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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적 인물로 본 의학의 역사] 헨리에타 랙스, 영원히 죽지 않는 세포는 우리 삶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오피니언 글깎는의사 (2019-08-01 10:32)

최근 벌어진 인보사 사태가 아직 뇌리에서 잊히지 않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코오롱생명과학은 성장촉진물질인 TGF-β1을 만들어내는 유전자를 넣은 형질전환 연골세포를 만들었다고 주장했었죠. 이 세포가 쥐 실험에서 연골을 생성했다고 발표해 국내 29호 신약으로 허가를 받았어요. 그런데, 신약 인보사를 구성하는 세포가 사실 연골세포가 아니라 HEK293 세포주(cell line)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세포주란 적절한 처리를 통해 실험실에서 계속 증식, 배양할 수 있는 세포를 말합니다. 아주 간단히 말하면 생물에서 세포를 채취, 조작을 통해 암세포로 만든 것이죠. HEK293 세포주는 1973년 네덜란드에서 적법하게 낙태된 태아의 신장 세포를 처리하여 만든 세포주로, 백신 제작, 재조합 단백질 생성, 신경 말단 형성 분석 등에서 활용되는 등 세포생물학 연구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세포주라고 해요.[1] 원래 있어야 할 연골세포 대신 신장 세포, 그것도 세포주 확립을 위해 처리하여 무한히 증식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암세포가 나타난 셈이니 황당함은 이루 말할 데가 없지요.

발표에 의하면 성장촉진물질 유전자를 연골세포에 넣기 위한 바이러스 제작에 HEK293 세포주가 사용되었다고 해요.[2] 고의로 신장 세포를 연골세포 대신 사용한 것이 아니라면, 실험 과정 어딘가에서 실수가 벌어져서 세포가 뒤바뀐 뒤 오류를 바로잡지 않았다고 추측해볼 수 있어요. 물론 어떤 일이 정말로 벌어진 것인지는 더 파악해봐야겠지만요.

그런데 이런 세포주는 인보사 사태처럼 대상 세포를 오염시키기도 하지만, 세포주끼리 서로 오염시키기도 한다고 해요. 워낙 분열을 잘하고 여러 환경에서 살 수 있는 세포주이다 보니, 그중에서도 더 분열이 빠르고 잘 살아남는 세포가 다른 세포주 대신 자라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죠. 가장 강력한 생명력을 지녔기에 여러 세포주를 오염시킨 세포, 아니 사실 세포 배양이라는 것을 가능하게 했던 최초의 세포가 있습니다. 오늘 살펴볼 헬라(HeLa) 세포주가 바로 그것인데요.

헬라는 1951년 자궁경부암을 앓던 헨리에타 랙스(Henrietta Lacks)의 환부에서 채취된 세포였어요. 당시 세포를 생물의 신체 바깥에서 기를 수 있다는 것은 이미 밝혀져 있었지만, 인간 세포를 키우는 것에는 계속 실패하던 상황이었어요. 존스홉킨스 병원에서 세포 배양 연구에 끈질기게 매달리던 조지 가이(George Otto Gey)에게 헨리에타 랙스의 종양 세포가 전달됐고, 세포는 살아남아 세포생물학과 관련 연구에 큰 발자국을 남기게 됩니다.

헬라 세포주는 백신 개발, 독성과 질병 연구, 유전자 지도 작성 등 수많은 분야에 활용되었어요. 심지어 핵폭탄과 우주 비행선에도 담겨 핵분열이나 우주 환경이 인간 세포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는 데 쓰였다고 하지요. 그러나 표본을 제공한 헨리에타 랙스 본인은 표본을 제공한지도, 자기 세포가 실험실에서 활용된다는 사실도 모른 채 자궁경부암으로 사망했고, 가족들도 관련 내용을 전혀 몰랐어요. 몸에서 떨어져 나온 세포는 계속 분열하며 영생을 누리고 과학계에서 명성을 얻었지만, 정작 그 세포가 어디에서 나왔는지에 대한 관심은 없었던 거지요.

젊은 과학, 의학 저술가였던 레베카 스클루트(Rebecca Skloot)는 과학 시간에 우연히 듣게 된 ‘헨리에타 랙스’라는 이름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가, 본격적으로 이 이름에 얽힌 역사를 탐구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랙스 가족의 고난에 가득 찬 삶, 인체에서 유래한 세포에 관한 연구 윤리의 문제, 이 모두를 엮고 있는 인종차별과 정의의 문제를 엮어 2010년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이라는 책을 씁니다. 책은 6년 동안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렸어요. 이 책 덕분에 존스 홉킨스 병원은 새 건물을 지으면서 헨리에타 랙스의 이름을 붙여 그 공헌을 기렸으며, 오프라 윈프리(Oprah Winfrey)가 헨리에타의 딸 데보라 역할을 맡아 2017년 동명의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지요.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

그림.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은 2017년 동명의 TV 영화로 재탄생했다. 그리 길지 않은 상영 시간 안에 50년의 시공간을 넘나드는 긴 책의 내용을 다 다룰 수 없었는지, 영화는 랙스 가족, 특히 헨리에타 랙스의 딸 데보라 랙스에 초점을 맞췄다. 영화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데보라 역을 맡은 오프라 윈프리의 열연이 빛났다. 출처: IMDb


생명윤리와 관련하여 얽힌 여러 문제를 이렇게 깊이 있게 담아낸 책은 만나보기 어려울 거예요. 물론 학술적으로 깊이 있는 내용을 다룬 명저는 많이 있지만, 생명과학 연구가 한 가족의 삶에 미친 영향을 이렇게까지 파고들어 이를 다시 사람의 이야기로 바꾸어낸 책은 잘 없지요. 2012년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은 국내에도 번역되었고 번역하신 분들의 정성이 돋보이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절판되었습니다.[3]

오늘은 이 책을 중심으로 헨리에타 랙스의 이야기를 간단히 살펴보려 해요. 그 이야기는 생명과학 연구가 계속되는 한, 반복되어 계속 말해져야 할 내용이기 때문이지요. 더불어, 책이 미처 다 다루지 못했던 고민을 좀 더 살펴보려 합니다. 조직 채취를 넘어, 개인 정보와 관련한 윤리적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를요.

 

헨리에타 랙스의 죽음, 헬라 세포의 탄생

1920년 태어난 헨리에타 랙스는 버지니아주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철강 산업이 발전한 볼티모어로 남편, 아이들과 함께 이주합니다. 이 지역에는 자산가였던 존스 홉킨스(Johns Hopkins, 1795~1873)가 건립한 존스홉킨스 병원이 있었죠. 1951년 자궁경부에 뭔가 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은 헨리에타는 동네병원을 찾았고, 성병으로 인한 불편감이 아니라고 본 의사는 존스홉킨스 병원으로 가볼 것을 권합니다.

노예해방 이후에도 여전히 미국에는 인종차별이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어요. 법이 모두를 동등하게 보호해야 하지만 인종은 서로 분리되어 있어야 한다는 “분리되어 있지만 평등하다(separate but equal)”라는 원칙이 깊이 뿌리내려 있었죠. 존스홉킨스 병원은 자선병원이었고 병원을 찾는 다수 환자는 흑인이었지만 병원 시설 또한 분리되어 백인과 흑인을 다르게 대우하고 있었어요.

흑인 환자가 무조건 나쁜 치료를 받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러나 의학 연구와 관련하여 흑인은 종종 실험 대상이 되곤 했고, 그것은 공익을 위한 당연한 선택으로 정당화되곤 했습니다. 1972년 사실이 밝혀지면서 미국 전역을 충격에 빠트린 터스키기 매독 실험은 항생제를 주면 나을 수 있는데도 질병의 자연사(어떤 개입이 없는 상태에서 질병이 어떻게 나타나고 사라지는지에 관한 관찰)를 연구한다는 핑계로 매독에 걸린 흑인들을 40년 가까이 관찰하기만 했죠. 20, 30년대엔 열등한 유전을 막겠다는 우생학적 이유로 가난한 흑인 여성을 대상으로 설명 없이 자궁절제술을 시행하고, 이를 초년 의사들의 수술 연습을 위해 활용한 미시시피 충수돌기절제술도 있었습니다.

연구 윤리라는 게 생긴 건 1970년대의 일이었고 이전 과학자들은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강하게 경도되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에요. 그러다 보니, 백인이라고 보호를 받고 흑인이라고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던 것은 아니긴 합니다. 그래도, 헨리에타가 흑인이었다는 사실이 어찌 보면 이 모든 상황을 복잡하게 만드는 출발점이었어요.

 

헨리에타 랙스의 사진

그림. 헨리에타 랙스의 사진. 사후 그가 남긴 세포는 세포생물학의 발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공헌을 했다. 스클루트의 책이 헨리에타 랙스의 이야기를 널리 알리면서 그를 기리기 위한 움직임도 구체화하였다. 존스홉킨스는 2010년부터 헨리에타 랙스 기념 강연을 열고 있으며 2018년 연구동을 지어 헨리에타의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 2014년 헨리에타는 메릴랜드 여성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존스홉킨스 산부인과에서 검사를 받은 헨리에타는 자궁경부암 확진을 받고 당시 암 치료법이었던 라듐 치료를 받기로 해요. 아직 방사선 조사기가 없던 당시, 방사성 동위원소인 라듐을 해당 부위에 일정 기간 유지, 방사선으로 암 조직을(물론 정상 조직도) 사멸하는 방법을 사용했던 것이죠. 당직의였던 로런스 와튼(Lawrence Wharton)은 종양 세포를 일부 떼어낸 뒤, 라듐 튜브를 환부에 고정하여 암 치료를 시작합니다.

떼어낸 조직은 조지 가이의 실험실에서 일하던 연구보조원 메리 쿠비체크(Mary Kubicek)에게 전달되었어요. 실험실은 세포를 배양하겠다며 수많은 조직을 대상으로 삼았지만 계속 실패해 왔었지요. 조지 가이는 실험 과정에서 배양을 위한 장치와 기법들을 하나씩 개발해 나갔습니다. 지금이야 세포배양 방법이 확립되어 있지만, 참조할 자료가 아무것도 없던 조지는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배양액도, ‘세포배양용 시험관 회전통(시험관을 천천히 회전시켜 배양액을 순환시키는 장비)’도 모두 조지가 개발한 것이었어요.

메리는 아무 기대 없이 늘 하던 대로 헨리에타의 조직을 잘라 시험관에 옮기고 배양액에 넣었습니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며칠 있다 죽으리라 예상하면서. 그 예상을 뒤집고, 헨리에타의 세포는 엄청난 속도로 자라나기 시작했어요. 정상 세포의 스무 배 속도로 분열하는 세포를 보며 가이는 역사상 최초로 죽지 않는 인간세포를 배양했음을 알게 됩니다. 헨리에타 랙스의 앞 두 글자씩을 따 헬라 표본, 이후 헬라 세포주로 불리게 된 불멸의 이름이 탄생한 순간이었습니다.

 

헬라 세포, 끝없이 분열해 지구를 뒤덮다

이 사실을 헨리에타 본인도, 가족도 아무도 몰랐어요. 당시 이런 일에 관해 피험자에게 설명해야 할 필요성을 아무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죠. 심지어 환자에게 동의를 받아야 하는 일이라고 당시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헨리에타가 얼마 안 있어 자궁경부암으로 사망한 뒤, 헬라 세포에 관한 관심 때문에 조지 가이가 시신을 부검해도 되는지 헨리에타의 남편에게 물어본 게 다였죠.

이렇게 헨리에타는 잊혔지만, 헬라 세포는 조지 가이의 손을 통해 전 세계로 보급되었으며, 곧 공장에서 수조 개 단위로 생산되게 되었습니다. 그 생산은 소아마비 백신 개발 때문이었죠. 미국에서 1916년부터 시작해 1952년 절정에 이른 소아마비 감염으로 인해 보고된 것만 57,628명이 감염되었고 이 중 3,145명이 사망했습니다.[4] 부모들의 공포 또한 최고조에 달했을 당시, 1952년 피츠버그대학교의 조너스 소크(Jonas Salk, 1914~1995)가 세계 최초로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했음을 발표했지요.

하지만 아이들에게 접종하기 위해선 안전성을 검증해야 했고, 검증을 위해 사용한 것이 헬라 세포였습니다. 아동에게 백신을 접종한 뒤 혈액을 채취, 혈청, 폴리오바이러스(소아마비를 일으키는 병원체), 헬라 세포를 섞는 것이죠. 만약 아동에게 면역력이 생겼다면 혈청이 바이러스를 무력화시킬 것이고, 세포는 안전할 것이었어요. 원체 헬라 세포 대신 원숭이 세포를 사용했지만, 원숭이 세포는 너무 비쌌고 당시 임상시험 계획이 2백만 건이었기에 그만큼의 원숭이를 구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헬라 세포는 엄청난 증식력을 가지고 있었고, 별도 처리를 하지 않는다면 폴리오바이러스에 취약했어요. 소아마비 백신 실험에는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었던 거지요.

이를 시작으로 헬라 세포는 여러 세포 실험에 활용되기 시작합니다. 과학자들은 헬라 세포를 온갖 바이러스에 노출했어요. 세포 냉동법을 개발하여 세포를 손상 없이 운송하고 보존할 수 있었던 것도, 세포배양기법이 표준화를 이룬 것도 모두 헬라 세포 덕이었습니다. 최초로 복제된 인간 세포 또한 헬라 세포였지요. 1953년 한 유전학자는 실수로 헬라 세포를 터뜨렸고, 그 결과 세포 안에 있던 염색체를 관찰할 수 있었어요. 인간 염색체가 46개라는 것을 밝힌 것 또한 헬라 세포의 공이었습니다.

 

면역 형광 기법으로 염색하여 촬영한 헬라 세포

그림. 면역 형광 기법으로 염색하여 촬영한 헬라 세포. DNA와 세포 섬유가 보인다. 지금까지 70,000개 이상의 논문이 헬라 세포를 언급하였고 관련 특허도 11,000여 개 등록되었다. 추산에 의하면 지금까지 분열한 헬라 세포는 총 5천만 톤이 넘는다고 한다.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어떤 연구자는 헬라 세포를 환자에게 주입하여 암에 대한 면역력이 생기는가를 관찰하는가 하면, 러시아는 헬라 세포를 위성에 실어 우주로 내보냈어요. 세포벽 처리를 하여 두 개의 체세포를 결합하는 체세포 융합(somatic cell fusion)에도 활용되어 인간-동물 잡종세포(hybrid cell)를 만드는 데 사용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너무 많이 퍼졌던 탓일까요. 서두에서 말씀드린 인보사 사태처럼, 헬라 세포는 발견되면 안 되는 곳에서도 발견되었어요. 사건의 배경을 살펴보면, 헬라 세포 이후 여러 세포가 배양되기 시작했고 이는 곧 세포주관리위원회(Cell Culture Collection Committee)의 발족으로 이어졌습니다. 위원회는 박테리아, 곰팡이 등 미생물 원형을 보관하던 미국형기준주관리원(American Type Culture Collection)이 세포주 또한 보관하도록 이끌었어요. 이후 여러 환자의 각기 다른 부분에서 채취한 세포가 세포주로 등록되어 나갔습니다.

1967년 유전학자 스탠리 가틀러(Stanley Gartler, 1923~)는 당시 여러 실험에 사용하던 열아홉 가지 세포주 모두가 글루코스-6-인산탈수소효소-A(glucose-6-phosphate dehydrogenase-A, G6PD-A)를 가지고 있음을 발표합니다.[5] 이 효소는 흑인에게서만 나타나며, 특히 미국 흑인에서 많이 발견되는 효소였죠. 여러 세포주는 백인으로부터 유래했다고 알려졌기 때문에 이런 결과는 일어나선 안 될 일이었어요. 결국, 가틀러는 헬라 세포가 다른 세포주들을 오염시켰다고 보고합니다. 이것은 그동안 암 치료 등을 위해 사용되었던 수많은 연구비가 헛되이 허비되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했죠.

 

랙스 가족의 눈물을 둘러싼 사회적, 윤리적 문제들

세포생물학 연구를 둘러싼 여러 가지 사건 때문에, 헬라 세포는 생물학계에서 엄청나게 유명한 세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랙스 가족은 여전히 이 사실을 알지 못했어요. 연구자들은 세포주 오염을 검사하기 위해, 즉 세포주가 헬라 세포로 오염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랙스 가족의 혈액을 채취할 때에도 동의를 받지 않았습니다. 가족들은 그것이 세포 확인을 위한 DNA 추출이 아니라 암 검사인 줄 알고 있었죠.

이들이 헬라 세포에 대해 알게 된 것도 며느리 보벳 랙스가 국립암연구소에 일하던 친구 남편에게 우연히 사실을 듣게 되었기 때문이었어요. 마침 헬라 세포를 가지고 연구하던 그는 세포가 헨리에타 랙스라는 여성으로부터 유래했다는 글을 읽었고, 아내 친구 성이 랙스라고 하니 신기하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하지만, 랙스 가족에게 그건 신기한 이야기가 아니라 끔찍한 이야기였어요. 가족 모르게 어머니의 세포가 20년 동안 살아있었다니.

1950년대만 해도 인간을 대상으로 한 의학 실험에서 피험자에게 이득과 손해에 관해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충분한 설명에 의한 동의(informed consent)라고 부르지요. 이 표현을 처음 사용한 것은 1957년 살고 대 스탠퍼드대학교 재판에서 변호사 폴 겝하드(Paul Gebhard)였어요. 방사선 검사를 받던 중 하반신 마비에 빠진 마틴 살고(Martin Salgo)에게 의사가 검사에 관련한 사항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기에 잘못을 저질렀다는 판결이 나왔던 거예요.

오랫동안 의사와 과학자들은 충분한 설명에 의한 동의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해 왔어요. 진료와 연구에서 설명할 시간도 없지만, 설명하면 환자도 피험자도 모두 도망갈 거로 생각했던 거지요. 의학의 발전을 위해선 어느 정도 정보를 감춰야 한다는 생각이 그 뒤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1970년대 현대 생명윤리가 탄생하고 여러 법적, 윤리적 논쟁을 거쳐 반전되었지만, 검사 등을 위해 채취된 세포를 보관하고 세포주로 확립하기 위해 환자에게, 특히 사망한 환자에게 설명과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지침으로 확립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입니다.[6] 아무도 헬라 세포의 보존을 위해 가족에게 동의를 받아야 한다거나, 관련 사항을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헬라 세포 때문에 헨리에타 랙스의 이름이 주목을 받고 모든 교과서에 실린 다음에도, 영국 BBC가 헨리에타와 헬라 세포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뒤에도.

앞서 연구, 그리고 당시 만연하던 인종차별에 관한 이야기를 잠깐 말씀드렸어요. 인종차별의 역사는 오랫동안 조용히 곪아 들어갔고, 이후 여러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합니다. 헬라 세포와 랙스 가족, 존스홉킨스 병원의 관계도 이 때문에 복잡해진 사례 중 하나일 거예요. 조지 가이는 헬라 세포를 요청하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눠주었으며, 공식적으로 존스홉킨스는 헬라 세포를 통해 이익을 취한 적이 없다고 발표했습니다.[7] 하지만 랙스 가족이 관련 사실을 존스홉킨스로부터 직접 전해 듣지 못했고, 가족이 헬라 세포와 관련된 내용을 대충이나마 알게 되었을 땐 이미 헬라 세포주가 너무 유명해져 있었던 때였기에 랙스 가족은 존스홉킨스가 어떠한 이익도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게다가, 오랫동안 차별받아왔던 기억은 헬라 세포 또한 착취의 결과물이라고 인식하게 했죠. 처음에는 터스키기 실험처럼 인체를 가지고 뭔가 알 수 없는 실험을 한 건 아닌지, 다음엔 병원과 과학계가 부당하게 이득을 취하고 있으며 정작 그 원천인 가족에겐 아무것도 나눠주지 않기 위해 사실을 숨긴 건 아닌지 생각했던 거죠.

물론 헬라 세포주를 공급하는 회사가 있으며 가격도 꽤 되기 때문에, 헬라 세포를 가지고 경제적 이득을 누리고 있는 사람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애초에 헬라 세포를 채취했던 사람도, 배양했던 사람도 경제적인 이득을 기대했던 건 아니에요. 굳이 그들의 욕망에 이름을 붙이자면 공명심이었겠지요. 최초로 세포배양을 한 사람이 되고자 한, 그 욕망을 비난할 필요는 없겠지요. 단, 그것이 성공했다면 그 성공을 가져다준 사람에게, 그리고 그 사람이 사망했다면 가족에게 감사를 표하고 영예를 함께 나눴어야 했어요. 존스홉킨스는 중간에 손을 내밀고자 했지만, 소송이 두려웠는지 발을 뺐고, 결국 스클루트가 책을 쓰기 위해 사비를 들여 취재해나가는 과정에서 가족들을 만나 치유의 과정을 겪을 때까지 상처는 낫지 못하고 더께가 계속 쌓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네, 스클루트의 글쓰기는 말 그대로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가 가족을, 특히 딸 데보라 랙스를 만나 모든 의심과 비난을 받아주면서 껴안는 과정은 그 자체로 심리상담 과정이었어요. 그 상처를 다 털어내었기에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은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고, 6년 동안이나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거겠죠.

 

다시, 헨리에타 랙스: 의학적 정보 앞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이 이야기는 인체 조직 또는 세포의 윤리적 지위에 관한 질문을 던졌어요. 최근 여러 지침이 조직 채취에서 환자와 가족의 동의를 받는 방향으로 확립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 질문은 개인 정보로 확장되고 있어요. 특히 개인의 유전자를 분석할 수 있고 이를 데이터베이스화하여 질병 위험도, 심지어 성격이나 특질의 발현 가능성까지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현재 과연 연구를 위해서 유전자 정보를, 더 나아가 개인 정보를 요청하는 것이 애초에 가능하냐는 질문이 제기되고 있지요.

이전 임상, 즉 의료행위와 의학 연구가 명확히 구분되던 시절이 있었어요. 현대 의료윤리는 그 산물입니다. 임상에 적용되는 의료윤리의 원칙이 있고, 의학 연구의 원칙이 있지요. 그사이에는 틈이 존재합니다. 연구윤리는 연구 지침의 표준화와 지식 획득의 엄밀성을 위한 것이었죠. 여기에서 탄생한 이중맹검 무작위 대조군 시험(double-blind randomized controlled trial)은 개별 환자의 처지에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에이즈 치료제의 효용성을 확인하기 위해 한 에이즈 환자에겐 치료제를, 다른 에이즈 환자에겐 가짜 약(placebo)을 준다는 것이죠. 물론 지금은 이렇게 확인하는 경우는 잘 없습니다만, 그런데도 개별 환자의 자율성과 복지를 최우선으로 하는 임상윤리와 연구윤리는 잘 들어맞지 않았어요.

 

학습 보건의료 시스템에선 연구와 임상이 맞물려 돌아가며, 정보기술의 발전은 점차 모든 의료 체계를 이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그림. 학습 보건의료 시스템에선 연구와 임상이 맞물려 돌아가며, 정보기술의 발전은 점차 모든 의료 체계를 이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이 시스템은 제한된 의료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며 정당한 의료자원 분배를 추구하기 위한 방법이다. 환자는 혜택을 얻기 위해 시스템의 발전에 참여할 의무를 지며, 이를 위해선 환자 정보의 공유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어디까지 어떻게 정보를 공유할 것인지에 관해선 아직 적절한 합의는 도출되지 않았다. 출처: 논문[8]


하지만, 의학 또한 변화해 왔지요. 우리는 이미 임상에서 나온 정보를 분석해 기존 치료를 수정, 개선, 발전시키는 학습 보건의료 시스템(learning health care system)의 시대에 들어서 있습니다. 현 시대에 환자의 정보 없이 의학은 발전하기 어렵습니다. 기술의 발전은 일부 영역에서 기존의 의학 연구가 확립해 온 느리지만 확실한 방법을 벗어나 빠르면서도 정확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기도 해요. 따라서 일각에선 환자는 더 나은 치료를 받을 권리를 누리는 대신, 반대급부로 사회의 이익을 위해 정보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어요.[9] 물론 이 경우 환자가 공개한 정보로 누군가 사익을 차리는 일이 벌어져선 안 되겠지요. 그렇다 해도, 정보 제공의 의무는 어디까지일까요?

헨리에타 랙스의 이야기는 이 모든 논쟁에서 유념해야 할 지점을 제시합니다. 조직은, 세포는, 유전자는, 정보는 어디까지 개인의 것일까요. 공익을 위해서 우리는 어디까지 이런 개인의 세포와 정보에 접근할 수 있으며 이 경우 그 개인에게 우리는 어떤 대가를 지급해야 할까요. 앞서 살핀 이야기는 아마 가능한 상황의 여러 가짓수 중, 최악으로 흐른 결과의 하나였을 거예요. 랙스 가족이 겪었던 고통과 엄연히 존중받고 예우받았어야 할 한 여성의 존재가 그저 이름과 세포주에 붙은 명칭으로만 남았던 오랜 시간을 생각할 때 말이죠. 그리하여 헨리에타의 이름은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경고 표식으로, 그리고 정보와 관련하여 의학의 발전이 맞고 있는 전기(轉機)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행해야 할지 알려주는 지침으로 계속 남아있을 거예요.

 

참고문헌

1. Stepanenko AA, Dmitrenko VV. HEK293 in cell biology and cancer research: phenotype, karyotype, tumorigenicity, and stress-induced genome-phenotype evolution. Gene 2015;569:182-190.
2. 박현정. 인보사 ‘핵심 세포’ 처음부터 없었다? 한겨레 [Internet]. 2019년 6월 6일 [cited 2019년 7월 24일]. Retrieved from: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96953.html.
3. Skloot R. The Immortal Life of Henrietta Lacks. 김정한, 김정부, 옮김.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 파주; 문학동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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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혁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치의학교육연구센터)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소아치과 전문의가 된 다음, 새로 공부를 시작해서 국내에서 의료인문학 박사를, 미국에서 의료윤리 석사를 취득했다. 철학에 바탕을 두고 의학에 관한 서사적 접근과 의료 정의론을 연구하고 있다. 현재 <한겨례>에 칼럼을 연재 중이며, 의료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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