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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 like] 『케미포비아』 숙취와의 전쟁
Bio통신원(쏘르빈)
케미포비아 : 미움 받는 화학물질의 반란
#1. 숙취와의 전쟁
화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참 많이 듣는 이야기가 있다.
“화공이면 알코올 많이 다루겠네~ 술 잘 마셔요?”
아쉽게도 나의 주량은 한 병이다. 심지어 컨디션이 안 좋은 날에는 반 병도 못 먹고 정신을 안드로메다로 놓아버린다. 이렇듯 술을 즐기기엔 충분치 않은 주량을 지녔다. 하지만 술을 좋아하고 분위기를 좋아하기에 주량을 깨달은 이후로 좀 더 도수가 낮은 술, 분위기 있는 술을 주로 찾아 다녔다. 그렇게 칵테일을 좋아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조주기능사(칵테일 조주) 자격증까지 취득하게 되었다. 그리고 보너스로 다양한 숙취도 경험하게 되었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숙취들을 바탕으로 숙취의 정체와 해결책에 대한 궁금증이 들었고, 오늘은 이에 대하여 이야기를 풀어 나가보고자 한다.
우선 술은 알코올이다. 아마 성인이 되어 술을 마셔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알코올’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알코올은 사실 ‘알코올’이란 특정 분자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끝에 –OH(하이드록시기)라는 구조를 가진 분자들을 총칭하여 말하는 단어이다. 즉, -OH를 단 분자들의 모임을 알코올이라 일컫는 것이다. 술에는 알코올 종류 중에서 메탄올, 에탄올이 주로 들어가는데 그중에서도 에탄올의 비율이 가장 높으므로 이번 이야기에선 에탄올을 주인공으로 성장과정을 살펴보겠다.
그림1. 메탄올(왼쪽)과 에탄올(오른쪽)
우리가 술을 들이켜는 순간, 에탄올이 몸 속으로 들어가 인체 내부 탐험을 시작한다. 위 속으로 들어간 에탄올은 혈관 속 피를 타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신을 따라 흐른다. 그리고 간을 방문하는 시점에서 첫 번째 ‘분해’의 관문을 거치게 된다. 바로 에탄올을 분해시키는 효소인 ADH(Alcohol Dehydrogenases)를 만나 분해되는 것이다. 에탄올은 ADH 효소에게 수소 2개를 뺏기며 산화되어 아세트알데히드(Acetaldehyde)라는 새로운 분자로 탈바꿈하게 된다. 이 아세트알데히드는 유감스럽게도 에탄올보다 더 독한 성분이다. 무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 암연구소가(IARC)에서 지정한 1급 발암물질이다. DNA에 붙게 되면 암을 일으킬 수 있는 무서운 분자이다. 또한 몸 속을 돌아다니며 두통, 홍조, 구역질, 속 쓰림 등 다양한 숙취를 일으키는 장본인이기도 하다.
(아직 숙취의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아세트알데히드가 가장 유력한 용의자이며 몸에서 저 숙취 반응들을 일으키는 것은 사실이다.)
알코올은 분해 시켜야 술이 깬다고 들었는데, 오히려 더 안 좋은 물질을 만들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지 않은가? 그래서 누구보다 빠르게 아세트알데히드를 한 번 더 분해 시키는 게 숙취를 겪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다. 아세트알데히드는 이번엔 ADLH라는 새로운 효소를 만나 수소를 뺏기고 산화하며 아세트산으로 변신한다. 아세트산은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초’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식초는 아세트산을 묽힌 것이므로 엄청나게 진한 식초라고 볼 수 있다. 진한 식초를 마신다면 맛은 죽어라 없겠지만 사람이 죽진 않는다. 즉, 몸에 독한 에탄올을 아세트알데히드를 거쳐 몸에 독하지 않은 식초로 만든 것이다. 이것이 자연스러운 몸의 알코올 분해 과정이다. 허나 우리는 이 과정이 일어날 시간보다 훨씬 더 초과하여 술을 들이 마시고 있었기에 숙취를 경험한 것이다.
도수 19도의 소주 1병을 분해하기 위해선 아래 그림과 같은 시간이 필요하다. 2017년 기준 성인 남녀의 평균 몸무게는 남자가 72.25kg, 여자가 57.67kg 이므로 각각 약 4시간, 6시간이 소요되는 상황이다. 바쁜 대한민국 시민들에게 이런 분해를 위한 기다림은 길고도 길다. 그래서 사람들은 분해 시간을 단축시켜줄 수 있는 아이템들을 이것저것 찾아 먹고 마시기 시작한다. 우선 물, 물은 혈중 알코올 농도를 낮춰줄 수 있다. 또한 술을 마시면 이뇨작용으로 인해 화장실을 자주 가게 되는데, 이로 인해 뇌를 비롯한 여러 장기에서 부족해진 수분을 물을 통해 보충해야 한다. 또한 포도당과 단백질도 도움이 된다. 알코올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에너지가 필요한데 포도당과 단백질은 이를 위한 연료로 쓰일 수 있다. 또한 알코올 섭취로 인해 낮아진 혈당량을 높일 수 있다.
그림2. 성별, 몸무게별 소주 1병(19도) 분해시간
음주 전후로 많이들 마시는 숙취해소제의 원리 또한 비슷하다. 숙취해소제의 성분을 살펴보면 당 함량이 굉장히 높다. 편의점에서 가장 많이 판매되는 숙취해소제들을 살펴봤을 때, 당 함량이 9g~ 14g 정도이다. 설탕을 밥 수저로 뜨면 한 수저가 약 10~13g정도 나오므로 적지 않은 양이다. 그렇다고 이것들이 숙취해소제의 전부인 것은 아니다. 아마 숙취해소제에 헛개, 진피, 창출, 생강 등 숙취에 좋다는 ‘천연재료’를 첨가했다는 광고를 접해봤을 것이다. 이 천연 재료의 효능과 함량이 어느 정도인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엄밀히 말하자면 숙취해소제는 의약품이 아닌 일반식품으로 분류된다. 즉, 들어가는 성분의 동물실험과 인체실험을 거칠 의무가 없다. 실제로 첨가된 천연재료들이 숙취에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지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위의 천연재료들은 동의보감에 ‘숙취에 좋다’고 쓰여 있지만 현대에 과학적으로 밝혀지진 않았다. 특히 헛개의 경우, 숙취해소의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맥주 3잔을 위해 약 300~600mg정도의 헛개 추출물이 필요하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하지만 숙취음료 속의 헛개 추출물은 1.3%로 1.3mg정도에 지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천연 제품이란 유혹에 이끌려 소비를 하고 있다.
필자는 이 또한 ‘케미포비아’의 한 현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케미포비아는 화학물질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을 갖고, 천연물질 혹은 친환경 물질만을 추구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화학물질이든 천연물질이든 각자의 장단점을 갖고 있으며, 우리에게 유익할 수도 있고 해로울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물질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올바른 사용이다. 그간 가습기 살균제 사건, 생리대 파문 등 화학물질과 관련된 안 좋은 사건들이 많았지만, 인체에 유독한 물질을 잘못 사용하여 생긴 일들이었다. 화학물질 중에는 이렇게 유독한 물질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치는 거의 모든 것들이 화학물질이다. 매일같이 마시는 커피부터 몸 속의 호르몬들까지 전부 화학물질이다. 또한 의약품이나 건강식품처럼 인체에 이롭게 쓰이기 위해 합성된 화학물질들도 있다. 그리고 유독한 물질일지라도 인체에 들어가지 않고 적절한 장소에서 잘 사용한다면 좋은 쓰임을 가질 수 있다.
케미포비아의 흐름에 휩쓸려 판단력을 잃고 무조건적으로 화학물질을 거부하기보단 정확한 정보를 기반으로 진실을 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진실은 사람들을 보다 더 넓고 좋은 선택으로 이끌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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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현상을 넘어선 인문학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합니다. 누군가가 삶 속에서 과학을 발견한다면, 저는 과학 속에서 삶을 발견하며 이것을 글로 기록합니다. 포항공과대학교에서 화학공학을 공부했고, 현재는 과학커뮤니케이터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시즌 2에서는 여러 생명과학 기술과 이를 예술적인 견해로 바라본 시선, 이로써 만들어진 과학예술작품들을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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