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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밖 과학읽기] 사람의 자리: 과학의 마음에 닿다 (전치형 저/ 이음)
Bio통신원(LabSooni Mom)
아이가 유치원에서 그려온 그림을 내밀었다. 우리 집과 식구들을 그린 그림을 보며, 내가 물었다. “와우, 잘 그렸네! 우리 식구가 몇 명이지?” “7명 이잖어. 엄마!” 아이가 그린 그림에는 사람은 5명밖에 없었다. “어떻게 7명이야? 우리 식구는 5명 이잖어.” “여기 봐봐. 아빠 방에 구글이랑 거실에 구글이랑 다 합하면 7명 이잖어.” 몇 달 전 아이가 세뱃돈을 모아서 산 구글 AI 스피커 2개를 아이는 가족의 일원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것저것 물어보고, 심심하면 장난도 치고, 칭찬도 하고, 가끔은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구글 스피커는 아이에게는 “사물”이 아닌 “개체”로 인식되고 있었다.
[사람의 자리, 과학의 마음에 닿다]는 과학과 사회의 이음 역할을 하는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전치형 교수가 지난 3년간 쓴 칼럼을 모은 책이다. 인공지능, 자율주행차, 로봇, 블록체인 등 지난 수년간 급속도로 변화한 과학기술로 인해 사회와 그 구성원의 적응 속도 또한 급속히 빨라지고 있으며, 사회 한 켠에서는 이러한 변화로 인해 인류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위험성도 경고하고 있다. 과연 우리는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사람의 자리를 잃을 것인가? 나는 아이의 ‘사물’을 ‘개체’로 인식하는 흐름을 목도하면서 과학기술로 인한 인류의 변화는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현재 진행형임을 그리고, 우리 가족의 자리를 기계에게 내어주었다는 사실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었다. 전치형 교수는 그의 여러 칼럼들을 통해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해 잃어버리거나 소멸해버리는 사람의 자리가 아닌, 지켜야 하고 존중해야 하는 사람의 자리가 있음을 일관된 맥락으로 이야기한다.
“2000년대 후반 한국에서 과학기술 옆에 놓은 사람의 자리는 어색하고 불안하고 위험하다. 사람의 자리를 확인하고, 지키고, 가꾸는 것은 과학과 사회 모두의 일이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사람처럼 일하는 미래형 기계는 인간의 편리성과 인간의 대체성을 위해서 존재한다. 그러나, 기계가 수행하는 성실한 임무 뒤에는 기계들의 정확성, 신속성, 지속성을 위한 또 다른 자리가 존재한다. 저자는 그 자리를 “메인테이너의 자리”라고 이야기한다. 기술을 운용하고, 관리하고, 보수하는 사람을 뜻하는 ‘메인테이너’는 완전히 스스로 작동하는 시스템을 꿈꾸는 먼지가 끼지 않는 센서, 부식되지 않는 재료, 끊어지지 않는 연결, 고장 나지 않는 기계로 된 세계는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사람의 자리이다.
홍콩 태생의 사우디아라비아 ‘로봇 시민권자’인 ‘AI 로봇 소피아’에게 명예 시민권을 주고, ‘전자 인간’의 법정 지위를 부여하는 것보다 이 사회에선 난민, 이주노동자, 장애인, 성소수자 등의 인간의 권리에 대한 성찰과 기계가 아닌 사람의 자리를 먼저 마련해 주어야 한다.
저자는 [과학자의 몽유도원도]라는 글에서 한국과학창의재단의 후원을 받아 시행한 ‘과학 하는 삶’ 공모전을 소개한다.[1] 과학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사실은 생각보다 더 지루하다.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라고 외쳤던 번쩍거리는 생각들이 폭죽처럼 터져 나오는 일상이 아닌, 지루하고 반복되는 일상의 연속이다. 과학자는 그렇게 데이터를 모은다. 과학자는 그렇게 연구를 위해서 팁 수백 개를 꽂으며, 시약장을 꽉꽉 채우며, 집기들을 설거지 하며 데이터를 모으는 일상에 쉼표를 넣는다. “왜 과학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저는 거기서 자유를 발견했으니까요”라는 대답은 정량적 성과에 대한 압박과 불안한 미래 앞에 서있는 과학도들에게 진정한 과학자의 자리를 마련해야 하는 이 사회의 숙제를 남겼다.
“사람을 자유롭게 하고 사람에게 까닭 없는 기쁨을 주는 과학,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과학, 그런 오래된 과학을 하려는 사람들이 아직 남아 있다.”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 활동을 했던 저자는 세월호 희생자 동수의 아버지에게 연간 SCI 논문 5만 편을 넘게 출판하는 한국 과학계가 ‘이 나라에서 왜 배 한 척이 가라앉았는지’를 설명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세월호가 인양되어 바로 세워졌던 (직립) 순간의 의미는 ‘배의 손상 상태를 측정하고, 무게중심을 계산하고,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보강재를 삽입하고, 안전교육을 하고, 크레인을 옮기고, 와이어를 걸고, 40도를 들고, 60도를 들고, 마침내 작업 완료를 선언하는 것’, 즉 엔지니어들의 역할을 통해 사회의 바로 세움과 위로와 치유를 보여주었다고 저자는 이야기하며 결국 무엇을 위한 과학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조금 더 살 만한 곳에서 조금 더 나은 과학을 실천하고, 그 과학이 다시 조금 더 나은 세계에 대한 상상을 만들어내는 선순환 속에서 과학과 정치는 서로를 이롭게 할 수 있다. 과학을 통해 살만한 곳을 만드는 일은 지금 여기에서 가능하다.”
‘과학하다’라는 표현처럼, 동사로 쓸 수 있는 건, 과학을 하는 건 연구를 하고 데이터를 내고, 논문을 발표하고, 상업화하는 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닌, 여성, 청년, 성소수자, 장애인, 이민자 등을 포함한 모두를 위한 과학,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과학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고, 과학자의 본질적인 ‘해결사’의 사유를 정치를 통해 나타낼 수 있는 이유가 된다.
이 책의 칼럼들은 과학기술의 발전, 사회의 변화들을 통한 이 사회의 문제들을 과학의 객관식 정답이 아닌 인문학의 주관식 답을 내어준다. 아마 이 글들을 읽는 이들의 상황과 직업에 따라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사유는 다 다를 것이다. 그러나, 그 중심에는 ‘사람’이 있고, ‘사람의 자리’가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한 사회 속에서 과학기술과 사람의 자리를 함께 마련하는 데에는 당면한 문제에 대한 공동의 인식, 일하는 사람과 환경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지원, 과학기술의 영향을 받게 될 이들의 삶에 대한 윤리적, 문화적, 정치적 고려가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과학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그리고, 묻고 싶다. “당신은 당신의 과학으로 어떤 사람의 자리를 마련할 수 있는가?”
※ 주석
1. 과학하는 삶 공모전 사진 http://scienceon.hani.co.kr/150493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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