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스토리를 담고 있는 연재를 만나보세요.
[과학통통] Science actually is all around
Bio통신원(과학통통)
나는 울적한 마음이 들 때면, 히드로 공항을 떠올린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우리는 욕심 속에, 증오 속에 살고 있다고 하지만, 나에겐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사랑은 어디에나 있다. 뉴스거리가 되지 않고, 특별한 이야기가 없어도, 사랑은 항상 존재한다.
아빠와 아들, 엄마와 딸, 남편과 아내, 남자친구, 여자친구, 오랜 친구 사이에 …
쌍둥이 빌딩에 비행기가 충돌했을 때, 그 비행기에 타고 있던 사람들로부터 걸려온 전화에는 미움과 복수의 마음을 담은 말은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모두 사랑의 메시지였다고 한다.
잘 살펴보면, 사랑은 사실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Love actually is all around
연말, 연초가 되면 다시 보고 싶은 영화로, 매년 빼놓지 않고 다시 보는 영화 Love actually에서 나오는 대사입니다. 영화의 시작과 끝에서 히드로 공항을 배경으로 읊어지는 나래이션과 행복한 모습으로 사랑하는 이를 반기고, 껴안고, 바라보는 모습이 참 따스한 저의 최애 장면 중 한 장면입니다.
누가 처음 행복해지기 위해 공항의 도착장을 떠올리기 시작했을까요. 공항을 오가던 중 문득 어느 평범했던 날에 고개를 들어 사람들의 표정을 살폈고, 그 눈빛에서, 입가에서 행복한 미소를 보기 시작했을 때부터 일 것입니다. 이처럼 평소에 보지 못했던,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되고, 깨닫게 되는 것은 아주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끔은,
무심코 읽은 화장실 벽면에 붙어 있던 “오늘의 좋은 시” 한 구절이 내 삶의 방향을 바꾸기도 하고,
우울한 날 고개 숙이며 걷던 차가운 아스팔트 길에서 보도블록 사이에 힘겹게 자란 민들레꽃을 보며 따스한 위로를 얻기도 하고,
지루하고, 복잡하다고만 생각했던 공항의 도착장에서 애틋하게 껴안는 부모와 자식의 모습을 보며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기도 하는 것처럼요.
그리고 물론 이러한 생각의 전환은 아름다운 문학 한편을 읽을 때에만, 나에게 비극이 들이닥쳤을 때에만, 진심을 가득 담은 사랑을 보았을 때에만 생기는 것은 아닐 것이고, 그것이 꼭 인생에 대한, 사랑에 대한 깨달음일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저에게 ‘원래 있었지만 보지 못했던 것에 대해 이야기해보세요’ 라고 말한다면 저는 주저 없이 ‘과학’이라는 주제를 고를 것입니다.
과학이야말로 어디에나 있으니까요.
그런데, 과학이 어디에나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여러분께 여쭤보고 싶어집니다.
“과학은 어디에 있을까요?”
네, 과학은 과학실에 있는 시약 속에도 있고, 과학책을 펼쳐보아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과학은 여러분이 이 글을 읽기 위해 전원을 켠 컴퓨터, 휴대전화, 태블릿 PC 에도 있고, 건조한 겨울을 여러분의 피부를 지켜줄 가습기에도 있지요.
그런데 … 혹시 이런 곳에도 과학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 있으신가요?
바스락바스락 가을 길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단풍잎에?
세계를 놀라게 한 아이돌 BTS의 노래 속에?
배고플 때마다 대리만족을 위해 보았던 먹방 ASMR에?
이런 곳에 정말 과학이 있을까요?
우리나라는 4계절이 있는 나라로 3월이면 흩날리는 벚꽃잎으로 봄의 시작을 알리고, 초록빛이 무성한 여름을 지나, 길거리를 붉게 물들이는 단풍잎을 밟고, 눈이 덮인 겨울을 맞이합니다.
그런데 벚꽃잎이 흩날리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떨어지는 단풍잎을 손바닥에 얹어보며, 민들레 홀씨를 바람에 날려 보내며 이 잎들을, 홀씨들은 왜 떨어지는지 생각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벚꽃잎은 벚꽃 나무의 가지 끝에서 예쁘게 피었다가 일정한 시기가 되면 붙어있던 꽃잎들이 바람에 흩날려 보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벚꽃잎 또한 벚꽃 나무의 일부분이었는데 몸의 일부분이 잘려 나간다는 것은 동물인 우리로서는 조금 괴상하고,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이는 식물에서는 매우 흔한 현상인 ‘탈리, 식물의 기관 일부가 본체로부터 분리되는 현상’ 의 한 예입니다.
식물연구의 모델생물인 애기장대 (Arabidopsis thaliana) 에서도 꽃잎의 탈리 현상은 일어납니다.
꽃잎이 꽃 본체로부터 떨어질 때, 원래는 하나의 몸으로 붙어있던 꽃잎과 꽃 본체 사이에 벽이 만들어져서 분리가 일어나게 됩니다.
이때, 탈리가 일어나지 않거나, 탈리가 덜 되어 꽃잎의 일부가 식물 본체에 남아있게 된다면 식물이 자신의 몸의 일부를 잘라낸 후에 큐티클과 같은 보호막을 잘 형성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식물 본체의 생장에 악영향을 줄 수 있게 되기에,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탈리가 잘 진행되어야 하는 것 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1]
이러한 탈리 현상의 원리와 이에 연관된 효소, 유전자를 연구하는 것은,
열매가 잘 떨어지지 않아 수확 때마다 고생인 고추,
아직 떨어질 때가 아닌데 떨어지는 감 같은 농작물을 보다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길러낼 수 있게 합니다.
시험 기간 이라는 꽃말을 가진 벚꽃이 흩날리는 5월에 이런 자연의 신비로움이 숨겨져 있었다니, 신기하지 않나요?
생명체인 식물에 과학이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일 것입니다.
그런데 BTS의 노래 가사 속에도 과학이 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제가 멤버의 숫자와 이름을 기억하는 아이돌은 2010년 이전에 활동하던 분들이 마지막입니다.
여러분들은 방탄소년단을 잘 알고 좋아하시나요? 저는 방탄소년단을 잘 모르지만, 국내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방탄소년단의 DNA라는 노래를 알고 있습니다.
제목이 무척이나 생명과학적인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는 약 8억 뷰를 기록하고 있는데요, 이 노래를 가만히 들어보니 굉장히 특이한 과학이 숨어있었습니다.
혈관 속 DNA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 제가 주목한 것은 이 노래에서 말하는 ‘끌림’ 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DNA라는 노래는 ‘태초의 DNA가 널 원하는데’ , ‘애초부터 내 심장은 널 향해 뛰니까’ , ‘이 모든 건 우연이 아니니까 우린 완전 달라 베이비 운명을 찾아낸 둘이니까’라며 몸도, 마음도 아닌 무려 DNA가 원하는 운명적인 사람이라는 메세지를 담고 있습니다.
귀여운 사랑 노래로 생각될 수 있지만, 꽤 과학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정말 내 심장을 뛰게 하는 특별한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펭수의 고향 EBS와 한림대학교 유전체응용연구소 이경화 교수님 연구팀은 이러한 끌림에 대한 연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어떤 매력에 끌림을 느끼는지에 대한 다각적인 실험이 이루어졌는데, 그중 한 실험은 누구의 것인지 모르는 상태로 하루 동안 입고 다닌 티셔츠의 냄새를 맡는 실험이였습니다.
실험 결과, 놀랍게도 대부분의 참가자는 자신의 티셔츠 냄새를 극혐하였고, 자신과 면역 유전형질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의 티셔츠 냄새를 매력적으로 느꼈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냐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본인과 다른 사람에게 끌림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MHC(Major Histocompatibility complex, 주조직 적합성 복합체)는 척추동물의 면역체계에서 면역반응이 적절하게 일어날 수 있도록 돕는 유전자는 냄새로 본능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면역유전자와 비슷한 사람에게는 동료의식이나 우정과 같은 친밀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낯선 상대의 구강세포를 채취하거나, 피를 뽑아내지 않더라도, 냄새로 면역유전자를 맡을 수 있다는 것도 신기한데, 본능적으로 나와 비슷한 MHC를 가졌는지도 판단할 수 있다니 정말 놀랍지 않나요?
오늘 내 가족과 내 연인 그리고 내 친구 등의 정수리 냄새 혹은 겨드랑이 냄새를 잘 맡아보시면 어떨까요? ^^
마지막 과학은 질소로 충전된 감자칩과 ASMR에 있습니다.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자율감각 쾌락반응)은 이모 삼촌들의 주접미를 발산시킨 띠예양도, KBS 출신 개그우먼인 강유미 씨도, 먹방 유튜버 떵개 님도 모두 사랑하는 콘텐츠 입니다. 저는 유튜브로 주로 피아노 음악이나 영어교육방송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배가 고플 때 ASMR 먹방을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바삭바삭한 돈까스를 지글지글 튀겨서 한입 와삭 하고 베어 물었을 때의 소리는 실체 하지도 않는 돈까스의 향기를 느끼게 하고, 맛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늦은 밤, 돈까스를 먹는 대신 이렇게 대리만족하고는 합니다.
이처럼 맛있는 소리와 함께 먹는 음식은 더 맛있게 느껴진다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실제로 소리가 음식을 맛있게 한다고 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특이한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이그노벨상은 아주 특이하고, 재미있는 연구를 한 괴짜 과학자들에게 주는 노벨상인데요, 2007년 이그노벨상 수상자인 찰스 스펜스는 음식과 소리 사이의 과학을 연구하였습니다.
그는 아무 소리가 나지 않는 감자칩 보다 바삭바삭 소리가 나는 감자칩이 더 맛있다는 연구를 소개하였습니다. 프링글스 감자칩을 먹을 때, 소리를 증폭하는 것만으로도 소리가 없을 때보다 15% 더 바삭거리고, 신선한 느낌을 줄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사과나 당근을 씹을 때처럼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음식을 떠올리면서 먹는다면 더욱 맛있게 느껴질 것이라고도 합니다.
장난처럼 들리는 이 주장은 실제로 감각과학과 소비자 심리학의 탄탄한 연구와 과학적 데이터로 증명이 된 사실입니다.
그래서 찰스 스펜서는 이 개념에 착안하여 간을 적게 하거나, 맛이 부족한 음식에 ‘소리로’ 맛을 더할 수 있는 ‘음향 양념’ 을 개발했습니다.
또한, 감자칩 뿐 아니라 소리 내며 먹는 음식이 아닌 커피도 카페에 흘러나오는 음악만으로도 더 맛있게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쓰거나 단맛, 초콜릿 같은 맛 혹은 그 밖의 여러 가지 맛과 향은 결국 뇌를 통해 해석되는 것이므로, 다양한 정보 중 소리 정보 도 가져오기 때문에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도 커피의 맛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높은음의 음악은 뇌가 약 10%의 단맛을 더 강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고, 너무 시끄러운 음악은 뇌가 음식의 맛을 느끼는 데에 방해 작용을 하기도 한답니다.
이 외에도 한때 유행했던 엠O스퀘어 처럼 공부에 집중하고 싶을 때, 잠자리에 들고 싶을 때 우리는 ASMR을 활용하기도 합니다.
완전한 소음보다는 백색 소음을 듣거나 심지어는 ‘서울대학교 도서관 백색소음 10시간 재생’과 같은 컨텐츠도 존재합니다.
이처럼 일정한 소리 혹은 자연의 소리 등은 우리 뇌가 편안함을 느끼게 해줍니다.
우리가 깊은 수면을 취할 때 뇌에서는 델타파가 활성화되는데 잠을 자기 전에 듣는 일정한 소리가 흘러나오는 ASMR은 델타파의 활성을 돕습니다. 명상할 때와 뇌파와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고 합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입니다.
또한, 이처럼 정적이고, 느린 ASMR이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유를 전문가들은 현대인들이 ‘팝콘 브레인 (Popcorn Brain)’ 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강렬한 자극에 익숙한 우리의 뇌는 일상의 약한 자극에는 감각을 느끼기 어렵게 된 것입니다.
건강도 챙겨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하고, 동료들과도 잘 지내야 하고, 실험도 척척 잘 해내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하는 바쁘고, 시끄러운 날들을 살아가는 우리가 피로감에 지쳐 힐링을 위해 ASMR을 찾는 것이 아닐까요?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 속에도 많은 과학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소개해드렸는데 어떠셨나요?
매년 보던 벚꽃잎에, 무의식에 흥얼거리던 노래 속에, 어제도 들었던 ASMR 속에도 과학이 숨어있었다는 사실은 새삼스럽게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내 주변에 또 어떤 과학이 숨어있을지 궁금하게 만들기도 하구요.
이런 식으로 모든 사물에, 모든 현상에 ‘왜때문에 그래요?’라는 물음을 갖는다면, 이는 과학적인 사고를 하는 것이고, 이러한 사고는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할 것입니다.
왕으로부터 본인의 왕관이 오직 순금으로만 만들어졌는지 알아내라는 무시무시한 명령을 받고 고민에 빠진 채로 욕조에 들어갔다가 유레카를 외치고 뛰어나온 아르키메데스처럼 여러분들도 주변에 있던 평범한 것에 대한 과학적인 사고를 하다가 무언가를 번뜩! 생각해낼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렸던 때로 돌아가서, “왜요?” , “왜 그런 거에요?” 라는 질문을 하루에도 몇십번 하던 때로 돌아가서, 왜 그럴까에 대한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요?
역시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 당연한 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은 중요한 일 인것 같습니다.
[1] Y. Lee, T.H. Yoon, J. Lee, S.Y. Jeon, J.H. Lee, M.K. Lee, H. Chen, J. Yun, S.Y. Oh, X. Wen, H.K. Cho, H. Mang, J.M. Kwak A lignin molecular brace controls precision processing of cell walls critical for surface integrity in Arabidopsis. Cell, 173 (2018), pp. 1468-1480
[2] Spence, C. (in press). Multisensory integration & the psychophysics of flavour perception. In J. Chen & L. Engelen (Eds.) Food oral processing: Fundamentals of eating and sensory perception. Oxford: Blackwell.
과학으로 소통소통, 과학통통
- 소통은 언제든 환영합니다. (댓글, 이메일, 메세지, 전화, 자필편지, 자택 방문)
- 2020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기사 오류 신고하기]
다른 연재기사 보기
전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