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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리의 육아일기] 산후조리원에서 가장 조용한 산모
Bio통신원(닥터리)
© Pixabay
많은 어른들이 임산부를 볼 때면 뱃속에 있을 때가 가장 편하다는 말씀을 하신다.
실제로 아이를 출산한 엄마들의 다수가 뱃속 아기의 태동을 느끼며 교감할 수 있었던 임신기간이 그립다는 말을 많이 한다. 하지만 나는 아이가 뱃속에 있었을 때 너무 고단하고 힘들었던 기억이 많아서인지, 출산 이후 몸이 한결 가뿐해진 지금이 훨씬 좋다. 또한 임신 중에는 뱃속 아기가 잘 지내는지 어떤지 확인할 길이 없었는데 출산 이후에는 내가 직접 아기를 만지고, 상태를 확인할 수 있어서 더욱 그런 것 같다.
내 침대 옆에서 눈을 꼭 감고 자고 있는 아기를 보고 있노라면 신기해서 여기저기 만져보기도 하고, 혹시 숨은 잘 쉬고 있는지 코에 손가락을 대서 종종 숨결을 확인하곤 했다.
아기를 갖게 되고 나서부터 나는 ‘자연분만’과 ‘모유 수유’를 꼭 하고 싶었다.
특히 모유 수유가 아기의 정서, 면역력 향상, 뇌 발달 등등 다양한 부분에서 좋은 효과를 보이고, 또한 엄마의 몸매와 건강 상태 등의 회복에도 상당한 도움을 준다고 했기 때문에 자연분만을 이루지 못한 나로서는 아기를 모유를 먹여 키워야겠다는 의지가 상당했다.
아기를 출산한 병원에서는 모자동실(엄마, 아기가 같이 지낼 수 있는 병실)이 원칙이었고, 아기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모유 수유만 한다고 하여 내심 기대가 되었다. 그런데 막상 아이스팩을 양쪽 겨드랑이에 끼고 몸도 제대로 틀지 못하는 내게 간호사 선생님께서 아기를 데리고 와 모유를 먹여야 한다고 하셨을 때는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초산이기 때문에 유선이 잘 발달되지 않은 상태라 모유가 잘 나오지 않았고, 갓난 아기는 어떻게 엄마 젖을 빨아야 하는지를 잘 몰랐다. 아기가 몇 방울이라도 먹었는지 여부를 측정할 수도 없었고, 혹시 아기가 계속 굶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걱정되었다. 아기가 태어나면 본능적으로 엄마 젖을 쭉쭉 빨아먹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것은 큰 착각이었다. 효과적으로 모유를 먹기 위해서는 아기와 엄마 모두 교육이 필요했다.
이래저래 걱정이 태산이던 나에게 간호사 선생님께서는 신생아는 며칠 굶어도 몸에 이상이 없다며 적은 양이라도 아기에게 모유를 먹이면 된다고 말씀하시며 절대로 분유를 추가로 먹이지 말라고 하셨다. 근데 예상보다 모유의 양이 턱없이 적었는지 출산 후 일주일 사이에 2.9kg으로 태어났던 아기의 몸무게가 2.5kg까지 줄면서 결국 신생아실에서 아이 탈수 방지를 위해 부랴부랴 분유를 먹이기도 했다.
병원 퇴원 후 나와 아기가 2주간 산후조리원으로 들어가면서 남편도 출근하며 일상으로 복귀했다.
내가 간 산후조리원은 모유 수유를 교육을 1순위로 삼는 곳이었다.
실제로 원장님께서는 아기가 젖을 무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 양쪽 젖을 15분씩은 먹여야 한다 등등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설명을 합해서 교육해 주셨다. 나는 알려준 그대로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범생 산모였다. 학위과정 내내 연구실에서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었던 ‘정확한 프로토콜을 따라 하는 자세’가 여기서도 빛을 발했던 듯하다.
조리원에서는 아기들을 전면 유리로 된 신생아실에 두고, 모유 먹이는 시간 외에는 산모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수유 시간에는 수유실이나 본인의 방에서 수유를 하게 되는데, 수유실에 오면 원장님이 중간중간 들러 잘못된 부분을 수정해 주시곤 해서 난 늘 수유실에서 모유 수유를 했다. 나는 다른 산모들에 비해 모유 수유가 너무 어려웠고, 모유 양도 턱없이 적어 배운 대로 자세 잡고 양쪽 젖을 15분씩 시간을 맞추어 먹이는데 여념이 없어 주변 산모들과 얘기할 여력이 없었다.
당시 조리원에 둘째 낳은 엄마가 몇 명 있었는데, 그 산모들은 여유 만만이었다. 그 산모들은 이미 유선이 발달한 상황이라 애가 입을 대면 아이가 사레가 걸릴 정도로 모유가 콸콸 나왔다. 나는 유축기로 짜 봐도 10ml이 채 나오지 않는 상황이라 아이들이 꿀꺽꿀꺽 젖은 먹는 모습을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어떤 산모는 젖병에 유축한 모유를 100ml씩 담아 두 병을 신생아 담당 선생님께 드리면서 본인이 낮잠 자는 동안 깨우지 말고 이따가 아기 배고프면 이거 먹여달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조리원에서도 모유의 빈부격차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산후조리원 오고 나니 이제 정신이 좀 차릴 수 있었다. 내 몸도 어느 정도 회복이 되고 있고, 지금은 조리원에서 아기를 돌보아주고 있지만 이제 여기서 나가면 내가 아기를 키워야 하는 현실을 인식하면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남편에게 “삐뽀삐뽀 119 소아과”라는 책을 사다 달라고 했다.
이 책에는 감기, 피부병, 소화불량, 설사 등 아이들이 쉽게 걸리는 질병에 대한 설명과 증상별 대처법이 적혀있고, 아기의 수면 습관 들이기, 연령별 성장 그래프 등 다양한 자료가 나와 있어 엄마들의 필독서로 유명한 책이다. 지식을 정리해놓은 책이기 때문에 소설책처럼 스토리가 있는 책도 아닌데 당시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엄마인 나는 밑줄을 그어가며 혹시 내게도 닥칠지 모르는 다양한 질환들에 대한 정보를 흡입하듯 몰입하여 읽어내려갔다. 결국 나는 1120페이지나 되는 그 두꺼운 책을 3일 만에 다 읽어버렸다. 모성애와 과학인의 호기심이 시너지를 나타내는 순간이었던 듯하다.
며칠 후 교수님께 연락이 왔다. 논문 투고한 저널로부터 revision이 왔으니 확인해 보라는 내용이었다. 임신 중에 3군데 저널에서 reject를 받았었는데, 출산휴가 직전에 submission 했던 저널에서 major revision으로 결정이 난 것이다.
박사학위 취득에 필수적인 논문이기에 revision 소식에 감지덕지해야 할 일이었지만 막상 산후조리원에서 연락을 받으니 참 난처했다. 우선 남편에게 저녁에 내 노트북을 조리원으로 가져다 달라고 했다. 노트북을 펼치고 사이트에 접속해 reviewer comment를 다운로드 받으며 기도했다.
‘제발... 추가 실험은 없게 해주세요’
Reviewer 3명이 각각 5가지 정도의 critique를 보내왔는데 천만다행으로 추가로 진행해야 할 실험은 없었지만, 우리가 제안하는 주제에 대한 논리적인 근거를 들어 설명하고, 반박해야 할 부분이 있었다. 일부 교수님과 상의해야 할 부분도 있었고, 연구실에 있는 실험 자료를 참고해야 할 부분도 있었다.
노트북이 조리원으로 유입된 이후 산후조리원에서의 나의 일상은 완전히 단순해졌다. 평균 2시간에 한번 모유 수유를 하기 때문에 모유 수유 30분, 방에 들어와서 revision 작업 1시간이 반복되었고, 정해진 산모 마사지, 스트레칭 시간과 식사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은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결국 나는 조리원에서 가장 조용한 산모로 소문이 났다.
산후조리원에서 나와 당장은 혼자 아기를 돌볼 자신이 없었고, 친정엄마도 역시 어리바리한 내가 너무 불안하시다며 엄마집에서 출근하기 전까지 지내는 것이 좋겠다고 하셔서 친정집 방 한 칸에 아기와 함께 짐을 풀었다. 벌써 아기가 태어난 지 한 달이 다 되어갔다. 집으로 돌아온 다음날 아침, 엄마한테 아기를 맡기고 연구실에 갔다.
고작 한 달 만에 만나는 건데도 상당히 오랜만에 만나는 느낌이 들었다. 논문 revision 관련해서 교수님과 논의를 하고, 필요한 데이터를 챙기고, 내가 온 김에 모르는 것 물어보는 후배에게 이것저것 알려주고 돌아왔다.
아기가 다행히 낮에 잘 자서 논문 revision 작업하는데 집중할 수 있었다. 두 시간 간격으로 약 30분간 모유 수유를 하고, 논문을 쓰고, 열리지 않는 참고문헌 PDF file은 실험실 후배에게 찾아서 보내달라고 하여 읽었다.
친정집에 지내는 것은 좋은 점도 많지만 그래도 신경 쓰이는 부분이 많이 있어서 설거지, 청소는 내가 맡아서 해 드렸다. 그래도 내가 스스로 밥을 해 먹지는 않으니 다행이다 싶었다.
생후 1개월 까지는 아기가 먹고 자고만 하더니만 점차 아기도 생체 리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낮에 잘 자서 엄마 논문 작성에 도움을 준 것은 좋았는데, 우리 아기는 밤 10시가 넘어가면 갑자기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잠을 안 자기 시작했다.
아기가 안 자니까 혹시 안전사고라도 날까 불안한 마음에 나도 같이 깨있었다. 젖도 물려보고, 안아서 토닥여보지만 낑낑거리고 꼼지락거리면서 새벽이 되어도 잠을 안 잤다. 그러다가 아기는 새벽 4시쯤 되어 푸짐하게 응가를 하고 나면 5시쯤 잠이 들었다. 그 후에는 3-4 시간가량 수유시간도 건너뛰고 푹 잤다. 말로만 듣던 낮과 밤이 바뀌는 사태가 내게도 찾아온 것이다.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 남편을 깨워 아이 보라고 할 수는 없어 나는 밤마다 아이와 함께 말똥말똥 밤을 지새웠다.
밤을 거의 새다시피 했지만, 남편과 친정 아빠가 출근하시는 시간에는 맞추어 일어나 밥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다 보면 내 의지와 관계없이 잠은 깨고 하루 일과가 다시 시작되었다. 논문 revision 기한을 2개월 주었기 때문에 부지런히 낮에는 논문 작업에 매진했다. 두 시간마다 수유하는 것 또한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3kg 좀 넘은 아기의 머리는 왜 이리 무거운지.. 견갑골과 승모근은 계속 뭉치고, 스트레칭을 중간중간 하지 않으면 컴퓨터 작업하기 힘들 지경이었다. 밥 먹다가 종종 졸면서 수저를 떨어뜨리기도 했다. 흔히 나타난다는 산후 우울증 같은 증상을 겪을 겨를도 없이 나는 너무 바쁘게 출산휴가 2개월을 그렇게 보내고 있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revision을 저널에 보내고 나서 한숨 돌렸을 때 연구실 후배에게 전화가 왔다.
“언니~~ 아기는 잘 지내고 있어?”
“응^^ 연구실은 어때? 다 잘 돌아가고 있지?”
“그렇기는 한데... 과제 보고서 쓰라고 메일이 와서 이 부분 우리는 잘 모르고 언니가 써야 할 내용이라..”
결국 revision과 사투를 벌인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과제 보고서가 메일로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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