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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노트] 한 달 실험이 날아갔다
Bio통신원(곽민준)
한 달 실험이 날아갔다. 전기 없이 전기충격을 가해준 탓이다. 온몸에 힘이 쫙 빠진다. 대학원 첫 학기가 막 끝난 이 시점에서, 이제는 정말 상상할 수 있는 웬만한 실수란 실수는 다 저질러 본 듯하다. 그래도 인간의 한계는 끝이 없다고, 앞으로는 또 어떤 놀랍고 신기한 실수의 향연이 펼쳐질지 정말 기대가 된다.
그림1. In Utero Electroporation (Yu et al. 2011)
뇌 신경 발생을 유전자 관점에서 연구하는 우리 실험실의 주된 연구기법 중 ‘IUE(In Utero electroporation)’라는 실험이 있다. 간단히 얘기하면, 임신한 쥐의 자궁 속 태아 뇌에 DNA 혹은 RNA를 주입하고, 전기충격을 가해 유전물질을 세포 안으로 넣어주는 일종의 유전자 변형 기술이다.
형광 표지 단백질을 발현하는 DNA를 넣어주므로, 새끼가 태어난 후 형광 신호를 통해 내가 넣은 DNA가 신경세포에 잘 들어갔는지 확인할 수 있다. 처음 학부 연구 참여를 할 땐 꽤 까다로웠는데, 지난가을 이후 꾸준히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익숙해져 가벼운 실험이 됐다.
그런데, 이번 달 실험 결과가 하나같이 다 이상하다. 사실 처음에는 잘 된 건 줄 알았다. 어미의 배를 열어 수술하고, 태아 뇌에 직접 바늘을 찔러 DNA를 넣어주고, 심지어 전기충격까지 가해주는데, 새끼들이 유산되지 않고 다들 잘 태어나 어미 젖을 충분히 먹고 훌륭히 컸으니 말이다. 나는 내 실험기술이 향상된 줄 알고 으쓱했다. 그런데 잘 된 게 아니었다. 형광 신호가 안 보인다. 나는 분명히 형광을 발현하는 DNA를 넣어줬는데, 이전에 잘 됐던 그대로 DNA를 똑같이 주입해줬는데, 없다. DNA가 사라졌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은 한 달 가까이 반복됐다. DNA가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염기서열을 몇 번이나 확인해보고, 농도도 다시 재봤다. 문제가 없었다. 이제는 내 손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내 실험기술이 형편없어졌을 거라 판단하고, 연습만이 살 길이라는 생각으로 실험을 반복했다.
그날도 그렇게 초집중 상태로 IUE 실험 중이었다. 실패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평소처럼 전기충격을 가해주고 있었는데, 갑자기 뭔가 느낌이 싸했다.
원래 태아의 뇌에 전기를 가해주면, 그 자리에 조그만 거품이 보글보글 올라오고 약간의 자국이 남는다. 그런데 지금 이 친구들에게는 그런 표시가 나지 않는다. 불길한 기운이 들기 시작한다. 뭔가 잘못된 것 같다. 잠시 실험을 중단하고 상황을 살펴보았지만, 그래도 이유를 알 수 없다.
‘형, IUE 할 때 전기충격 줬는데도 애들한테서 거품 안 생긴 적 있어요?’
‘아니. 난 한 번도 그런 적 없는데.’
옆자리 형이 어슬렁어슬렁 동물 실험대로 오더니 주변을 쓱 살핀다.
‘야! 이거 빠져 있잖아?’
‘뭐 가요?’
‘전극 선!’
젠장. 이게 무슨 어이없는 일이지? 전기충격기와 전극을 연결하는 전선이 빠져있다. 이건 전혀 예상 못 한 시나리오다. 나는 저 전극 선과 기계 사이의 연결선이 빠져있는 걸 본 적이 없다.
‘저 선이 왜 빠졌지?’
‘그거, 나 지난달부터 다른 전극으로 실험하잖아. 그럼 중간 어댑터를 연결해야 하거든. 그래서 저거 빼야 해. 아, 내가 다시 연결 안 해뒀나 보다. 어떡하지? 아, 정말 미안하네….’
그림 2. 전극 선이 뽑혀 있는 Electro Porator
와, 유레카! 이유를 찾았다! 내 소중한 시간을 버리게 한 범인을 드디어 잡았다. 저 선이 문제였다. 전기도 연결하지 않고 전기충격을 주겠다고 쥐들 머리에 쇳덩어리를 갖다 대고 있었으니, 실험이 제대로 될 리가 있겠는가! 전기가 가해지지 않았으니, DNA들이 막을 못 통과해 세포 안에 들어가지 못했고, 그럼 당연히 세포 사이에 흘러 다니던 DNA들이 그냥 연기처럼 날아가 버렸을 것이었다. 허탈했지만, 정말 어이없었지만, 그래도 약간은 신났다. 내 몸과 마음을 괴롭히던 범인을 찾았기 때문이다.
옆자리 형은 굉장히 미안해 했지만, 사실 그 사람은 잘못이 없다. 실험자가 시작 전에 실험기기와 주변을 잘 살펴보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저 신입생인 내가 기본 중의 기본이 안 되어있어서 벌어진 일이었을 뿐이다.
그날 집에 돌아가면서 도대체 언제쯤 이런 멍청한 실수를 하지 않게 될까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나같이 덜렁대는 사람이라면 앞으로도 쭉 비슷한 일이 벌어질 거라는 결론에 약간 씁쓸해졌다. 남의 돈으로 하는 실험인데, 이렇게 어이없는 실수로 낭비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앞으로는 항상 주위에 더 신경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도 기죽을 생각은 없다. 평소에 전혀 신경 쓰지 않던 새로운 요소가 실험에 개입했을 때,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라고 스스로 위안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은 이럴 때 핑계 대라고 만들어진 말이다. 그 유명한 에디슨도 빛이 켜지지 않는 천 가지 이유를 알아낸 후에야 전구를 발명했다고 하는데, 하물며 나 같은 평범한 대학원생이 어찌 실수 없이 모든 연구를 수월히 해내겠는가. 물론 무선으로 전기충격을 주려 한 건 조금 심하긴 하지만, 그래도 괜찮을 거다. 과학은 원래 실패하는 과정이다. 실패 중에는 뼈 아프고 심각한 실패도 있고, 이렇게 어이없고 짜증 나는 실패도 있다. 이 추세라면 조만간 에디슨의 천 번을 훌쩍 넘는 실패의 대가가 될 것 같으니, 좌절하기엔 아직 이르다.
나는 앞으로도 실패에 실패를 반복할 계획이다. 그리고 그 실패를 교훈 삼아 조금씩 제대로 된 과학을 배워갈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천 번 실패한 게 아니라, 전구가 켜지지 않는 천 가지 이유를 알아낸 것뿐'이라는 에디슨의 명언이 나에게는 명언이 아닌 일상이 되어있을 그때쯤, 운 좋게 다가온 한 번의 성공이 나를 진짜 과학자로 만들어주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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