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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소설로 읽는 과학이야기] 49. 광화문에서
Bio통신원(과학작가 박재용)
제 애가 중1이에요. 앞으로 최소한 10년은 더 일을 해야 한단 말입니다. 제가 이 나이에 코딩을 어떻게 배우겠습니까? 죽고 싶은 심정입니다. 겨우 1년 실업수당에 1000만원 얹어주는 걸로 끝내면 어떻게 하냐고요.
반백의 사내는 마스크를 쓴 채 거의 울부짖다시피 했다.
옆에서 마이크를 대고 있던 리포터도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아저씨 저도 비정규직이에요. 육 개월 뒤면 어찌 될지 몰라요.
20년 전 탄핵을 외치며 촛불을 들었던 이들로 꽉 찼던 광화문 사거리에는 운전대를 놓은 사오십대 남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삭발을 했는지 햇빛을 받아 번들거리는 이마에 뻘건 머리띠를 맨 단상의 남자는 쉰 목으로 연신 구호를 외치고 있다. 그의 뒤로 다섯 개의 영정이 사내들 손에 들려 광장의 사람들을 향하고 있었다.
정부는 자율주행전용도로 정책을 내세워 운수회사들을 압박했다. 모든 고속도로와 자동차전용도로는 자율주행 자동차만 진입이 가능했다. 택시와 버스, 트럭에 이르기까지 남은 유예 기간은 1년에 불과했다.
자동차회사는 자율주행차를 사는 업체에게 기존 차를 중고로 매입해주고 나머지 잔금도 24개월 분납으로 처리해주었고, 정부는 그 잔금의 12개월 치를 대납해주기로 했다. 모든 운수회사들이 직원들을 해고하고 자율주행차를 사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중고차는 아직 자율주행시스템이 도입되지 않은 나라들에 수출하기로 했고, 그 나라들의 자동차 공장은 폐쇄되었다. 그 나라들에서도 자동차공장의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고, 그 나라의 수도 도심에서 뻘건 머리띠를 매고 집회를 하고 있었다. 다만 차이는 이 나라에서는 분신한 이의 영정을 들고 나왔는데 그 나라에서는 분신한 이의 관을 들고 나왔다는 정도다.
물론 자율주행제도의 전면 도입을 앞두고 정부가 손을 완전히 놓은 것은 아니다. 택시나 버스 트럭 노동자들에게 일 년 동안 원래 월급액과 동일한 실업 수당을 주고, 일시불로 천만 원을 따로 지급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직업 전환을 위해 다른 기술을 배우는 이들에게 직업 훈련을 무료로 실시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그러나 새로 옮겨갈 직업군이 없었다. 정부도 알고 노동자들도 알고 언론도 알고 있지만 노동자 말고는 아무도 그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코딩 교육을 실시한다고도 하고, 사회복지사 교육을 실시한다고도 하지만 이미 그쪽도 넘쳐나는 인력을 어찌하지 못하고 있었고, 대부분 20대를 채용했고 30대 초반이 그나마 끝에 줄을 설 수 있을 정도였다. 40대가 넘은 아저씨들이 갈 수 있는 데라곤 어디도 없었다. 예전 버스안내양들이 졸지에 해고를 당하자 모두 갈 데가 없어 술집 작부가 되고 호스티스가 되었던 게 70년 전 일이었고, IMF가 터지고 해고된 남자들이 대리운전을 뛰던 게 50년 전이었는데 세상은 여전했고 나라도 여전했다. 운전대에서 손을 놓는 순간 이 곳은 남의 나라가 된다.
광장에서 동료 지수를 만난 영우는 집회를 째고 술집으로 가자고 꼬시는 중이었다. 야 이렇게 많이 모였는데 우리 둘쯤 빠져도 아무렇지도 않아. 그리고 지금 벌써 4시간째야 피곤해 죽겠어. 오늘만 나올 것도 아니잖아. 내일도 모레도 나와야 한다고. 종로 2가에 가면 호프 많더라. 맥주나 한 잔 하자. 그렇지 않아도 피곤하고 같은 말만 반복하는데 질렸던 지수도 못이기는 체 따라 나섰다.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찬 광장을 벗어나 종로1가 도로를 걷자니 비로소 숨이 좀 쉬어지는 듯했다. 부러 인도를 피해 사람들이 적게 다니는 도로로 걷는다. 유인물이 떨어진 자리, 스프레이로 “자율차량 도입 반대, 기사 생존권 쟁취하자” 등의 구호가 칠해져 있는 곳을 피해서 2가로 접어들었지만 들어갈 곳이 없었다.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집들. 내처 3가로 가니 그나마 갈만한 곳이 보인다.
호프집 문을 지날 때 에어샤워가 온 몸의 먼지며 세균을 지운다. 문 양옆의 붉은 선은 자외선 온도계. 아무 말이 없는 걸 보니 괜찮은가 보다. 오랜만의 호프는 풍경이 바뀌어 있었다. 자리와 자리 사이가 넓고 그 사이를 에어 커튼 나누고 있었다. 이 집만의 풍경은 아니다. 바이러스가 십 년 너머 유행하면서 도심의 술집들 풍경도 바뀌었다. 물론 영우나 지수가 사는 동네는 아직도 여전한 곳이 많지만.
자리에 앉자마자 탁자 한쪽에 세워진 테블릿 메뉴판에서 생맥주 2잔을 먼저 눌러 주문을 한다. 안주는 천천히 해도 늦지 않을 터였다. 곧 맥주 두 잔과 강냉이 한 그릇을 이고 서빙 로봇이 다가왔다. 맥주 두 잔 시키셨지요? 로봇이 주문을 확인하고, 둘은 각자 맥주를 옮기고 강냉이도 옮긴다. 그럼 맛있게 드십시오. 안주가 필요하면 탁자 위 메뉴판으로 주문 부탁드립니다. 저희는 한 테이블 당 최소 안주 하나를 시키시는 걸 기본으로 하고 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영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알았다. 시키마. 저기 노가리 하나 시키자. 지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잔을 든다. 첫잔은 부딪쳐야 맛이지.
너 갈 곳은 정했냐? 어디. 오라는 데가 있어야 가지. 아직은 실업 수당이 나오니 어디라도 알아는 봐야하는데 쉽지 않네. 어디 경비원으로라도 가려는데 요샌 다 무인 경비잖아. 넌 전에 건설 쪽 알아본다지 않았냐? 어때?
말도 마 거기도 난리야. 요새 쓰리디 프린트로 집을 짓는 기계가 새로 들어왔는데 이게 완전 요물이야. 보통 빌라 하나 짓는데 빠르면 4개월 정도 걸렸거든. 그런데 얘가 들어오면서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어. 기초공사 끝나면 철근하고 콘크리트 공사를 하는데 이걸 얘가 혼자서 다해. 거기다 단열재도 얘가 다 넣어버려. 그뿐인 줄 알아? 건물 외장 공사도 로봇이 다해.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시멘트칠도 하고 타일도 붙이고. 아이고 건물 네 면에 로봇 한 대씩 설치하면 하루에 쫑 나. 아시바도 필요가 없어. 그러니 빌라 하나 짓는데 한 달이면 끝이야. 기초도 터파기 끝나면 로봇이 반쯤 일을 해버리니 사람 쓸 일이 전에 비해 절반도 없어. 거기도 내부 인테리어 하는 기술자들이랑 배관하는 애들 빼곤 다들 일없다고 난리야.
에효 참 살기 힘들다. 참 그래 그 여자하고는 잘 되고 있어? 응 이제 둘이 있을 땐 마스크도 벗는 사이야. 오호 그럼 결혼? 결혼은 아니고 살림은 합치려고. 내 애가 3학년이고 그 여자 아이가 1학년이야. 둘이 같이 지내면 혼자 있는 것보다 나을 것도 같고. 또 둘이 각자 사는 것보다 같이 있으면 버티기도 좀 쉽고.
그런데 로봇을 한 대 사야겠어. 애들이 학교를 일주일에 삼일 밖에 안 나가잖아. 나머지 날들에 애들 온라인 교육하는 것도 좀 봐주고 먹을 것도 챙기고 하려면 아무래도 로봇이 하나 필요해.
어차피 이제 백수될 건데 너가 좀 보지? 야야 아니다. 어떻게든 일을 구해야지. 그리고 코딩교육도 한 번 받아 볼라고. 될까 모르겠다만 어떻게든 잡아봐야지. 또 코딩교육 받는 동안 월 50만원씩 수당도 나오고.
참내. 로봇은 얼마나 하는데? 월 30만원. 야 세다. 뭐 어쩌겠어. 그래도 요새 주말에 알바를 하니 그 정도는 괜찮아. 알바? 주말에는 쉬어야지. 아이고 벌 수 있을 때 벌어야 해. 그래도 어디 가서 하는 게 아니라 집에서 하는 알바라 할 만 해. 무슨 일인데? 응 인공지능 라벨링이야. 아. 나도 얘긴 들었어. 요새 그거 하는 사람들 꽤 있더라.
하긴 누가 그러더라. 쪽가위를 들고 실밥을 뜯던 이들의 자식은 인형 눈을 붙였다고. 그리고 본드를 한 손에 들고 인형 눈을 붙이던 이들의 자식은 이제 모니터 앞에 앉아 뻘개진 눈으로 인공지능 라벨링을 한다고. 우리 엄니가 20년 전에 인형 눈 붙였다는 거 아니냐. 그나마 우리나라 인공지능 라벨링이 한글을 쓸 수 있는 이들만 가능한 작업이라 중국이나 인도로 보낼 수가 없어 내가 하고 있는 거지. 그런데 들리는 말로는 인공지능이 라벨링을 한다니 이 일도 얼마 가지 않아 사라질 거 같아.
둘이 한 잔, 또 한 잔, 또 한 잔 마시며 얼굴이 붉어졌다. 안주로 나온 노가리도 떨어졌다. 로봇이 쪼르르 달려왔다. 뭐 필요한 거 없으세요.
영우는 웃으며 말했다.
로봇아 너도 너무 열심히 일하지 마라. 우리가 실업자가 되는 것처럼 너도 언제 일이 사라질지 몰라.
지수가 옆에서 거든다.
야야 로봇한테 뭔 말이여. 난 저 로봇이 부럽네. 열심히 할 일이라도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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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의 아주 주관적이고 편파적인 시선으로 과학의 역사 곳곳에 드러난 혹은 숨은 여러 사건을 바라보고 이를 엽편소설 형식으로 씁니다. 소설이니 당연히 팩트가 아닌 점도 있습니다. 감안하고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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