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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다른 미국 생활] EP 5. Batman, 그리고 "Live free or die"
종합 이승원 (2020-07-20)

"마블 코믹스(Marvel Comics)는 몰라도 어벤져스는 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디즈니-마블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영화 매출 기록도 갈아치웠고, 주연 배우들은 엄청나게 몸값이 상승했으며, 관련 상품들은 엄청난 규모의 시장을 구축했죠. 저는 개인적으로 마블 코믹스의 열렬한 팬은 아니지만 여러 매체 특히 영화는 꼬박꼬박 챙겨보고 있으며 작품들의 주제 의식에는 흥미를 갖는 수준의 라이트한 소비자입니다. 마블뿐만이 아니라 DC comics (이하 DC)도 좋아합니다. 마블 영화가 초 흥행을 일으키기 전까지는 DC의 주요 캐릭터 중 한 명인 배트맨을 정말 좋아했죠. 지금이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배트맨 트릴로지'가 유명하고 많은 분들이 명작으로 꼽으시겠지만 (팀 버튼 감독의 영화 배트맨 팬분들께는 죄송합니다), 저에게는 프랭크 밀러의 1986년 작 <다크 나이트 리턴즈>가 배트맨이라는 정체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배트맨은 영웅입니다. 그러나 초능력을 가진 영웅은 아니죠. 물론 그의 엄청난 재력은 어중간한 초능력보다 더 큰 힘을 가지긴 합니다만, 신체적으로만 본다면 그저 조금 뛰어난 운동신경을 가진 인간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인간이라는 범주에서 보통의 인간이 지켜야 할 유·무형적 규범과 제약에 귀속되어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이기에 사회의 룰(rule)을 지키고 따라야 하며, 인간이 가지는 본질적인 고민을 넘어서는 초인이 될 수 없기에 누구보다 인간적인 기준으로 사안을 판단할 수밖에는 없는 존재입니다. 사실 그가 특별하게 될 수 있게 만드는 재력이라는 것 또한 그 또한 사회적 동물이기에 가능한 것이겠지요. 그렇기에 배트맨은 항상 '자신이 다른 초인과 같이 행동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에 대해 고민합니다. 자신의 기준이 타인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 옳냐는 것이죠. 이는 결국 한 개인의 판단이 정의롭고 가치 있냐는 질문과 개인의 정의가 타인과 사회에 적용되는 것이라는 서로 다른 층위에 대한 질문입니다.
 

명작이라 칭송받는 의 30주년 기념판 표지

[그림 1] 명작이라 칭송받는 의 30주년 기념판 표지 [1]. 보시지 않은 분이라면 DC의 팬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 보시길 권하는 작품이다. 한국에도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약간 다른 이야기를 먼저 꺼내 보겠습니다. 차량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미국의 경우 차량의 관리책임이 국가 혹은 연방정부(federal)가 아니라 주(state)에 맡겨져 있기 때문에, 웬만한 경우 차량을 등록할 때는 주 정부에 등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주마다 자동차 번호판이 다르고, 자동차 번호판의 부착 방법도 주마다 다르죠. 어떤 주는 앞 번호판을 붙일 필요가 없고 뒤에만 붙여도 되고, 어떤 주는 앞뒤에 전부 반드시 붙여야만 합니다. 한국과 가장 다르다고 생각하는 건 차량등록(vehicle registration)과 검사(inspection)입니다. 차량등록은 보통 1년 혹은 2년에 한 번씩 반드시 해줘야 하는 것이 보통의 규정이지만, 어떤 주는 차량등록을 위해서는 차량 검사를 의무적으로 선행하고 통과하여야만 하죠. 차량 검사를 어떤 주는 2년에 한 번, 심지어 검사하지 않아도 등록이 되는 주도 있습니다. 차량 검사의 경우, 제가 박사과정을 밟았던 메릴랜드의 경우는 2년에 한 번, 첫 번째 postdoc을 지냈던 펜실베이니아는 1년에 한 번, 그리고 현재 제가 거주하는 오하이오주는 차량 검사에 대한 의무 조항이 없습니다.

이렇게 각각의 주마다 다른 규정이 있다는 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차량 번호판, 흔히 말하는 플레이트(plate)는 차주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박사과정 당시 동기 중 하나가 캘리포니아 출신인데 이 친구는 박사 졸업할 때까지 캘리포니아 번호판을 달고 있었습니다. 이 번호판을 유지하기 위해서 일 년에 한 번씩 캘리포니아에 차를 몰고 다녀왔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본인이 캘리포니아 출신이라는 것을 상당히 자랑스러워 했고, 날씨 나쁘고 물가만 비싼 동부지역--부정하기 힘들긴 하죠--에 대한 불평을 항상 늘어놓았죠. 박사 졸업 후 다시 캘리포니아로 돌아간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마도 여전히 캘리포니아 플레이트를 자랑스럽게 붙이고 있겠죠.

그리고 이런 플레이트는 사실 개개별 주의 가치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척도가 되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이쁘다고 생각하는 델라웨어 주의 번호판에는 "The First State"라는 문구가 있고, 노스캐롤라이나주의 번호판에는 "First in Flight"--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날렸던 비행장이 노스캐롤라이나의 아우터 뱅크스라는 지역에 있지요--라는 문구와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가 있으며, 플로리다주의 번호판에는 특별한 문구 대신 오렌지가 중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 정착했던 미시간주는 5대호(The Great Lakes)에 둘러싸여 있었기에 Great lakes라는 문구가 있었는데, 마침 제가 지내는 기간 동안 새롭게 바뀌었습니다. 재미없게 아무것도 없는 플레이트가 되었죠. 오하이오주 플레이트에는 birth place of aviation이라고 적혀있네요.
 

그동안 지내오면서 내가 사용한 차량 번호판들. 주마다 다르지만, 추가로 별도의 돈을 지불하면 스페셜 디자인이 된 번호판이나 번호를 직접 지정한다거나 할 수 있기도 하다

[그림 2] 그동안 지내오면서 내가 사용한 차량 번호판들. 주마다 다르지만, 추가로 별도의 돈을 지불하면 스페셜 디자인이 된 번호판이나 번호를 직접 지정한다거나 할 수 있기도 하다. 

 

이런 플레이트들 중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것을 뽑으라면 단연 뉴햄프셔 주의 번호판입니다. 문구 한번 기가 막히죠.

"Live Free or Die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아이비리그에 속한 아주 훌륭한 학교이지만 그 이름을 아는 한국 사람이 거의 없어 항상 치욕을 받는 다트머스 대학교에서 지내셨던 분의 말씀을 빌리자면, 여기서는 모터사이클을 타면서도 헬멧을 쓰는 게 치욕이라고 느낀다고 합니다. 심지어 운전으로 타 주에서 뉴햄프셔주로 넘어가는 순간 안전벨트를 풀러 버리는 사람도 있다고도 하더군요. 내가 살고 죽는 것은 내 자유인데 국가나 주 정부가 뭐하러 나를 건드리냐는 겁니다. 어찌 보면 사실 이런 뉴햄프셔의 분위기는 미국 동북부의 정치적 성향과 완전히 대비된다고 보는 편이기도 하지만요.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하겠지만, 저는 미국인 혹은 미국에서 사는 사람들의 기본정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문구가 어쩌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미국 동북부의 구석탱이에 위치한 이 좁은 주--넓이로만 따져도 다른 주들과 비교했을 때 최하위권입니다--의 자동차 번호판에서 느끼는 개인의 자유에 대한 신뢰를 미국 전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죠.
 

뉴햄프셔의 차량 번호판

[그림 3] 뉴햄프셔의 차량 번호판 [2]. 

 

이 말은 미묘하게도 미국을 상징하는 말인 "In God we trust"와 잘 연결이 된다고도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가치관이 그대로 이어진 것이 미국의 보수적(conservative) 정치관이라고 생각한다면, 왜 미국의 주류 가치관은 보수성을 띠고 있는지, 그리고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총기에 대해서 강력하게 반대하지 않는지에 대해 조금은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익숙지 않긴 하지만 자경단이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영어로는 비질란티(vigilante)라고 하죠. 여러 번 말했듯, 미국은 나라라고 지칭되는 것이 무리라고 불릴 정도로 큰 대륙이고 그렇기 때문에 서로 다른 지역을 일괄적인 기준에 의거하여 통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렇기에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지키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걸 수도 있다는 것은 국가에 있어서도 사회안정(social security)에 대한 역할을 분담하는 차원에서 볼 때 설득력이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법률은 모든 것을 통제하지 않는다'라고 하는 최소화된 체제 시스템을 추구할 명분이 생깁니다. 문제는 사회 구성원들의 서로 다른 가치관과 이해관계를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라는 점입니다. 여러 문학 작품들과 서적에서 말하는 이른바 '각자의 정의(justice)'가 충돌하는 경우죠. 하늘의 별 만큼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사람의 숫자만큼 존재하는, 아니 어쩌면 한 사람에게도 상황에 따른 다양한 정의가 존재하기 때문에 사회 유지를 위해서는 이걸 어떻게 조율하는가가 중요하겠죠.

이 문제에 대해서, 적어도 제가 생각하기에, 미국은 아주 게으른 그러나 미국의 가치에 걸맞은 결정을 사회적으로 합의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기부(donation)와 자원(volunteer)과 같은 인간의 선의에 기대는 것이죠. 그리고 이에 맞추어 사회 체제가 이런 행위를 장려하도록 도움을 줍니다. 기부에 대해서는 세금 공제 혜택이 있고, 자원봉사활동은 입시 혹은 취업 활동에 아주 긍정적인 영향 혹은 필수적인 이력이 됩니다. 개개인의 선의가 체제의 빈틈을 메꾸어 주고 체제의 빈틈은 자유를 보장하면서 사회를 풍요롭게 만든다는 믿음은 개인으로서의 미국과 국가로서의 미국 모두에게 이득이 될 것이라는 것이 제가 여태껏 경험한 미국이지 않나 싶습니다.
 

COVID 19 시국이다 보니 출근하면 항상 건물 입구에서 만나는 발열 체크 및 스크리닝하는 분들을 만나는데, 감사하게도 이분들은 모두 자원봉사자들이다

[그림 4] COVID 19 시국이다 보니 출근하면 항상 건물 입구에서 만나는 발열 체크 및 스크리닝하는 분들을 만나는데, 감사하게도 이분들은 모두 자원봉사자들이다.

 

그러나 이런 아름다워야 할 개인의 선의도 한계는 분명히 있습니다. 동일한 인간이라도 선의가 상황에 따라 가변적이라는 것 그리고 개인의 선의가 집단의 선의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점, 마지막으로 모든 선의가 선한 결과를 만들어내지는 못한다는 점등이 그러하겠죠. 입시를 위해 자원봉사를 할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이 보장되는 사람들이 더욱 이득을 받는다는 사실, 그리고 그런 경제적 불이익을 줄이기 위해 적극적 차별 철폐 조치(affirmative action)라는 체제를 만들게 되는 것, 그리고 이런 조치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 소수인종 사람들--아시안 학생들의 입학 숫자를 줄이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과 같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정답 없는 상황의 연속이 발생하는 것은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만들어 줍니다. 사실 그렇기에 미국이 민사소송의 천국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시작을 DC Comics로 열었으니, 끝은 마블 코믹스로 닫아야겠네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마블의 한 문장을 인용해봅니다. 그리고 이 문장은 미국인들을 대표하는 가치관과도 연관된다고 생각해봅니다.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
-Ben Parker, <Spider-Man>

 

[차량과 관련한 조금 다른 미국 생활의 사소한 팁]
1. 한국에서 처음 미국에 나오는 경우 국제면허증을 많이 준비해 오시는데, 국제면허증의 유효기간이 각 주마다 (정확히는 경찰마다) 다른 경우도 발생하기 때문에 가급적 빨리 해당 주에서 발급하는 운전면허를 취득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현재 미국의 23개 주에서 한국 면허증을 해당 주의 면허증으로 교환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2. 차량 등록증과 차량 보험 카드, 그리고 면허증 중 하나라도 없이 운전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법률위반에 해당합니다. 경찰에게 적발되는 경우 세 가지 중 하나라도 보여주지 않으면 꽤나 큰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니, 등록증과 보험 카드는 차량에 반드시 놔두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3. 주마다 다르지만, 보통 주 거주민(residence)가 되기 위해서는 해당 주에서 발급하는 면허증을 소지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면허증과 차량 번호판의 발급된 주가 같아야만 하는 일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크게 문제는 안 됩니다만, 교통법규 위반 시 경찰들에게 지적 받고 가중처벌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4. 타 주로 이사를 하게 되는 경우, 기존 차량 번호판을 반납해야만 하는 차량 번호판을 반납해야만 하는 주도 있고, 그렇지 않은 주도 있습니다. 또한 반납하더라도 등록된 차량의 남은 기간에 해당하는 잔금을 주는 곳도 있고 아닌 곳도 있으니 반드시 해당 Department of Motor Vehicle에 알아보시길 바랍니다.

 

출처:

[1] Amazon.com (https://www.amazon.com/Batman-Dark-Knight-Returns-Anniversary/dp/1401263119)
[2] Univerisity of New Hampshire (https://www.unh.edu/main/licensepl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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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원 (University of Cincinnati College of Medicine)

과학이 생활 속에 녹아드는 삶을 바라는 소시민이자 생명과학 노동자. 현재 University of Cincinnati에서 Postdoctoral researcher로 생체시계(biological clock) 분야를 연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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