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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윤리를 배우다] 9회 - 연구부정에 대한 단상
Bio통신원(박수경)
필요한 것과 옳은 것
5월은 스승의 날이 있습니다. 스승의 날을 맞이해서 마땅히 제자가 교수된 선생님을 존경하고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든다면 참 좋겠지만, 여러 기사에 회자된 것처럼 연구부정에 연루된 교수님들의 사례를 뉴스로 접하면서 괜히 모든 대학교수님들에 대한 평판과 신뢰가 떨어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특히나 눈에 띄었던 부정 사례는 본인의 자녀를 대학 입시나 해외 유학에 유리하게 하기 위해서, 연구 수행을 실제로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논문에 공저자로 실었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학자의 양심은 어디에 있는지 왠지 씁쓸하고 부끄러웠습니다. 그런 연구실의 대학원생은 얼마나 불공평함과 불의함을 느꼈을까요? 사회에 대한 분노를 더 쌓아가지는 않았을까요? 주관적인 부분이 있겠지만 연구부정을 행하지 않아 청렴하고, 학문적으로 나 인격적으로나 좋은 교수님들에 대해서는 별점을 매겨 연구실 앞에 붙여놓으면 학생들이 학문함에 있어 교수님을 정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해봅니다. 그러나 이것도 평가를 위한 허울을 만들어내는 도구가 되지 않을까 하여 상상을 접어봅니다.
연구부정의 여러 사례 중 몇 가지 흔한 사례들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사례는 연구부정사례집에서 찾은 것들인데, 교수가 국가과제 연구비로 학생에게 지급한 인건비나 인센티브를 회수하여 공공의 통장을 만드는 일, 학생이 원하지 않는데도 사적인 일을 시키는 일, 논문이나 기타 문서를 대필하게 하는 일, 연구 성과나 문서를 위조하는 일 등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실제 이러한 일들이 여러 명목으로 연구실 내에서 필요하다는 이유로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학생들의 연구부정 상담사례에 관한 논문과 몇 개 사이트에서 해당 주제 글에 대한 댓글들을 보면 어떤 조직에서는 매우 청렴하게 연구하는 것이 문화여서 약간의 연구부정도 용납되지 않는가 하면 어떤 조직은 연구부정에 가담하지 않는 사람이 도리어 이상한 사람이 되는 문화인 곳도 있습니다. 이러한 사례를 통해 연구 문화가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연구 수행에 있어 논문이나 특허와 같은 가시적인 성과는 중요한 평가지표가 되기 때문에 문서 위조나 대필이, 표절 같은 일은 심각한 부정행위로 받아들이는 측면이 큽니다. 반면 인건비나 인센티브를 회수하여 공공통장을 만드는 일이나 사적인 일을 하는 것에 대하여는 교수 제자 관계가 어떠한 지에 따라, 연구 문화가 어떠한 지에 따라 옳고 그름의 기준의 격차가 어느 정도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옳고 그름의 기준 : 콜버그의 도덕 발달 단계
제가 위에 제시한 사례는 다소 자주 접하는 연구 부정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상황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이야기하기보다 우리가 어떤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있는가를 콜버그의 도덕 발달 단계를 통해 간단하게 한 번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콜버그의 도덕 발달 단계에 관하여 학문적으로 다루고자 하면 해당 학자의 이론에 대해 더 많은 고찰이 필요하지만, 다양한 윤리 교육과 교육학과에서 학부생을 대상으로 기초적으로 다루어지는 수준 정도로 내용을 다루겠습니다. 또한 이론에 대한 반론과 보완점에 대해 몇몇 책들에서 다루고 있지만, 도덕 발달에 있어 빠지지 않고 다루어지는 이 이론을 선택하여 활용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같은 상황일지라도 각 사람의 판단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에 대해 숙고하여, 대학원생이나 연구자분들이 직면하는 여러 상황에서 윤리적 판단을 내릴 때 참고하실 수 있도록 내용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콜버그는 도덕 발달 단계 이론에서 6단계로 옳고 그름을 정하는 기준에 따라 도덕 발달 단계를 구분합니다. 1단계는 단순히 처벌을 회피하기 위해 복종합니다. 이는 생존을 위한 도덕성 발달로 가장 초보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2단계는 상이나 칭찬을 받기 위해 도덕적 행위를 하는데, 개인적 쾌락주의에 머무는 단계입니다. 3단계에서는 대인관계와 평판이 도덕 판단의 기준이 됩니다. 이를 위해 도덕성을 발달시킵니다. 주위에서 착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을 좋아합니다. 4단계에서는 법과 질서를 준수하고 규칙에 예외를 잘 두지 않는 도덕성을 지닙니다. 5단계가 되면 사회적 입장에서 공공의 정의를 위해 객관적 입장에서 도덕적인 내용을 판단합니다. 공공성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됩니다. 6단계가 되면 개인적인 양심의 원리에 입각하여 옳고 그름을 판단합니다. 인생에서 개인의 양심에 따른 보편 윤리에 대해 확신을 가집니다.
연구 윤리 준수에서의 현재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과연 5월 연구부정 사례의 기사에서 다룬 연구 수행을 하지 않은 자녀를 논문에 넣어준 대학 교수님들은 어떤 판단 기준에 근거하여 도덕적 선택을 하고 있을까요?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1단계 수준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단순히 처벌받는 것이 싫어서 연구윤리를 준수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처벌만 아니라면 얼마든지 법과 규정, 혹은 윤리적 고려 없이 원하는 욕구대로 행할 수 있는 정도의 도덕 발달 상태와 같습니다.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대체적으로 연구윤리를 지킬 때 어떤 발달의 수준에서 생각하고 있을까요? 5단계 수준처럼 공명정대한 사회를 만들고 연구 문화를 만들기 위해 연구 윤리를 준수하는 것일까요? 혹은 학자의 개인적 양심에 따라, 불합리한 규칙에는 개정을 요청하기도 하고 합리적인 윤리 규약은 존중하며, 무엇보다 타인의 양심까지도 존중하기 때문에 연구윤리를 준수하며 연구를 하고 있을까요?
간혹 일상에서 조우하는 연구부정이라고 불리는 사례들을 경험해보면 부정에 참여하는 어느 누구도 지극히 악하다고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누구나 누군가에게는 어느 한 가정의 사랑받는 부모요, 자식이요, 스승이요 제자이기도 합니다. 이런 평범한 사람들이 과연 전략적으로 꾀를 내어 하지도 않은 연구에 참여했다고 논문과 특허에 이름을 올리기도 하고, 연구비를 유용 및 횡령하고, 대학원생을 협박하고 연구부정을 저지르는 것일지 의아해질 때도 있습니다.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히히만>이라는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악이란 정말 평범한 사람에게서도 발견되는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악의 평범성)
대학 연구윤리 확립이 필요하다면
교육부와 과학기술정통부가 <대학 연구윤리 확립 및 연구 관리 개선방안>을 공동으로 발표하였습니다. 연구부정을 저지른 교수는 국가사업에서 영구 퇴출되며, 대학 내에서도 관리를 강화하자는 자정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학자는 현시대의 행동하는 양심으로 지성과 청렴의 선생님이 되기를 바래봅니다. 신문에서 다룬 일부 교수들 사례에서 살펴보는 것처럼 많이 알수록 꾀를 내어 불법을 저지르는 것 같아서 참 안타까웠습니다. 아마도 이번에 밝혀지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누군가 이 일을 누설할까 노심초사하고 죄책감에 시달린다면 다행히도 양심이 기능을 하고 있어서 부정 행위에 대해 개인적 고통을 치르고 있는 셈일 것입니다.
정부에서 개선 방안을 마련할 때 단순히 연구자들이 처벌이 두려워 연구윤리를 지키려 하는 수준에 그치는 방안이라면 조금 더 고민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법과 규정으로 규제하는 것은 여러 면에서 한계가 있습니다. 또한 연구윤리를 잘 지키는 연구자에게 상을 주고 평판을 좋게 하는 것도 결국은 타인의 시선에 의존하게 되므로 조직마다 도덕 판단의 기준이 변화무쌍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바라건대 이왕이면 많이 배운 학자층이라면 콜버그의 도덕 발달의 5-6단계 수준으로 나아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또한 개인과 타인의 양심을 존중하기 위해서 연구 윤리를 지키거나 혹은 잘못된 문화는 개정해나가는 연구 문화 자체를 개선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적 지혜와 대안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 현장이 어떠한지, 학자와 연구자, 학생들의 의견을 잘 경청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지금 연구실에서 콜버그의 도덕 발달 단계를 통해 본다면 어떤 기준으로 윤리적 태도를 취하고 계신가요.
참고자료
마이클샌델(2010), 안진환・이수경 역, 왜 도덕인가?, 한국경제신문
한나아렌트(2006), 김선욱 역,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길사
콜버그(2000), 문용린 역, 콜버그의 도덕성 발달 이론, 아카넷
양선아기자(2019.05.20.), “교육부, 서울대・연세대 등 연구 부정행위 의혹 15개 대학 특별감사”, 한겨레
2018년 대학 연구윤리 실태조사 보고서, 한국연구재단
EBS 아이의 사생활 제2부 도덕성 - 콜버그의 도덕 발달 단계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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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윤리를 배우다>는 생명과학(Biology)을 전공하고 생명윤리학(Bioethics) 박사수료생으로, 인간의 존엄과 생명 가치를 존중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써의 생명윤리학의 다양한 주제들을 다룹니다. 저자는 생명윤리교육, 유전자윤리, ELSI(Ethical, Legal, Social Implication) 연구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으며 이 연재에서는 누구나 마주하기 쉬운 생명의료기술과 관련된 생명윤리 주제들을 편안한 글을 통해 살펴보고 연구자 및 대중들과 함께 생각하는 장을 제공해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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