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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癌)에게서 배우다] <80회> 의무 너머에
오피니언 바이오휴머니스트 (2020-02-07)

의무 너머에

ⓒ Pixabay License

임산부의 흡연은 태아의 DNA에 독특한 영향(Unique marks)을 준다는 대규모 연구 결과가 나왔다. 연구자들은,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DNA의 후성유전학적 변화가, 흡연하는 임산부와 태아에서 매우 다르게 일어난다는 것을 발견했고, 이를 근거로 엄마의 흡연이, 아이 몸이 기능하는 방식에 독특하면서도 오래 지속될 수 있는(Unique, long-lasting)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실제 흡연한 임산부에게서 태어난 아기는 몸무게가 적게 나가거나, 태어날 때 폐 기능 손상을 보이는 경향이 있으며, 어린 시절에 하부 호흡기 질환을 앓게 되는 경우가 많다.

임산부의 흡연이 임산부 본인에게 미치는 영향과 태아에게 미치는 영향에는  큰 차이가 있는데, 흡연에 노출되는 방식이 서로 다른 점에 주목해 볼 수 있다. 흡연자는 특정 화학물질들에 폐를 노출시킬 뿐만 아니라 폐를 통해 혈액 속으로 그 물질들을 흡수하게 된다. 반면 태아는 그 물질들을 직접 들이마시지는 않고 오로지 혈액에 흡수된 것에만 노출된다.

흡연이 임산부와 태아에 미치는 영향의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밝히기 위해, 연구자들은 DNA 메틸화(Methylation)라고 불리는 후성유전학적 프로세스에 주목했다. 이 메틸화는 DNA 염기 서열 중 ‘C’ 다음에 ‘G’ 가 오는 부위인 CpG 사이트에 메틸기가 더해짐으로써 일어나는데, 어느 한 유전자의 CpG 사이트들에서 일어나는 메틸화의 정도가 변하면 그 유전자가 코딩하고 있는 단백질의 생산이 달라져버린다.

DNA 메틸화가 성인 흡연자와 비흡연자에서는 차이가 없지만, 금연 임산부에게서 태어난 아기와 흡연 임산부에게서 태어난 아기에서는 다르게 일어나는 유전자를 찾아내기 위해, 연구자들은 5,000명의 영유아와 9,300명의 성인, 두 그룹으로부터 데이터를 면밀히 분석했다. 연구자들은, 흡연 유무에 따라 메틸화가 달라지는 성인의 CpG 사이트 약 34,500개를 발견했다. 또한 임산부의 흡연 유무에 따라 메틸화가 달라지는 영유아의 CpG 사이트 약 5,500개를 찾아냈는데, 이중 약 3,800개는 흡연에 의해 성인은 영향이 없지만 영유아에서는 메틸화가 달라지는 곳이다.

최종적으로, 연구자들은 흡연에 의해 성인은 영향이 없지만 영유아에서 메틸화가 달라지는 CpG 사이트, 최소 한 개 이상을 포함하는 유전자를 700개 이상 찾아냈다. 이로부터 더 심화된 연구를 통해, 이들 유전자 일부는 사이토카인이라는 염증 분자 생산에 관여하거나, 인체가 니코틴 같은 특정 화학물질을 처리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아냈다. 일부 연구는 이러한 영향이 아동 시기나 성인 시기까지도 지속된다고 하는데, 이 경우 어쩌면 아이의 장래 건강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의 솔 광장에 연말을 맞아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숙소에서 광장까지 가까운 거리여서 걸어갔는데 오가며 너무도 힘들었다. 인파 속 어마어마한 담배 연기 때문에.... 광장에 도착하여 잠시 둘러보는데 유모차와 그 곁에 서 있는 한 남녀가 눈에 띈다. 엄마(로 추정되는 여자)는 한 손으론 유모차를 잡고, 한 손으론 연신 담배를 피운다. 아빠(로 추정되는 남자)는 엄마의 허리를 잡고 있고, 둘은 서로를 사랑스레 바라보며 간간히 입맞춤을 한다. 유모차 안 아이는 몇 개월 정도나 됐을까? 파란 눈동자를 구르기만 할 뿐 얌전히 누워있다. 마치 자긴 괜찮으니까 엄마 아빠 볼 일 보라는 듯.... 지극 정성 애지중지 키워도, 유모차에 태우면 가만히 있지 못하고 몸부림치는 아이를 자주 볼 수 있었던 한국에서의 내 경험과는 사뭇 다른 장면이었다. 내가 담배 연기로 고통스러워 그만 광장을 벗어나려 할 때까지도, 아이는 시종일관 너무도 의젓하게, 예쁘게, 얌전히, 누워있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등 부모로서의 최소한의 의무를 다하기만 한다면 부모의 흡연은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제 임산부의 흡연은 아이의 DNA에 후성유전학적 영향을 남기고, 아이의 건강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과학적 근거가 도출되었으니 좀 달리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부모가 아이에게 이행해야만 하는 의무 너머에는 부모가 자발적으로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의 선물도 있다. 금연은 그 선물의 시작이 될 수도 있겠다.

아이 둘이 곧 고등학교와 중학교를 각각 졸업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유행으로 인해 부모는 졸업식에 참석할 수 없단다. 나는 한결 가벼워진 의무감을 넘어, 녀석들이 바라는 사랑의 졸업 선물을 해.줄.수.있.다.

 

 

 

* 참고자료
: 이상의 내용은 글쓴이가 아래 링크 내용을 참고하여 편집/기술한것임

https://irp.nih.gov/blog/post/2020/01/mothers-smoking-leaves-unique-marks-on-infants-d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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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휴머니스트(필명)
과학자의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어설픈 휴머니스트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살아가는 평범한 직장인. 바이오분야 전공 대학졸업후, 제약사를 거쳐, 현재는 십수년째 암연구소 행정직원으로 근무중. 평소 보고 들은 암연구나 암환자 이야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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