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G-WINDOW 처리영역 보기]
즐겨찾기  |  뉴스레터  |  오늘의 정보  |  e브릭몰e브릭몰 회원가입   로그인
BRIC홈 동향
물리적 거리두기 실천
스폰서배너광고 안내  배너1 배너2 배너3 배너4
LABox-과학으로 본 코로나19 (COVID-19)
전체보기 Bio통신원 Bio통계 BRIC View BRIC이만난사람들 웹진(BioWave)
목록
조회 2089  인쇄하기 주소복사 트위터 공유 페이스북 공유 
바이오통신원   
[과학자에게 보내는 철학 서신] 1-2 경험과 이론 사이, 귀납과 입증(2)
오피니언 갑오징어 (2019-08-29)

 

입증과 두 역설


역사적 순서를 잠시 무시하고, 생각을 자극하는 이야기들을 찾기 위해 논의를 20세기 중반으로 넘겨 본다. 이 때는 입증 이론과 관련된 몇 가지 논쟁적 문헌들이 발표된 시기이며, 귀납의 논리에 대해서도 다양한 시도가 이뤄졌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논의를 위해, 아주 간단하고 쉬운 가설을 활용해 보자. “모든 까마귀는 검다”라는 가설이 있다고 해 보자. 이 때, 이 가설을 입증하는 증거는 무엇일까? 누구나 실제로 검정색인 까마귀가 바로 그 증거라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반증하는 증거는 검지 않은 까마귀이며, 예를 들어 보잉 747은 문제의 가설과 아무런 상관도 없다고 말할 것이다. 까마귀나 검정과 같은 일상적 개념이 활용된 가설이 주어지면, 그것을 입증·반증하는 사례, 또는 무관한 사례가 무엇인지는 사실 누구나 파악할 수 있는 직관적인 문제처럼 보인다. 하지만 철학자들의 분석은, 이런 직관을 해부해 실제로 가설과 데이터를 연결해 주는 성분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작업이 전혀 쉽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나는 철학자들의 분석이 두 방향에서 이뤄졌다고 분류하고 싶다. 첫째, 가설의 논리적 구조에 대한 통사론(syntax). 둘째, 가설에 사용되는 용어들의 의미론(semantic). 전자의 방향은 ‘헴펠의 까마귀 역설’로 유명하다. 예를 들어 보잉 747이 모든 까마귀는 검다는 가설을 입증한다고 보아야 한다고 말하는 이 역설은, 입증에 대한 대중적인 직관을 담은 문장을 기호 논리학에서 취할 법한 전형적인 방법으로 번역할 경우 드러난다. 대중적 직관은, 가설이 함축5하는 증거를 관찰자가 확인했을 때 입증이 이뤄진다고 말하지만, 까마귀 역설은 이런 직관이 정말인지 되묻게 만든다. 후자의 방향은 굿맨의 ‘초랑파록 역설’로 유명하다. 이 역설은, 가설의 참·거짓을 판정하려면 활용하지 않을 수 없는 “까마귀”나 “검정”과 같은 어떤 술어에 대해서든, 경험적 증거에만 기반해서는 구별할 수 없으나 이론적으로는 다른 의미를 가진 술어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면서, 경험과 가설(이론)사이의 커다란 간극에 대해 의미론의 관점에서 조명을 비춘다. 

 

보잉 747과 까마귀

다시 방금 소개한, 헛소리처럼 보이는 주장으로 돌아가 보자. 인천공항에 유유히 주기중인 바로 저 보잉 747이 “모든 까마귀는 검다”는 가설을 입증한다는 것이 헴펠(Carl Gustav Hempel, 1905-1997)의 주장이다. 보잉 747과 까마귀는 날개 말고 공유하는 것이라고는 없는데, 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출발점은 “모든 까마귀는 검다”는 문장이다. 논리학자들은 이를 “모든 개체 x에 대해, x가 까마귀라면 x는 검다”(이하 까마귀 조건문)라는 조건문으로 번역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논리학자들은, 어떤 가설은 그것과 동치 관계인 가설과 사실상 동일한 가설이라고 본다. 동치 관계란, 두 가설이 겉보기에는 서로 다르지만 같은 내용을 논리적 규칙에 의해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뜻이다. 까마귀 조건문과 동치 관계에 있는 조건문은 “모든 개체 x에 대해, x가 검지 않다면 x는 까마귀가 아니다(이하 까마귀 동치 조건문)”이다. 항공기는 대체로 밝은 색으로 도색하게 마련이므로6, 당신이 본 보잉 747은 거의 모두 검지 않았을 것이고, 물론 까마귀도 아니다(물론 아래에서 확인할 초랑파록 역설을 활용하면 그렇게 우길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여기선 그런 문제는 무시하겠다). 이 밝은 색 보잉 747은 명백하게 까마귀 동치 조건문을 만족시키므로, 동치 관계에 의해 “모든 까마귀는 검다”는 가설도 입증하는 증거다.

하늘의 여왕

그림 4 ‘하늘의 여왕(Queen of the skies)’ 보잉 747-100. ‘팬 아메리카’ 항공이 B747을 처음 도입할 1970년 당시 활용되던 도색이다. 헴펠에 따르면, 이 B747은 까마귀가 검다는 가설을 입증한다. 

이 역설을 처음으로 이야기한 헴펠은 이 결론을 받아들인다. 보잉 747과 까마귀 사이에는 입증의 정도 차이가 있을 따름이라는 것이, 다시 말해 이들은 모두 까마귀 가설에 대해 입증력 있는 증거라는 의미에서 같은 종류라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황당한 입장처럼 보이지만, 그의 논거는 귀담아 들을 만 하다. 보잉 747이 “모든 까마귀는 검다”를 입증하지 않는다는 직관은, 보잉 747과 까마귀, 그리고 그 사이의 관계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정보가 아주 많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과학의 첨단에서, 실험(또는 시험)에 부쳐지는 연구 대상 사례들은 대개 그렇지 않다. “모든 생물종7은 유전적 차이를 통해 동정될 수 있는 개체군이다”8라는 가설을 떠올려 보자. 이 가설과 동치인 가설은 “유전적 차이를 통해 동정될 수 없는 모든 개체군은 생물종이 아니다”9라는 가설이다(보잉 747도 물론 이 가설을 만족한다). 전자 뿐만 아니라, 후자의 가설 역시 분류학의 실천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험준한 지형 덕분에 사람이 살지 않는 어느 아열대 군도에서, 형태학적 외양이 꽤 다르지만 독자적인 생물종으로 보아야 할지 지리적 조건 덕에 생긴 변종에 지나지 않는지는 불분명해 유전학적 검사를 할 필요가 있는 개체군 x를 발견했다고 해 보자. 이 개체군이 유전적 차이를 통해 이미 알려진 종으로 동정될 수 있는지 여부가 바로 분류학자들의 관심사일 것이다. 그리고 보잉 747과 까마귀 (동치) 가설 사이의 관계와는 달리, 개체군 x에 대해서는 본래 가설과 동치 가설 모두가 중요한 의미를 가진 것 같다. 개체군 x에 대해 유전적 검사를 시행할 때, 분류학자들이 시험하는 가설을 논리학을 이용해 의미는 같지만 형식은 다르게 적어 놓은 것이 두 가설이기 때문이다. 헴펠은 유사한 사례를 검토한 다음, 이런 평을 남긴다. 까마귀나 보잉 747과는 달리, 과학의 첨단에서 다루는 x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는 별로 없다. 이 배경 지식의 차이가 보잉 747과 개체군 x에 대한 판단 차이를 불러온 기반이다. 배경 지식을 모두 제거한 상태에서, 당신은 보잉 747이 까마귀 가설을 입증한다고 평가하게 될 것이다.10


물론 이런 식의 답변은, 특히 과학철학을 과학의 거울로서 활용하려는 이 연재의 목적에 비춰보았을 때 꼭 만족스럽지는 않다. 어떤 가설을 입증하려 할 때, 문제의 가설과 관련된 대상의 범위를 어느 정도 한정지어놓는 방침은 과학 연구의 현장에서 오히려 당연한 방침이기 때문이다. “모든 생물종은 유전적 차이를 통해 동정될 수 있는 개체군이다”라는 가설은,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유형의 개체군에게 적용되지 않으며, 오직 생물 개체군에게만 적용되는 것이다. 보잉 747이 생물종의 개념이나 동정 방법을 적용할 사례라고 생각하는 생물학자들은 없을 것이다. 물론 분류학자들은, 헴펠의 말처럼 새롭게 발견된 개체군 x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x가 보잉 747이나 x와 같은 섬에서 발견된 특이한 광물과 매우 다른 유형이라는 점 정도는 알고 있다. 약간의 배경 지식(이 경우에는 생물종의 필요 조건)은, 입증의 문턱을 구성하며 이상한 사례들을 배제하는 데 도움이 되는 듯 하다. 배경 지식을 제거한 상태에서 입증력 있는 증거에 속하는 문턱의 높이와 위치를 판정해야 한다는 헴펠의 입장은, 어느 정도의 설득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과학의 실천과 충분히 유관하지 않다. 과학자들이 활용하는 입증의 문턱이 있다면, 그것은 헴펠의 문턱보다는 훨씬 높을 것이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해, 보잉 747과 까마귀 가설 사이의 관계보다 훨씬 더 세부적인 관계를 배경에 두고 과학자들의 입증은 진행될 것이다.11 헴펠의 답변은, 결국 과학의 현실에 가까이 다가간 면과 멀리 떨어진 면이 공존해 있다고 평가할 만하다.12  

 


초랑과 파록


이번에는 굿맨(Nelson Goodman, 1906-1998)의 안내를 따라, 색깔이 이상한 방식으로 뒤섞인 세계로 이동해본다. 굿맨 스스로 ‘귀납의 새로운 역설’이라고 부른 이 분석은,13 아주 간단한 트릭을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술어들의 의미론이 가진 취약성을 드러내 준다.
굿맨이 사용한 사례를 그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그의 정의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가 사용한 사례는 초록색 에메랄드다. 

초랑색 = 시점 t 이전에 검사한 대상은 초록색이며, 시점 t 이후에 검사한 대상은 파랑색일 경우 오직 이 경우에만14  이들에게 적용되는 색깔 술어.

에메장미 = 시점 t 이전에 검사한 대상은 에메랄드이며, 시점 t 이후에 검사한 대상은 장미인 경우 오직 이 경우에만 이들에게 적용되는 유형 술어.

여기서 트릭의 핵심은 시점 t다. 시점 t를 적절한 미래 시점, 예를 들어 2119년이라고 적어 보자. 21세기에 얻은 어떠한 증거라도, 그것은 에메랄드가 초랑색이 아니라 초록색이라는 증거라고, 또한 지금 이 개체가 장미가 아니라 에메랄드라는 증거이기에 충분치 않다. 2119년이 되었을 때 시점을 다시 바꾸지 못할 이유도 없다. 이렇게 하면 입증은 미래로 영원히 연장될 수 있다. 바로 지금이 시점 t라는 보장은 앞서 살펴본 실제 사고 사례에서 보듯 없는 것이므로, 이런 트릭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결정을 정당화하는 것은 어려운 일로 보인다.

물론 아직 트릭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초록색, 에메랄드, 파랑색, 장미 같은 말들이 정의를 위해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말들 역시, 굿맨의 틀을 이용해 만들어 낸 이상한 술어들을 통해 쉽게 대체될 수 있다. 다음을 보라. 

초록색 = 시점 t 이전에 검사한 대상은 초랑색이며, 시점 t 이후에 검사한 대상은 파록색15일 경우 오직 이 경우에만 이들에게 적용되는 색깔 술어.
에메랄드 = 시점 t 이전에 검사한 대상은 에메장미이며, 시점 t 이후에 검사한 대상은 장미랄드15인 경우 오직 이 경우에만 이들에게 적용되는 유형 술어. 
 

에메랄드

그림 5 에메랄드. 위키미디아 커먼즈에서. 굿맨에 따르면, 이 에메랄드는 초록색일 수도 초랑색일 수도 있다. 

초록색은 초랑색과 파록색을 통해, 에메랄드는 에메장미와 장미랄드를 통해 정의되고 있다. 이는 어떤 단어든 굿맨 식의 방법으로 다시 정의될 수 있다는 말이다. 서로 순환적인 의미 규정이 이뤄지는 이상, 단어의 의미만 들여다 보아서는 어느 한 편이 좀 더 기초적인 어휘라고 말할 기반을 찾을 수는 없다. 

굿맨은 이런 논리적 난항에 ‘고착(entrenchment)’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답한다. 여기서 고착이란, 충돌하는 가설의 기반이 되는 다른 술어보다 시간적으로는 더 오래, 그리고 더 폭넓은 맥락에서 사용되었다는 뜻이다. 초록색은 초랑색보다 훨씬 더 오래 쓰였다. 또한 초록색은 색상 이론은 물론 색을 활용하는 다수의 분야에서 널리 활용되는 술어이지만, 초랑색은 철학, 잘해봐야 언어학의 의미론에서나 사용될 술어다. 잘 고착된 술어는 그것을 사용하는 가설, 나아가 이들 가설로 만들어진 이론이 고착되지 못한 술어를 활용한 가설 · 이론과 충돌할 때 무엇을 선택할 지 선택할 근거가 될 것이다. 결국, 고착의 수준이 증거를 가설과 연결시키는 나머지 성분이라는 것이 굿맨의 견해다. 

굿맨의 제안은 대체로 적절해 보인다. 가설에서 사용된 술어의 활용 역사와 주변 맥락이 어떤 수준인지가 가설을 입증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제안은 분명 상식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과학은 때로 (정도의 문제는 있지만) 혁명적으로 변화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어떤 술어의 용법이 완전히 바뀔 수도 있고, 이론 체계에서의 격변 또한 가능한 일이다. 일례로, 아리스토텔레스 시절의 생물종은 초시간적으로 지속되는 일종의 형상이었지만, 진화 이론의 등장 이후 생물종은 시공간적으로 제한적인 맥락 속에서만 유지되는, 역사적으로 우연한 존재임이 드러났다. 이 가운데 현대 생물학이 사용하는 ‘생물종’이 우세하다고 평가하기 위해서는, 역사의 길이나 주변 분야와의 정합성, 즉 고착 이외의 기준이 없으면 안 된다. 그렇다면, 헴펠의 까마귀처럼, 굿맨의 초랑색 역시 과학의 현실에 가까이 다가간 면과 과학의 현실에서 멀어진 면을 공유하는 분석을 담고 있는 셈이다. 

 

두 개의 미래 방향


이미 글이 길어진데다, 입증을 둘러싼 논란을 과학철학의 좀 더 폭넓은 쟁점과 결합해 이해하기 위해서는 논리실증주의에서 시작하는 역사적 전개를 감안해 논의를 계속해야만 한다. 여기서는 오늘의 입증 이론이 취하는 두 방향을 간략히 소개하는 것으로 논의를 마무리하기로 한다. 

1)    베이즈 정리. 통계학을 알고 있다면 베이즈 정리는 너무나 익숙한 수식이다. 이 식은, 사전 확률에서 사후 확률로 가는 수정 과정을 정식화한 결과로서, 그 의미와 함축에 대한 논란이 있을 뿐 수리적 구조에 대해서는 별다른 논란이 없다. 베이즈 정리를 활용하면, 입증 과정을 오해 없이, 그리고 확률의 증가라는 정량적 기준을 바탕으로 서술할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입증의 나머지 성분에 대한 정량적 이론을 추구하는 많은 학자들은 베이즈 정리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물론 베이즈 정리의 활용이 철학의 필요성을 제거하는 일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았다. 1부의 후반부에서, 나는 베이즈 정리를 둘러싼 논란을 간략하게 리뷰할 것이다. 

2)    최선 설명으로의 추론(inference to best explanation). 베이즈 정리가 정량적 입증 이론의 초점이라면, ‘최선 설명으로의 추론’이라는 개념은 정성적 입증 이론의 초점이 되고 있다. 여기서 최선 설명으로의 추론이란, 대립하는 여러 가설 가운데 증거와 주변 맥락을 검토해 보았을 때 우세한 가설을 사태에 대한 최선의 설명으로 보고 그것을 택하는 과정을 말한다. 특히 립튼의 작업17은, 입증을 위해 증거의 수준과는 독립적으로 고려되는 여러 요소18에 주목하고 그에 대해 집중했다는 점에서 현대의 고전에 가까운 지위를 얻은 듯 하다. 나는 1부의 후반부에서 이 방향 역시 한 개 장을 들여 리뷰하려 한다. 
 

 

주석

5.  철학에서 ‘함축(entailment)’이라는 말은 엄격한 방식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논증의 전제가 참일 경우 결론도 언제나 참이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모든 까마귀는 검다”라는 가설이 참이라면, “특정 까마귀 개체 R은 검다”라는 가설도 참이다. 헴펠은 함축을 활용해 입증을 정의하려는 논리적 시도를 했는데, 이 연재에서는 그에 대해 논의하지 않겠다.
 

6.  반사도가 높아 열 누적을 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균열을 육안으로 확인하기에도 좋기 때문이다.
 

7.  여기서는 이 말을 일반 개념이 아니라 각각의 종이 가진 지위, 즉 개체군이 가진 어떤 속성과 대응하는 지위를 의미하는 말로 사용했다. 
 

8.  모든 개체군 x에 대해, x가 생물종이라면 x는 유전적 차이를 통해 동정될 수 있다.


9.  모든 개체군 x에 대해, x가 유전적 차이를 통해 동정될 수 없다면 x는 생물종이 아니다.
 

10.  위 두 주석의 x에, 보잉 747을 대입해 볼 수 있다. 나는 이를 통해 이런 아이디어도 떠올릴 수 있었다. 전자의 형태에서, 조건문의 전건(x가 생물종이라면)은 ‘생물종’이라는 매우 이론적인 용어를 포함하고 있어 보잉 747에 대해 시험할 수 있는 진술이라고 보기 어렵다. 즉, 전자의 전건은 경험과 거리가 먼 이론적 진술이다. 반면 후자의 전건은 시험 절차와 그 목적에 대해 대략적인 정보라도 주고 있다. 비행중인 보잉 747을 납치한 외계인이라면, (탑승객 말고) 분명 이 기체에 대해 생물학적 조사를 시도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헴펠의 제안은, 동치 조건은 가설의 시험 범위를 넓혀주는 실질적인 기여를 할 수도 있으며, 우리의 직관과 충돌할 가능성은 여기에 비춰보면 덜 중요하다는 아이디어 또한 포함한 듯 하다. 
 

11.  개체군 x가 별개의 생물종인지 여부에 대한 입증은, 무엇보다 분류학이라는 실천의 체계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며, 여기서 사용되는 개념(생물종, 동정..)과 활동(유전체 분석), 그리고 전체 과정의 목적 모두는 이 체계와 중요한 관련성이 있다. 또한 이런 입증 활동은, 이미 알려진 종에 대한 정보를 배경에 깔고 이뤄지는 것이기도 하다. 보잉 747과 조류학은, 물론 약간의 연관이 있긴 하지만 이런 식의 정교한 실천 체계로 묶여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12.  서술을 위한 축약, 그리고 (결과적으로) 왜곡이 있을 수 있음을 부인하지 않겠다. 헴펠 본인의 입증 이론에 대한 서술은 7월 연재의 일러두기에서 제시한 다음 책을 참조하라. 카를 C. 헴펠, 곽강제 옮김, 『자연과학철학』, 서광사, 2010. (영어판: Philosophy of Natural Science, Prentice-Hall, 1966.) 일러두기에서 언급한 『입증』은 헴펠의 까마귀 역설, 그리고 입증의 형식적 개념에 대한 상세한 해설을 포함하고 있다. 
 

13.  Goodman, Nelson. Fact, Fiction, and Forecast, 4th ed.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1983. 3장과 4장에서 지금 소개한 논의가 이뤄지는데, 개인적으로 3, 4장의 번역을 유지하고 있다. 
 

14.  ‘인 경우 오직 이 경우에만’은 if and only if의 번역어다. 동치 기호를 말로 나타냈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15.  파록색 = 시점 t 이전에 검사한 대상은 파랑색이며, 시점 t 이후에 검사한 대상은 초록색일 경우 오직 이 경우에만 이들에게 적용되는 색깔 술어.
 

16.  장미랄드 = 시점 t 이전에 검사한 대상은 장미이며, 시점 t 이후에 검사한 대상은 에메랄드인 경우 오직 이 경우에만 이들에게 적용되는 유형 술어.
 

17.  Lipton, Peter, Inference to Best Explanation, 2004, Routledge. 
 

18.  loveliness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나는 이를 여러 번역서에서 ‘멋진’으로 옮겼다. 
 

 

  추천 3
  
인쇄하기 주소복사 트위터 공유 페이스북 공유 
  
전현우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
과학철학을 공부했다. 철학이 오늘날의 정교한 지적 분업 체계 속에서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고민하고 있다. 이 연재는 바로 이 고민에 대한 응답을 구체적으로 정리하려는 시도다. 의학의 철학을 다룬 책 약간을 번역(공역)했고, 지금은 주로 교통과 철도에 대한...
다른 연재기사 보기 전체보기 >
과학자에게 보내는 철학 서신 1-4 “조작적 관점에서” (4) 조작주의와 생물종의 정의
네 번째 에세이는 브리지먼의 '조작주의'를 소개하고 관련된 주제에 대한 논평을 제시하는 부분으로, 분량이 길어 네 개로 나누어 업로드될 예정이다. 이번 부분은 생물학의 기본 개념인...
[과학자에게 보내는 철학 서신] 1-4 “조작적 관점에서” (3) 조작주의와 오늘의 측정
이제 관점을 조금 옮겨보자. 브리지먼의 저술을 어떤 식으로 일관되게 이해할 수 있느냐는 관점을 떠나, 이들 논지가 오늘의 과학을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을 주는지 검토하는 관점으로...
[과학자에게 보내는 철학 서신] 1-4 “조작적 관점에서” (2) 축소주의를 권함
과학적 개념의 상대성(relativity)에 대한 브리지먼의 논의 역시 ‘구심력’과 ‘원심력’이라는 틀을 활용해 이해해야 좀 더 정확하고 오해 없이 이해할 수 있다. 브리지먼이 언...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기사 오류 신고하기]
 
  댓글 0
등록
위로가기
동향 홈  |  동향FAQ  |  동향 문의 및 제안
 |  BRIC소개  |  이용안내  |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이메일무단수집거부
Copyright © BRIC. All rights reserved.  |  문의 member@ibric.org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유튜브 유튜브    RSS서비스 RSS
머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