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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소설로 읽는 과학이야기 48. 『보통의 날』
Bio통신원(과학작가 박재용)
본격적인 우기다. 하루 종일 비가 내렸고, 일주일 내내 비가 내렸고, 한 달에 스무 닷새를 비가 내리는 비가 두 달을 넘어 이어지고 있었다. 영우가 농담 삼아 비도 주 52시간 노동을 지켜야 한다고 하자, 옆에 있던 필호가 한 마디 거든다. 우리처럼 비정규직인가 보지.
내가 젊었을 적엔 장마라고 해도 보름 정도면 끝이었는데 언제부턴가 여름 석 달 내내 비가 오네. 아주 찝찝해 죽겠어. 아이고, 니가 젊을 적이라 해봤자 10년 전이잖아. 요새 우리나란 아열대라고. 대만이나 마찬가지잖아.
물류센터 앞 차양이 쳐진 빈터에 막 참을 끝낸 사내 네 명이 엉거주춤 앉아선 차양 밖으로 쉼 없이 내리는 비를 보며 담배를 피운다. 영우가 담배 곽에서 하나를 더 꺼내 꽂았다.
담배를 끊을 수가 없어.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쉰다는 느낌이 들질 않아. 그렇지, 그렇지, 맞장구를 치며 필호가 연신 연기를 내뿜고 있다. 여느 날과 다름이 없었다. 근데 너 이번에 보조로봇 장만했다며? 응 할부로 샀는데 36개월 매달 꼬박꼬박 50만씩 꽂아야 해. 한 보름 해보니까 하루에 30개는 더 돌리더라. 하루에 30개? 그럼 하루 2만 4천원. 한 달이면 24만원 곱하기 3이니 72만원. 거기서 쉬는 날 5일 12만원 빼면 60만원, 한 달에 10만원 더 벌라고? 돈이 문제가 아녀. 그 놈에게 짐을 맡기니 내 허리가 좀 살더라. 아 허리? 그래 이제 괜찮아? 전에 보다는 나아졌지.
종이 울리고 사내들은 다시 마스크를 쓰며 센터 건물로 들어갈 준비를 한다. 마스크 때문에 전자담배밖에 못 피겠어. 마스크를 쓰니 내 담배 냄새가 너무 역해. 흐흐 그래서 난 멘톨로 갈아탔잖아. 멘톨은 피우고 나면 그나마 괜찮아. 한 갑에 만원짜리는 냄새가 괜찮다던데. 야야 하루에 한 갑은 피는데 그 돈이면 차라리 니코틴 패치를 붙이고 다니지.
신내 IC 바로 옆의 이 물류센터는 서울 동북부 지역을 관장한다. 곤지암 허브에서 오는 간선 화물차의 물건이 내려져 서울 동북부 전역으로 뿌려지고, 반대로 서울 동북부의 물량들이 여기에서 간선을 탄다.
간선은 모두 자율 주행차이고 화물 상하차도 모두 로봇에 의해 자동화가 되어 별 달리 손쓸게 없다. 하지만 직접 배달을 해야 하는 차량은 아직 사람이 필요하다. 무인택배함에 택배를 넣어야 되고 아직 무인택배함이 설치되지 않은 단독주택이나 빌라가 밀집한 지역 등은 직접 배달을 해야 된다. 차에 설치된 인공지능이 택배배달 동선을 다 짜기 때문에 그저 물건을 내리고 갖다 주는 일만 하면 돼서 이전보다 일이 줄은 듯 보이지만 그 대신 처리해야 할 물량이 늘었다. 자율주행트럭 구입비가 만만치 않아 할부금을 갚기 위해선 이전 보다 물량이 많아야 하기도 했고. 결국 일하는 시간은 10년 전과 마찬가지로 오전 7시에서 밤 10시까지 하루 15시간이 보통이다.
짧은 휴식이 끝나고 사내들은 로봇이 꽉꽉 채워놓은 트럭에 올라탄다. 영우가 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자 옆자리의 로봇이 말을 건다. 이제 출발인가요? 그래 물건 내릴 차례는 다 파악했지? 네 오늘은 물량 300개를 쳐야 하더군요. 다 확인했습니다.
그래 좋아 그럼 출발하자. 영우는 자동차를 불렀다. 헤이 키트. 출발하자. 안녕하세요. 영우씨 출발하겠습니다. 전기로 움직이는 트럭은 별다른 소리도 내지 않고 터미널을 빠져나와 도로로 진입한다.
벌써 전기트럭으로 갈아 탄 것도 2년이 넘었군. 이 녀석 할부금이 한 달에 50만원씩 꼬박꼬박 들어가는 걸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해. 앞으로도 3년을 더 부어야 하는군. 그래도 자율트럭이라 딴 돈 들어가는 게 없어 다행이지. 영우는 속으로 셈을 해본다. 자동차 할부금 50만원에 보조로봇 할부금 50만원 한 달에 백이 그대로 빠져나간다. 거기에 원룸 방세 50만원에 휴대폰이며 전기세 인터넷 등 잡다한 비용도 한 50만원. 식비 50만원. 내 손에 남는 거 50만원. 심플하군.
차가 저 혼자 움직이는 동안 영우는 돈 계산을 하다 옛날 아버지 이야기를 떠올렸다. 아버지가 술 한 잔 하시면 말씀하시곤 했지. 영우야 너는 웬만하면 연애만 하고 결혼 같은 거 하지마라. 결혼하면 그 때부터 돈에 매여 사는 거다. 물론 너도 잘 벌고 니 처도 잘 벌면 신경쓸 거 없지만 너도 널 알잖아. 거기다 내가 너에게 물려줄 것도 별로 없다. 정 좋은 사람 생기면 한 3년 동거라도 먼저 해봐라. 사람 살아봐야 안다. 살기 전엔 몰라. 그리 한 3년 살다가 그래도 결혼하고 싶으면 그 때 해라. 그러고도 절대 애는 낳지 마라. 애 참 귀엽지. 하다못해 너도 어릴 땐 귀여웠다. 하지만 그 귀여운 거 보려고 애 낳으면 그 때부터 최소한 20년 애 클 때까지 너랑 미래의 너 처는 생고생에 막고생을 다 하는 거다.
영우는 피식 웃었다. 옆자리의 로봇이 영우를 돌아봤지만 영우는 계속 생각에 잠겼다. 그 땐 별 얘길 다 하신다고 생각했지. 근데 살다보니 다 맞는 이야기야. 지금 내 처지에 덜컥 결혼이라도 했으면 어쩔 뻔 했어.
차는 이제 망우동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시장을 끼고 우회전한 차는 이면도로로 들어섰다. 오늘의 첫 배달처였다. 차가 멈추고 영우와 로봇이 내렸다. 뒷문을 열자 배달할 박스들이 바로 보였다. 이 빌라에만 다섯 개를 부려야 한다. 로봇이 자연스럽게 박스 다섯 개를 들었다. 로봇이 빌라의 공동택배함에 다가서자 문이 열렸다. 로봇과 택배함이 서로를 확인한 것이다. 로봇이 박스 다섯 개를 택배함에 넣고 사진을 찍고 문을 닫았다. 방금 찍은 사진은 택배 받을 사람 폰으로 바로 전송된다.
사실 영우까지 내릴 필요도 없었다. 무인택배함에 넣는 건 로봇이 알아서 다 한다. 하지만 영우처럼 사람이 같이 대동하지 않는 경우 로봇에게 시비를 거는 이들이 간혹 있다. 괜히 발로 차보고, 상자를 뺏기도 한다. 영우가 로봇 옆에 있는 이유다. 사실 영우와 로봇이 서로 일을 나눠 가지면 배달은 훨씬 더 빠를 거였다. 하지만 시장 주변은 그래선 안 된다. 시비 거는 이들이 자주 나타난다.
로봇은 이 주변의 배달처 몇 곳을 분주히 오갔다. 영우는 차를 주차한 곳 옆에 서서 그저 누가 로봇에게 시비를 걸지나 않나 살펴볼 뿐이다. 배달이 끝나고 둘은 다시 차를 타고 다음 목적지로 간다. 이번엔 2년 전에 세워진 아파트 단지다. 이 곳에선 조금 서둘러도 된다. 부릴 짐이 많고 무거운 동은 로봇이 가고 몇 개 되지 않는 얇은 봉투만 전달하면 되는 동은 영우가 챙겨서 간다. 신축 아파트 답게 각 동마다 무인 택배함이 있어 일이 한결 수월하다. 시비 거는 이들도 거의 없다. 다음 목적지도 아파트다. 세워진지 거의 20년이 넘은 아파트지만 그래도 무인택배함이 있어 일이 수월하다. 몇 군데의 아파트를 돌고 나서 이제 면목동으로 넘어간다. 여긴 다세대와 빌라가 섞여 있는 곳이다. 무인택배함도 별로 없다. 지어진 지 50년은 족히 된 듯한 다세대 주택과 한 20년 넘은 빌라들이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뒤섞여있다. 배달하기 힘든 곳이다. 로봇이 내려 짐을 들고 가는 걸 보면서 영우는 차에게 출발하라고 지시한다. 로봇이 짐을 나르는 걸 곁눈질로 보면서 가까운 곳에 영우도 박스 하나를 건네준다. 그 사이 차는 다음 배달할 곳으로 먼저 가 있는 것이다. 여긴 거주자 우선 주차 구역이 많은데다 주차 문제로 시비가 많이 붙으니 되도록 한 곳에 오래 있지 않고 차를 계속 움직이는 게 나았다.
사건은 한화 이글스가 경기를 망치는 것처럼 우연히 그러나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차가 움직이는데 갑자기 아래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골목에서 튀어나왔다. 어떤 할배가 자기 집 앞에 놓인 쓰레기봉투를 찢으며 먹을 걸 찾는 길고양이에게 냅다 물을 부어버린 것이다. 기겁한 고양이가 황급히 골목을 빠져나올 때 마침 영우의 차가 그곳을 지나고 있었다. 고양이가 차에 부딪치려 했고 차의 인공지능은 급하게 제동을 걸고 멈췄다.
거기까지면 그저 해프닝이었을 것이다. 마침 트럭 뒤를 따라오던 자전거가 있었다. 자전거를 탄 아저씨는 한 손에 든 핸드폰을 보면서 오느라 급정거한 트럭을 미처 보지 못했고 부딪쳤다. 영우가 막 배달을 마치고 차로 오던 중이었다. 그나마 다행이게 아저씨는 많이 다친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저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 액정만 날아갔을 뿐이었다.
사실 영우 차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아저씨 잘못이었다. 그러나 영우가 빼도 박도 못하는 것이 이면도로에선 자율주행차라도 운전자를 태우지 않고는 움직이지 말라고 법이 정해놓고 있었다. 아저씨도 그걸 알고 영우도 알고 있었다. 아저씨는 아주 간단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몸과 자전거는 괜찮지만 핸드폰 액정이 나갔다. 이걸 수리하려면 50만 원 정도 들 거다. 지금 현금으로 주면 아무 문제 삼지 않겠다. 영우로서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요구였다. 카카오페이로 50만원을 송금하고, 그 화면을 아저씨와 함께 확인하는 것으로 사고는 수습되었다.
그 사이 겁먹은 고양이는 트럭 밑으로 들어갔고, 아무도 그 일을 알지 못했다. 영우와 로봇이 다시 차로 와서 새로 전달한 박스를 내리고 받을 사람에게 건네주고 다시 돌아올 때까지도 고양이는 트럭 아래 숨어있었다. 영우가 차에게 다음 목적지로 출발하라고 하자 그제서야 인공지능이 말한다.
제 차 아래에 이상한 물체가 있는데 아무래도 고양이 같아요. 적외선 센서에 온도가 35도 정도로 나옵니다. 뒷바퀴 사이에 있습니다. 아무래도 확인을 하셔야 할 듯합니다.
영우는 차의 인공지능이 촬영한 동영상을 먼저 본다. 고양이가 튀어나와 차에 부딪치고 다시 나동그라진 뒤 차 밑으로 숨었다. 한 숨을 한 번 쉬고 차에서 내려 뒤로 돌아갔다. 고개를 낮추고 차 밑을 들여다보니 과연 고양이 한 마리가 잔뜩 웅크린 채 영우를 보고 있었다. 아직 다 크지 않은 녀석. 로봇이 두 팔을 길게 뻗어 고양이를 잡았다.
조심해서 다뤄 다치지 않게.
예 제 매뉴얼 속에 고양이나 개를 포획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로봇이 이상한 소리를 내며 손가락으로 고양이 몸을 살짝살짝 만지자 잔뜩 곤두서서 하악대던 고양이가 조금씩 누그러졌다. 로봇은 천천히 고양이를 꺼냈다.
어떻게 할까요? 그냥 길옆에 두고 출발하나요?
그러자고 하려다 영우는 잠깐 멈칫했다. 돈 50만원에 고양이 한 마리 산 걸로 칠까?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아냐 지금 내 신세에. 잠깐 그래도 고양이 한 마리 있으면 좋지 않을까? 매일 밖으로만 다니는데 돌보는 건 누가 하고. 그래도 결혼도 안 할 건데. 어디 연애는 제대로 하겠어. 이 참에 고양이라도 식구로 있는 게 어때? 스스로 자문자답을 하다 로봇에게 물었다.
너 고양이 아주 잘 다루던데 어떻게 된 거야? 고양이나 개 같은 반려동물을 다루는 것은 택배 로봇에게 아주 기본적인 업무입니다. 다양한 상황에서 이들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우호적 분위기를 만드는 법은 전문가 수준으로 숙달되어 있습니다.
그럼 이 고양이를 차에 싣고 데리고 다녀도 되나?
아마 차의 인공 지능도 고양이 다루는 법을 알고 있을 겁니다. 우리가 차를 비운 사이에는 차의 인공 지능이 고양이를 다루도록 하면 될 겁니다. 아 차문은 확실히 닫아 둔다는 조건으로요.
그래? 어이 키트 너도 고양이 다룰 줄 알아?
네 저도 기본적으로 반려동물에 대한 학습이 되어 있습니다.
그는 로봇 손에 안겨있는 고양이를 살짝 쓰다듬었다. 후 돈이 없어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없는데. 이런 군식구를 챙기게 될 줄이야. 그래 똑똑한 인공 지능 둘하고, 멍청한 살아 있는 둘 하고 그렇게 넷이서 한 번 지내보자.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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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의 아주 주관적이고 편파적인 시선으로 과학의 역사 곳곳에 드러난 혹은 숨은 여러 사건을 바라보고 이를 엽편소설 형식으로 씁니다. 소설이니 당연히 팩트가 아닌 점도 있습니다. 감안하고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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