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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다른 미국 생활] EP 3. No Turn on Red
종합 이승원 (2020-06-22)

미국에서 운전을 하다 보면 생경한 교통 표지판(traffic signs)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에서는 신경도 쓰지 않았던--더 정확히 표현하면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별문제가 되지 않았던--도로 표지판들이겠죠.

예를 들면, "Private Road No Thru Traffic (개인소유 도로이므로 출입 금지)"와 같은 문구가 저에겐 대표적으로 생경한 문구겠네요. 해석 실수 때문에 이해하지 못하고 당황하는 교통표지판도 있습니다. 제 경험담이지만서도,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아는 분을 만나러 가는 길에 왕복 2차선의 좁은 길을 통과했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눈앞에 "Do Not Pass" 표시가 보이더군요. 그래서 "어, 여기 지나가면 안 되는 건가"싶어서 유턴하고 지도를 펼쳐 (당시 2005년이라 GPS도 흔하지 않았습니다) 돌고 돌아 간신히 목적지에 도착했었습니다. 10분이면 갈 거리를 거의 한 시간을 걸려 도착했었더랬죠. 그리고 그분께 왜 이리 길이 어렵냐고 불평을 내뱉자 그분은 껄껄 웃으시며 그러시더군요. "Do Not Pass"는 지나가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추월 금지라는 뜻이라구요.
 

왕복 2차선 혹은 그에 준하는 좁은 길을 가다 보면 쉽게 마주하는 Do Not Pass 표지판. 나만 이런 오해한 건 아니라는 게 그나마 위안이 된다

[그림 1] 왕복 2차선 혹은 그에 준하는 좁은 길을 가다 보면 쉽게 마주하는 Do Not Pass 표지판. 나만 이런 오해한 건 아니라는 게 그나마 위안이 된다. [1]


미국에서 운전해온 제 경험을 바탕으로 가장 인상에 남는 교통 표지판은 두 가지입니다. 먼저 말씀드릴 하나는 "STOP(일단정지)" 표시입니다. 한국에서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만 사실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보긴 힘들죠. 그러나 미국에서는 이 사인만큼은 아주 엄격합니다. 주로 왕복 2차선의 좁은 도로의 교차로(삼거리 혹은 사거리), 그리고 주택가와 몰(mall)에서 많이 보게 되는데, 원칙적으로 저 표지판이 있다면 무조건 서야 합니다. 행여 서행으로라도 지나가거나 멈추는 척 속도를 줄였다가 그냥 지나가는 행위(rolling-stop)를 하는 경우 경찰에게 적발될 수 있고 꽤나 강력한 벌금과 벌점을 받습니다. 교통법에 따르면 어떤 상황에서든 STOP 표지판을 마주하게 된 차량은 일단 멈춰야 하고, 교차로인 경우 먼저 정지한 차가 우선권을 가지고 지나가게 됩니다. 행여 두 차량이 동시에 서는 경우 주로 오른쪽에 위치한 차량이 우선권을 가집니다. 일반적으로는 눈치싸움을 하거나 양보하는 경우가 다반사긴 하죠. 종종 신호등의 빨간불이 깜빡거리며 점멸하는 경우를 보실 수 있는데, 이는 STOP 표시와 동일한 뜻이므로 일단정지를 무조건 적으로 하고 난 다음 진행하셔야 합니다. STOP 표지판이 가장 강력하게 적용되는 경우는 바로 스쿨버스입니다. 스쿨버스가 정차하고 학생들을 태우거나 하차시킬 때에는 버스 양쪽으로 STOP 표지판이 켜지고 빨간색 경고등과 비상등이 켜지는데, 이 경우에는 쌍방향 도로의 모든 차량은--왕복 2차선이든 8차선이든--멈춰야 합니다. 행여 반대쪽 차선에 있다고 해서 차량을 움직여 버스 옆을 지나가게 되면 가장 강력한 수준의 처벌을 받습니다.

집 앞에 있는 STOP 표지판. 주택가에서 아주 쉽게 볼 수 있고, 특히 신호등이 들어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되는 작은 도로의 교차로는 대부분 STOP 표지판으로 교통이 통제된다

[그림 2] 집 앞에 있는 STOP 표지판. 주택가에서 아주 쉽게 볼 수 있고, 특히 신호등이 들어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되는 작은 도로의 교차로는 대부분 STOP 표지판으로 교통이 통제된다. 일반적으로 STOP 표지 전에는 예비 표시를 통해 STOP 표지판이 나온다는 것을 알려준다. 

 

또 다른 하나는 교차로에서 볼 수 있는 "No Turn on Red (적색 신호일 때 우회전 금지)"입니다. 차량의 진행 방향 기준으로 가장 맨 우측 차선에서 우회전하는 차량에 적용되는 표지이고, 주로 차량 신호등 우측 혹은 우회전 코너에 위치한 전신주나 보행 신호등 상단부에 위치해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뉴욕이나 LA, 시카고와 같이 전반적으로 바쁘고 유동인구가 많은 대도시에서는 이 교통 표지를 무시하는 사람을 종종 봅니다만, 이 문구 역시 위반하여 경찰에게 적발된 경우에는 꽤나 상당한 벌금과 벌점을 받게 됩니다. 사실 한국 사람들이 운전면허를 취득하기 위해 실기시험을 보다가 의외로 많이 놓치는 교통 표지판이기도 한데, 시험 시 위반하는 경우 곧바로 시험은 종료되고 탈락하게 될 정도로 중요한 교통 표지이기도 하죠. 부끄럽지만 저도 유학 초기에 No Turn on Red 위반으로 벌금을 낸 적이 있습니다.

No Turn on Red 표지에는 상황에 따라서 "School Days 7:00 AM to 5 PM" 등과 같이 한정적으로 제약을 달기도 합니다. 이 경우에는 평일 오후 5시부터 다음 날 아침 7시 전까지는 적신호에서도 회전이 가능하죠. 다시 말해서 주말이나 공휴일에도 이 표지는 무시하고 운전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특정 상황에만 유효'하다는 공지는 STOP 표지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회전 차량은 STOP 하지 말고 계속 진행" 등과 같은 식으로 말이죠.
 

출근 중에 마주칠 수 있는 No Turn on Red 표지판

[그림 3] 출근 중에 마주칠 수 있는 No Turn on Red 표지판. 신시내티 의과대학과 아동병원(Cincinnati Children's Hospital)이 붙어있는데, 아동 병원과 같이 돌발상황이 많이 일어날 수 있는 곳에서는 이 표지판이 수시로 나오기 때문에 운전에 주의를 더더욱 기울여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인상적인 두 교통 표지 중에서도, 특히나 No Turn on Red 표지는 저에게 상당히 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어쩌면 미국과 한국의 문화 차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하나의 예가 아니겠느냐고 생각하게 되더군요. 그리고 저는 그걸 개인적으로 '하지 마'문화와 '해' 문화의 차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많은 분들이 생각하시기에 '하지 마' 쪽이 한국이 아닌가 싶을 수 있겠네요. 아무래도 한국은 좀 더 고지식하고 경직된 문화인 반면 미국은 한국과 비교해 좀 더 자유의 가치를 인정한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제 경험상 오히려 미국이 '하지 마'에 가까운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어쩌면 이건 말장난에 가깝다고 느끼실 수도 있겠으나 좀 더 부연 설명을 하자면, 미국은 "이것만 하지 마"에 가까운 문화이고 한국은 "정해진 이대로 해"의 문화가 사회적으로 전반적으로 퍼져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미국에서도 이것만 해라고 하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사람들이 어떤 판단을 내리는지를 곁에서 유심히 지켜보면서 제 생각에 대한 어느 정도 믿음이 생기더군요.

No Turn on Red 말고 좀 다르지만 어쩌면 비슷한 예를 들어볼게요. 한국은 일반적으로 좌회전 허용 표시가 있는 곳에서만 좌회전이 가능하고, 유턴 표시가 있는 곳에서만 유턴이 가능하죠. 왕복 2차선 도로에서 한 차량이 좌측 골목으로 들어가겠다고 깜빡이를 켜고 차를 세우는 순간 뒤차들은 난리가 나죠. 이와 정반대로, 미국은 좌회전 금지 표시가 없으면 앞의 상황처럼 한 차량이 좌측 방향등을 키고 멈추어 뒤 차들이 움직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냥 기다려야 합니다. 물론, 빵빵거리는 사람이 걔 중에 있을지는 몰라도, 그런 사람은 극히 드물거나, 아니면 특출나게 운전을 못 해서 빵빵댐을 당해도 싼 경우일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물론 성질 급한 사람들이 많은 지역의 경우는 한국과 다를 바 없을 수도 있긴 하죠. 그러나 일반적으로 금지된 특정 행위 외에 그 어떤 주행도 합법적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경험도 있습니다. 미국 동부 펜실베이니아주의 필라델피아에서 Delaware river라는 강 하나만 건너가면 뉴저지 주인데, 처음 맞닥뜨리는 지역인 Cherry Hill에서는 상당히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도로를 달리다 보면 대부분의 교차로에서 좌회전과 유턴을 금지하는 표지가 꽤 긴 구간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넓은 차선이라 하더라도 이 구간의 교차로에서는 좌회전이 안 되는 겁니다. 심지어 어떤 지역은 소위 P턴 (교차로에서 우회전만으로 좌회전 방향으로 우회하는 것) 마저 금지하기도 합니다. 필라델피아에 간 초창기 얼떨결에 이쪽에 들어갔다가 업데이트도 안 된 GPS가 저를 이상하게 안내하는 바람에 엄청나게 헤매면서 크게 고생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실 하지 말라는 말이 가지는 부정적 의미 때문에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만 하지 마'라는 생각의 방향성은 오히려 선택의 폭을 더 넓게 가질 수 있도록 합니다. 해답은 한 가지만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죠. 예로 들었긴 했지만, 이런 문화는 단순히 운전뿐만이 아니라 다른 분야 특히 교육 분야에서도 그 차이를 극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초-중-고-대 심지어 대학원 이상의 학력을 떠나서, 어려서부터 미국에서 자라온 학생들과 만나서 이야기해보면 많은 경우 자신들이 해서는 안 되는 몇 가지 규정/제약을 제외하고는 상당히 자유롭게 무언가를 수행할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게 되죠. 물론, 미국의 교육시스템 그중에서도 공교육은 처참할 정도로 실패했다는 의견에 저는 어느 정도 찬성하는 편이고 그로 인한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에도 동의합니다만, 그와는 별개로 이런 생각의 방향성은 결국 미국의 헌법에서 보장하는 미국인들이 추구하려는 생각과 표현의 자유를 지키려는 가치가 반영되어진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만 해야 한다'라고 사회적으로 훈련받아 왔거나 그런 생각에 익숙한 동양인들, 특히 한국, 중국, 일본인들에 비해서 좀 더 이른바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민족주의나 국가주의적 관점을 배제하더라도 한국, 중국, 일본에서 탄탄하게 교육받아 온 사람들을 보면, 일반적으로 '이거 해도 돼?'라는 접근방식을 보여주고, 미국 사람들은 주로 '이건 하면 안 되는 거야?'라는 접근방식을 보여주더군요.

이쯤에 와서 그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창의력 향상의 교육철학이 암기식 위주 교육보다 낫다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 수많은 토론이 있었고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암기 위주의 교육이 천재/영재들을 망치고 있다고 하던가, 교육이 학생들의 창의성을 높이도록 바뀌어야 한다고 소리높이는 분들도 많이 보게 됩니다. 저는 이 질문에 대해서 어느 한쪽의 주장이 틀렸다던가, 혹은 암기와 창의적 가치 중 어느 쪽이 옳다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애초에 비교할 차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들에게는 비겁하게 들리실지는 모르겠으나, 두 가지가 배척되는 가치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지식의 암기가 없이 창의적 가치가 나올 수 없고, 창의적 가치를 추구하려는 것은 지식암기의 동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저는 이야기하는 편입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논문을 찾아내는 것도 결국 찾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있어야만 수행할 수 있기에 기본적으로 체득된 학문적 소양은 반드시 필요할 것이고, 그렇게 지식을 적용함으로써 새로운 지식이 창조되는 것이지 않나 싶습니다.

다만 한 가지 만큼은, '이것만 해라'라는 가치가 가진 큰 문제점 하나만큼은 생각해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것만 해라'가 향하는 끝에는 결국 '너 혼자 튀지 마라', 좀 더 급진적으로 말해 본다면 '모난 돌은 때려서라도 없애야 한다'라는 평균적 인간상에 대한 강요로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현상을 쉽게 볼 수 있는 게 일본이죠. 오랜 시간 동안 일본에서 이미 크나큰 문제가 되어 왔고, 안타깝게도 이제는 한국에서도 십수 년 전부터 이슈화되고 있는 이른바 '이지메 문화(いじめ文化)' 즉 집단 따돌림/왕따 문제의 근본에는 '집단 내의 모난 돌을 없애야 한다'라는 사고방식을 구성원들에게 강요하는 것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물론, 미국에도 괴롭힘(bullying)이 분명하게 존재합니다만 적어도 미국의 그것과 한-일의 그것은 개인적으로 근본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에게 감정이 존재하는 한 이런 다툼은 사라질 리 없겠죠. 그러나 적어도 생각의 자유 때문에 한 사람을 사회적으로 억압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생각의 자유에 따라오는 책임 그리고 '이것만은 하지 마'라고 규정하는 법적/윤리적 한계선을 사람들과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것이 보다 나은 방향성이지 않을까 합니다.


제가 이 연재 글을 시작하면서 말씀드렸지만, 이런 식의 사회 전반에 깔린 약간의 차이를 인식하는 것이 어찌 보면 사회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문제들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봅니다. 그 사회가 미국이 되었건 혹은 한국이 되었건 말이죠. 그게 사실 이 글을 적는 목적일 수도 있겠죠. 어느 쪽이 옳다 우월하다가 아닌, 다름을 서로 인정하는 것이 그런 접근의 가장 맨 첫 단계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운전면허와 관련한 조금 다른 미국 생활의 사소한 팁]
1. 미국에서 운전면허 발급 주체는 연방정부가 아닌 주 정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마다 발급 방식(시험 양식, 시험 자격 가능 요건, 유효기간 등)이 다를 수 있습니다.
2. 국제면허를 인정하는 방식도 주마다 다릅니다. 발급일로부터 어떤 주는 1년, 어떤 주는 1개월만 인정하기도 합니다. 또한, 한국 운전면허를 같이 소지해야 국제면허를 인정해 주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3. 한국 운전면허를 인정하고 간단한 서류만 준비하면 주에서 발급하는 운전면허로 바로 교환해주는 주가 있습니다.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 2017년 당시 22개 주에서는 이것을 허락하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유학을 오시는 분들은 관련 정보를 반드시 확인해 보시길 바랍니다. 
 

출처:
[1] https://www.entouriste.com/north-shore-oahu/do-not-pass-sign-on-the-north-shore-of-hawa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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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원 (University of Cincinnati College of Medicine)

과학이 생활 속에 녹아드는 삶을 바라는 소시민이자 생명과학 노동자. 현재 University of Cincinnati에서 Postdoctoral researcher로 생체시계(biological clock) 분야를 연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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