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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癌)에게서 배우다] <93회> 뉴노멀(2); 미지의 감각(A Sense of the Unknown)
Bio통신원(바이오휴머니스트)
ⓒ Pixabay License
임상시험 수행을 위해, 간호사는 각종 검사 도구를 담은 백팩을 매고 환자들을 방문한다.
환자는 병원에 오지 않고, 병원이 제공한 숙소에 가족들과 함께 머문다.
의료진은 비대면 의료(Telehealth, Telemedicine)를 통해 임상시험 일정에 따라 환자를 만나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환자와 멀리 떨어져 사는 가족들도 비대면 의료를 통해 환자와 의사간의 대화에 참여한다.
환자는 동의서에 전자서명을 한다.
임상시험 관계자는 임상시험 진행상황을 기관 현장 방문 점검이 아니라 리모트(remote) 모니터링을 통해 파악한다.
임상시험에 사용하는 구강 복용약(oral medications)은 대상 환자의 집으로 배송한다.
이상은 그간 코로나19 사태 기간 중 미국의 한 병원이 소아암 환자를 대상으로, 때론 그들의 유일한 치료방법인 임상시험을 차질 없이 진행하기 위해 시행한 일들이다.
코로나19 사태 초기 미국 국립암연구소의 한 임상연구 책임자(Scientific director)는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미지의 감각(A Sense of the Unknown)’을 꼽았다. 즉, 의료진들은 제한된 정보만을 가지고서 암환자를 병원까지 오게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의사결정을 내려야했고 이때 코로나바이러스로부터의 안전과 암환자 치료 사이에서의 균형 감각이 필요했다. 암 환자 치료라는 의료진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그야말로 미지의 상황에 대처하는 예리한 감각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의료진들은 비대면 의료라는 해법을 찾게 되었고, 그 이점을 경험하고는 향후 이를 확대 적용하여 평소 소외 지역(rural areas)의 의료불평등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혜택을 줄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1)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아직은 경험이 없어 생소하지만 미래에는 보편화가 될 아이템을 뉴노멀로 예측하고 날카로운 감각을 발휘하며 남보다 한 발 앞서 나가는 시도가 중요해지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도 지난달 한국판 뉴딜 정책을 발표하면서 그린 뉴딜과 함께 비대면 산업을 중점 육성한다는 디지털 뉴딜을 강조하기도 했다.2)
18세기 후반 조선 실학자들도 당시 중국 청나라의 선진 문물을 둘러보다가 한 가지 뉴노멀을 언뜻 발견한다.
‘마침 장날이었는데 내각의 학사인 숭귀(嵩貴)라는 사람을 만났다고 했다. 그는 직접 여우 털옷을 골라서 옷깃을 헤쳐 보기도 하고 입으로 털을 불어 보기도 하며 몸에 대 보고 길이를 재더니 자기 손으로 은자를 꺼내어 계산했는데, 이덕무가 이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숭귀라는 사람은 만주인으로 왕년에 칙명을 받들고 우리나라에도 왔던 인물이다. 관직이 예부시랑, 몽고부총통 등 고관이다. 우리나라에선 비록 선비가 궁핍하여 부릴 심부름꾼 하나 없는 처지라도 자신이 직접 시장판에 나가는 일은 없다. 장터에 나가서 되잖은 장사치들과 물건 값을 흥정하는 것을 비루하고 좀스러운 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런 광경이 우리나라 사람의 눈을 깜짝 놀라게 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3)
200년 전만해도 우리나라 선비는 절대 직접 시장판에 나가는 일이 없었고 물건 값을 흥정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후 상업은 번성하여 이젠 교육을 받은 사람이 창업을 하고 평소 쇼핑을 즐기며 때론 물건 값을 흥정하는 것은 노멀한 일이 되었다.
학교 지각과 결석을 반복하는 아이에게 보다 못해 잔소리를 한 마디 했더니 아이가 입술을 주뼛거리면서 볼멘소리를 했다.
“요즘은 매일매일 학교 가야하는 아빠시대하고는 달라.”
아이에게 화가 많이 났지만 혹여나 내가 교육 분야 뉴노멀 감각이 떨어지는 탓은 아닌지 잠시 생각해봤다. 내 학창시절의 미덕이던 개근상이 없어진 것은 아이가 말하듯이 학교를 매일 가야만 하는 시대는 이제 끝났다는 의미일까? 그렇다면 어떤 대안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인지, 도무지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아 답답할 뿐이다. 알아서 제 살 길 찾을 때까지, 아이를 더 기다려주는 수밖에 없다.
역대급 감염병이 창궐하는 시대에도, 탁월한 미지의 감각으로 뉴노멀의 대안을 찾으며 암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암연구자들처럼, 나도 육아 분야의 뛰어난 감각이 있어서 아이와 함께 꽃길만 걸을 수 있는 상생의 길을 찾으면 좋겠다.
재난 문자는 이제 그만. 장맛비야 그쳐라!
※ 참고자료
1) https://www.cancer.gov/news-events/cancer-currents-blog/2020/covid-19-cancer-clinical-trials
2) https://www.gov.kr/portal/ntnadmNews/2207711
3) 열하일기3, p362~363, 박지원, 김혈조 옮김, 돌베개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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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어설픈 휴머니스트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살아가는 평범한 직장인. 바이오분야 전공 대학졸업후, 제약사를 거쳐, 현재는 십수년째 암연구소 행정직원으로 근무중. 평소 보고 들은 암연구나 암환자 이야기로부터 나름 진지한 인생 교훈을 도출해 보고자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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