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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생명과학 이야기] 어려운 과학, 재미난 과학
오피니언 곽민준 (2019-11-13 10:22)

어려운 과학, 재미난 과학

 “知之者는 不如好之者요, 好之者는 不如樂之者니라.”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는 뜻의 이 말은 공자의 논어 옹야편에 나오는 유명한 대목이다. 비슷한 말로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라는 명언도 있다.

 몇 년 전, 전 농구선수 서장훈 씨가 강연에서 이 말을 반박하는 모습을 봤다. 본인은 진지하게 농구에 임하기 시작한 이후, 단 한 번도 농구를 재미있게 즐긴 적이 없으며, 미친 듯이 노력하고 또 노력해 정상에 이르렀다는 것이 말의 요지였다. 어떤 일에 순수하게 재미의 관점으로만 접근해서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그의 현실적인 조언에 고개가 끄덕여지기는 한다. 그러나 필자는 여전히 노력하는 사람이, 혹은 알려고만 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즐기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진정으로 그 일을 즐기지 않고서는 일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수많은 고난과 포기의 순간들을 이겨낼 수 없다. 따라서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쏟아부어 최선을 다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서장훈 씨가 우리나라 최고의 농구선수가 될 수 있었던 것에는 그의 피나는 노력과 뛰어난 재능도 한몫했을 거다. 그러나 정상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진심으로 즐기지 못했다면 그는 힘든 순간들을 견디지 못했을 거고, 자신이 가진 능력 전부를 선보이지도 못했을 거다. 노력하는 사람이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는 이유는, 즐기는 사람이야말로 제대로 된 노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장훈 씨의 이야기에 공감하면서도 필자의 생각이 그와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한 것은 ‘즐긴다’에 대한 서로의 정의가 다르기 때문이다. 서장훈 씨는 농구를 즐기는 사람을 재미가 있어 농구를 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필자가 생각하는 농구를 즐기는 사람은 조금 다르다. 자신의 직업적 일에 그저 재미로 임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아무리 재미있는 일이라도 그 일이 내 돈벌이가 되면 재미없어지는 게 당연하다. 좋은 농구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식단관리도 철저히 해야 하며, 운동을 통해 체력을 키워야 하고, 다른 선수들과의 소통에도 신경 써야 한다. 슛이나 패스, 수비를 잘 해야 하는 건 물론 당연한 얘기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이 과정들이 쉽지는 않다. 온종일 힘들게 훈련하다 보면 누구라도 당장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 거다. 그러나 그 힘든 과정을 겪는 선수 중 내가 원하는 목표를 떠올리며 다시 힘이 내는 이들, 혹은 가족을 생각하며 다시 달리는 이들이 분명히 있다. 훈련하는 과정은 힘들지만, 경기에서 승리했을 때 느껴지는 짜릿한 감정을 잊지 못해 운동하는 선수들도 많을 것이다. 이런 이들은 농구가 재미있어서, 신나서,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정말 힘들고 어려운 과정이지만, 보람이 있고 행복한 일이기에 하는 거다. 이런 보람과 행복이 있어야만 포기하지 않고 어려운 길을 갈 수 있고, 한 분야의 전문가로 성공하는 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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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농구선수 서장훈 씨의 강연, "즐기는 사람을 이길 자 없다? 뻥이에요."

 필자는 과학자 대부분도 그러리라고 생각한다. 과학은 쉬운 일이 아니다. 평생을 바쳐 연구해도 교과서에 실리는 평범한 지식 한 줄 밝혀내지 못하는 게 일반적이다. 인류가 아는 지식은 이미 넘쳐나고, 이제는 아무도 모르는 전혀 새로운 무언가를 찾는 게 정말 어려운 상황이 됐다. 특히 현대 생명과학 연구의 대부분은 많은 과학자의 실험 결과를 조합해 하나의 의미 있는 과학적 결론에 도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따라서 한 개인의 노력과 능력만으로 모두에게 인정받을 만한 성과를 내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의 연구 프로젝트를 완료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정말 길다. 때로는 내 인생의 몇 년을 바친 일이 헛수고로 결론 나기도 한다. 한마디로 과학은 어렵다. 새로운 지식을 밝히는 것은 정말 힘든 과정이다. 일상생활에서는 아무렇게나 쉽게 내뱉을 수 있는 한마디 말이라도 과학의 영역에서는 매우 철저한 검증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놀라운 사실은, 그런데도 많은 이들이 과학자의 길을 간다는 것이다. 자신의 길이 정말 쉽지 않고 험난한 길인 걸 뻔히 알면서도 그들은 과학을 그만두지 않는다. 과학자들이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하는 이유는 그들이 과학을 진정으로 즐기기 때문이다.

 생명과학자라면 누구나 생명과학이 힘든 일이란 걸 안다. 그런데도 사서 고생을 하는 건 그래도 그 과정에서 행복과 보람을 느끼기 때문이다. 물론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뿐이라 먹고 살기 위해 억지로 버티는 이들도 있겠지만, 필자는 그래도 과학자 대부분이 과학만의 독특한 매력을 알기에 어려운 길인데도 굳이 가려 하는 것으로 믿고 있다. 문제는, 과학은 어려우나, 엄청난 매력을 가진 일이라는 걸 과학자가 아닌 이들은 모른다는 것이다. 정확하게는 과학자들이 대중에게 과학을 어렵지 않게 소개하는 것이 문제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과학을 소개할 때, 신기한 몇 가지 지식을 알려주거나 과학적 이론이 일상생활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방식을 이용했다. 그러나 필자는 과학자들에게 묻고 싶다. 정말 과학이 매력적인 이유가 몇 가지 유용한 지식 때문인가? 생활의 편의 때문인가? 과학의 진짜 가치는 지식을 밝히는 과정에 있고, 과학을 즐기기에 과학자의 길을 가는 이들 대부분은 그 과정의 재미와 보람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과학자들은 대중에게 과학의 진짜 매력을 알려 주지 않는다. 나만 알고 싶은 보물이라 생각하는 건지, 대중이 과학자의 마음을 이해 못 할 거라 여기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만약 대중이 과학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문제라면, 강연이나 책보다 훨씬 흥미로운 연극, 노래, 영상 등의 새로운 과학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이용할 수 있다. 그러면 이전의 과학 대중화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효과적으로 대중의 흥미와 관심을 끌 수 있다. 과학에 대한 호감을 얻는 것은 이런 새로운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영역으로 맡겨두면 된다. 그리고 과학자들이 해야 할 일은 그다음 단계, 과학의 진짜 모습을 대중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제대로 된 과학 문화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과학이 어렵다는 사실을 대중에게 알려야 한다. 그리고 과학자들이 굳이 그 어려운 일을 하는 이유는 과학적 과정이 주는 독특한 희열 때문이라는 것도 말해주어야 한다. 이를 대중이 깨달으려면 과학을 직접 체험하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책이나 강연을 통해 지식을 접하는 수준을 넘어, 조금 더 제대로 된 과학적 과정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과 기회가 만들어져야 한다. 과학자가 아닌 이들도 직접 자연을 관찰하고, 논문을 읽고, 실험을 설계해 진행할 수 있도록 말이다. 최근 국내 과학관의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단순히 과학관을 더 만드는 걸 넘어 모든 이들이 자신의 동네에서 과학을 취미 활동으로 즐길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시민이 직접 연구에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진행 중인 서울시립과학관의 이정모 관장은 과학관이 전국의 모든 동네 도서관 2층에 위치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시민이 자신의 삶 속에서 과학을 느끼고, 이를 통해 매일 실패를 경험하는 과학자들의 일상을 체험해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중이 진짜 과학과 직접 만날 기회가 주어져야 그들이 과학의 진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가끔 한국사회에서 과학이 너무 불가침의 성역으로 여겨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과학은 분명 어렵지만, 그래도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일이다. 대중들도 과학자들도 전문가가 아니라면 과학의 결과만 알아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과학과 사회가 함께 발전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회 구성원이 과학을 진심으로 즐기는 문화로서의 과학이 꼭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과학의 겉모습이 아닌, 과학자들만이 알고 있는, 어려운 일인데도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과학 속의 진짜 매력을 알려주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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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민준 (POSTECH 생명과학과)
글을 통해 나의 지식과 생각을 표현하는 게 즐거운 평범한 생명과학도입니다. "일상 속 생명과학 이야기" 를 통해 일상생활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는 말과 행동에서 비롯된 생물학적 물음에 대한 답과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생활의 지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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