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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생활 적응기] 책이 진로를 바꾸다.
Bio통신원(세오)
1953년 프랜시스 크릭이 연필로 그린 DNA의 이중 나선 구조.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DNA>
책이 진로를 바꾸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다. <이중나선>[1] 책을 펼쳤다. 2000년 초라 스마트 폰이 없던 시절이었다. <이중나선> 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 객기로 듣던 ‘유전학’ 수업의 과제의 일환이었던 것 같다. 공대에 소속된 고분자 공학을 공부하던 내가 전공도, 필수도 아닌 ‘유전학’ 수업을 들었다. 1953년 4월 25일 <네이처> [2]에 짧은 분량의 이중나선 구조가 실렸는데, <이중나선>은 왓슨의 시점으로 DNA 이중나선 구조의 발견을 소개한 책이다. ‘유전학’ 공부를 막 시작하는 단계였지만 어렵지 않게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본문 내용이 1페이지인 이 발견으로 제임스 왓슨, 프랜시스 크릭, 모리스 윌킨스는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그 즈음에 또 다른 책인 <이브의 일곱 딸들>[3] 을 읽게 되었다. 사람의 세포질에 있는 미토콘드리아 DNA 서열이 유전될 때 자식은 엄마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물려받게 된다. 엄마로부터 딸에게로 전해지는 미토콘드리아 DNA 고리의 돌연변이 분석을 통해 인류의 기원에 관한 의문들을 풀어가는 내용이다. 이후에도 서점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생명과학 관련 책들을 읽고 나서 유전학에 대한 관심이 더욱더 커지게 되었고, 이 책들이 나의 진로를 바꾸게 될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Molecular structure of nucleic acids: a structure for deoxyribose nucleic acid.
<출처: https://www.nature.com/articles/171737a0>
꿈을 꾸다.
4학년 1학기, 직장과 대학원을 두고 고민을 했다. 석사 과정을 마치고 나서 직장 생활해도 늦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대학원으로 진학하기로 했다. 지금도 진행하고 있는 실험이 잘 안 될 때면,
‘대학원이 아닌 직장 생활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생명과학에 관심을 뒤로하고, 현실적으로 대학원 진학이 가능한 전공 분야에 지원하기로 했다. 고분자 공학 전공에 맞춰 가고 싶은 대학원 실험실을 알아보며 몇 군데에 이메일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대학원 석사 과정을 찾고 있는 학생입니다. 교수님의 연구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방문을 허락해 주시면 방문하고 싶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니, 학생의 뜬금없는 이메일에 답변 주시고, 방문을 허락한 교수님들께 감사한 마음이 든다. 진로가 달려있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적극적으로 알아보았다. 몇 군데 실험실을 방문하고, 방문한 실험실의 교수님과 대학원 진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모했지만, 연락해서 방문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대학원 진학에 대해 여러 가지 조언해 주시고, 응원해 주셨다. 하지만, 8월 말 어느 더운 날, 아침부터 기차를 타고 찾아간 실험실을 방문하고는 더는 다른 실험실을 방문하지 않았다.
“똑. 똑. 똑.”
문을 두드리니 안으로 들어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우리 연구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
“어떤 공부를 했어, 무슨 공부를 하고 싶어?”
학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분위기도 좋았다. 잠시 내년 봄학기에 실험실에 들어갈 생각에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데, 마지막 질문에는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혹시, 외국에 나가서 공부할 생각도 있어?”
“네?…….”
태평양을 건너다.
유학 생활이 시작되었다. 태평양을 가로지른 곳이 아닌 지방에서 Graduate Record Examination (GRE) [4] 학원에 다니기 위해 짐을 싸 들고 서울로 왔다. 생각보다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학원 등록만으로도 대학원에 붙은 마냥 기뻤다. 지방에서 서울로 주말 반 수업을 듣는 학생들도 있었다. 이 학생들의 경우에는 토요일 날 기차를 타고 와서 수업을 듣고, 찜질방 같은 곳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 날 수업을 듣고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유학에 대한 열기가 이렇게 뜨거운 줄 몰랐다.
하나, 둘, 셋. 오늘은 1,500원 적립했다. 영어 단어를 틀리면 한 문제에 500원씩 적립하기로 했다. GRE라는 공통의 적을 두고 몇 명이 같이 공부를 했다. 일정 분량의 단어를 외우고, 단어 시험이라는 이름으로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확인했다. 누군가가 공부를 하는 것을 콩나물을 키우는 것에 빗대어서 이야기한 것이 기억이 났다. 콩나물을 키우기 위해 매일 물을 주면, 물은 다 빠져버리지만, 콩나물은 조금씩 자란다는 이야기였다.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영어 단어였지만 매일 콩나물에 물을 주듯이 외웠다. 수학적인 감각도 잊지 않기 위해 하루에 30분씩 수학 문제도 풀었다. 그렇게 봄, 여름, 가을을 보냈다. 적립된 돈이 꽤 되었고, 어느덧 GRE 시험이 가까워져 왔다. 2004년에는 종이로 보는 GRE 시험 (Paper-delivered test)이 일 년에 두 번 있었다 [5]. 일본은 매달 컴퓨터 시험 (Computer-delivered test)이 가능했던 터라, 월말에 일본으로 가서 시험을 보고, 며칠 기다렸다가 월초에 시험을 한 번 더 보는 학생들도 있었다. 이렇게 유학을 하고자 하는 학생들의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Statement of purpose (SOP)는 뭐지?’
‘추천서는 누구한테서 받지?’
대학원에 지원하는 서류들을 인터넷을 통해 준비했다. 처음으로 한 군데 지원해보니 나름 노하우가 생겨 나머지는 차츰 어렵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6곳의 대학원 석사 과정에 지원했다 [6]. 훗날 알게 된 사실은 미국 대학원에 석사 과정 없이 박사 과정으로 바로 들어오는 학생들이 제법 있었다. 지원할 때 전공은 고분자 공학 전공이 아닌 생물학을 선택했다. 유학을 결심하면서 생물학을 공부하기로 마음을 정한 터였다. 운 좋게 한 군데에서 식물 생물학 석사 과정으로 입학 허가가 났는데, 조건부 입학 허가였다. 영어 성적 때문에 어학연수를 하고 석사 과정으로 입학하라고 했다. 턱걸이이긴 하지만 요구하는 조건을 넘겼는데, 왜 어학연수를 하라고 하는지 알 수가 없었지만, 그렇게 나는 식물 생물학을 전공하는 하기 위해 진짜 유학생이 되어 태평양을 건너갔다.
<참고>
[1] http://www.yes24.com/Product/Goods/2125383
[2] Watson, J.D., and Crick, F.H. Molecular structure of nucleic acids: a structure for deoxyribose nucleic acid. Nature 171, (737-738) April 25, 1953.
[3] http://www.yes24.com/Product/goods/256486
[4] Graduate Recored Examination, 미국 대학원 수학 (修學) 능력을 테스트하는 시험
[5] 컴퓨터 시험 (Computer-delivered test)은 없었고, 대신에 종이 시험 (Paper-delivered test)이 일년에 2번 정해진 날짜에 있었다.
[6] 학교와 전공에 따라 다르지만, 지원한 학교들은 원서, 학업사유서 (Statement of Purpose), 추천서, 영문 잔고 증명서, 학교 성적표, 졸업 증명서, 토플, GRE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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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고분자 공학을 전공 후 Iowa State University에서 식물 생물학으로 석사, 유전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생명 과학 분야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연구하고 있다.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느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이 분야를 진학하려는 학생들 혹은 유학 준비생들에게 나누고자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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