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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다른 미국 생활] EP 8. 주민등록 번호가 없이 나를 증명하기
Bio통신원(이승원)
미국에 유학이나 직업을 구해서 오시는 분들과 연락이 되면 여러 가지 도와드리려 합니다. 아마도 이 연재 글을 적는 것도 그런 이유겠네요. 제가 받았던 과분한 사랑과 도움을 다른 분들과도 같이 나누고 싶다는 아름다운 의도도 있겠지만, 좀 더 현실적인 이유가 있기도 합니다. 의외로 말도 안 되는 사고가 발생해서 본인뿐만이 아니라 주변 사람에게도 불편함을 끼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기도 하죠. 일례로, 제가 아는 사람 중에는 유학비자(F1)를 대사관에서 받고 나서 I-20를 파쇄한 사람도 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I-20는 학생임을 증명하는 것을 해당 교육기관에서 발급한 서류인데, 이런 문서들은 비자와 쌍을 이루어야만 효력이 발생합니다. 즉, F1 비자와 I-20 그리고 비슷한 경우의 J1비자와 DS2019는 두 개가 동시에 없으면 미국 입국이 불가능하죠. 다행히도 당시 이 문제를 발견한 것이 학기 시작한 달 반 전이었기에 간신히 문서를 재발급 받아서 미국에 나올 수 있었지만, 그분은 초기 정착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연재 글을 보셨으면 대충은 짐작하셨겠지만, 미국의 행정처리 속도는 한국과 비교해 장소와 기관을 막론하고 상당히 느린 편입니다. 한국에서는 학교에서 성적증명서(transcript)나 재학증명서 등을 발급하는데 10분도 안 걸리는 KIOSK가 일반적이라면, 미국에서는 보통 짧게는 7일에서 길게는 10일 정도 걸립니다. 그것도 "business day"를 말하기에 체감상 2주 정도 걸리는 듯합니다. 물론 학교마다 다르고 express service도 있지만 그런 경우에는 service fee가 추가됩니다. 제가 박사학위를 받은 동부의 학교는 지역 분위기상 꽤나 빠른 편임에도 불구하고 1주일을 이야기하더군요. 그래서인지, 일반적으로 입시나 다른 목적으로 성적표를 요구하는 곳에서는 굳이 학교에서 정식적으로 발급되는 것이 아니라 웹페이지에서 볼 수 있는 화면을 그대로 출력한 unofficial transcript를 받기도 합니다. 일례였지만, 이런 식으로 행정처리가 늦다는 것은 정착에 걸리는 시간도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는 뜻이고, 초반에 잘못하면 수습하느라 시간과 노력이 꽤나 들어간다는 뜻이기도 하죠.
이제부터는 직/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배운 '제가 생각하는 가장 효율적인 정착 루틴'에 대해서 간단히 말해보려 합니다.
[그림1] 미국에서 흔히 말하는 아파트(apartment)는 일반적으로 3층 이하의 다주택 건물을 뜻한다. 도심에 있는 경우 빌딩 한 채가 아파트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주로 그림과 같은 형태의 건물이 모여있는 곳들이 많다. 렌트(lease)가격은 천차만별이고, 같은 아파트 단지 내의 같은 구조도 층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반적으로 미국에 오는 것이 결정되는 분들은 최소한 3개월 전에는 미국 입국에 관련한 모든 문서를 받게 됩니다. 그러면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집을 찾는 일입니다. 좋은 집의 기준은 언제나 비슷합니다. 싸고, 위치가 좋아야 하고, 집이 좋아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모든 것을 충족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상황상 어떤 것이 기준이 될지는 다르겠죠. 특히, 지역에 따라 본인의 안전을 생각하는 것이 최우선이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좋은 예가 필라델피아나 볼티모어, 그리고 신시내티 같은 범죄율이 높은 지역이겠네요. 이렇게 적고 보니 두 곳은 제가 살았던 곳이고, 한 곳은 현재 거주 중인 곳입니다. 그렇기에, 집을 찾는 데에 시간을 많이 들여서 최대한 빨리 예약을 하는 게 좋습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추천 방법은 렌트계약(leasing contract)이 허락한다면 6개월 먼저 살아보고, 그다음에 이사를 하던 아니면 거기에 눌러사는 것을 결정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보통은 1년이니 참고하시고요.
그런데 갑작스레 돌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SSN(소셜 시큐리티 넘버, 세금 부과 목적으로 부여받는 번호)이 없으면 집을 빌리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보통 집을 빌리겠다고 해서 돈만 내면 그냥 빌려주는 게 아니라 심사를 하는 곳도 있습니다. 경험상 유학생들이 많은 도시(university town)는 이런 일이 적게 발생하는데,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최소 3일 최장 10일 정도의 심사 기간을 거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가장 살기 좋은 곳은 유학생 혹은 한국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미국은 3층 이하의 주택 공간을 아파트라고 합니다)를 칭하게 되는 경우가 많긴 합니다.
이렇게 집을 찾고 미국에 나오기 전 미리 언제부터 내가 살 것이라고 effective date를 결정하고 돈을 보냅니다. 그리고 미국에 입국해서 약속한 날 해당 건물 관리사무소(leasing office)에 가서 계약서(contract)에 사인하고, 키를 수령하고, 집을 같이 체크한 다음에 집을 정식으로 사용하게 됩니다. 저는 이렇게 집의 계약이 체결된 날이 미국에서의 업무나 학기가 시작되기 최소 2주 전에는 끝나야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위에 언급했듯 행정문서 처리 기간이 무척이나 느리다는 것과 다른 하나다는 주소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정착에 관련된 중요한 일들을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미국은 주민등록과 같이 개개인의 ID를 일일이 추적하는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혹자는 위에 언급한 SSN이 주민등록번호가 아니냐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SSN은 주민등록번호처럼 특정인의 신원을 100%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즉, SSN을 제시하는 것만으로 한 사람의 신원을 알 수는 없습니다. 한국은 주민등록번호 하나만으로 사람의 소비패턴까지도 검색이 가능하지요. 미국에서는 그렇게 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습니다. 법률 위반으로 경찰에게 잡히더라도, 한국처럼 주민등록번호를 묻거나 하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증명하는 신분증(ID card)을 최대한 빨리 가지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고 정착하여 생활할 때 편합니다. 여권은 훌륭한 ID card입니다만 분실 시 겪어야 하는 불편함이 워낙에 크기 때문에 가능한 한 빨리 대체 ID를 가지고 다니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ID라고 한다면 운전면허증(DL)이나 주(state)에서 발급하는 ID card가 통용됩니다. 그리고 운전을 하지 않아도 되는 특정 지역을 제외하면 대부분 운전면허증을 ID로 소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물론, 운전면허증을 ID로 인정하지 않는 주도 있어서 따로 ID card를 만들어야 하는 주도 있고, 운전면허증을 ID로 인정하기 위해선 별도의 서류를 준비해야 하는 주도 있으니 반드시 사정을 숙지하셔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D를 만들기 위해서는 적게는 하나 많게는 셋 정도의 '실거주지에 대한 신뢰할만한 증명정보가 담긴 서류'가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집을 최대한 빨리 구해야만 ID를 만드는데 어려움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방금 언급한 '실거주지에 대한 신뢰할만한 증명정보가 담긴 서류'란 무엇일까요? 일반적으로 은행의 계좌 정보를 담은 편지와 전기/수도요금에 대한 청구서, 그리고 SSN을 신청했을 때 보내준 편지 봉투 등에 적힌 본인의 이름과 주소가 바로 그런 서류들입니다. 그렇기에, 이런 서류를 최대한 빨리 받기 위해서라도 집 주소를 빨리 획득해야 합니다. 이건 이미 미국에 거주하시는 분들에게도 해당합니다. 만약 타 주로 이사를 가게 되면 위와 동일하게 자신의 거주지를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또 준비해야 합니다.
그런 이유로 제가 추천하는 루틴은 한국에서 집을 미리 구하고 미국에 입국하자마자 집 계약을 끝내서 최대한 빨리 사진의 거주지를 증명할 서류를 획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 더 중요한 디테일이 숨어있는데, 미국은 아파트에 따라 자신의 집에서 사용하는 전기료(energy bill)와 수도세(water and sewage bill)를 입주자가 개별적으로 회사에 연락해야 하도록 하기도 합니다. 즉, 입주하기 전 혹은 입주 후 가능한 한 빨리 각 회사에 연락해서 '몇 월 며칠에 입주하고 내가 거기에 거주하니까 나한테 bill을 보내줘'라고 연락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는 무조건 전화로 신청해야 하거나 지점을 방문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께는 사실 이 부분이 가장 tricky하고 어려울 수도 있는 부분이긴 합니다. 그러나 잘 해결되면 두 군데에서 거주지증명문서를 얻을 수 있는 중요한 단계이기도 합니다. 물론, 관리사무소에서 자기들이 알아서 해결한다고 하면 굳이 연락할 필요는 없겠으나, 대신 꼭 본인의 이름과 주소가 찍힌 bill을 letter로 받아야 한다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최대한 빨리 집 계약서를 가지고 은행에 가서 계좌를 열고 월별 계좌정산서(monthly statement)를 우편으로 보내 달라고 하는 겁니다. 이것도 각 주마다 다르긴 합니다만, 일반적으로 위에서 말한 '실거주지에 대한 신뢰할만한 증명정보가 담긴 서류'에는 이메일로 온 정보를 포함하지 않는 일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첫 statement는 무조건 편지(letter)로 보내 달라고 해야 합니다. 참고로 미국은행에는 물리적인 통장이 없습니다. 대신에 monthly statement를 받아볼 수 있죠. 한 개인은 별도의 입출금이 자유로운 checking account(체킹계좌)와 약간의 이자가 붙는 savings account(저축계좌)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계좌번호는 다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은행은 월간 유지비(maintenance fee)를 적게는 15불에서 많게는 25불까지 받습니다. 물론 한 달에 일정 이상 금액을 자동이체(direct deposit)로 입금하거나 savings account에 얼마 이상 넣어놓거나 하면 대부분 유지비를 면제(waive)해 주긴 합니다. 이렇게 은행에서 계좌를 만들면 일주일에서 10일 뒤에 직불카드(debit card)가 가능한 은행 카드와 자신의 주소가 담긴 개인 수표(personal check)를 우편을 통해 받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ID를 받을 수 있는 기초 준비가 되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림 2] 은행에서 계좌를 만들면 받을 수 있는 개인 수표(personal check). 1에는 본인의 주소가 적혀있고 2에는 은행의 routing number, 그리고 3에는 checking account number가 적혀있다. 사용법은 4의 Pay to the order of 란에 받는 사람 혹은 회사를 적고, 5에 아라비아 숫자로 금액을 적은 후, 6의 밑줄 위에 금액을 영문 알파벳으로 적으면 된다. 그리고 7에 서명(signature)을 해서 제출하면 된다. 금액을 받는 경우라면, 뒷면에 본인의 서명을 하는 날에 서명을 하고 은행 혹은 ATM에 입금하면 된다.
이런 식으로 본인을 증명하기 위해서 여러 단계를 거쳐야 되기 때문에, 처음에 ID card를 받는 것이 꽤나 귀찮은 일이긴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ID card를 받고 나면 차후에 자신을 증명해야 할 일이 벌어지면 상당히 쉽게 처리할 수 있죠. 당장 미국 국내 비행기를 탈 때 여권 없이 ID만 가지고 다녀도 됩니다.
이렇게 ID를 부여받는 것이 어색하거나 불편하다고 보실 분들이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에서 사용하는 주민등록번호 하나면 생년월일부터 주소에 소비패턴, 심지어 건강 상태까지 전부 알 수 있으니 '주민등록번호=개인'이라는 시스템이라고 칭할 수 있을 테고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편함과 이득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속도의 측면에서 본다면 우월하겠죠. 반대로 미국의 경우처럼 여러 귀찮은 단계를 지나 ID를 받아도 본인의 총체적인 정보를 특정하기 힘든 방식은 절차와 단계가 많아지기 때문에 귀찮아지고 효율성은 떨어집니다만, 사생활에 대한 보호(privacy)가 더욱 잘 지켜질 수 있겠지요.
이 두 가지 방식의 차이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시면 아마도 미국 사람들이 가진 가치관이 어떤 면에서 한국 사람들과 다를까 하는 점을 이해하시는 데 조금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자유라는 가치가 자신을 증명하는 데에는 어떤 식으로 투영되고 있는지를 말이죠.
[은행사용과 관련한 조금 다른 미국 생활의 사소한 팁]
1. ATM을 사용할 때 당행 카드를 사용해서 출금하는 경우 시간과 관계없이 언제나 수수료가 없습니다. 그리고, 한국과 똑같이 다른 은행 카드를 사용하는 경우 수수료 (surcharge)가 붙습니다.
2. Surcharge-free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수수료 면제와는 다른 뜻입니다. Surcharge는 보내는 쪽과 받는 쪽 두 군데에 다 내야 하기 때문인데, 보통 surcharge-free를 말하면 계좌를 가진 측의 수수료만 면제해 준다는 뜻입니다. 즉, A 은행의 카드로 B 은행의 ATM으로 돈을 인출한다면, A 은행에는 수수료가 나가지 않지만, B 은행에는 수수료가 나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험에 따르면 계좌와 은행 그리고 ATM의 특성에 따라 수수료는 적게는 $2.5에서 많게는 $6 까지 지불할 수도 있습니다.
3. 첫 계좌를 열게 될 때 일일 한도를 잘 설정하시는 것을 잊지 않으셔야 합니다. 말을 잘 안 해주는데 일반적으로 기본 $500에서 $600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현금이 급하게 필요할 때 한도에 걸려서 뽑지 못하게 될 수도 있으니 미리미리 잘 바꾸어 놓으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4. 미국에서 요즘 들어 많이 사용되는 Zelle이나 Venmo같은 digital payment network들도 은행과 연동이 많이 되고 있습니다. 이름만 들어놓으셨다가 나중에 한 번쯤 사용해보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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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생활 속에 녹아드는 삶을 바라는 소시민이자 생명과학 노동자. 현재 University of Cincinnati에서 Postdoctoral researcher로 생체시계(biological clock) 분야를 연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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