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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일 많은 대학원생의 피땀눈물] 랩미팅, 그 알 수 없는 짜릿함에 대하여
Bio통신원(변서현)
(겨울보다 더 무서운, 랩미팅이 온다.
https://memegenerator.net/instance/35696196/winter-is-coming-brace-yourselves-the-lab-meeting-is-coming)
(연재글을 써야 할 날짜에 하필 랩미팅 발표가 있어 새 글이 많이 늦어졌다. 피땀눈물 시리즈를 읽어 주시는 독자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린다.)
처음 ‘랩미팅’이라는 자리에 참석했던 기억을 떠올려보자. 학부 2학년을 갓 마친 겨울학기에 연구실이라는 곳이 궁금해 지도교수님을 졸라 들어갔던 그 연구실의 랩미팅이 필자에게는 첫 랩미팅이었다. 토요일 아침 9시, 꽤 큰 연구실이어서 연구센터의 가장 큰 강당에 모였다. 당시 학부생 조무래기를 챙겨주던 저년차 대학원생 선배가 필자를 이끌고 앞자리로 데리고 가며, “어릴수록 앞에 앉아야 해.”라고 해서 자의와는 관계없이 맨 앞줄 구석에 앉아 오전을 버텼다. 교수님은 자리를 비우셨지만 그것과 관계없이 분위기가 정말 엄숙해서, 숨은 마음대로 쉬어도 되는 건지 모를 정도였다. 사실 이제 겨우 분자생물학 성적을 받은 학부생이 랩미팅에서 뭘 알아듣겠는가. 세포 안에서 분자들이 돌아다니며 신호를 주고받는다는 것만 알아듣고 나머지는 하나도 못 알아들은 채 눈만 겨우 뜨고 있었다. 또 다른 연구실에 인턴으로 참여했을 때는 더 힘들었던 기억만 남아있다. 하필 그때는 서울 동북쪽에 있는 본가에서 관악에 있는 연구실까지 지하철 두 번, 버스 두 번을 타고 두 시간이 걸리는 통학을 하고 있었는데, 토요일 아침 8시 반에 시작하는 랩미팅에 참석한다고 달려오다가 결국 다른 인턴들까지 우르르 늦어 교수님과 선배들에게 잔뜩 혼이 났었다. 두 연구실에서의 경험 모두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하기는 힘들었지만 연구실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다만 왜 하필 두 연구실 모두 토요일 아침에 랩미팅을 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른다. 그저 생명과학분야 연구실들이 토요일에 랩미팅을 많이 한다는 주관적인 의심만 있을 뿐.
대학원생이 되어 맞이한 랩미팅은 완전히 느낌이 달라진다. 필자가 있는 연구실의 경우, 2주에 한 번씩 랩미팅이 있고 박사님들과 대학원생들이 돌아가며 발표를 한다. 그러다 보니 인원이 많을 때에는 네 달에서 여섯 달 만에 자신의 순서가 돌아온다. 덕분에 자주 미팅이 있거나 인원이 적은 연구실에 비해 순서가 돌아오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고, 발표 한 번의 무게는 더욱 무거워진다. 주로 진행한 모든 실험의 결과를 말하기보다는 프로젝트의 흐름과 그에 따른 성과를 이야기해야 해서, 1년차 때는 발표를 하지 않고 2년차부터 첫 발표를 한다. (이 부분이 다른 연구실과 많이 다른 부분이다.) 그 첫 발표를 준비하는 몇 주의 감정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분명히 어떤 주제로 간단한 실험을 몇 가지 했던 것 같은데, 정리를 하고 보니 “나는 1년 동안 도대체 무엇을 한 걸까?”하는 일종의 ‘현타(현실 자각 타임의 준말.)’가 온다. 줄줄이 데이터가 쏟아지는 선배들의 발표만 봤지 나같은 쪼렙의 발표는 듣도 보도 못했던 것이다. 자괴감이 들고 괴로운 나날들을 지나며 발표자료를 만들고, 교수님과 사전 미팅을 하고 나면 발표의 흐름과 자료가 몇 번씩 갈아엎어진다. 카페인을 구강투여로 마시는 게 아니라 정맥투여로 꽂아 넣고 싶은 순간이 오기도 하고, 새벽 세시쯤 아무도 없는 건물을 나오면서 마주한 찬 공기에 으스스, 차라리 몸살이라도 걸렸으면 좋겠다 싶기도 한다. 서론에 넣을 그림을 찾아야 되는데 마음에 드는 그림은 구글링을 아무리 해도 안 나오는 게, 이러다 직접 만드는 게 나을 것 같은 생각도 든다. 결국 랩미팅 전날 점심으로 맛있는 생선구이를 먹으러 갔는데 속이 울렁거려서 몇 숟갈 뜨지도 못하고 식당을 나와야 했다. 랩미팅을 앞둔 사람의 정신을 붙잡기 위해 연구실 선후배들이 참 많이도 다독여주었다.
정작 다음날 랩미팅 발표 자체는 무리 없이 잘 마쳤던 것 같다. (너무 정신없이 지나가서 기억이 안 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까지 매번 순서가 돌아올 때마다 그 직전의 긴장감이 스스로를 정신적으로 많이 옥죄었다. 프로젝트의 주제를 자주 바꾸기도 했고, 그러면서 매번 새롭게 연구실 사람들에게 설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5년차가 된 최근에 와서야 같은 주제를 연속으로 발표하면서 조금은 자신감이 붙을 수 있었다. 랩미팅 전에 교수님과도 여러 번 만나면서 내가 하고자 하는 질문과 그에 상응하는 결과들, 결과들을 제시하는 흐름까지 끊임없이 점검했다. 예전에는 그저 이 고비를 넘어가는 것이 너무 힘들었는데, 몇 번의 경험을 하고 나서 이제는 이 프로젝트를 논문으로 만들기 위해 꽤나 가치 있는 고민들을 집중해서 하는 시간이 된 것 같아 생각보다 그 힘듦이 좀 덜해졌다. (아예 안 힘들다고는 절대 말 못 하겠다.)
다른 연구실의 랩미팅도 들어가 보고 대학원생 친구들의 이야기도 듣다 보면 연구실마다 랩미팅의 분위기가 참 많이 다르다. 어떤 연구실은 랩미팅에서 나오는 발화의 양을 발표자와 교수님이 절반씩 나눠 가지기도 하고, 다른 연구실은 선후배들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면서 다양한 의견을 내기도 한다. 그러는 와중에 청중들끼리 토론이 붙어 발표자는 난감하게 서있는 장면이 보이고, 질문과 의견이 너무 많아 1시간쯤 걸릴 줄 알았던 발표가 끝도 없이 늘어날 때도 있다. 준비를 잘 한 선배는 30분 만에 모든 발표를 끝내서 앉아있던 사람들의 박수를 받기도 한다. 이렇게 천차만별인 분위기와는 상관없이, 발표자가 가지는 부담감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프로젝트가 아주 단단하게 발전해 있으면 가장 좋겠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새로운 데이터는 없을지 언정 지난번 발표보다 조금 더 정리되고 더 매끄러운 발표를 해야 하고, 처음 보여주는 데이터를 오해 없이 잘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당장 나조차도 신뢰하기 어려운 내 데이터들에 확신을 가지고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며,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질문에 대비해야 한다. ‘이렇게 과학자가 되는 걸까’,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성장하겠지’, 하는 낙관적인 생각을 해보지만 당장 앞에 닥친 압박을 쉽게 이겨내는 것은 너무 어렵다. 해외 매체에서는 더 나은 랩미팅 발표를 위한 경험담이나 팁들이 여럿 공유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비슷한 컨텐츠를 찾기 어려운 것이 아쉽기도 하다. [1][2]
랩미팅은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연구실 사람들과 모두 모여 중간 점검하는 것과 동시에, 연구자로서 미래에 하게 될 다양한 발표들을 미리 연습한다는 차원에서 필수적이다. 흐트러진 듯했던 고삐를 바짝 조이는 짜릿한 기회라고도 할 수 있겠다. 랩미팅이 주는 압박감과 긴장감을 이기고 편안해진 바로 그때, 비로소 큰 산을 넘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참고문헌>
[1] HOW TO SURVIVE & EXCEL IN LAB MEETINGS.
https://sophtalksscience.com/2017/10/30/how-to-survive-your-first-lab-meeting/ (2017-10-30)
[2] Tips for Talks.
http://web.mit.edu/biology/www/undergrad/bump/pdfs/Talk_Tips_BUMP.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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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으로 이미 출판된 지식이 아닌, 지식이 만들어지는 연구의 과정을 현장의 연구자이자 대학원생인 필자가 경험을 토대로 소개합니다. 연구실에서 있었던 일, 연구자들 간의 대화 등을 소재로 한국의 연구실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작은 의견을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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