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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밖 과학읽기] 구멍투성이 과학 (스튜어트 파이어스타인 저, 김아림 역/ 리얼부커스)
오피니언 LabSooniMom (2019-09-23)

학회나 출장을 가기 전에는 항상 바쁘다. 적어도 일주일을 자리를 비워야 하니 해결해야 하는 일들과 이미 예정되어 있는 실험들을 마무리 지어야 하니 더 바쁘다. 7월 말, 학회를 가기 전엔 우리 팀과 외부의 다른 기관과의 공동 실험을 시작하고 가야 했다. 그렇게 처음 계획했던 것처럼 계획에 맞추어서 모든 일이 딱 들어맞으며 좋으련만, 비행기를 타고 남반구에 도착해서 날아오는 이메일들은 무언가 잘 못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출장에서 돌아오니 이미 우리 팀 연구원들과 외부팀 연구원들 사이에 주고받은 이메일은 날이 서있었다. 직접적으로 ‘네 탓이야’라고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암묵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는 감정의 골이 깊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땅에 과학이라는 학문은 결코 돈 없이 할 수 없듯이 꽤 큰 꿈을 안고 꽤 많은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을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 앞에서는 누구나 들인 돈(연구비)을 생각하고 누구나 내가 아닌 누군가를 마음속으로 손가락질한다. 

구멍투성이 과학

컬럼비아대 생물학과 교수이자 학장인 스튜어트 파이어스타인은 [구멍 투성이 과학]에서 과학자들이 겪는 “실패”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랩 미팅 현장을 상상해보자. 보통 랩에서 일주일 혹은 이주일에 한 번씩 랩 미팅을 하고 순서를 정해서 자신들의 결과를 프레젠테이션하기도 한다. 자신의 랩 미팅 발표가 있으면 일주일은 ‘실험 전폐’하며 발표 준비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는 ‘폭풍 실험’으로 비어있는 슬라이드를 채우기 위해서 바쁘다. 또 누군가는 성공한 실험 데이터로 멋들어지게 슬라이드를 채운 이들이 있는가 하면, 결과가 아닌 ‘진행 중’ 혹은 ‘계획’이란 말로 그 순간을 모면하려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파이어스타인은 이런 랩 미팅에서 ‘실패’를 드러내 놓는 이가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자신을 한 번 되돌아보자. 정말 한 번도 실험에 실패한 적이 없는가 말이다. 나의 경우를 돌아보니 새로운 바이러스를 분리하기 위해 수개월의 시간을 쏟아부었지만, 맹탕 미디어 밖에 없었을 때도 있었고, 어렵게 얻은 샘플을 고이 염색했건만 컴컴한 어둠 속에서 형광을 찾아 헤매었던 때도 있었다. 공을 들여 직접 마우스에 접종까지 하며 만들었던 단일클론 항체는 내가 원하는 단백질이 아닌 다른 단백질에 대한 항체만 뿜어냈었고, 구하기 어려운 샘플로 간신히 RNA 뽑아서 돌린 NGS는 시그널이 불안정해 데이터를 쓸 수 없었던 적도 있었다. 크고 작은 실수와 실패를 값비싼 시약과 더 값비싼 시간과 날려 버렸던 것이 어디 이 것뿐이겠는가. 

파이어스타인은 이런 과학자의 실패는 과학자가 얼마나 헌신적인지를 알 수 있는 시험대이기도 하다고 이야기한다. 랩 미팅이나 동료 연구자 혹은 PI에게 실패를 고백하고 함께 생각하고 다시 길을 찾아나가는 것, 그것이야 말로 과학자들이 함께 연구하며 진실성과 용기를 배워나가는 시간인 것이다. 실패는 세렌디피티(우연한 행운)로 성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부지런한 실패를 통해 발전하고, 되돌아보고, 또 나아갈 수 있는 성공의 밑거름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루이 파스퇴르의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온다”는 말을 이렇게 바꾸었다. “실패도 준비된 사람에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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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Altasciences.com

과학 기술의 전쟁이나 마찬가지였던 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무렵, 루스벨트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과학 고문 바바라 부시는 방어와 공격을 위한 과학 연구를 평화로운 시대를 위한 창의력으로 전환하고자 했다. 그는 [과학, 끝없는 프런티어]라는 보고서를 통해 과학 연구를 정부의 주도로 만드는 구조를 선택했다. 경제 발전, 교육, 복지 등 사회에 대해 과학이 갖는 가치를 국가의 책임으로 정의했다. 그래서 과학에 세금을 들이는 일은 이 사회 전체를 위한 투자일 뿐 아니라 국가 구성원들의 삶을 위한다는 암묵적 인식을 갖고 있다. 한국의 보건복지부와 같은 역할을 하는 미국의 Department of health and human service (HHS)는 이름 그대로 국민을 위한 건강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HHS 산하의 국립보건원(NIH)의 지원금은 과학자들이 과학자적인 호기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기초연구보다는, 인류의 건강과 직결되는 분야로 편향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최근 들어서는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NIH를 비롯한 여러 미 정부 기관에서는 ‘혁신 지원금 (innovation fund)’를 선정해 지급하고 있다. 2013년 기준으로 지급된 NIH 지원금 중 혁신 지원금에 해당하는 연구는 78 개로 약 1.5% 밖에 되지 않는다. 저자는 왜 ‘위험이 높지만 영향력이 큰’이러한 연구에 지원하는 이유와 그 비율이 1.5% 밖에 되지 않는 것을 비판하지 않는다. 반대로 왜 98.5% 의 연구비가 ‘예측 가능하고 평범하며, 성공할 확률이 높지만 영향력은 아주 적은 연구들’을 지원하는지에 대해 생각을 해 봐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국가적 주도가 된 과학 정책은 과학의 일상인 실패를 담아둘 곳을 찾지 못했다. 과학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게 만들기 위해서 성공에 자금을 대는 대신 실패, 또는 실패할 잠재력에 자금을 지원해야 하며, 과학 연구 지원에 시장 모델을 도입해 연구자들에게 ‘성공’만을 기대하는 것이 아닌 ‘합리적인 기대’를 하고, 창의적 사고를 할 정도의 실패에 대한 여유있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연구비를 받기 위해 이미 반 이상 진행 중인 연구에 대한 지원서를 쓰거나 시대에 따라 유행하는 분야로의 전환하거나, 학연과 지연에 따른 급조된 네트워크를 구성해 정부의 눈먼 돈을 쫓아가는 행위는 이제는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서두에서 이야기했던 ‘망한 실험’은 몇 시간의 토론 끝에 깨끗하게 포기하기로 했다. 그 실험에 사용했던 동물들은 수의사에게 이야기해 다른 부서의 프로젝트나 동물실험교육을 위해 써 달라고 전환 신청을 했으며, 우리 팀의 문제점과 외부기관의 문제점을 찾기 위해 거꾸로 하나씩 짚어가고 있다. ‘망한 실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이 모든 행위가 ‘과학’이 되기 위해 열심히 달려 나가야 하는 이유가 생긴 것이다. 

지금의 과학 교과서에 담긴 내용들과 의약품, 치료제, 백신 등으로 우리 앞에 있는 것들의 그 처음은 ’ 실패’라는 ‘구멍 투성이 과학’이 이룬 성공’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과학은 대단한 보물이며 엄청나게 매력적인 모험이다. 과학을 위한 최선의 환경은 민주주의이고 최악의 환경은 제국의 통치를 받는 상태다. 이 사실만으로도 우리가 과학에 가치를 부여하는 이유를 알 수 있으리라. 과학은 세대를 넘나들기 때문에 이전 세대의 문 앞까지 도달했다가도 후속 세대까지 이를 수 있다. 과학은 국제적이라 어디서든 작업할 수 있고 그 결과는 어디서든 유효하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과학이 엘리트나 특별한 집단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  (스튜어트 파이어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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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Sooni Mom (필명)
바이러스 연구와 백신 개발을 하고 있습니다. 논문 보느라, 실험하느라 책장 한번 넘기지 못했던 시절을 지나고 이제서야 논문 밖 과학책을 읽고 소소한 소감을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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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1
회원작성글 hnine  (2019-10-31 05:43)
덕분에 좋은 책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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