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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초보 논문 투고기] 까임
Bio통신원(뉴로)
미팅 장소를 가는 도중에 교수님은 이것저것 문제를 내면서 가셨습니다.
지도교수: “Contingency table이 뭐지?”
뉴로: “two-by-two table에 categorical 항목들을 정리한 테이블입니다.”
지도교수: “뉴로, SNV와 SNP의 차이가 뭐지?”
뉴로: “유전체 상에 단일 변이가 생긴 것을 지칭하는 같은 개념 아닌가요?”
지도교수: “휴….. 뉴로 학생, 이제 곧 있으면 자네는 나를 포함해 4명의 PI들과 그분들의 연구원들 앞에서 이 모든 내용을 말해야 하는데 통합과정 2년 차인데 그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면 어떻게 하나?”
문제의 반타작은 했다 생각했지만, 제 인생 처음으로 만난 완벽주의자 교수님께선 못마땅해 하셨습니다. 질문에 답 못 할거 같으면 본인께서 대답해 주시겠다 하고 근처 빵집에서 ppt를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간단하게 발표 준비를 하고 들어갔습니다.
방 안에는 PI-B와 PI-C가 먼저 와있었고 PI-A는 환자 때문에 늦는다고 PI-A측 연구원이 알려줬습니다. 그동안 제 교수님과 PI-B와 PI-C는 새로운 연구과제 이야기, 그간 연구 진행 상황 등을 이야기 나눴습니다. 그리고, 30분 정도 지나서 PI-A가 들어왔습니다.
뉴로: “안녕하세요. 바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연구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figure를 제작했습니다. 오늘은 PDF파일을 하나하나 열면서 설명 드리겠습니다.”
뉴로: “먼저, Figure 1 panel A는 샘플들의 주요 oncogene과 tumor suppressor들의 돌연변이 및 원발/재발 등의 임상적 특징들을 정리한 circular dendrogram입니다. 보시면 동일환자에서 유래한 샘플들끼리 가까이 묶여있는데….”
PI-A: “잠깐, 그림이 너무 보기 안 좋고 가시성이 안 좋아요. Figure 1의 panel A가 첫인상을 주는 것인데 그림을 만드는 것을 아무 생각 없이 했어요?”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PI-A는 말을 끊고 panel A만으로 10분 정도 혹평을 시작했습니다. 시작부터 아수라장이 펼쳐지니 황당함과 짜증이 머리 속을 가득 채워갔습니다.
지도교수: “heatmap으로 많이들 그리긴 하지만 circular dendrogram은 최신 트렌드이고 저희 쪽 논문에서도 쓰였습니다. 이 방식의 장점은 비슷한 샘플들이 묶이는 것이 더 잘 보입니다.”
PI-A: “아닙니다. 보세요 예를 들어 19번 샘플의 유전자 상태를 보여주는 것을 보면 TP53가 돌연변이가 있는지 없는지를 보려면 한 바퀴 돌았다가 보는 식으로 해야 해요. 리뷰어들에게 감점 요소입니다.”
PI-A는 자신의 디자인에 대한 철학을 연설했고 제 지도교수님은 포기하고 전통적인 사각형 heatmap으로 하겠다 했습니다. 시계를 봤을 때, 1시간 예약이 잡혀있던 회의실의 시간을 벌써 20분을 써버렸습니다.
어느 질병 연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자신의 연구논문 내용이 high-impact factor 저널에 실리려면 거의 모두 인간 샘플의 활용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샘플을 쥔 자가 왕이다’란 말이 있습니다. PI-A 직책이 실제로 병원에서 높기도 했지만 그는 이 연구에서 왕이었습니다.
지도교수: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필수적인 것만 말하고 넘어가세요.”
저는 circular dendrogram이 들어가는 그림들은 모두 피해가며 필요한 것만 이야기했고 주로 PI-A가 이건 기존의 상식과 다르다거나 흥미롭다던가 피드백을 줬지만 제 지식수준에선 뭔가 뜬구름 잡는 듯한 이야기였습니다. 한국어지만 해석이 잘 안 되는 말을 받아적고 제 나름대로 이해해 논문을 수정해야 할걸 생각하니 막막하더군요.
문제의 circular dendrogram
회의실 사용시간을 30분 정도 초과하고 다음 그룹과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습니다. 결국, PI-A는 “대화가 부족하다 보니 논문 구성이 임상에서 바라볼 때 불필요하거나 이해가 안 되는 것들이 있는 것 같다. 대화를 자주 하자”를 말하며 끝을 냈습니다. 여담입니다만, 그분을 본 건 이날을 포함해 과제 끝까지 3번 봤습니다.
지도교수: “뉴로 학생, 오늘 수고했고 돌아가서 회의 내용 정리 후에 내일 논문을 어떻게 수정할지 이야기합시다. PI-A의 의견은 그 분야 대가로서 존중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걸 무작정 다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지적사항들에 대해 반영을 해야 할지 안 해야 할지도 생각해오세요.”
그리고 대략 9개월 동안 추가 분석과 draft 수정작업을 했습니다. 이 동안 여러 차례 이메일로 의견을 받고 수정하고 마지막으로 오프라인 미팅을 가졌습니다. PI-A는 상당히 흡족해했고 조금만 보완해서 Nature genetics나 Cancer cell에 내보자고 했습니다. 그렇게 다시 3개월을 보완 및 수차례 이메일과 대학원생끼리 미팅 등을 거쳤습니다. 앞서 말했지만, 제 지도교수님의 논문의 완벽성을 위해 스트레스받으며 글자 포인트, 줄 간격 등 세세하게 그림 작업을 열심히 했습니다.
첫 서브미션 전날은 눈이 아직 오지 않았던 2018년 12월경이었습니다.
“뉴로 학생. 그간 내 밑에서 정말 고생 많았어. 지도교수가 정말 짜증 났지? 술 한잔 받아.”
호프집에서 지도교수님께 그 말과 맥주를 받았을 땐 약간 복잡미묘한 감정이었습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동료 대학원생들은 이제 곧 졸업하겠네 부러워했던 것도 기억납니다.
이제 해외학회도 가고 구두 발표도 하고 그렇게 졸업하겠지 하며 부푼 기대를 안고 2018년 12월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2019년의 시작은 Nature genetics와 Cancer cell의 연달은 editorial reject이었습니다.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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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에서 생명과학을 하다가 대학원에서 bioinformatics를 접해 매일 컴퓨터에 앉아 있는 대학원생이다. 최대 고민은 커져가는 뱃살! 그리고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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