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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직업 엄마 과학자] #1. 다시 일하게 된 엄마 과학자
Bio통신원(만박사)
나와 남편은 2008년 같은 연구실에서 만난 동기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박사후 연구원, 남편은 박사과정 학생이었다. KAIST로 자리를 옮긴지 얼마 되지 않아 연애를 시작했고, 2년 뒤 결혼을 하게 되었다. 허니문 베이비를 임신했고, 만삭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일을 그만두었다.
매스컴에서 직장과 육아를 동시에 수행하는 ‘슈퍼맘’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던 시절, 직장을 그만둔다는 사람들을 보면 한편으로는 휴식이라고 여긴 적도 있었다. 솔직히 별로 관심이 없었던 듯하다. 그러나 실제로 경험해보니, 내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남편은 박사과정 4년차 학생으로 육아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했다. 매일 밤 12시가 넘어 집에 들어왔고, 2011년 7월 큰 아이를 낳고, 백일이 지나서 미국으로 두 달간 연수를 갔었다. 빨리 둘째를 낳아서 키우다가 복귀를 해야겠다는 욕심이 있어서, 2012년 6월에 둘째를 낳았다. 일하는 것보다 육아가 두 배, 세 배는 더 힘들었다. 샤워를 할 때면 아이들 우는 소리 같은 환청이 들리기도 했고, 새벽마다 깨어 분유를 타다 보니 쏟을 때도 있고, 깊이 잠을 잘 수 없었다. 가끔은 생리현상도 내 맘대로 컨트롤 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일터에서 나만의 시간을 갖으면서 연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았다. 아침에 분주히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면 막연히 부럽기만 했고, 내가 다시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먼 세계의 이야기로만 상상을 했었다. 타 지역에 계신 부모님의 도움 또한 많이 받지 못한 채 연년생 두 딸을 키운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슈퍼맘’의 정신이 필요했다.
2014년 연년생 두 딸(20개월, 31개월)이 직장 어린이집에 입소할 수 있었다. 큰 아이는 19개월에 입소를 했지만, 작은 아이는 단체생활이 처음이라서 잘 적응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 태산 같았다. 그러나 다행히 언니랑 사이 좋게 등원하면서 잘 적응해 주었다. 나는 비로소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된다는 것에 대한 막연한 상상만으로도 삶의 에너지가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임신 및 출산으로 36개월간의 독박육아, 경단녀, 박사과정 학생의 와이프로 살아온 시간이 결단코 값지지 못하거나 빛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힘들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고, 글로 표현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러나 짧은 휴식기간이 지나자, 다시 지난 시절 연구에 대한 욕망이 다시 차오름을 느낄 수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여성과학기술인협회(WISET)이란 곳에서 온 경력 복귀 프로그램 지원에 관한 이메일을 받아본 후, 어쩌면 내가 선정될 수도 있겠다는 강한 느낌이 있었다. 아이들이 자는 새벽에 신청서를 쓰면서 지원해 보기로 결심했다.
아이들을 키우며 막연히 상상해왔던 나만의 버킷리스트(영화보기, 혼자 산책하기, 혼자 커피숍 가보기)를 뒤로 하고 열심히 신청서를 작성한 결과, 2014년 4월 경력복귀 3기 최종 선정 통보를 받았다. 이렇게 나는 다시 ‘직장맘,‘경력복귀자’,‘연구교수’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었다. 모든 것이 다 처음이고 시작이었다. 별것도 아닌 연구실의 테이블까지도 나를 반겨주는 것 같았다.
옆에서 함께 축하해준 든든한 남편은 많이 도와줄 테니 열심히 다시 시작해봐! 라면서 큰 용기를 주었다. 또한 나의 든든한 조언자들이 지역 각지에 포진되어 있었다. 경력복귀수혜자 간담회를 통해서 알게 된 언니, 동생 박사들은 서로서로 멘토와 멘티가 되면서 비슷한 고충을 논하고, 내가 처한 상황에서 어찌해야 하는지 많은 지침을 주셨다. 아직까지도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친하게 지내고 있다.
이런 나의 갈망이 간절했는지, 해외 학술지원 사업까지 선정되어 학문의 성지라는 미국 보스턴에서 열리는 국제학술대회도 참석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Plenary talk을 듣고 있자니 잘 이해되지도 않았지만, 동기부여는 확실하게 얻어 왔던 기억이 난다. 이 학회에서 미국에서 활동하는 많은 한인 과학자를 만났다. 또한 신혼인 한인과학자 부부의 집에 초청되어 그동안 나의 육아 노하우와 그들의 미국생활▪연구에 대해 많은 조언을 주거니 받거니 했었다.
이렇게 몇 개월이 지나고, 동아사이언스에‘新 알파우먼’으로 나에 대한 기사가 실리고, 2014년 미래인재상의 최종 수상자로 선정이 되었다. 난생 처음 상금을 받아보고, YTN 사이언스에 출연하기도 했다. 이렇게 나의 경력은 순조롭게 복귀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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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고학력 경력단절 여성 문제는 사회적 이슈로 자리 잡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강구하고 시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경력복귀에 어려움을 겪는 엄마 과학자들이 많이 있으리라 본다. 나의 첫 포닥 3년 이후로는 경력단절 3년, 경력복귀 7년 반(한국에서의 연구활동)의 일상을 극한직업 엄마 과학자(1-37회)에서 공유한 바 있다. 미국으로 이주 후에는 바이오 회사를 다니면서 정착을 위해 겪었던 여러 가지 에피소드에 대하여 소소히 공유해보고자 한다(슬기로운 미쿡생활 38회-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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