다잡았었다. 두 번째 비선정 되었을 때는 ‘왜 안 되는 거지?, 제대로 심사가 된 건가?’ 하며, 심사위원의 심사평을 보면서 납득을 못하기도 하였으나, 이내 수긍하고 다시 보완해서 또 제출을 했다. 세 번째도 고배를 마시면서 솔직히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남들은 쉽게 선정되는 것 같던데, 나만 너무 안 되는 것 같은 절망감이 극복하기 힘들었다. 내가 이 분야가 능력이 많이 부족하구나. 자꾸 이런 생각만 들었다.
끝내 경력복귀 지원 사업이 중단되기 두 달 전에 새로운 직장을 구하게 되었다. 과제지원중단 신청서를 제출하고 서울시립대도 퇴사를 했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새 직장이 집, 남편 직장, 아이들 어린이집과 가까웠다. 하지만 육아와 살림에 대한 일들은 지속적으로 발생하였다. 친정아버지께서 심장수술을 받으셔서 병원에 자주 모시게 되었고, 연령이 높아지니 두 아이가 서로 다른 어린이집으로 등원(그 당시 카이스트 어린이집은 5세까지만 보육이 가능, 2019년부터 확장되어서 초등 입학 전까지 보육이 가능)을 하게 되어 나의 일상에 큰 변화가 생겼다. 여전히 오롯이 연구에만 집중하기에는 힘들었다. 비록 가족 문제 때문이었으나 근무시간에 자리를 때때로 비우게 되고, 그러한 것들이 결국 연구 결과나 성과에 서서히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러한 사정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기존 연구실과는 수행하고 있던 연구를 최대한 빨리 마무리하고 연구 생활을 종료하기로 하였다. 5개월을 채우고(SCI 논문 1편 게재), 같은 학교의 다른 연구실로 옮겼다. 이런 유형은 퇴사했다가 재입사라고 퇴직금도 받지 못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이를 받아들여줄 수 있었던, 탄력근무가 가능한 연구실로 옮기게 되었다. 새로 옮긴 연구실은 팀원들 간에 유대 관계가 매우 좋았고, 주 구성원들이 나 같은 아이들 키우는 여성과학자들로 이루어져 있어 연구 생활 외에 육아 상담도 가능한 장점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식물의 육종에 관하여 연구하는 곳이라서 이에 대한 새로운 연구 분야에 대하여 다시 파고들어야만 했다. 새로운 분야를 연구하는 것 또한 과학자의 소임이라 생각하며, 나의 연구 분야와 어떻게든 연관을 지어 보려고 많은 애를 쓰게 되었다. 다행히도, 그동안의 육아 및 연구에 관한 양립 노하우와 연구실 팀원들 간의 연구 시너지 덕분에, SCI 논문 성과도 얻게 되고, 공동연구도 진행할 수 있었다. 내 전공 분야가 아닌 영역에서도, 나의 연구와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연구를 할 기회가 되어서 뿌듯했다.
첫 SCI 논문은 빠른 리뷰로 유명한 BBRC 저널이었다. 낮에 submission을 하고, 새벽에 accept 통보를 받았다. 이게 가능한 일인지, 이런 저널도 있구나 하며 웃음만 났다. 두 번째 SCI 논문은 할 말이 참 많다. 국내에서 열리는 국제학회였는데 여기에서 선정되어 구두발표를 하면 *,*,* 등의 저널에 실어주기로 되어 있는 학회였다. 구두발표 논문에 선정이 되고 major 리비젼을 거쳐 마무리가 되어가나 싶었는데, 두 번째 리비젼에서 reject가 되었다. 이런 어이없는 소식이 나를 힘들게 했다. 잠시 동안 나 스스로에게 냉혹한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이 또한 시간이 지나니 해결이 되고, 와신상담(臥薪嘗膽) 하기 위해 스스로를 다스려야만 했다. 이 논문은 추후에 HEB 저널에 게재(2020.4)가 되긴 했다.
드라마틱하게도, 그동안 세 번이나 떨어졌던 연구 과제가 선정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SCI 논문 게재도 성공했고, 게재에 준비 중인 논문도 여러 편이 있었다. 스스로‘슈퍼맘’이 되고 있다는 자신감도 얻을 수 있었다. 머릿속에 힘들었던 시간이 지나가면서 울컥하는 마음과 감정을 다스리는 연습을 해낸 것 같았다. 2015년은 고난의 해, 2016년은 결실의 해, 2017년은 자신감 넘치는 해가 되었다. 이렇게 지낸지 몇 개월 지나 또 다른 고비? 시련?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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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고학력 경력단절 여성 문제는 사회적 이슈로 자리 잡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강구하고 시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경력복귀에 어려움을 겪는 엄마 과학자들이 많이 있으리라 본다. 나의 첫 포닥 3년 이후로는 경력단절 3년, 경력복귀 7년 반(한국에서의 연구활동)의 일상을 극한직업 엄마 과학자(1-37회)에서 공유한 바 있다. 미국으로 이주 후에는 바이오 회사를 다니면서 정착을 위해 겪었던 여러 가지 에피소드에 대하여 소소히 공유해보고자 한다(슬기로운 미쿡생활 38회-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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