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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생명과학 이야기] 문화로서의 과학, 그리고 사회 -(하)-
Bio통신원(곽민준)
© Chelsea Rovers F.C. 홈페이지 캡처
얼마 전부터 공중파의 한 채널에서 유명 국내 배우가 잉글랜드 축구 13부 리그 팀의 구단주로 활동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방영 중이다. 한국인 배우가 영국축구팀 구단주가 되었다는 사실도 흥미로웠지만, 이보다 시청자들의 이목을 더 끌어당긴 것은 잉글랜드 축구리그에 무려 13부리그가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풋볼 피라미드라고도 불리는 잉글랜드 축구리그 시스템은 여러 레벨의 리그들 사이의 승격 및 강등이 이뤄지는 계층적 구조를 가진다. 그리고 이 시스템에는 무려 20개의 레벨에 150여 리그가 참여하며, 총 7000여 개의 축구 클럽이 포함되어 있다. 물론 하부리그들은 아마추어 및 지역 리그에 해당하지만, 그래도 엄청난 숫자라는 사실은 여전하다. 오직 2개의 프로리그 간 승강제가 존재하는 한국의 축구리그와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확연히 느껴진다. 축구종가 영국만큼은 아니지만,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의 다른 유럽 축구 강국들 역시 대부분 리그 수와 참여 클럽 수에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상대적 축구 약체들과 비교해 압도적인 모습을 보인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인데, 스포츠에서 해당 종목을 제대로 하는 이의 수가 많은 국가는 높은 확률로 그 종목의 강국이며, 국가 대항전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둔다. 이 단순하고 당연한 원리는 과학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과학을 제대로 배우는 이가 많으면 그 사회의 과학 수준이 올라가며 국가 과학기술 경쟁력 역시 높아진다. 그리고 이 사실은 앞선 두 번의 연재에서 주장한 ‘문화로서의 과학’이 사회에 필요한 이유를 설명한다.
국가와 사회의 후원을 받는 과학 연구들은 사회가 원하는 가치와 성과를 생산해내야 하는 의무를 지닌다. 그러나 과학적 과정 그 자체가 아닌 결과물의 사회적 가치에만 집중하는 풍토는 지나친 성과주의 과학을 탄생시켰으며, 이로 인해 과학의 정체성과 방향성은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 따라서 과학의 올바른 발전을 위해서는 사회가 과학을 하나의 놀이 또는 취미로 받아들이게 하여, 과학을 후원하는 이들이 과학적 결과가 아닌 과정에 집중하도록 만들어 성과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지금의 분위기를 바꿔야만 한다. 그러나 과학의 올바른 발전을 위해서라는 이유는 문화로서의 과학이 ‘과학’에 중요한 이유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의 관점에서 문화로서의 과학의 필요성은 따로 있다.
사회에게 문화로서의 과학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학을 제대로 하는 이가 많으면 그 사회의 과학 수준도 올라간다.’라는 앞 문단의 교훈을 기억해야 한다. 엘리트 위주의 교육은 단기적 성과를 내는 데는 안성맞춤이다. 그러나 한두 명의 영웅이 사라지면 사회의 수준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진다. 김연아의 존재가 우리나라를 피겨 강국으로 만들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스포츠계는 생활체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여러 경험을 통해 해당 종목의 사회적 관심과 많은 참여가 장기적인 성과로 이어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과학도 마찬가지다. 과학고, 과학기술특성화대학으로 길러낸 한두 명의 천재가 노벨상을 받는다고 한국 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뛰어난 석학의 죽음이 곧 연구단의 해체로 이어지는 지금의 엘리트 중심 과학이 성과와 사회적 가치 생산에 집중하는 지금 과학의 방향성에 매우 적합한 방식이라고 생각되지도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과학적 성과를 내고, 국가의 과학기술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과학의 결과와 성과가 아닌 과정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 즉, 사회 구성원들이 과학적 과정을 즐길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 문화로서의 과학이 필요하다.
사회가 과학을 즐기고, 시민들이 과학을 놀이와 취미로 여기게 되어 얻을 수 있는 장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름을 알린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는 과학은 지식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태도 혹은 방법이라 말한다. 과학을 한정된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되며, 우리가 숨 쉬고 생활하는 모든 것이 과학이라 주장한다. 과학을 잘 모르는 이들은 과학을 지식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지식은 과학의 여러 단계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전통적인 과학에서 지식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관찰, 가설설정, 실험, 피드백, 공론화 등의 복잡한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하며, 이 체계적이고 아름다운 과정이야말로 진정한 과학의 의미다. 다시 말해 과학은 그럴싸한 하나의 설명을 만들어내는 과정이자 방법이며, 이는 어느 분야에나 적용될 가능성을 가진다.
우리는 살아가며 다양한 선택의 기회를 부여받는다. 모든 이는 자신의 선택이 합리적이기를 바란다.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이유를 들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한다. 과학은 인간의 감각으로 느낀 자연 현상을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과정이다. 설명의 대상이 자연 현상이 아닌 사람으로 바뀐다면 인문학도 과학일 수 있고, 사회로 바뀐다면 사회학도 과학일 수 있으며, 개인이 처한 상황과 선택으로 바뀐다면 인생이 곧 과학일 수 있다. 다시 말해 제대로 된 과정으로서의 과학을 아는 개인은 조금 더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선택으로 인생을 채울 수 있다. 그리고 제대로 된 과정으로서의 과학을 아는 사회는 조금 더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선택을 통해 진보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사회가 과학을 문화로 즐기게 된다면 사회와 국가는 원하는 성과인 과학기술경쟁력을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더욱 현명하고 지혜로운 과학적 판단을 통해 효율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따라서 문화로서의 과학은 과학과 사회 모두의 발전을 위해 꼭 거쳐 가야 할 필수적인 단계다.
과학의 활용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과학적 지식이 아닌 과정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삶의 지혜가 사실은 더 클지도 모른다. 그래서 필자는 과학이라는 시스템이야말로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아름답고 놀라운 시스템을 과학자라는 일부 집단이 독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모든 이들이 과학을 사랑하고 즐길 기회가 주어져야 마땅하다. 그러니 과학자들이 나서야 한다. 내가 재미있는 연구를 나 혼자 하는 것도 좋지만, 행복은 나누면 배가 된다고 하지 않는가? 과학적 과정의 아름다움을 과학을 후원하는 사회의 구성원들과 나누는 것이야말로 과학도 행복하고 사회도 행복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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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통해 나의 지식과 생각을 표현하는 게 즐거운 평범한 생명과학도입니다. "일상 속 생명과학 이야기" 를 통해 일상생활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는 말과 행동에서 비롯된 생물학적 물음에 대한 답과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생활의 지혜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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