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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리의 육아일기] 아기와 만나는 여정
Bio통신원(닥터리)
© Pixabay
“자기야, 지금 나 바로 아기 낳아야 한다고 해서 입원 수속 중이야. 지금 병원으로 다시 와야겠어.”
병원 앞에 나를 내려주고 출근하던 남편은 반포대교를 건너다 전화를 받고 급히 병원으로 다시 왔다.
어제까지는 평범한 임산부였는데, 졸지에 난 임신중독증 환자가 되었다.
나는 평일에 일하다가 시간 날 때 병원에 쉽게 다녀오기 위해 임신 초기부터 연구실 바로 앞에 있는 대학병원 산부인과를 다녔었다. 보통 산모들은 산부인과 전문병원을 다니기 때문에 대학병원 산부인과에는 부인과 질환 환자들이 대부분이고, 산모는 인공수정하거나 조산 위험이 있는 산모 외에는 거의 없었다.
환자복을 갈아입고 떨리는 마음으로 분만실 문을 열었다.
분만실은 꽤 넓었고, 입구 오른쪽에는 가족 분만실이 있었다. 안쪽에는 분만을 대기하는 산모들이 이용하는 침대가 줄지어 있었고, 초음파 기기를 포함한 다양한 기기들이 비치되어 있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나는 분만실의 유일한 산모였다.
침대에 누워 초음파를 진행했다. 아기는 대략 2.8kg 정도 될 것 같단다. 이어서 아기 심박계와 진통감지기를 배에 부착했다. 진통감지기는 진통이 증가하면 옆에 있는 기기 모니터의 수치가 올라가는데, 이를 통해서 분만 촉진제를 주입 후 진통으로 연결되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두근두근 긴장되는 마음과, 생각보다 아기를 일찍 만나게 되어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내진을 해보니 이미 자궁문이 2cm 정도 열려있다고 했다. 분만 촉진제를 맞고 빨리 진통이 진행돼서 출산하면 좋겠다 싶었다.
드디어 남편도 도착했고, 우리 둘은 떨리는 마음으로 진통을 기다렸다.
진통감지기 모니터를 보니 진폭이 커지기 시작했다. 진폭이 커질수록 나와 남편은 진통으로 연결되어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긴장감에 심장이 더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그런데 촉진제에 의해 진통이 시작은 되었지만 더 진행이 안 되었다. 진통이 시작되면서 자궁문이 열려야 하는데, 의료진의 생각보다 자궁문 열리는 속도가 매우 더디게 진행되었다.
9시 반쯤 분만실에 들어갔는데, 3-4시간이 지나도 본격적인 진통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의사선생님은 수술할 가능성이 있으니 점심부터는 금식하라고 하셨다.
수술???
나는 한 번도 제왕절개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자연분만을 해야 산모도 회복이 빠르고, 모유 수유도 더 잘 되고, 아기가 산도를 통과하면서 아이의 호흡기를 통해 엄마 몸에 있는 미생물이 아기의 장으로 유입되기 때문에 아기의 장내 미생물이 건강하게 자리매김하는 좋은 기회가 된다고 해서 산모와 아이의 건강을 위해 꼭 자연분만으로 아기를 출산하고 싶었다. 그래서 평소 없는 시간을 쪼개 임산부 요가도 하고, 라마다 호흡법도 익혀두었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 입에서 나온 “수술”이라는 단어에 갑자기 마음이 답답해졌다. 보통 유도분만을 시도하다가 안 되면 산모를 집에 돌려보내고 며칠 후에 다시 오라고 한다는데, 나처럼 임신중독증 산모의 경우에는 반드시 아기를 낳아야 하기 때문에 돌려보낼 수 없다고 하셨다.
마음과 몸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기를 맞이해야 하는 이 상황이 어설픈 초보 아빠 엄마에게는 참 부담스러웠다.
산부인과 교수님께서 오후에 분만실에 올라오셨다. 내 담당 교수님은 출산 경험이 없으신 올드미스 여자분이셨다.
교수님은 밝고 쿨하게 말씀하셨다.
“어머나~ 아직도 진통이 안 왔다고? 어쩌나.. 언능 아기 낳아야 할 텐데.”
“선생님, 혹시 오늘 아기 못 낳으면 어떻게 해요?”
“걱정 말아요. 안되면 수술해야지 뭐. 암튼 오늘 꼭 아기 낳아야 해요. 어쨌든 아기가 2.5kg 넘었고, 지금 낳아도 인큐베이터 안 들어가도 되니 정말 다행이지. 괜찮아, 괜찮아.”
나는 긴장되고 머리 아픈데 교수님은 너무도 쉽게 말씀하시는 것 같아 서운했다.
교수님은 이어서 결정타를 날리셨다.
“그런데, 어쩌지? 내가 오늘 저녁 비행기로 학회를 가야해서.... 그전에 아기 낳으면 내가 받아주는데, 6시 넘으면 어려울 것 같아.”
“네엣?!”
“괜찮아, 괜찮아. 내가 아주 좋으신 선생님께 얘기 잘 해놓고 갈게. 그전에 아기 낳으면 더 좋구~~!”
“...........!!!”
어느덧 시간은 6시를 넘어버렸고, 담당 여교수님이 보내신(?) 꽤 젊으신 남자 교수님께서 오셨다.
“하루 종일 힘드셨죠? 촉진제 용량을 높였는데도 진통으로 이어지지 않아서 난감하네요. 병원 규칙상 오후 6시가 넘으면 촉진제는 더 이상 주사할 수 없어요. 의료진들도 퇴근하는 상황이라 어떻게 될지 몰라서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산모분이 자연분만 의지가 높으시니 조금 더 기다려보도록 해요. 촉진제 끊은 후에 뒤늦게 진통이 오는 산모도 많아요.”
다행히 원래 담당이셨던 교수님을 대신해서 나를 맡아주신 남자 교수님은 참 배려심이 깊고 다정하셨다. 나는 선생님 말씀처럼 좀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아기의 심박동 수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선생님께서 급하게 다시 들어오셨다.
“아무래도 임신중독증 약이랑 분만 촉진제를 계속 맞으면서 아기도 무리가 되었나봐요. 심박동수가 아까보다 훨씬 떨어지네요. 아무래도 언능 아기를 낳으셔야 할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 어렵게 입을 떼셨다.
“환자분의 자연분만 의지가 아주 강해서 계속 지켜보려고 했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아기를 생각할 때 응급 수술을 진행해야겠어요.”
아기가 위험해질 수 있다니! 이 부분은 임신 이후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이슈였다.
마음이 저릿했다. 그리고 행여 아기가 잘못되지 않을까 겁이 났다.
결국 나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제왕절개를 결정하게 되었다.
수술 준비는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옆에서 남편은 허둥대며 수술 동의서를 적었고, 나는 수술을 결정 후 30분도 채 되지 않아 수술방으로 옮겨졌다. 현재는 전신마취 vs 하반신 마취 선택 여지없이 전신마취를 한다고 했다.
기도가 바뀌었다. 그저 별일 없이 아기와 제가 건강하게 만나게 해달라고...
.........
.........
.........
“산모분! 산모분! 정신이 드세요? 여기 회복실입니다. 아기는 잘 태어나서 신생아실로 옮겨졌어요.”
‘아 너무 추워... 오마이갓!! 근데 왜 이렇게 아픈 거야?’
나는 고통이 너무 심해서 간호사 선생님을 붙들고 말했다.
“선생님! 진통제, 진통제는 놓으신 거예요? 너무 아파요.”
“산모분~ 많이 아프시죠? 진통제 놓으면 안 아파서 늦게 깨어나실 수 있어서 일부러 진통제를 놓지 않았어요. 병실 올라가시면 그때 진통제 링거 꼽아 드릴게요.”
헐...! 환자를 위하는 건 좋지만 이건 너무 심하잖아. 그 순간 난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앞으로 내 인생에 둘째는 없다.”
나는 일반 병실이 아닌 분만실 내 간호사실과 문이 맞닿아있는 집중치료실로 옮겨졌다.
간호사 선생님께서 수시로 내 상태를 확인하셔야만 해서 2~3일 정도는 이곳에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솔직히 나는 수술하여 출산하는 경우 산통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수월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것은 나의 큰 착각임을 깨달았다. 아파도 너무 아팠고, 정신이 아득했다.
배에는 지혈을 위해 무거운 모래주머니가 올라가 있고, 열이 나서 아이스팩을 목 뒤와 양 겨드랑이에 끼고 있었다.
정신을 좀 차리고 났을 때 문이 열리고 간호사 선생님께서 작은 바구니를 끌며 들어오셨다.
그리고 고개만 간신히 돌릴 수 있는 내 옆에 흰 천으로 꼭 싸맨 아주아주 조그마한 아기를 놓아주셨다.
드디어 만나게 된 우리 아기였다.
그동안 너무너무 궁금해했던 아가와 얼굴을 마주했다.
눈을 꼭 감고 있는 아가에게 나는 생에 첫 인사를 건넸다.
“아가 안녕?"
"무사히 만나서 정말 반갑다."
"난........ 네 엄마야."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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