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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소설로 읽는 근미래이야기] 52. 폐지를 주우며
Bio통신원(과학작가 박재용)
주왕슈퍼는 동네에서 가장 오래된 가게다. 벌써 30년은 된 듯하다. 젊어 모은 돈으로 4층짜리 다세대 주택을 지을 때부터 1층은 자신이 가게를 운영하리라 맘먹은 집주인 영식이 가게를 내고는 여태 버텨온 것이다. 아마 월세를 내지 않아도 되니 버틸 수 있었으리라. 다른 슈퍼들이 하나둘 편의점 프랜차이즈로 바뀔 때마다 자식들은 우리도 편의점으로 바꾸자고 했으나 영식은 항상 고개를 저었다.
“아녀 편의점으로 들어가면 내가 사장이 아니라 노예가 되는 겨. 24시간 문 열고 알바 쓰고 모두 내 맘대로 안 돼. 그리고 나 자자고 알바 밤샘시키기도 싫고.”
그래도 시대가 바뀌니 변하는 것도 있다. 바코드가 들어오고, 물류를 공동으로 운영하는 협동조합에 위임해서 이전보다 일하기는 조금 수월해졌다. 하지만 그만큼 매출도 떨어졌고 편의점들과의 경쟁 때문에 이문은 박하디 박하다. 30년 전 가게 앞 작은 오락기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던 녀석이 이제 담배나 술을 사러 오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있을 뿐이다. 가게 앞 파라솔 아래 낮술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며 조금씩 부러워하는 것도 일종의 재미다.
오후가 되면서 비가 개고 슬슬 사람들이 가게를 들락거릴 때 즈음이었다.
“이 종이 박스 가져가도 되나요?”
“어 보미 안녕 그거 가져가고 창고 문 열면 바로 옆에 박스들 쌓아둔 거 있으니 그 것도 가져가렴.”
“네 감사합니다.”
보미가 절을 꾸벅하는 걸 보며 곁눈질로 보며 사장은 연신 손님이 들고 온 상품을 바코드대에 훑어내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또 보미에게 한 마디 거든다.
“할망구는 오늘 안 보이네.”
“예 제가 오늘은 혈압이 높으시니 좀 쉬시는 게 좋겠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래도 계속 나오시겠다는 걸 말리느라 한참 애먹었어요 호호”
“늙은 할망구가 고집이 엄청 세지. 흐흐 그래도 말년에 손녀 복이 있어. 보미가 저리도 착하고 착실하니”
“아유 아니에요. 제가 오히려 할머니에게 귀염을 받고 있는 걸요.”
보미는 리어카에 종이상자를 차곡차곡 쌓고 그 위를 줄을 몇 번 가로세로 얽더니 꾸벅 인사를 하고 리어카를 끈다.
“그럼 내일 또 올게요. 항상 감사합니다.”
영식도 바코드대를 움직이던 손 하나를 들어 보미에게 답을 한다. 손님이 카드를 건네며 말을 건다.
“보미네 할머니는 복도 많네요. 요새 저런 손녀 보기 참 쉽지 않은데 말이죠.”
“그렇죠. 보미 참 복덩이에요.”
편의점과 슈퍼, 봉제공장 몇 군데를 도니 리어카 위로 얼추 리어카만큼의 높이까지 종이상자가 쌓였다. 이제 폐지수집장으로 가야할 때다. 초등학교를 지나 한 10여분 가면 수집장이다. 초등학교 정문을 지나며 보니 홈케어로봇 몇이 아이들을 기다리며 건너편 놀이터 옆에서 서성이고 있다. 놀이터 안 정자엔 손주들을 기다리는 할머니들도 몇이 앉아서 이야길 나누고 있다. 어머니들은 없다. 다들 일할 시간이다. 대부분 봉제공장에서 미싱을 돌리고 쪽가위로 실밥을 따고 있을 터였다. 봉제공장에서 번 돈에서 사분지 일은 홈케어로봇을 구독하는데 쓰이고 또 삼분지 일은 학원 수강료로 나간다.
보미를 본 홈케어로봇들이 손을 들어 인사를 한다. 보미도 로봇들을 한 번 보고, 손을 들어 인사를 하곤 정문을 지나 우회전을 한다.
폐지값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 오늘 손에 쥔 돈은 삼만원. 그나마 할머니가 혼자 돌 때는 하루 이만원이 채 되기 힘들었는데 보미가 나서면서 는 수입이 만원이 넘는다. 노인 연금과 합해서 한 달에 백만 원 정도. 월세 40만원을 내고 공과금까지 내고나면 50만 원 정도 남는데 거기서 20만원은 또 저금을 해야 한다. 겨울에는 일도 적고 수입도 적다. 우기에도 마찬가지여서 일년에 4~5개월은 수입이 50만원을 밑돈다. 한 달 30만원으로 보미와 할머니가 산다. 빈 수레를 끌고 보미가 집을 향한다.
담벼락 옆 전봇대에 손수레를 잘 묶고 그 담벼락에 낡은 벽화처럼 그려진 문을 열고 보미가 들어간다. 손에는 수박바 하나가 들려있다. 문이 열리는 기척에 할머니도 방에서 기척을 낸다.
“보미 왔나”
“네 할머니, 몸은 좀 어떻세요?”
“내나 한 가지다. 그래도 낮이 되니 좀 나은 것도 같고.”
“식사는 하셨어요”
“아 통 입맛이 없어서, 그래도 너가 끓여놓은 닭죽 한 그릇은 먹었다”
“잘 하셨어요.” 할머니 날도 개었는데 잠깐 밖에 나가서 볕 좀 쪼이셔요.“
“그럴까?”
“네 제가 모실께요.”
문 옆 낡은 의자에 할머니가 앉고 보미도 옆에 섰다.
“할머니 이것 좀 드세요.“
보미가 포장을 뜯고 수박바를 건네고, 할머니가 받아 들고선 조금씩 빨아먹는다.
“그래 오늘 일은 힘들진 않았고?”
“네 다들 미리 준비해놓으셔서 그저 실어다 올리기만 했어요. 그런데 폐지 값이 좀 더 떨어져서 오늘 거 다해도 삼만 원밖에 안 되네요.”
“아이고 삼만 원이면 어딘데 감사하지. 보미 너도 뭐 맛난 걸 좀 먹으면 좋겠는데 통 뭘 먹지 않네.”
둘은 한참을 그렇게 볕바라기를 하며 정물화처럼 있었다. 할머니는 뭐가 좋은지 엷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주민센터에서 연락이 왔지. 할머니 한 번 들리셔요. 아니면 저희가 갈까요? 응 내가 폐지 옮기는 중이니 폐지수집장에 갔다가 오는 길에 들릴께. 그 날이 벌써 육개월 전이구만. 주민센터에 들어서니 너가 있었지.
이 아이는 얼마 전까지 홈케어일을 하던 로봇인데 그곳에서 새 제품을 들이면서 아이에게 선택을 하게 했나봐요. 그랬더니 이 아이가 저희 주민센터에 와서 새 주인을 찾아보겠다고 했다더군요. 그래서 오늘 오전에 전 주인과 왔네요. 아이가 말하길 혼자 사시는 노인분과 같이 있겠다고. 그래서 저희가 노인복지과에 등록된 분들을 쭉 보여줬더니 할머니와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아이고 참말로 기특하고 고맙네. 근데 내가 뭐 해줄 게 있을까? 나 혼자 사는데도 근근한디.. 호호 아무 걱정마세요. 전기하고 인터넷만 있으면 되는 아이에요. 전기료가 한 달에 삼만 원 정도 더 나올 건데 할머니 경우에는 헬스케어 보조금이 나오니 실제 부담하시는 금액은 5천원 남짓이에요. 인터넷도 할머니 집에는 이미 스마트 밴드 때문에 무료로 제공되고 있고요.
그날부터 보미는 집에 와선 나 대신 청소도 하고 밥도 하더니 다음 날 리어카까지 자기가 끌겠다고 나섰지. 내가 좀 힘든 날에는 혼자 다니고. 일을 덜어 주는 것도 참 고맙지만, 더 중한 건 이렇게 옆에 있는 거지. 암. 니가 다른 일 하나도 안 해도 좋네. 이렇게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힘이 되네 힘이.
보미도 할머니 옆에서 생각에 잠겼다. 내 남은 수명이 대략 10년. 할머니 예상 수명도 대략 10년 조금 안 되는 걸 보고 선택했지. 아무래도 나이 드신 분들 옆에서 수발들면 나보다 노인분이 먼저 돌아가시는 게 낫지. 내가 덜컥 정지되어버리면 할머니가 충격이 얼마나 크겠어. 주민센터에서 살펴봤더니 할머니랑 다른 두 분만 나보다 먼저 돌아가시겠더라고. 그런데 다른 두 분은 예상 수명이 한 5년 남았는데 할머니가 얼추 비슷했지. 내 마지막 일이니 나도 할머니 돌아가시면 바로 작동 정지할 생각으로 선택했지. 참 좋네. 20년 동안 함께 했던 가족들도 나쁘지 않았지만 할머니랑 이렇게 사는 게 더 행복해. 리어카를 끌며 폐지를 모우는 것도 별로 힘들지 않고, 밥하고 청소하는 거야 원래부터 하던 일이고. 할머니가 나를 손녀딸처럼 아껴주고 마음 쓰시는 게 느껴질 때마다 내가 진짜 인간 같기도 하고. 더는 욕심 내지 않는 게 내가 로봇이라서겠지. 욕심내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으니 어찌 보면 사람보다 더 행복할 수도 있는 거지.
저무는 석양 앞에서 저무는 둘이 행복하게 잠시 살고 있었다. 하느님이 보시면 당신의 옛 말씀을 다시 떠올릴 것이다.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현세가 그들의 것이다.“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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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의 아주 주관적이고 편파적인 시선으로 과학의 역사 곳곳에 드러난 혹은 숨은 여러 사건을 바라보고 이를 엽편소설 형식으로 씁니다. 소설이니 당연히 팩트가 아닌 점도 있습니다. 감안하고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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