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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소설로 읽는 과학자 이야기 38. 『바다의 백작 earl of ocean』
Bio통신원(과학작가 박재용)
세 살 때 처음 바다를 만났죠. 모래밭에 서있는 저를 향해 커다란 파도가 달려드는데 무섭지가 않더라고요. 파도가 내 관심을 끌려는 듯이 보였죠.
초등학교 때 다이빙을 배우면서 전 느꼈어요. 물속에 들어가면 물이 내 몸을 감싸며 말하곤 하죠. 잘왔어 얼. 이제 너가 하고 싶은 데로 해. 언제나 내가 널 보호하고 있다는 것 알지? 일단 바다로 내려가면 모든 일이 쉬웠어요. 거긴 제 고향이고, 친구들이 모두 제가 원하는 걸 들어주려 하거든요. 문제는 바다로 들어가기까지죠. 여자는 안 된다는 주변 남자들과 싸우는 게 일이었어요. 최소한 1969년까지는 말이죠.
아주 흥미로운 실험이 1969년에 있었어요. 텍타이트 헤비타트란 프로그램이었죠. 말 그대로 헤비타트, 주거지였어요. 바다 밑에 주거용 캡슐을 설치하고 그 속에서 장기간 여러 가지 실험을 하는 프로그램이었죠. 버진 아일랜드 해안에서 조금 떨어진 수면 아래 15미터에 설치되었어요. 1968년에 이곳에서 실험할 과학자들을 뽑았는데 저는 떨어졌어요. 붙은 사람들은 모두 남자들이었죠. 물론 훌륭한 사람들이었어요. 하지만 그 사람들 중 누구도 저보다 더 오랜 잠수경력을 가진 사람은 없었어요. 저는 그 때 이미 수중에서 1,000시간 이상을 보낸 경력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저는 여기서 물러서면 안 된다고 생각했죠. 누구든 자신의 경력과 실력이 아니라 성별로 주요한 과학적 연구에서 배제되어선 안 되는 거고, 제가 그 나쁜 예가 되는 건 더더구나 참을 수 없는 일이었죠. 강력하게 항의하고, 또 사람들을 만나서 이의제기를 하고,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했어요.
결국 다음 해에 텍타이트에 새로 다섯 명의 연구자가 2주간 입주하기로 했는데 전원 여성으로 뽑기로 했죠. 와우! 제가 그 놀라운 팀의 대표였습니다. 사실 워낙 합이 잘 맞아서 대표라고해서 특별히 힘든 점이 없을 정도였죠. 우린 여러 가지 실험을 했어요. 각자 전문 분야가 달랐고 임무도 따로 있었지요. 저는 바다 밑 생태계에 대한 연구를 맡았지요. 거기서 처음으로 주행성과 야행성 어류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또 어류들이 매일 일정한 주기로 같은 장소, 즉 서식지로 되돌아온다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밤에도 물속에서 연구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었기 때문이지요.
실비아 얼은 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면서 잠시 쉬곤 말을 이었다.
제 연구 인생에 있어서 두 번째 인상적인 장면은 짐 슈트JIM suit를 입고 잠수했던 1979년이었죠. 짐 슈트는 언뜻 보기에 달나라에 갔던 우주인들이 입었던 우주복처럼 생겼어요. 차이가 있다면 좀 더 살찐 슈트라고나 할까요? 사실 일인용 잠수정이 가지고 있어야 할 기능을 모두 가진 잠수복인데다 입고선 걸어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야 했지요. 원래는 석유회사에서 해양 시추를 할 때 바다 밑에서 일할 수 있도록 개발된 것이죠. 저도 제작에 참여했고요.
1979년에 제가 그걸 입고 하와이 오하우 인근 바다 밑으로 들어갔죠. 간단한 평상복을 입고 잠수복 안으로 들어갔어요. 이건 입는다고 이야기하기보단 들어간다고 이야기해야 하죠. 마치 모빌 슈트를 타는 승무원 같다고나 할까요? 물론 제 키보다 약간 큰 정도긴 하지만요. 어찌되었건 짐 슈트를 입고 크레인에 의해 바다에 내려졌지요. 배와는 줄로 연결된 채로요. 조용히 바다 밑으로 내려가는데 이제껏 잠수를 해봤지만 그런 광경은 처음이었어요. 고요했지요. 짐슈트가 소리를 차단했으니까요. 뭔가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었어요. 해파리가 부유하고, 물고기 떼가 이리저리 움직이는데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으니까요. 아래로 내려가면서 점점 빛이 줄어들고, 200미터 정도 되니 주변이 완전히 어두워지더군요. 짐 슈트에 달리 전등을 켰어요. 전등 불빛에 화들짝 놀라 되돌아 헤엄치는 물고기들도 눈에 띠고, 호기심에 주변을 선회하는 녀석들도 있었어요. 조금 더 내려가자 확실히 물고기들이 드물어지더군요.
바닥에 도착하자 계기가 수심 381미터를 가리키더군요. 그 때까지 누구도 가지 못했던 곳입니다. 인류가 잠수복을 입고 내려온 가장 깊은 곳이죠. 그곳에서 뭘 했냐고요? 산책을 했습니다. 바다 밑바닥을 천천히 걸었죠. 마치 닐 암스트롱이 달 표면을 걷던 것처럼요. 사실 주어진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어요. 저로선 그 날의 목표는 여자인 제가 잠수복을 입고 인류가 내려간 가장 깊은 곳에 도달한다는 것 자체였어요.
바닥에 닿자 전 천천히 사방을 둘러봤어요. 전등이 닿는 곳마다 저서생물들이 삐죽이 머리를 내밀거나 꼼지락거리거나 천천히 기어가는 모습들이 드러났죠. 한 발 한 발 떼는 것이 조심스러웠어요. 짐 슈트는 물속에서 별로 무겁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지만 옷을 대여섯 벌 이상 껴입은 것마냥 굼떴고, 혹시나 실수로 바닥의 작은 생물들을 밟을 수도 있으니까요. 발을 내디딜 때마다 작은 먼지들이 피어오르면 다시 가라앉기를 기다려서 다음 발을 내디뎠죠. 잠수정을 타고 봤던 장면과는 완전히 달랐어요. 천천히 발치에서 움직이는 것을 느끼면서, 만나면서, 마치 숲속을 거닐 때 주변의 나무와 풀, 곤충과 새들과 만나는 것이 숲 사이로 난 도로를 자동차로 달리면서 숲을 보는 것과 천지 차이인 것처럼 말이죠.
잠시 그 때를 회상하듯 눈을 감았던 실비아는 다시 눈을 뜨며 말을 이었다.
그 다음은 1986년이었어요. 제 나이 51살 때의 일이었죠. 바하마의 리 스토킹 섬이었죠. 당시 저는 딥 오션 엔지니어링과 협업을 하고 있었어요. 수심 1000미터까지 내려갈 수 있는 잠수정을 개발했지요. 이번에도 저는 가장 먼저 그 잠수정을 타고 싶었어요. 하지만 제 일정과 잠수정 개발 일정이 얽혀 처음이 되진 못했죠. 그래도 기어이 일정을 조절해 바하마로 갔습니다. 잠수정을 타고 938미터까지 내려갔어요. 짐 슈트 때와는 또 달랐지요. 혹시 들어가보셨나요? 수심 500미터를 넘으면 이제 바다는 사막과도 같아요. 밤의 사막이죠. 주변 어디에서도 빛이 보이지 않고 생물들도 아주 드물어요. 하지만 간혹 사막에서 여우를 만나듯 생물들을 만날 수 있지요.
그리고 그거 아세요. 그 깊이에서 위를 보면 언제나 눈이 오는 걸 볼 수 있답니다. 바닷속에 웬 눈이냐고요? 실제로 눈이 내려요. 아니 만나라고 해야 할까요? 왜 성서에 보면 이집트를 떠나 시나이 반도를 헤메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늘에서 만나가 눈처럼 내려 굶주림을 면케 해주잖아요? 햇빛도 들지 않는 일 년 내내 암흑인 심해에 생물들이 살 수 있는 건 바다에 내리는 눈 때문이지요. 바다 표면의 생물들이 죽으면 그 사체가 분해되면서 일부가 눈처럼 심해로 내리는 현상이지요. 심해의 바닥에 사는 생물들은 그 만나로 생존할 수 있는 거지요.
그런데 수심 900미터까지 내려가니 심해의 등대가 있더라구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멀리 가냘픈 빛이 깜빡이는데 처음엔 제 눈을 의심했죠. 가만히 다가올 때까지 기다렸는데 와우 심해 아귀지 뭐예요. 머리 뒤에서 앞으로 긴 돌기가 나있고, 그 끝에 작은 불이 매달려있더군요. 놀라운 경험이었어요.
그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여든이 넘으면서 이전만큼 바다로 들어가진 잘 못하죠. 주변에서도 말리고, 그래서 제 시간의 대부분을 강연과 해양 생물 보호 운동에 쏟고 있는데 그래도 항상 아쉬워요. 이렇게 여러분을 만나 이야기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저는 바다가 고향이거든요. 한 살이라도 내년보다 더 젊은 올해에 그래도 자주 바다로 들어가곤 한답니다.
가세요. 바다로. 그곳에서 보기만 하지 말고 직접 뛰어들어, 돌고래를 만나고, 해파리를 만나고, 산호를 만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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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lvia Alice Earle (born August 30, 1935) is an American marine biologist, explorer, author, and lecturer. She has been a National Geographic explorer-in-residence since 1998. Earle was the first female chief scientist of the U.S. National Oceanic and Atmospheric Administration, and was named by Time Magazine as its first Hero for the Planet in 1998. She is also part of the group Ocean Elders, which is dedicated to protecting the ocean and its wildlife.
In 1969, she applied to join the Tektite Project, an installation fifty feet below the surface of the sea off the coast of the Virgin Islands which allowed scientists to live submersed in their area of study for up to several weeks. Although she had logged more than 1,000 research hours underwater, Earle was rejected from the program. The next year, she was selected to lead the first all-female team of aquanauts in Tektite II.
In 1979, she made an open-ocean JIM suit dive to the sea ocean floor near Oahu, setting a women's depth record of 381 metres
In 1982 she and her later husband, Graham Hawkes, an engineer and submersible designer, founded Deep Ocean Engineering to design, operate, support and consult on piloted and robotic subsea systems. In 1985, the Deep Ocean Engineering team designed and built the Deep Rover research submarine, which operates down to 1,000 metres (3,300 ft). By 1986, Deep Rover had been tested and Earle joined the team conducting training off Lee Stocking Island in the Bahamas.
* 영문 위키에서 발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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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의 아주 주관적이고 편파적인 시선으로 과학의 역사 곳곳에 드러난 혹은 숨은 여러 사건을 바라보고 이를 엽편소설 형식으로 씁니다. 소설이니 당연히 팩트가 아닌 점도 있습니다. 감안하고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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