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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癌)에게서 배우다] <83회> 암 잠복기
Bio통신원(바이오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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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의 유전자 변형이 정상세포를 암세포로 바꾸는 일은 드물다. 대부분의 경우 수년 또는 수십 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세포에 여러 가지 유전자 변형이 생겨 암에 이르게 된다. 대장암(Colon cancer)의 경우에는 이러한 암화 과정(Cancer development)에서 시기별로 나타나는 주요한 유전자 변형이 규명(Mapped out)되어 있다. 하지만 나머지 대부분의 암에 있어서는 그렇지 못한데 올해 초 이에 대한 진전을 이루는 연구 성과가 발표되면서 주목을 받았다.
암연구자들은 전장 유전체 분석(Whole-genome sequencing)이란 기술을 이용하여 38개 암종에 대한 다양한 유전자 변형들을 시간 순으로 배열하는 성과를 올렸다. 배열해보니, 많은 경우 암을 일으키는 유전자 변형은 암의 증상이 나타나서 진단되기 훨씬 이전부터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다시 말하면 암도 잠복기(Cancer latency)가 있는데 그 기간이 꽤 길다는 것이다.
교모세포종(Glioblstoma)의 경우 암을 일으키는 유전자 변형(Cancer-causing alterations)이 매우 이른 시기에 일어나는데 심지어 태아기(Fetal development)에 일어나기도 한다. 난소암도 이러한 잠복기가 10년 이상이나 됨을 발견했다. 이러한 암들은 종종 뒤늦게 진단되어 예후가 좋지 않은 암이기 때문에 이러한 발견은 암의 조기 진단 가능성을 높이는 희망적인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인체가, 일찌감치 유전자 변형을 일으킨 이러한 잠재적인 암세포들(Potentially cancerous cells)을 면역시스템을 통해 거르지 못하고, 왜 그렇게 오랫동안 가지고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1)
올해 정부가 과학난제를 풀겠다며 내건 암정복 분야 난제 예시에도 ‘암이 걸리기 전에 진단이 가능한가?’라는 물음이 있는 것을 보면, 획기적인 암 조기 진단법은 많은 암연구자들이 고민하고 있는 주제이며 아직까지 풀리지 않고 있는 그야말로 어려운 문제임에 틀림없다.2)
며칠 전 아내와 영화 ‘결혼이야기’를 봤다. 제목은 결혼이야기였으나 내용은 이혼이야기였다. 결혼하여 아이 하나 낳고 키우며 살아가던 두 부부가 어떻게 이혼에까지 이르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내용이다. 수많은 유전자 변형을 시간 순으로 매핑하여 암의 원인이 오랫동안 잠복한다는 것을 알아낸 암연구자들처럼, 감독은 영화를 통해 주인공 부부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매핑하듯 전개함으로써 이들도 갑작스럽게 이혼한 것이 아니라, 여러 원인이 오랫동안 쌓여서 결국 이혼에 이르게 된 것임을, 관객들이 눈치 채기 바라는 듯 이들의 모습을 펼쳐놓는다.
2시간 넘도록 대립과 휴전을 반복하며 결국에는 이혼에 이르게 되는 부부의 모습을 관찰자 입장에서 보고 있자니, 이것저것 훈수를 두고 싶어졌다. 부부 상담이 좀 더 매끄럽게 진행되었더라면, 서로가 상대방의 입장을 조금씩만 더 이해해줬더라면, 서로의 감정을 포용해주고 무시하지 않았다면 이혼까지는 가지 않았을 텐데.... 불화가 시작되던 초기에 남편이 아내의 불만을 알아채고,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문제 해결에 나섰더라면 파국은 맞지 않았을 텐데.... 내가 평소 종종 하는 실수들이기에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이 되며, 타산지석 삼아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착실한 암연구자들은 마지막 결론을 맺으며 다음단계 할 일을 암시하는데, 결혼 생활을 유지해나가는 부부들에게도 도움이 될 만한, 희망적인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긴 잠복기를 가진 유전자 변형이 존재한다는 것은, 변형된 암세포들이 최고의 악성도에 도달하기 전에 이들을 일찍 발견하고 조치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우리에게 준다.”3)
목련 꽃봉오리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사랑스런 봄이 왔다.
※ 참고자료
1) https://www.cancer.gov/news-events/cancer-currents-blog/2020/mapping-genomic-evolution-as-cancer-develops
2) https://kast.or.kr/kr/notice/notice.php?bgu=view&bbs_data=aWR4PTE3NDk5JnN0YXJ0UGFnZT0mbGlzdE5vPSZ0YWJsZT0mY29kZT1ub3RpY2Umc2VhcmNoX2l0ZW09JnNlYXJjaF9vcmRlcj0=||
3)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19-1907-7 <Discussion 마지막 부분> “Nevertheless, the presence of genetic aberrations with such long latency raises hopes that aberrant clones could be detected early, before reaching their full malignant potent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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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어설픈 휴머니스트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살아가는 평범한 직장인. 바이오분야 전공 대학졸업후, 제약사를 거쳐, 현재는 십수년째 암연구소 행정직원으로 근무중. 평소 보고 들은 암연구나 암환자 이야기로부터 나름 진지한 인생 교훈을 도출해 보고자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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