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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소설로 읽는 과학이야기 25. 『아마존 몰리』
Bio통신원(과학작가 박재용)
로미가 줄리를 만난 건 자신이 주도하는 독서모임에서였다. 로미는 대학 때부터 시작한 독서모임을 근 10년 가까이 운영해오고 있는 참이었고 마침 그 때 진화와 관련된 책 몇 권을 일기 시작했던 참이었다.
그 날의 선정도서는 ‘진화의 무지개’였다. 꽤나 두꺼운 책이어서 다 읽고 내용을 제대로 소화한 사람이 거의 없어 모임의 좌장이었던 로미가 퍽 난감하던 참. 그 날 신입회원으로 첫 참가한 줄리가 책에 대한 깊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잘 이어가서 로미의 짐을 덜어줬다.
처음부터 인상적이었던 줄리는 이후에도 거의 개근하다시피 모임에 나왔고, 독서에 대한 준비도 꽤나 충실하고 대화의 수준도 높아 계속 눈길을 끌었다. 더구나 뒤풀이 자리에서 보이는 모습은 더욱 빛났다.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여러 사람이 제각기 이야기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이끌고, 스스로도 즐기는 모습이 로미의 눈에 계속 들어왔다.
호감을 키워나가던 로미. 따로이 만남을 신청했고 둘은 사귀기 시작했다. 영화를 봐도, 저녁을 같이 해도, 술 한 잔을 즐길 때도, 잠자리에서도 로미에게 줄리는 최고의 상대였다. 1년여의 만남 끝에 로미는 그래 더 이상의 여자는 없어라고 결론을 내렸고, 구혼을 했는데 뜻밖에도 줄리는 난감해하는 눈치였다.
우리 그냥 사귀기만 하면 안될까? 결혼은 너무 부담스러운데. 로미 너가 싫은 건 아냐. 만약 결혼을 한다면 지금 나로선 당연히 너지. 그러나 결혼 자체가 부담스러워. 더구나 아이를 가지는 건 더 그렇고. 더구나 너는 있는 집의 장남이잖아. 그런데 난 이미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고아나 마찬가지지. 아무리 우리끼리 결혼이라고 해도 사람들 입밖에 나는 걸 감당하는 것도 좀 두렵고.
번듯한 외모에 괜찮은 직장. 독서로 무장된 지식에 멋진 매너, 집안도 괜찮고 뭐 하나 꿀릴 게 없다고, 거절당하는 일에 익숙하지 못하던 로미로선 뜻밖이었다. 더구나 로미도 줄리도 서른을 넘기고도 좀 지난 나이. 특히 로미는 꽤나 있는 집안의 장손인지라 무언의 압박이 있었던 참이다. 그러나 로미도 줄리의 평소 성격을 알고 있던 지라 뭐라 더 채근을 할 순 없었다. 줄리는 신중하지만 한 번 결심을 하면 정말 정당한 이유가 아니면 결코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
다시 일 년이 지나고, 로미는 다시 줄리에게 결혼 이야기를 꺼낸다. 줄리는 이번에도 난감한 표정. 다시 물러서는 로미
해가 넘어가고도 둘은 계속 만나고 다시 연말이 될 즈음 로미가 다시 말을 꺼낸다.
줄리 한 번만 더 부탁할게 나와 결혼하자.
로미의 삼 세 번에 드디어 줄리도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로미 너네 집안을 아는데 너가 장손이지. 넌 아니라도 집안 분들은 손 끊길 걱정이 태산일거야. 내가 결혼한다고 하면 먼저 자식부터 생각하실 껄. 나로선 경력이 끊어지는 게 싫지만 좋아. 우리 둘까지는 낳자. 하지만 아들이 태어나지 않아도 둘 이상은 안돼. 내가 너희 부모님 만나서 분명히 말씀드릴께.
로미가 웃으며 말했다.
친척들이야 그런 이야길 하시겠지. 하지만 부모님은 아니셔. 나름 괜찮으신 분이야. 내가 부모님께 먼저 말씀드릴께. 그래도 너가 아이를 낳겠다고 먼저 말해주어서 고마워
로미의 아버지는 지방대학의 교수로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었고 주변에서 나름대로 개방적이고 진보적이라 평을 듣는 이였다. 어머니도 지역 환경모임에 나가면서 진보적 성향의 정치인들과 단체에 후원과 자원봉사를 아끼지 않는 깨어있는 분.
로미의 결혼 소식과 아이를 낳을 계획이라는 말에 반색을 하셨다. 물론 겉으로야 ‘결혼은 너희 둘이 좋아서 하는 거니 모든 건 너희가 상의해서 해라’고 하시지만.
순탄한 결혼이었다. 둘은 따로이 아파트를 얻어 신혼생활을 시작했고, 곧 임신을 했다. 나이가 있는 만큼 서두른 티가 났다.
첫 아이는 여자였다. 줄리는 아이를 줄곧 몰리라고 불렀다. 첫 아이를 낳고는 둘은 시댁에 들어갔다. 줄리가 일을 시작하려니 아무래도 몰리를 키우는데 시어머니 손이라도 빌려야 했던 것.
몰리를 낳고 2년 뒤 줄리는 다시 임신을 했고 무사히 둘째를 낳았다. 줄리는 둘째를 스몰 몰리, 스몰리라 불렀다. 두 여아를 낳고 줄리는 단산을 결정했다. 남편도 시부모도 모두 기꺼이 동의를 해주었다. 주변 친척들의 고나리는 시부모가 나서서 막아주어 결혼식에 가거나 상갓집에 갈 때도 줄리에게 별다른 압박은 없었다. 교수는 ‘이제 여자 아이도 대를 잇는 시대야. 우리 몰리가 우리 집 장손이야.’라며 첫째를 아꼈다.
시간이 지나고 아버지는 퇴직했지만 명예교수가 되어 학교를 간간이 출근하고 어머니는 여전히 지역의 여러 시민 단체에 나가고 로미는 순조롭게 승진하고 아이들은 커갔다. 딸아이들이라서 그럴까? 둘은 크면서 쌍둥이처럼 닮았고, 줄리를 닮아갔다.
단어 자체로 성립하지 않을 평범하게 행복한 남들처럼 살던 그들 가족에게도 예정된 불행이 찾아왔다. 명예교수의 폐에서 암이 발견되었고 이미 온 몸으로 번졌다. 몇 달 동안 항암치료를 했지만 더 이상은 무리라는 의료진의 판단이었다. 노교수는 인생을 정리할 시간을 가지길 원했고 가족들에게 부담이 될 걸 우려해선지 호스피스 병원에 들어갔다. 어머니가 매일 간호를 하러 다니셨고 로미와 줄리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방문을 했다.
호스피스 병원에서 석 달 정도 지나자 교수의 증세는 더 악화되어 이제 곧 운명을 달리하게 될 걸 본인도 가족도 직감하게 되었다. 교수는 연명치료를 거부했고, 마지막 정리를 하려던 즈음 줄리가 혼자 병실을 찾았다.
아버님 몸은 어떠세요?
교수가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뭐 그저 그렇다. 오늘은 웬일로 혼자 왔니?
아버님께 마지막으로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혹시 아버님 신지수란 이름 아세요?
지금부터 30년 조금 더 전이니 아마 기억이 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아버님 랩에서 일하던 젊은 연구원이었죠. 아버님이 아주 특별히 나쁜 건 아니었어요. 그저 어깨에 손을 올려 안마를 해주고, 가끔 손을 꼭 잡았던 것. 회식 자리에 항상 부르고, 부르면 당신 옆에 앉히셨던 것. 주말에도 불러서 이런저런 일을 좀 시킨 것. 퇴근할 사람 붙잡고 다음 날 인터뷰 준비를 시킨 것. 뭐 그 정도죠.
그런데 그 때 신지수씨는 둘째를 임신 중이었어요. 겉으로 티를 내기 힘들었다더군요. 저를 낳고 어렵게 다시 복직을 하고 연구를 시작했는데 원하지 않던 임신을 해버리곤 고민하던 참이었거든요. 초기다 보니 겉으로 드러나지도 않았지요. 집에서도 반대가 심했죠. 남편은 임신을 했으면 집에 있어야지 무슨 연구냐고 했고, 시어머니는 더 했다죠. 거기에 아버님이 조금 더 짐을 올려놓은 거죠.
결국 제 동생은 태어나지 못했고, 제 아버지는 이혼을 택했어요. 어머닌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잡으니 그 때부터 무너지기 시작하시더군요. 아마 저 때문에 버티셨던 건가 봐요. 로미씨와 만나기 두 해 전에 돌아가셨죠.
아 아버님을 조금 원망하긴 해도 별 신경 쓰시지 않아도 되어요. 로미씨와 제 아이들은 아주 사랑하거든요. 어머님도 이전과 비슷하게 뵐 수 있어요. 어머님 잘못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이 책 한 번 읽어보세요. 제가 사람 중에서는 몇 십억 분의 일이라는 아주 특이한 변이를 가지고 있더군요. 몰리는 제 아이임에 틀림없지만 장손은 아니랍니다.
줄리는 멍한 표정의 교수 손에 책 한 권을 올려놓고 병실을 나갔다.
한참을 멍해 있던 교수는 손에 든 책을 봤다. <짝짓기 생명진화의 은밀한 기원> 책 중간 즈음 책갈피가 꽂혀있었다. 그 페이지를 들추니 형광펜으로 그어진 부분이 눈에 띠었다.
"아마존 몰리Poecilia formosa. 아마존이란 이름은 이들이 신화속의 아마조네스처럼 암컷으로만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붙은 것으로 실제 서식지는 남미 아마존강 부근이 아니라 중미 멕시코 동북쪽 해안지역이다. 이들은 자성생식gynogenesis라는 방식으로 번식한다. 짝짓기철이 되면 아마존 몰리는 크기나 모습은 비슷하지만 종은 완전히 다른 물고기의 수컷과 짝짓기를 한다. 이들과 짝짓기한 물고기의 정자는 난자와 결합을 하지만 수정과정에서 소멸되어버린다. 난자에는 이미 어미의 염색체가 두 짝 다 온전히 들어있어서 자체로도 충분히 필요한 유전물질을 모두 충족시킨다. 수컷의 정자는 오직 수정을 촉발시키는 역할만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들은 자손은 모두 어미와 동일한 복제체일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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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몰리Poecilia formosa. 아마존이란 이름은 이들이 신화속의 아마조네스처럼 암컷으로만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붙은 것으로 실제 서식지는 남미 아마존강 부근이 아니라 중미 멕시코 동북쪽 해안지역이다. 이들은 자성생식gynogenesis라는 방식으로 번식한다. 짝짓기철이 되면 아마존 몰리는 크기나 모습은 비슷하지만 종은 완전히 다른 물고기의 수컷과 짝짓기를 한다. 이들과 짝짓기한 물고기의 정자는 난자와 결합을 하지만 수정과정에서 소멸되어버린다. 난자에는 이미 어미의 염색체가 두 짝 다 온전히 들어있어서 자체로도 충분히 필요한 유전물질을 모두 충족시킨다. 수컷의 정자는 오직 수정을 촉발시키는 역할만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들은 자손은 모두 어미와 동일한 복제체일 뿐이다.
-- 졸저 <짝짓기 생명진화의 은밀한 기원>에서 발췌
Gynogenesis, a form of parthenogenesis, is a system of asexual reproduction that requires the presence of sperm without the actual contribution of their DNA for completion. The paternal DNA dissolves or is destroyed before it can fuse with the egg[1]. The egg cell of the organism is able to develop, unfertilized, into an adult using only maternal genetic material. Gynogenesis is often termed “sperm parasitism” in reference to the somewhat pointless role of male gametes[2]. Gynogenetic species, gynogens for short are unisexual, meaning they must mate with males from a closely related bisexual species that normally reproduces sexually[3]. It’s a disadvantageous mating system for males, as they are unable to pass on their DNA. The question as to why this reproductive mode, which appears to combine the disadvantages of asexual and sexual reproduction, remains unsolved in the field of evolutionary biology.
-- 영문 위키 ‘Gynogenesis’에서 발췌
진화의 무지개Evolution's Rainbow : 지은이 : 조안 러프가든 옮긴이 : 노태복 (절판)
짝짓기 생명진화의 은밀한 기원 : 박재용 지음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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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의 아주 주관적이고 편파적인 시선으로 과학의 역사 곳곳에 드러난 혹은 숨은 여러 사건을 바라보고 이를 엽편소설 형식으로 씁니다. 소설이니 당연히 팩트가 아닌 점도 있습니다. 감안하고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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