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스토리를 담고 있는 연재를 만나보세요.
손바닥 소설로 읽는 과학자 이야기 4 『입국 심사관 앞에서』
Bio통신원(과학작가 박재용)
입국 심사관 앞에서
녹색 문을 열었다. 10평 남짓한 넓은 방이었다. 바닥에도 녹색 카펫이 깔려있었고, 천정도 녹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책상 뒤의 인물이 책상 앞에 놓인 녹색 의자를 가리켰다. 조용히 앉아 두 손을 그러모았다. 호흡을 가다듬고,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뜬다. 그가 심사관인 모양이다.
그는 물을 한 컵 주며 잠시 긴장을 풀라며 잔웃음을 건넸다. 물로 입술을 축이고, 자세를 반듯이 고치고, 이제 심사받을 준비가 되었음을 눈으로 알린다.
가지고 오신 물건은 무엇입니까?
심사관의 생각이 머리 안에서 들어왔다. 그는 입을 열어 말한다.
별거 없어요. 가방에 들어갈 만큼만 가져왔어요. 연구노트가 제법 부피를 차지해서 나머진 별 게 없죠. 제가 입을 옷가지. 원피스 세 개와 속옷 몇 벌. 목도리와 내복. 수건과 손수건. 부모님과 가족 사진. 몇 가지 장신구, 목걸이 두 개와 귀고리 네 개, 팔찌 그리고 반지 두 쌍. 화장품 몇 가지. 십자가와 성상. 아 필요 없을 것 같지만 현금 2백 달러. 이게 다입니다.
심사관은 속으로 생각한다. 아뇨 아주 좋아요. 가져 오신 것들은 모두 박물관에서 소중하게 보관되고 연구될 예정입니다. 헛기침을 한 후 질문을 이어간다.
몸은 건강하신 편인가요?
얼굴이 어두워진다.
제가 제일 자신 없는 게 건강입니다. 집안 내력이죠. 모두 골골했으니까요. 대학 무렵부터 앓았던 병으로 이제 소리도 거의 듣지 못합니다. 그래서 천문대에서도 지속적으로 작업을 할 수 없었어요. 더구나 지금은 암에 걸린 상태니 아마 얼마 살진 못할 거라 생각합니다.
심사관은 ‘여기선 암 정도는 쉽게 고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려다 삼킨다. 그런 사정이야 심사가 끝난 뒤 말해도 된다. 지금은 심사에만 집중하자.
이제 가족 분들께 연락하시기가 힘들 터인데 각오는 하셨나요?
제 오랜 친구인 질병은 제게서 결혼할 기회를 빼앗았죠. 어느 정도 질병이 다스려진 후에는 이제 제가 남자들에게 다가가기를 꺼려했어요. 이제 이런 순간이 오니 오히려 다행입니다. 만약 남편과 특히 아이들이 있었다면 망설일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조카들만 봐도 그리 좋았으니까요. 물론 부모님과 동생들도 있지만 제 남은 생 자체가 얼마 되지 않으니 오히려 그 분들 짐을 덜어드린다고 생각해도 될 듯합니다.
이곳에선 아는 사람도 없을 터인데 외롭지 않을까요?
미국에서도 전 유령이나 마찬가지였어요. 대학을 아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일자리가 주어지질 않았죠. 대학에서 연구하는 건 오로지 남자들의 몫이었어요. 다행히 전 부모님의 도움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어, 무급 일자리를 천문대에서 얻을 수 있었지요. 하지만 망원경을 보는 건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제가 변광성 업무의 책임자가 되어서도 마찬가지였지요. 망원경은 오로지 남자들 차지였어요. 아무리 우수한 실력을 가지고 있어도 미국의 대학에서 우린 유령이었지요. 아니 어떤 이들은 우리를 피커링의 할렘이라고 불렀지요. 세상에 할렘이라니. 우린 사진 건판을 보고 빛의 밝기와 궤도와 각도를 계산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말이죠.
여기에서도 외롭긴 마찬가지겠지만 그래도 저를 이 먼 곳까지 부른 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적어도 제 능력은 인정해주시는 거니까요. 물론 아직 부족한 제가 대학 강당에 선다거나 그러긴 힘들겠지만요.
여기서 무슨 일을 하시길 원하십니까?
저는 별을 보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아는 것도, 관심도 없습니다. 다행히 이곳에서도 별을 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네요. 생이 다할 때까지 별만 보고 싶습니다.
심사관은 앞에 놓인 서류를 뒤적이다 맨 뒤 서류에 도장을 찍는다. 그리고 그를 보며 웃었다.
입국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허가되었습니다. 환영합니다. 헨리에타 리비트. 변광성을 발견했을 뿐만 아니라 그 변광성을 통해 우리가 보낸 신호까지도 이해한 최초의 지구인이여. 대마젤란성운에 오신 걸 환영하는 바입니다.
불가역적이란 말은 이제 다시 지구로 돌아가실 순 없다는 뜻입니다. 저희 과학기술이 당신을 데려올 순 있지만 다시 보내긴 힘듭니다. 아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당신이 떠나오신 그 시간대로 보낼 순 없다는 뜻입니다. 다시 돌아가시면 아마 2000년 정도 미래가 될 것인데, 당신이 그런 미래의 지구로 가는 것 자체가 저희 규칙에 위반되는 사항인 건 미리 말씀드린 걸로 압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헨리에타 리비트는 살짝 눈시울이 붉어지며 웃었다.
그런데 혹시 우리가 보낸 신호를 지구에 남겨놓으셨나요?
아뇨. 다음에 또 누군가가 발견하길 바라며 모두 태워버렸어요. 다음 사람도 여자였으면 좋겠네요. 아마 별의 신호를 분석하는 이는 모두 여자니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겠죠.
헨리에타 리비트는 웃으며 대답했다.
--------------------------------------------------------------------------
헨리에타 스완 레빗Henrietta Swan Leavitt, 1868년 ~ 1921년
미국의 천문학자. 하버드 대학교 천문대에서 사진건판을 검사하는 계산수computer로 근무했다. 세페이드형 변광성의 변광 주기와 광도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음을 발견. 에드윈 허블이 이 주기-광도 관계를 이용하여 우주가 팽창하고 있음을 밝혀낸다.
스웨덴 한림원이 노벨 물리학상 후보로 올리려 했으나 이미 암으로 사망한 후였다.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기사 오류 신고하기]
글쓴이의 아주 주관적이고 편파적인 시선으로 과학의 역사 곳곳에 드러난 혹은 숨은 여러 사건을 바라보고 이를 엽편소설 형식으로 씁니다. 소설이니 당연히 팩트가 아닌 점도 있습니다. 감안하고 읽어주세요.
다른 연재기사 보기
전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