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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 like] 시간: 느리게 흐르는 나의 시간 (feat. COVID19)
Bio통신원(쏘르빈)
8월이다.
예년 같았다면 “벌써 8월이나 됐어?”를 외쳤겠지만,
올해는 쉽사리 그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뜨거운 여름은 이제서야 나에게 왔다.
빠르게 흘러가던 시간을 마주하며 세월을 느끼던 나였는데
왜 이번 년도의 시계는 이토록 느리게 흐르는 걸까?
아마 지구를 뒤덮고 있는 ‘코로나19’ 이놈 때문이 아닐까 싶다.
코로나 시대가 찾아온 이후로 나의 시계는 천천히 흐르기 시작했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함께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규칙적인 생활은 사라져 갔다.
밤낮은 뒤바뀌어서 생체시계 따윈 잊어버렸고
오늘이 월요일인지 화요일인지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여행도 못 가고 친구들도 많이 못 만나니 일상은 밋밋해져가고 시간이 더디게 흘러간다.
많은 사람들이 ‘앗, 내 이야기인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의 시간이 갑자기 느리게 흘러가는 이 ‘시간 왜곡 현상’은 왜 일어나는지 이야기해보자.
코로나 시대 이후로 우울증에 시달리는 ‘코로나블루’현상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들 중 상당수가 시간이 더디게 가는 현상을 경험하였다.
프랑스 클레르몽 오베르뉴 대학의 심리학 교수인 실비 드로와 볼레는 코로나19로 격리 생활을 겪은 이들을 대상으로 시간 인지의 변화를 조사하였다. 그 결과, 대부분의 피실험자들이 격리 기간 동안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다고 느꼈다. 또한 군대나 감옥 같은 폐쇄적인 공간에서 생활하다 보면 시간이 더디게 흘러간다는 이야기도 주변에서 빈번하게 들을 수 있다.
이처럼 격리 생활 혹은 폐쇄적인 생활은 시간 왜곡을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이 ‘시간 왜곡’의 원인에 대해선 아직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그러므로 이를 둘러싼 여러 가설에 대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신진대사의 변화’로 인해 인지하는 시간이 느려졌다는 가설이다.
여러 신진대사 요인들이 있겠지만 그 중에 연구가 많이 진행된 도파민과 체온의 사례에 집중해보겠다.
미국 듀크대의 심리학, 신경과학 교수인 워런 멕은 실험용 쥐의 도파민 수치를 조작하여 쥐들의 시간 지각이 달라지는지 실험하였다. 실험용 쥐들을 20초마다 먹이 레버를 누르도록 훈련시킨 후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에는 도파민 수치를 증가시키는 암페타민을, 다른 그룹에는 도파민 수치를 감소시키는 할리페리돌을 주사했다.
그 결과 도파민 수치가 증가한 쥐들은 레버를 누르는 속도가 20초에서 18초로 빨라졌고, 수치가 감소한 쥐들은 22초로 느려졌다. 즉, 도파민 수치의 변화에 따라 쥐들이 인식하는 시간의 빠르기가 달라지는 시간 왜곡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도파민은 신경전달물질로 몸의 여러 신진대사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도파민의 수치가 감소하면 뇌에 전달되는 양 또한 줄어들어 체온 증가, 자율신경계 기능 장애, 의식 변화 등의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이 생리적 요인들이 시간 인식에 변화를 미칠 수 있다는 연구가 오래 전부터 진행되어 왔다. 1932년, 심리학자 H. Hoagland는 독감에 걸린 아내에게 줄 해열제를 사기 위해 20분 가량 아내의 곁을 비웠지만, 아내는 왜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렸냐며 의문을 가졌다.
아내는 시간감각이 뛰어난 음악가여서 1초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 꽤 정확한 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열이 난 상태에서 60초를 세어보도록 하자, 불과 38초 만에 1분이라고 대답하였다. 후에 진행된 열이 있거나 인위적으로 열을 높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역시 체온이 높아질수록 시간을 빠르게 인식하는 현상을 보였다.
두 번째는 ‘새로운 경험의 양’에 따라 시간감각이 달라진다는 가설이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끼는 경우가 바로 이 가설에 해당할 것이다. 어렸을 때는 모든 것이 새로운 것 천지다. 새로운 경험, 새로운 장소, 새로운 먹거리 등 세상은 새로운 것들로 넘쳤고 그 모든 게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해본 것들 투성이고 경험들은 반복적이고 일상적이어진다. 그렇게 뇌로 들어가는 정보의 양은 줄어들게 된다.
추억으로 남은 순간들에 대한 시간 감각은 기억하는 정보량에 따라 그 길이가 재구성 된다. 그렇기에 새로운 경험이 줄어든다면 시간이 짧게 느껴질 것이다. 할머니집도 가고 여행도 갔던 휴가는 길었던 것 같지만, 하루 종일 넷플릭스만 본 휴가는 짧았던 것처럼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 가설을 들으면 의문이 생길 것이다. “나는 요즘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만 있는데 왜 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새로운 경험의 양 만으로 시간감각을 논할 순 없을 것 같다, 모순적이다 등의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이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심리학자들이 구분하여 정리한 두 개념이 있다. 현재의 ‘시간의 흐름 판단’과 과거의 ‘회고 시간의 판단’이다. (각각 passage of time judgment, retrospective time judgment) 예컨대 지금 당장 일어나고 있는 사건(현재)에 대해서 느끼는 시간의 속도와 나중에 그 사건을 돌이켜봤을 때(과거) 느끼는 속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이번 년도에 내가 새롭게 경험하는 일들이 많아서 매일매일이 빠르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져도, 몇 년 후에 돌이켜보면 기억에 남아있는 게 많고 사건도 많아서 그 시절의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던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이다. 반대로 오늘의 내가 아무것도 못하고 집에만 있어서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코로나가 끝난 후 돌이켜보면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 것처럼 느껴질지 모른다.
이번 글을 쓰면서 생각이 이래저래 계속 바뀌었다. 처음엔 “요즘 시간이 왜 이렇게 늦게 갈까?”란 의문에서 시작했지만, “내가 요즘 기쁜 일이 없어서 도파민이 부족했나..?”에 도달했다가, “나중에 돌이켜보면 별일 아니었던 그저 빠르게 흘러간 시간으로 남겠구나”에 도착했다.
하지만 ‘지나면 괜찮아질 테니 일단 버티자’라고 결론을 짓기에는 내 삶에 너무 미안해졌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현재에 새로운 일들을 집어넣어 시간을 빠르게 흐르도록 바꾸고자 한다. 코로나 시대 이후 비대면 비접촉으로 할 수 없었던 일들을 뛰어넘어 나는 ‘과학커뮤니케이터’이자 ‘과학퍼포머’에 도전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며 ‘온라인’ 과학 콘텐츠를 만들고 있고, 예술로 과학을 하는 혹은 과학으로 예술을 하는 융합과학예술작품을 만들고자 공부하고 있다. 나의 ‘과학’에서 시작된 작은 새로움들이 내 삶에 다시금 원동력을 가져오고 시간을 빠르게 흐르게 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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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현상을 넘어선 인문학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합니다. 누군가가 삶 속에서 과학을 발견한다면, 저는 과학 속에서 삶을 발견하며 이것을 글로 기록합니다. 포항공과대학교에서 화학공학을 공부했고, 현재는 과학커뮤니케이터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시즌 2에서는 여러 생명과학 기술과 이를 예술적인 견해로 바라본 시선, 이로써 만들어진 과학예술작품들을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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