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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노트] 한 달 실험이 날아갔다
종합 곽민준 (2020-07-21)

한 달 실험이 날아갔다. 전기 없이 전기충격을 가해준 탓이다. 온몸에 힘이 쫙 빠진다. 대학원 첫 학기가 막 끝난 이 시점에서, 이제는 정말 상상할 수 있는 웬만한 실수란 실수는 다 저질러 본 듯하다. 그래도 인간의 한계는 끝이 없다고, 앞으로는 또 어떤 놀랍고 신기한 실수의 향연이 펼쳐질지 정말 기대가 된다.

Electroporation

그림1. In Utero Electroporation (Yu et al. 2011)


뇌 신경 발생을 유전자 관점에서 연구하는 우리 실험실의 주된 연구기법 중 ‘IUE(In Utero electroporation)’라는 실험이 있다. 간단히 얘기하면, 임신한 쥐의 자궁 속 태아 뇌에 DNA 혹은 RNA를 주입하고, 전기충격을 가해 유전물질을 세포 안으로 넣어주는 일종의 유전자 변형 기술이다.

형광 표지 단백질을 발현하는 DNA를 넣어주므로, 새끼가 태어난 후 형광 신호를 통해 내가 넣은 DNA가 신경세포에 잘 들어갔는지 확인할 수 있다. 처음 학부 연구 참여를 할 땐 꽤 까다로웠는데, 지난가을 이후 꾸준히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익숙해져 가벼운 실험이 됐다.

그런데, 이번 달 실험 결과가 하나같이 다 이상하다. 사실 처음에는 잘 된 건 줄 알았다. 어미의 배를 열어 수술하고, 태아 뇌에 직접 바늘을 찔러 DNA를 넣어주고, 심지어 전기충격까지 가해주는데, 새끼들이 유산되지 않고 다들 잘 태어나 어미 젖을 충분히 먹고 훌륭히 컸으니 말이다. 나는 내 실험기술이 향상된 줄 알고 으쓱했다. 그런데 잘 된 게 아니었다. 형광 신호가 안 보인다. 나는 분명히 형광을 발현하는 DNA를 넣어줬는데, 이전에 잘 됐던 그대로 DNA를 똑같이 주입해줬는데, 없다. DNA가 사라졌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은 한 달 가까이 반복됐다. DNA가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염기서열을 몇 번이나 확인해보고, 농도도 다시 재봤다. 문제가 없었다. 이제는 내 손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내 실험기술이 형편없어졌을 거라 판단하고, 연습만이 살 길이라는 생각으로 실험을 반복했다.

그날도 그렇게 초집중 상태로 IUE 실험 중이었다. 실패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평소처럼 전기충격을 가해주고 있었는데, 갑자기 뭔가 느낌이 싸했다.

원래 태아의 뇌에 전기를 가해주면, 그 자리에 조그만 거품이 보글보글 올라오고 약간의 자국이 남는다. 그런데 지금 이 친구들에게는 그런 표시가 나지 않는다. 불길한 기운이 들기 시작한다. 뭔가 잘못된 것 같다. 잠시 실험을 중단하고 상황을 살펴보았지만, 그래도 이유를 알 수 없다.

‘형, IUE 할 때 전기충격 줬는데도 애들한테서 거품 안 생긴 적 있어요?’

‘아니. 난 한 번도 그런 적 없는데.’

옆자리 형이 어슬렁어슬렁 동물 실험대로 오더니 주변을 쓱 살핀다.

‘야! 이거 빠져 있잖아?’

‘뭐 가요?’

‘전극 선!’

젠장. 이게 무슨 어이없는 일이지? 전기충격기와 전극을 연결하는 전선이 빠져있다. 이건 전혀 예상 못 한 시나리오다. 나는 저 전극 선과 기계 사이의 연결선이 빠져있는 걸 본 적이 없다.

‘저 선이 왜 빠졌지?’

‘그거, 나 지난달부터 다른 전극으로 실험하잖아. 그럼 중간 어댑터를 연결해야 하거든. 그래서 저거 빼야 해. 아, 내가 다시 연결 안 해뒀나 보다. 어떡하지? 아, 정말 미안하네….’
 

전극 선이 뽑혀 있는 Electro Porator

그림 2. 전극 선이 뽑혀 있는 Electro Porator


와, 유레카! 이유를 찾았다! 내 소중한 시간을 버리게 한 범인을 드디어 잡았다. 저 선이 문제였다. 전기도 연결하지 않고 전기충격을 주겠다고 쥐들 머리에 쇳덩어리를 갖다 대고 있었으니, 실험이 제대로 될 리가 있겠는가! 전기가 가해지지 않았으니, DNA들이 막을 못 통과해 세포 안에 들어가지 못했고, 그럼 당연히 세포 사이에 흘러 다니던 DNA들이 그냥 연기처럼 날아가 버렸을 것이었다. 허탈했지만, 정말 어이없었지만, 그래도 약간은 신났다. 내 몸과 마음을 괴롭히던 범인을 찾았기 때문이다.

옆자리 형은 굉장히 미안해 했지만, 사실 그 사람은 잘못이 없다. 실험자가 시작 전에 실험기기와 주변을 잘 살펴보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저 신입생인 내가 기본 중의 기본이 안 되어있어서 벌어진 일이었을 뿐이다.

그날 집에 돌아가면서 도대체 언제쯤 이런 멍청한 실수를 하지 않게 될까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나같이 덜렁대는 사람이라면 앞으로도 쭉 비슷한 일이 벌어질 거라는 결론에 약간 씁쓸해졌다. 남의 돈으로 하는 실험인데, 이렇게 어이없는 실수로 낭비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앞으로는 항상 주위에 더 신경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도 기죽을 생각은 없다. 평소에 전혀 신경 쓰지 않던 새로운 요소가 실험에 개입했을 때,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라고 스스로 위안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은 이럴 때 핑계 대라고 만들어진 말이다. 그 유명한 에디슨도 빛이 켜지지 않는 천 가지 이유를 알아낸 후에야 전구를 발명했다고 하는데, 하물며 나 같은 평범한 대학원생이 어찌 실수 없이 모든 연구를 수월히 해내겠는가. 물론 무선으로 전기충격을 주려 한 건 조금 심하긴 하지만, 그래도 괜찮을 거다. 과학은 원래 실패하는 과정이다. 실패 중에는 뼈 아프고 심각한 실패도 있고, 이렇게 어이없고 짜증 나는 실패도 있다. 이 추세라면 조만간 에디슨의 천 번을 훌쩍 넘는 실패의 대가가 될 것 같으니, 좌절하기엔 아직 이르다.

나는 앞으로도 실패에 실패를 반복할 계획이다. 그리고 그 실패를 교훈 삼아 조금씩 제대로 된 과학을 배워갈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천 번 실패한 게 아니라, 전구가 켜지지 않는 천 가지 이유를 알아낸 것뿐'이라는 에디슨의 명언이 나에게는 명언이 아닌 일상이 되어있을 그때쯤, 운 좋게 다가온 한 번의 성공이 나를 진짜 과학자로 만들어주기를 기대해본다.

  추천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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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민준 (POSTECH 생명과학과)

랩노트 (혹은 연구노트), 과학자의 모든 실험과 연구 과정을 기록하는 노트죠. 그러나 여기에 연구자들의 일상이 담기지는 않습니다. 과학은 자연을 설득력 있고 논리적인 언어로 풀어내는 '과정'이니, 사실은 연구 대상을 만나 이론이 만들어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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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5 댓글작성: 회원 + SNS 연동  
회원작성글 엔바이로  (2020-07-21 22:03)
1
저도 덜렁대는 성격 때문에 걱정많이 하고 있는데 공감되는 글이었습니다.. ㅎㅎ
회원작성글 제르  (2020-07-22 18:08)
2
문제점 찾은것 축하드려요~~~
가끔 별의별 트러블슈팅에도 실험이 안될때가 있죠^^
회원작성글 홍삼파워  (2020-07-31 16:09)
3
이렇게 확실한 문제점을 발견했을 때 묵은 때가 싹 씻겨나가는 기분이라는거 공감합니다.
그런데 문제점을 도저히 못찾고 있을 때의 심정은 너무 힘겹네요 ㅠ 지금 딱 제가 그런 상황이에요 ㅠ
회원작성글 앤서린77  (2020-08-26 00:46)
4
멋집니다~ 앞으로의 실험을 응원합니다.
회원작성글 구야  (2020-12-30 22:33)
5
남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듯하네요. 매력적인 글입니다. 과학자가 되어가는 과정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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