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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협주곡 2-43] 과학자의 사회 참여: 협력의 네트워크 만들기
오피니언 김찬현 (2019-06-03 10:47)

도서관에 가면 수많은 책들이 십진분류법에 따라 가지런히 분류되어 있다. 특정 분야에 대해 여러 책을 통해 알고 싶다면, 그 분야의 책장을 찾아가면 된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학술·연구기관이나 조직도 이처럼 촘촘히 설치된 칸막이로 분류되어 있다. 같은 건물에 비슷한 분야끼리 모여 있으며, 그 안에서도 연구 대상의 성격에 따라 더 세분화된다. 현대의 학제는 바로 이런 학문적 분업을 통해 각 분야를 더 깊이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분야의 테두리 내에서 특수하게 형성된 문화와 규칙으로 지식 생산과 공유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연구실 바깥으로 나와 광장에서 사회적인 문제와 마주하는 순간 문제는 복잡해진다. 도서관의 책장과는 달리 현실 세계는 생물학의 세계와 사회학의 세계, 화학의 세계와 정치학의 세계, 물리학의 세계와 경제학의 세계 같은 식으로 명확히 나뉘지 않고 중층적으로 존재한다. 특히 과학기술이 정치사회적 이슈에 깊게 관여된 경우, 이러한 중층성을 제대로 꿰뚫어 보고 겹겹이 쌓인 문제들을 하나하나 짚어 보기란 지난한 일이다. 에너지·환경 문제, 유사과학을 비롯해 과학기술정책에 관련된 수많은 문제를 어떤 한 분야의 전문가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이유다. 사안을 여러 시각에서 입체적으로 조명해 해결안을 도출할 수 있는 협력의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각종 통계는 한국이 저신뢰 사회임을 보여준다. 사회 구성원이 그 정당성에 쉽게 동의할 수 있는 권위가 부재하기 때문에, 시민 개인이 대안적 권위를 스스로 찾기 위해 소모하는 사회적 비용이 크다. 한가지 불행 중 다행인 점이 있다면, 그래도 과학자 혹은 학자 집단이 다른 전문가 집단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높은 신뢰를 받고 있다는 통계 결과다. 다만 제도적 정당성을 바탕으로 한 깊은 신뢰보다는 기술적인 측면에 의거하고 있는 바가 큰 것처럼 보이는 점은 아쉽다. 시민들의 의식 수준이 향상되며 평등주의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전문가 집단이 신뢰를 회복하고 시민사회와의 연결고리를 강화할 방안이 시급하다.

최근 인터넷 기반의 사회연결망(SNS)이나 언론 기고를 통해서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과학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다. 다만 과학자 집단은 상대적으로 건강하며 다른 집단이 더 큰 문제라는 논조는 지양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자면 유사과학이 확산되는 데 가장 큰 책임이 언론에 있다는 식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이들은 기자들이 제대로 된 과학자를 찾아보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쉽게 인터뷰에 응하는 소수 (사이비) 과학자들의 왜곡된 의견을 시민에게 전한다고 말한다. 얼핏 타당한 지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균형 잡힌 비판이라고는 할 수 없다. 언론의 입장에서는 사회적 발언을 꺼리는 과학자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각 학회가 대표성을 띈 실효적인 연락 창구를 운영하지 않는 데에서 오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과학자와 언론인이 수시로 협력할 수 있는 공동의 채널 혹은 협의체를 모색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어느 한쪽에 책임을 귀속시키려는 태도는 설령 맞는 부분이 있을지라도 상호 불신을 심화하고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을 지연시킬 뿐이다.

또 한가지 유의해야 할 점은, 문제를 일으키는 집단의 중심에 과학 지식으로부터 소외된 일반인이 아니라 특정 분야에서 전문가의 권위를 인정받은 과학자, 공학자가 있다는 사실이다. 가끔은 의사도 여기에 포함된다. 과학 일반에 대한 연구 능력을 인정하는 학위는 없다. 오죽하면 ‘전공을 벗어나면 그냥 (동네) 아저씨, 아줌마’라는 자조적인 우스갯소리가 있겠는가. 물리학 박사는 생물학 박사가 아니다. 그러나 과학자라는 말이 쓰일 때는 이처럼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 자주 망각된다. 스스로를 물리학자나 생물학자보다 과학자라고 칭하길 좋아하며 권위를 세우는 인물은 이러한 허점(虛點)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거나 몰지각(沒知覺)의 함정에 빠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자신의 전문 분야를 넘어선 영역에 대해서는 일반인과 거의 다를 바가 없음에도, 과학 일반의 이름을 빌려 자신이 전문성을 지니지 않은 영역에 대해서도 부당한 권위를 획득하기 때문이다. 과학을 빙자한 엉터리 학술 활동이나 사기 행각의 많은 사례가 여기에서 비롯되는데, 재미있는 점은 그를 비판하는 학자들도 마찬가지 함정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이러한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떤 주장을 할 때 ‘과학’이라는 거대한 이름은 되도록 조심스럽게 쓰는 편이 좋다. 모든 분과를 아우르는 과학자는 존재하지 않을 뿐더러, 세분화된 학제가 지금까지 쌓아 올린 성과도 각 분야마다 특색을 지니는 제한된 합리성과 방법론 위에서 가능한 것이었음을 떠올리자. 이같은 사실을 존중할 때, 각 분야의 전문가는 학제 간 교류나 연구가 아니더라도 지금보다 더 자주 만나 과학기술과 사회에 대한 고민을 나눠야 한다. 여기에 일반 시민들까지 더해서 서로의 차이에 대한 인식과 함께 더 넓은 범위의 다양성을 아우르는 유대와 협력으로 나아갈 때, 과학기술의 합리성을 하나의 중요한 축으로 성숙한 시민사회를 이루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획책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와 사회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추구하고 동료 시민에 대한 존중을 견지하는 시민적 소양이 전제된다.

참고문헌
[1] 김수정 외, 한국사회 전문가의 권위와 신뢰에 관한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2018)
[2] 김위근, 언론 신뢰도에 대한 시민 인식 조사 (한국언론진흥재단, 2018)
[3] 김찬주, 재야과학자들, 그리고 과학과 비과학의 경계 (아태이론물리센터, 2011)
[4] 이상욱, 제도화된 신뢰의 유지와 과학연구의 객관성 (대한화학회, 2008)

 

 

김찬현

김찬현(과학 활동가, 통번역사)
일본의 학부와 대학원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에서 진행된 반수소(反水素) 원자 합성 연구에 참여해 석사학위를 받은 후, 반도체(半導體) 기업에서 소자 연구원으로 근무해 개발에서 양산으로 이어지는 산업 현장을 경험했다. 현재는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으며, 과학기술정책 및 과학 커뮤니케이션에 관심을 두고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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