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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癌)에게서 배우다] <63회> 유전형 vs 표현형
Bio통신원(바이오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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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커 정육면체 1)
미국 국립암연구소(NCI; National Cancer Institute)는 수년전부터 정밀의료(Precision Medicine) 구현 노력의 일환으로 암환자의 유전형(Genotype) 및 표현형(Phenotype)을 연결하는 양방향 임상시험을 추진하고 있다. 유전형 중심의 관점(Genotype to Phenotype)은, 암환자의 유전형을 분석하여, 어떤 유전형이 특정 항암제에 잘 반응하는지(표현형)를 알아보는 것이다. 이와는 상반된 표현형 중심의 관점(Phenotype to Genotype)은, 드물지만 특정 항암제에 특별히 잘 반응하는(표현형) 암환자들(Exceptional responders)을 찾아 이들의 유전형을 거꾸로 분석하여(Retrospective genomic analysis) 그 분자적 특징을 알아내는 것이다.2)
암에 대한 문제뿐만 아니라 생명체의 어떤 현상을 이와 같이 다각도의 관점에서 두루 섭렵하며 탐구하는 것이 유익하다는 것은 일찍이 도킨스(C. R. Dawkins)도 <확장된 표현형(The Extended Phenotype)>이란 책에서 네커 정육면체(Necker cube) 예를 들어 강조한 바 있다.
“이 책이 네커 정육면체가 지닌 두 번째 면을 드러냈길 바라나, 네커 정육면체는 원래 방향으로 돌아오려는 습성이 있고, 그렇게 번갈아 나오길 계속한다. 생명의 단위로서 개체가 가진 특별한 점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적어도 네커 정육면체의 두 번째 측면으로 사고하는 관점과 더불어 체벽을 통과해 복제자의 세계를 보는, 그리하여 확장된 표현형으로 넘어가는 훈련된 눈으로 유기체를 더 명료하게 살펴야 한다.”3)
그의 대표적 저서인 <이기적 유전자>를 읽을 땐 그 내용을 이해하기가 너무 힘들었는데, 그 후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 <확장된 표현형>을 읽고는, 개체 중심뿐만 아니라, 유전자 중심 관점으로 유기체를 보고, 그 확정된 표현형까지 살펴보자는 일관된 논지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유전자에게 ‘이기적’이란 ‘능력’까지 부여하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도킨스는 비버가 안전한 이동을 위하여 나뭇가지를 잘라 댐을 만드는 것도 확장된 표현형의 사례로 드는데, 나도 딸아이의 특정 행태 한 가지를 이와 유사한 관점에서 고찰해보고자 한다.
고3인 딸은 어느 날 갑자기 채식을 하겠다고 선포했다. 잠시 그러다 말려니 생각했었는데, 현재까지 만 4년을 넘게 그러고 있다. 그것도 생선은 물론 우유나 달걀도 먹지 않는 엄격한 채식(Veganism)이다. 궁금해서 이유를 물어보니, 채식주의자들이 올린 동물을 잔인하게 죽이는 내용의 유튜브 영상을 보고나니 도저히 고기를 먹을 수 없더란다. 이후 딸이 끼니 때 주로 먹는 음식은 김치볶음밥이나 토마토스파게티 정도뿐이다.
심증이 가는 유전적 요소가 있긴 하다. 할머니는 지금까지 생선은 드시지만 육고기는 드시지 않는 채식을 하신다. 어렸을 때 시골집에서 닭을 직접 잡아먹는 것이 너무 싫으셨단다. 나는 어렸을 적 아버지가 즐겨 드시던 돼지고기 냄새가 역겹고 비위가 상해 육고기를 먹지 않다가 대학에 들어가서야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도킨스의 유전자 중심 관점에 의하면, 동물의 어떤 유전자가 사람을 채식주의자로 만들어 살아남고자, 그 이익을 극대화 하고자 하는 것일까? 이 또한 그 유전자의 확장된 표현형 사례가 될 수 있을까?
채식주의자 표현형과 연관된 유전형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으나, 표현형 효과는 확실히 유전자와 환경의 공동 산물임에 틀림이 없다. 그리고 여기에 도킨스의 말은, 채식만 하는 자식의 건강을 걱정하며 자책하는 부모에게, 위안을 준다.
“유전적 원인과 환경적 원인은 원리상 서로 차이가 없다....중요한 점은 유전적 영향이 환경적 영향보다 더 되돌리기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어떤 일반적인 이유도 없다는 사실이다.”4)
김치볶음밥도 정성이 중요하다. 양파 먼저 볶고, 김치 넣고 볶고, 그다음 밥, 순서대로 넣고 볶아야 맛있다.
채식이지만 끼니만큼은 꼬박꼬박 챙겨먹는 자식을 두고 괜한 걱정을 했나 보다:-)
※ 참고
1) https://zetawiki.com/wiki/%EB%84%A4%EC%BB%A4_%EC%A0%95%EC%9C%A1%EB%A9%B4%EC%B2%B4
2) https://dctd.cancer.gov/majorinitiatives/NCI-sponsored_trials_in_precision_medicine.htm
3) p461, <확장된 표현형>, 리처드 도킨스, 을유문화사
4) p45~46, <확장된 표현형>, 리처드 도킨스, 을유문화사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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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어설픈 휴머니스트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살아가는 평범한 직장인. 바이오분야 전공 대학졸업후, 제약사를 거쳐, 현재는 십수년째 암연구소 행정직원으로 근무중. 평소 보고 들은 암연구나 암환자 이야기로부터 나름 진지한 인생 교훈을 도출해 보고자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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