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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에게 보내는 철학 서신] 1-3 논리경험주의의 대두와 몰락 (1)
오피니언 갑오징어 (2019-11-14)

다수의 이름들


이번 서신의 주인공은 하나의 역사적 운동이다. 이 운동은 이미 ‘화석’1)이 되었다는 논평을 듣기도하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철학사 속에 남은 다른 종류의 화석보다는 다음 여러 서신에서 다뤄야 할 논의들과 매우 가까운 화석이다. 아마도, 이 연재의 목표에 대해 이들 화석은 인류를 이해할 때 있어 화석 인류 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이 운동의 이름은 여러가지다. ‘논리경험주의(logical empiricism)’, 또는 ‘논리실증주의(logical positivism)’라는 이름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지만2), ‘언어분석철학’과 같은 이름 또한 이 운동과 비슷한 대상을 지시하는 이름으로 쓰인다. 심지어 ‘영미철학’이라는 지리적 이름도 이 운동과 그 후예를 지시하기 위해 사용된다. 

대개의 경우, 어떤 대상의 이름이 많다는 것은 그 이름을 가진 대상이 여러 맥락 속에서, 또는 다수의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주목받았다는 뜻이다. 일례로 수생 생물의 이름(특히 어민이나 상인들이 부르는 통속 명칭)은 지역마다 다른 경우가 많다. 다행히 이 전통의 이름에 쓰인 어휘들은 일반 명사, 또는 적어도 문화권 규모에 대응하는 큼직한 외연을 가진 낱말들이라, 생물종의 이름처럼 번역조차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들을 잠깐 검토해 보면, 이 전통에 대해 사람들이 어떤 이해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이 이해 가운데 어떤 부분이 오해이고 어떤 부분이 핵심을 포착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영미. 가장 먼저, 지리적 또는 문화적 명칭부터 검토해본다. 그런데 이 명칭은 역사적 우연에 기반한 것이다. 이 운동의 초기 중심지 가운데 하나가 영국이고, 20세기 후반 많은 학자들이 미국으로 모여들었다는 점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20세기 초반, 이 운동을 이끌었던 많은 학자들은 독일어권 출신이었다. 빈, 베를린은 영국보다 좀 더 중요한 초기 중심지로 보는 것이 좋다. 일례로, 지난 연재에서 살펴본 헴펠은 초기에 베를린에서 활동했다. 이들이 영국이나 미국으로 옮겨가게 된 것은 나치의 집권과 탄압 때문이다. 히틀러와 나치의 집권이 당시 독일의 정치적, 문화적 사조 아래에서 피하기 어려운 사건이라고 보기는 매우 어렵다. 독일어권의 여러 경쟁하는 여러 전통, 사조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들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욱 더 공정할 것이다. 이들이 철학사 전체에서 가장 중요시했던 학자는 결국 칸트였다는 점 또한 기억할 요소다.

※    분석(analytic). 이 이름은 이 지적 운동에 참여한 인물들이 철학 연구에 필요하다고 보았던 태도와 방법을 묘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비슷한 시기(19세기, 20세기 초반) 발달한 ‘분석화학’처럼, 이 운동은 철학 안팎에서 제시되는 여러 이론적 주장들의 내용과 구조를 명료하게 이해하려 시도했다. 그 방법은 어떤 문장이나 추론을 당시 새롭게 등장한 논리학의 도구로 분해하여 통사 구조를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이기도 했고, 과학의 법칙, 참, 올바름, 아름다음과 같이 경험을 그대로 나타낸다고 보기 어려운 이론적·평가적 개념들의 의미를 명확하게 분해하여 제시하는 것이기도 했다. 곧 더 상세히 이야기하겠지만, ‘분석’(쌍 개념은 ‘종합(synthesis)’이다)의 어원 역시 칸트임도 기억하면 좋다. 

※    논리·언어 – 이 이름은, 이 지적 운동이 무엇을 철학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지에 대해 말해주는 낱말이다. 이 운동은 철학이 사물 그 자체나 인간의 심적 구조가 아니라 언어 표현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고 본다. 언어의 통사 구조, 그리고 사용되는 어휘들의 의미를 명료하게 분석하는 일종의 논리적 과업이 철학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이 요인은 20세기 초반 뚜렷해진 요소다. 

※    경험·실증 – 이 이름은, 방금 확인한 논리적 언어 분석이라는 과업이 무엇을 목적으로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이름이다. 이들은 과학의 법칙, 참, 옳음, 아름다움과 같은 이론적·평가적 개념의 토대가 결국 일정한 방식으로 경험 가능한 무언가여야 한다고 말한다. 전통적인 철학의 대상이었던 이들 개념들에게 무언가 실질적인 의미가 있으려면, 궁극적으로 이들 개념에게 대응하는 경험이 언어 분석을 통해 제시될 필요가 있다. ‘경험’과 ‘실증’의 차이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간단히 논의한다. 이 요인의 경우 철학사 속 경험주의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라는 데 폭넓은 합의가 있다. 

논의에 따라, 이 전통의 이름에 쓰이는 여러 요소들 가운데 ‘영미’를 뺀 나머지 다섯 단어는 실제로 이 전통에 속한 학자들이 철학의 과업이 무엇이라고 생각했는지 보여주는 데 유용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에 따르면, 철학은 언어 표현의 통사론·의미론적 특징을 논리적 분석을 통해 확인하는 작업이며, 이런 작업의 목적은 이론적, 평가적 방법으로 사용된 여러 분야의 언어적 표현들이 실증가능하거나 적어도 경험과 부합하는 방식으로 제시된 것임을 보여주는 데 있다. 

 

겸손과 과격: 검증 원리

과격 시위 진압 훈련 장면

그림 1 과격 시위 진압 훈련 장면. 2014년 2월 20일 과천 서울대공원 주차장에서 실시된 경기지방경찰청 주관 기동 훈련 장면이다. 화염을 이용해 경찰 저지선을 돌파하려는 과격 시위자를 가정한 듯 하다. 때로 철학에서도 과격한 주장이 득세하고, 이를 통해 주변 분야에 큰 변화가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뼈대만 보여주는 소개만으로, 어떤 지적 운동을 충분히 소개했다고 말하긴 어렵다. 이들을 되도록 간명하게, 그리고 과학과의 관련성 속에서 조명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나는 이런 목적을 위해 하나의 지적 운동을 살펴보려 할 때 꽤 유용한 질문이 다음과 같다고 본다. 

Q1. 이들은 어떤 면에서 과거의 사조, 또는 경쟁 사조에 비해 혁신적인 면을 가지고 있는가? 
Q2. 이들이 생각하는 철학은, 어떤 방법으로 과학과 분업 관계를 이루고 있는가?
Q3. 이들의 작업을 정당화하는 구분은 언제 무력화되었는가? 

이 가운데, 나는 첫 번째 질문의 경우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변형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철학 사조를 제창하는 데는 주변의 연관된 사조들과의 사이에서 논쟁과 논란을 불러일으키겠다는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논쟁 앞에서 학자들이 가질 수 있는 두 방향을 활용해, 질문을 다듬어 본다. 

Q.1.1 이들은 철학자들이 어디서 겸손해져야 한다고, 그리고 어디서 일견 과격해 보일 수 있을 만큼 공격적인 작업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이런 변형은, 어떤 철학 사조가 가져온 혁신은 (특히 이 책이 다루는 논의들의 경우) 철학이 할 수 없는 것, 그리고 철학이 해야 하는 것에 대해 이들이 무엇이라고 하는지 살펴봄으로서 이해할 수 있다는 관점을 깔고 있다. 비록 한계가 있다 하더라도 철학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에 대해 논리경험주의자들이 철학에 대해 가진 생각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보일 생각이고, 과학이 인류의 지적 유산 가운데 어떤 지위를 차지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는 과학자들에게 답변보다는 질문 그 자체를 통해 여전히 흥미로운 통찰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겸손과 과격의 교차로: 검증 원리

논리경험주의의 핵심 주장은, 누가 뭐라고 해도 이것이다. 검증할 수 있는 진술만이 의미가 있다. 여기서 검증이란, 어쩐 진술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경험적 증거에 비추어 판정하는 활동을 말한다. 이 논제를 ‘검증가능성 논제’, 또는 ‘검증 원리(verification principle)’라고 부른다(이 글에서는 두 표현을 혼용하겠다)3). 물론 이 논제는 증거의 획득 난이도와는 상대적으로 관련이 적다. 논리경험주의자들은 손에 쥐고 있는 증거, 또는 쉽게 획득할 수 있는 증거 뿐만 아니라, 원리상 획득할 수 있는 증거가 그에 대응하는 진술이라면 모두 검증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이 논제는, 법칙적 형태를 가진 진술, 즉 ‘x라면 그것은 모두 y하다’는 식의 진술에 대해 x의 극히 일부만을 포함하는 증거만으로 이뤄진 검증만 현실적으로 가능하더라도, 즉 광범위한 대상에 대해 적용할 수 있어 적용 범위 가운데 극히 일부에 관한 관찰 증거만 획득 가능한 주장에 대해 그것이 참(또는 거짓)일 확률을 올려주는 증거에 비춰볼 수 있기만 하더라도 큰 문제는 없다고 말한다4). 결국 검증가능성은, 원리상 그에 대응하는 경험적 증거를 제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지시하는 표현이라고 이해하면 큰 무리는 없다. 


이런 주장의 또 다른 기초는 바로 의미라는 개념이다. 검증할 수 있는 진술이 의미가 있다는 말은, 바로 이런 진술만이 객관적 세계에 대해 말한다는 뜻이다. 물론 우리의 언어에는 검증할 수 없는 다양한 진술들이 있다. 예를 들어, 윤리학이나 미학의 진술, 즉 ‘어떤 행위 x는 옳다’, ‘어떤 풍경 y는 아름답다’와 같은 진술은 단지 화자의 감정이나 주관에 의한 판단을 표현할 뿐이지 세계에서 얻을 수 있는 객관적인 경험적 증거에 비추어 검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종의 종교적 체험을 통해, 이 세계를 초월하는 무언가를 만났다(e.g ‘나는 성모로부터 이러저러한 계시를 받았다’)는 종교적 진술 또한 마찬가지로 화자의 체험에 대해 말할 뿐 객관적인 경험적 증거와 대응하는 진술인 것은 아니다. (물론 이는, 윤리나 미, 종교 체험에 기반해 형성된 사회 현상에 대한 객관적 증거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 언어에서 화자의 내면을 표현하는 기능을 수행할 뿐, 객관적인 사태를 서술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요소인 것은 아니다. 결국, 검증가능성 논제는 주관적 내면과 객관적 세계 사이의 이분법에 많은 부분 기대어 있는 논제인 셈이다.

검증가능성 논제는, 과학과 인류가 관심을 기울이는 다른 분야 사이의 경계선에 대한 소박한 믿음을 정식화한 것이라고 보아도 큰 무리는 없어 보인다. 논리경험주의자들은 이 논제를 통해 과학이란 검증 가능성 논제를 만족하는 진술을 대상으로 삼는 활동, 즉 객관적 세계에서 얻은 증거를 통해 참·거짓이 입증 가능한 진술을 대상으로 하는 활동인 반면, 인간의 다른 활동은 주관적 표현에 집중하는 활동이라고 말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는 과학이 가진 특권에 대한 서술과 정당화를 모두 제공하는 관점이다. 우리의 내면과 무관한 객관적 세계와 연결된 믿음을 형성하려면, 검증 원리를 만족하는 진술로 이뤄진 가설 체계를, 실험 또는 시험으로 확보한 증거 뭉치와 대조하는 작업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논리경험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과학에 대한 서술이자 과학의 임무다. 과학이란 경험으로부터 배우기 위한 체계적인 노력이라는 생각을, 다른 분야와의 대조를 통해, 그리고 인간의 믿음은 궁극적으로 경험에 기반해 형성된 것이라는 전통적인 경험주의의 논제를 응용해 알기 쉽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검증가능성 논제는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과학에 대한 철학적 반성을 자극하는 중요한 계기처럼 보인다.

 

주석

1)  피터 고프리스미스, 한상기 옮김, 『이론과 실재: 과학철학 입문』, 서광사, 2014: 53쪽. 

2)  이 글에서는 필요한 곳이 아니면 ‘논리경험주의’라고 이 사조를 부르기로 한다.

3) 이하 세 절의 서술에서 표준으로 삼은 것은 에이어의 다음 저술이다. A. J. 에이어, 송하석 옮김, 『언어, 논리, 진리』, 나남, 2010. 다른 인물의 저술은 필요한 경우 따로 언급한다. 

4) 에이어가 약한/강한 검증가능성 가운데 약한 검증가능성을 지지한다고 말한 데 기반한 진술이다. 실증보다는 경험이라는 표현을 선호하는 이유 역시 검증가능성 원리를 어느정도 완화해야 한다는 견해에서 기인한다. 202쪽 참조.

 

일러두기

* 다른 저술의 요약과 최대한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기 위해, 논리경험주의의 주요 쟁점 가운데 부주의하게 취급한 논점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내 서술 이외의 논점들을 한국어로 확인하기 위해서는 첫 에세이에서 소개한 세 교과서나, 다음 몇몇 저술을 참조하면 좋다. 


- A. J. 에이어, 송하석 옮김, 『언어, 논리, 진리』, 나남, 2010.
- G. 로마노스, 곽강제 옮김, 『콰인과 분석철학』, 한국문화사, 2002.
- R. 카르납, 윤용택 옮김, 『과학철학입문』, 서광사, 1993.
- A. C. 그렐링, 이윤일 옮김, 『철학적 논리학 입문』, 자유사상사, 1993.

이외에 논리경험주의에 깊은 영향을 미친 비트겐슈타인의 원전도 번역이 다수 되어 있으나 매우 난해하여 철학 비 전공자에게 추천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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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우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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