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스토리를 담고 있는 연재를 만나보세요.
[암(癌)에게서 배우다] <95회> 편집 기술
Bio통신원(바이오휴머니스트)
ⓒ Pixabay License
DNA 변형으로 암이 발생한다는 것을 발견한 이래, 과학자들은 DNA를 조작하여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방법을 탐구해오고 있다. 그간 유전자 편집(Gene editing)을 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이 개발되었지만 다루기 쉽고 빠르면서도 값싼 요건을 갖추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2013년에 판도를 뒤흔드는 중요한 게임 체인저가 등장한다. 바로 CRISPR(Clustered Regularly Interspaced Short Palindromic Repeats, 이하 크리스퍼) 라는 유전자 편집 툴인데, 과학자들은 이 툴을 이용하여, 마치 가위를 사용하는 것처럼, 일정 부위의 인간 세포 DNA를 정확히 잘라내고 새로운 조각 DNA로 바꿔 넣을 수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이것은 비교적 쉽게 이용할 수 있는 툴이어서 많은 연구자들에게 급속도로 보급되었고, 현재까지도 암생물학 연구에 있어서 주된 방법론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최근에는 이 툴을 이용하여 암 세포 공격성을 높이도록 면역세포를 조작하여 암환자에게 투여하는 인체 임상시험도 진행되었다. 장기적인 효과는 아직 미지수이나, 그간 면역세포치료로 별 효과를 보지 못했던 고형암(Solid tumors)에 대해 초기 효과를 보이며 암연구자들의 주목을 끌었다.
많은 과학의 발전 사례들처럼, 이 방법 또한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이 경우에는 미생물의 방어 메커니즘을 모방했다. 박테리아는 바이러스와 같은 침입자가 들어오면 침입자의 DNA 조각을 저장해두었다가 추후 재침입에 대비한다. 또다시 공격을 받게 되면 가이드 RNA가 목표 DNA를 인지하고 자르기 기능을 가진 효소에게 인도하여 침입자의 DNA를 잘라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인간이 개발한 크리스퍼 또한 가이드 RNA 와 Cas9이라는 효소로 구성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목표한 DNA를 잘 찾아내는 능력 때문에 과학자들은 크리스퍼를 이용하여 암 유발 바이러스의 DNA를 찾아내거나 암세포의 RNA를 검출하는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찾아내는 실험적인 테스트에도 이 툴이 이용되었다 하니 과연 인기 만점의 툴임에 틀림없다.*
얼마 전 수해복구 봉사를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나는 건축 수리의 오랜 경험이 있는 베테랑 목수의 조수(건축 현장 경험자들 사이에서는 조수라는 말보다는 ‘데모도’라는 일본어가 더 통용되었다) 노릇을 하게 되어 누수가 심하다는 주택을 방문하고 이틀간 보수작업을 했다. 거실에 들어서니 바닥에는 4~5개의 물받이 양동이가 있었고, 나무로 된 천정은 누수로 인해 절반 정도가 젖어 있거나 시커멓게 곰팡이가 피어있었다. 베테랑은 옥상에 올라가 상태를 점검하더니 누수 원인을 발견하고 필요한 자재를 구해와 우선적인 조치를 한 후 실내 작업을 이어가기 위해 나에게 지시했다.
“천정 나무 합판 절반은 쓸 만하니 놔두고 절반만 새것으로 교체하면 되겠군. 물에 젖은 이만큼만 다 뜯어내”
곰팡이를 뒤집어쓰며 물에 젖은 나무를 뜯어내는 것은 조수 몫이었다. 한참 만에 천정 절반의 나무가 제거되고, 콘크리트 구조물이 드러났다. 이제 베테랑이 본격적으로 나서 새 합판과 목재로 천정을 ‘편집’해야 할 차례. 베테랑은 나무 합판과 목재 다루기를 마치 종이 다루듯 했다. 능숙하게 수시로 줄자를 이용해 길이를 재면서, 전기톱과 때론 그냥 톱을 이용하여 나무를 자르고 붙였다. 무거운 자재를 들어서 옮기고, 지시하는 대로 여러 연장을 준비해야 하는 조수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는 것임은 물론이다. 베테랑의 능숙한 기술과 작업을 곁에서 보는 즐거움에, 무더위 속 힘든 것도 잊고 봉사의 희열이 배가되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베테랑의 줄자는 가이드 RNA처럼 목표 자재에 붙어 길이를 정확히 쟀으며, 톱은 Cas9 효소처럼 표시된 부위를 정확히 잘라냈다. 암연구자들이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기술로 암환자의 회복을 돕듯, 베테랑은 목재 편집기술로 수해를 당한 사람을 도왔다.
자연은 서로 통하고 답은 항상 현장에 있다고 했던가. 사람을 돕는 편집기술은 위대하다.
그나저나 이제 비는 그만 왔으면 좋겠다. 태풍아, 저리 물러가라~
* 참고자료
https://www.cancer.gov/news-events/cancer-currents-blog/2020/crispr-cancer-research-treatment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기사 오류 신고하기]
과학자의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어설픈 휴머니스트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살아가는 평범한 직장인. 바이오분야 전공 대학졸업후, 제약사를 거쳐, 현재는 십수년째 암연구소 행정직원으로 근무중. 평소 보고 들은 암연구나 암환자 이야기로부터 나름 진지한 인생 교훈을 도출해 보고자 함.
다른 연재기사 보기
전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