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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윤리를 배우다] 12회 - 백프로는 없다(산전검사에 관한 생명윤리 이야기1)
Bio통신원(박수경)
백프로는 없다
“이걸 잘 알아야 해요. 모든 결과에 백프로는 없어요. 다만 통계치를 가지고 확률을 말해줄 뿐이에요. 우리는 신이 아니니까” 임신기간 내내 다니던 대학병원 산부인과 교수님께서 산전 검사를 하고 결과를 설명해주실 때마다 항상 하시던 말씀입니다. 이 교수님께서는 올해 초 저의 출산 시점을 마지막으로 정년퇴직하셨는데, 반평생을 산부인과에서 진료와 연구를 하셨던 분의 말씀이라 더욱 무게감이 느껴졌습니다. 또한 어찌나 환자에게 ‘충분한 설명’(의사 환자 관계에서 충분한 설명에 의한 동의는 생명윤리의 여러 원칙에 있어 자율성을 존중하기 위한 중요한 방편입니다)를 해주시던지 출산을 앞둔 여성이라면 누구나 두려워할 법한 것들에 대해 그림을 그려 설명해 주시며 안심을 시켜주시곤 했습니다.
타자적 관점에서 벗어나기
공교롭게도 임신기간 동안 생명윤리수업 시간에 자주 공부하며 다뤘던 여러 산전 검사를 직접 경험해보게 됐습니다. 혈액검사를 통한 태아 염색체 이상 위험도 측정 검사(일명 쿼드, 트리플검사), 양수검사, 정밀초음파검사를 받았는데, 그동안 배웠던 이론들과 토론했던 입장들은 전적으로 타자적 관점에서 진행하였다는 것을 깨닫고 많이 반성했습니다. 대부분의 산모들은 혈액을 통한 1차 검사를 통해 다운증후군이나 에드워드증후군과 같은 태아의 염색체이상여부에 관해 위험도를 판정받게 되는데, 이는 산모의 나이와 혈액검사 결과와 그간 누적된 진단 통계치를 통해 본인이 어느 정도의 위험군에 속하는지 알게 됩니다. 그리고 고위험군에 속하게 되면 실제 진단을 위해 양수검사를 하게 되는데, 저는 고위험군으로 양수검사를 받았습니다. 양수검사를 권유받게 되었을 때 우선은 눈물이 앞을 가리고, 이후 드는 수많은 생각들 속에는 과연 20주 가까이(거의 출산기간의 절반을) 키워온 아이가 만약 염색체이상일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부터 양가 어르신들에게는 무엇이라 할 것인가 까지 무수히 많은 번뇌에 빠지게 됩니다. 태아의 생명권과 산모의 자유의지라는 낙태에 대한 여러 논의를 차치하고, 태아의 장애 여부와 관계없이 도대체 이러한 무수히 많은 검사 결과들을 알고서 아이를 계속해서 자라게 하고 출산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무척 고단한 일입니다. 또한 양수검사만으로는 알 수 없는 태아의 신체적 결함은 20주 이후 정밀초음파를 통해 관찰하는데 여기서 대부분은 성별의 힌트를 얻어 출산을 준비하기도 하고 심장이나 신체 기형 등을 일찍 확인하고 치료하기도 합니다.
사람의 손으로 하는 생명의료기술의 영역들
혈액검사, 양수검사, 정밀초음파를 거쳐 아이가 정상이라고, 정확히는 이 검사결과로서 알 수 있는 장애는 약 98-99프로의 확률로 지니지 않았다는 결과를 통보받고서야 안도하며 임신기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밀초음파를 통해 아빠와는 목욕탕을 갈 수 없는 딸임을 알고 나머지 20주의 임신 기간 동안 준비하였습니다. 출산이 임박하고 배 위로 기차가 지나간다는 엄청난 고통의 진통이 지나가고 이 세상에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간호사님께서 “3.19킬로 남자아이, 왕자님입니다” 라는 선언과 함께 아기가 제 품에 안겼습니다. 탯줄을 자르던 남편의 당혹스럽고도 감격스러운 표정이 잊히지를 않습니다. 정확하다던 정밀초음파에서 저희 아이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부위를 잘 감추고 있었는지, 딸이 아닌 아들로 태어나서는 이 대학병원에서는 2-3년 전에 한번 있었다는 초음파 판독 오류로 성별이 달랐습니다. 이처럼 생명의료기술의 다양한 영역들은 사람의 손을 거쳐 진행되기에 백프로는 없다는 것을 우리는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마치 울타리와 같은, 길과 같은 여러 법을 통해 우리는 사람을, 사회를 보호하고 있는 것이겠죠. 검사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공지능이 이 모든 것을 관장한다고 하여도 사람이기에 오류가능성은 여전히 있을 것입니다.
1-2프로의 가능성 때문에
그렇게 딸이 아닌 저의 아들은 엄마에게 여러 생명윤리적 쟁점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해주며 태어났습니다. 더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것일까요. 임신 출산과 관련하여 산전검사, 낙태, 생명의료기술의 오류가능성, 충분한 설명과 동의 이 모든 용어들은 실제로 모든 과학기술이 적용되는 다른 모든 영역에서 사람들이 겪게 되는 상황에 적합한 다른 용어로 치환되어 다양한 쟁점을 야기할 것입니다. 그리고 단 1-2프로의 어떠한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여러 과학기술을 대하고 다루면서 겸손해야겠습니다. 또 기술은 신뢰의 대상이 아니라 신뢰를 만들어가는 도구임을 생각하며 ‘백프로는 없다’던 대학교수님의 말씀을 기억해봅니다. 부가적으로 이 힘든 세상에 태어나 자신의 존재를 점차 알리는 아기와 육아하며 공부하고 직장을 가진 모든 여성들과 이를 함께 하는 모든 남성들에게 감사와 존경의 인사를 전합니다.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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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윤리를 배우다>는 생명과학(Biology)을 전공하고 생명윤리학(Bioethics) 박사수료생으로, 인간의 존엄과 생명 가치를 존중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써의 생명윤리학의 다양한 주제들을 다룹니다. 저자는 생명윤리교육, 유전자윤리, ELSI(Ethical, Legal, Social Implication) 연구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으며 이 연재에서는 누구나 마주하기 쉬운 생명의료기술과 관련된 생명윤리 주제들을 편안한 글을 통해 살펴보고 연구자 및 대중들과 함께 생각하는 장을 제공해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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