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스토리를 담고 있는 연재를 만나보세요.
[신경 쓰이는 생물학 이야기] 신경 쓰이는 돈 이야기: 언제나 민감한 그 이름, 『대학원생 인건비』
Bio통신원(이원석 (칼 베르니케))
브릭이나 하이브레인의 게시판 등지에서 고학력자들의 키배(키보드배틀)가 늘상 벌어지는 주제 중 하나가 바로 '대학원생 인건비' 아닐까 한다. 한쪽(대학원생+포닥)은 돈도 쥐꼬리만큼 주면서 일만 죽어라 월화수목금금금 시킨다, 시간외수당과 4대보험 법정휴가 등은 챙겨줘야 하는거 아니냐 등등... 다른 쪽(교수)은 학생은 직장인이 아니며 장학금은 월급이 아니다, 능력도 열의도 없으면서 권리만 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등등... 끝없는 키배의 수렁 속에 빠져들게 된다. 그런데, 대학원생들은 과연 학생일까, 아니면 직장인일까?
학부생은 풀 타임 학생으로 등록금을 내고 (일부는 장학금을 받긴 하지만...) 그 돈의 댓가로 교수의 강의 및 논문지도를 받아 전공 지식을 쌓고 학사 학위를 받는 것이 자명하다고 할 수 있다. (일부는 연구실에 연구생으로 들어가 '알바'를 하면서 돈을 좀 받긴 하지만...) 반면,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면 많은 경우는 교수가 진행하는 연구과제에 "학생연구원" 등의 신분으로 편입되어 과제 수행에 대한 인건비 지급 대상이 된다. 적어도 형식상 장학금이 아니라 인건비가 맞고, 대부분의 국가 연구과제 연구비를 집행하는 기관인 한국연구재단에서 공식적으로 인건비를 책정하고 있다.
비공식적으로는, 소위 "랩비"를 두는 연구실도 많다. 연구재단 연구비 분류 중 "업무추진비/연구추진비"라는 항목이 여기에 가장 가까운 용도일 것이다. 연구원들에 대한 식사제공이라든가, 사무용품 등의 각종 비품 구매, 또는 회의 장소 대여료 등 기타 잡다한 비용 처리 등이 이것으로 분류된다. 다만 이럴 경우 연구과제마다 집행 가능한 금액이 다를 수 있고 참여연구원으로 편입된 학생들이 서로 다른 과제에 속해 있을 경우 같은 일을 하고도 다른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공정성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기에 부득이 “기타잡비”를 한데 모아서 (잔금 바닥나는) 순서대로 처리하기도 한다. (이걸 교수가 직접 안하면 이래저래 랩장 or 랩매니저 머리 빠지는 소리가 들린다)
얼마 전까지 이것 땜에 각종 게시판이 시끌시끌했던 대학원생 과제별 임금 상한선은, 참여율 100% (주 40시간)을 기준으로 하여 그 이상의 연구참여로 인한 격무를 덜고자 마련한 제도적 장치로 알고 있다. 다만 그러한 제도적 제한은 실제 현장에서는 지켜지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본다. (실험하다가 다음 실험 이어서 하려면 밤샘질이나 주말출근도 하게 되는 것이 바이오 연구 아니던가.) 결국 최근에는 상한선이 하한선으로 바뀌어 참여율 100% (주 40시간)일 경우 최소한 지정된 금액 이상을 인건비로 지급해야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제도가 그렇게 바뀐들 대학원생들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거나 임금이 늘어날 가능성은 적지 않을까 싶다. 현실적으로 대학원생들의 목표는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논문을 내고 졸업해서 좀더 대우가 좋은 계약직 찍고 나서 궁극적으로는 정규직 직장으로 넘어가고자 하는 것 아니겠는가. 물론 학문에 대한 열정과 앎의 추구는 회사 안 가고 학계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소양일 테지만, 그래도 그러려면 우선 생활이 가능할 만큼은 돈을 벌어서 먹고는 살고 볼 일이다. 하지만 필자도 연구과제 신청을 해 본 경험에 따르자면 인건비 빼고 나면 실제로 사용 가능한 연구비 자체가 충분한 경우가 드물고 상당히 빡빡하다. 결국 그러다 재료비 모자라면 교수가 개인 돈 내고 필요한 물품 더 사게 되기도 한다.
문제는, 애당초 최저임금에 가까운 박봉으로 책정되어 있는 연구과제 인건비 체계는 차치하더라도, 대학에서의 연구가 당장의 수익 실현이 되지 않는 일이라는 것이 아닐까. 그 중 교내 벤처 차려서 연구 결과물로 돈 벌고 있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많은 경우 “돈 되지 않는 일”에 학문적 호기심이 동기가 되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하고 있다. 필자는 지금 여기서 그러한 일의 중요성이나 정당성 당위성 등을 따지자는 게 아니라, 소위 “상아탑 (우골탑이 아니라…)”이라고 하는 대학원 연구실의 연구주제 자체가 수익 창출을 목표로 하는 일들이 아니기 때문에, 대한민국이라는 기술 발전과 수익 실현을 매우 중요시하는 나라에서 특히나 고액 연봉 받기 힘든 직종이 바로 대학원생들을 포함한 기초과학분야의 연구원들 아닐까 싶다. 심지어 대한민국에서는 과학(science)과 기술(technology)을 합쳐서 ‘과학기술’이라는 합성어를 만들어 부르며 “국가발전의 초석”으로 대우한다. 결국 그 와중에 돈 안 되는 쌩기초분야는 그런거 갖다가 어따 써먹냐고 상당히 무시당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예쁜꼬마선충이라든가…예쁜꼬마선충이라든가…예쁜꼬마선충이라든가…) 결국 거기다가 인건비 많이 쏟아붓는 게 세금 내는 사람들이나 연구과제 지원하는 기관이나 연구 수행하는 교수들이나 아깝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기초연구과제의 인건비는, 그걸로 다른 수익이 창출되지 않고 그냥 써버려야 하는 돈이니깐. 하지만, 우리 나라 기초과학 대학원의 현실을 보면, 고학력 시니어 테크니션과 같은 고임금의 숙련 노동자들보다는 저임금의 학생+포닥들을 노동 집약적으로 갈아넣어 그걸로 연구결과 뽑아먹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석박사 이상의 고학력 정규직 연구원에 들어가는 월급+4대보험+복지비 생각하면 학생이나 포닥이 가성비가 좋긴 하다.
관련하여 어떠한 해결책들이 있을까? 사실 정답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최근 미국 NIH에서는 포스닥 월급을 높이고 대신 적게 뽑으며 기간 제한을 강화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동시에 (전임)연구조교나 고급 테크니션 등 테뉴어 트랙 정규직 교수를 목표로 하지 않는 리서치 스탭의 고용률을 높이자는 제안도 있었다. 하지만 필자 생각에도 그건 미봉책에 불과하다. 정규직도 아니고 포닥 연봉 좀 올려준들, 당장 위치가 불안정한데다가 평생직장으로 삼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학부 마치고 취업이 되지 않아 고학력 저임금 노동자가 필요한 대학원에 들어가고, 이제는 대학원을 마치고 취업 시장에 나가 보더라도 뾰족한 수가 없이 그대로 저임금에서 시작하게 된다. 특별히 통계를 돌려본 것은 아니지만, 2019년 초 여러 구인공고를 보면 박사 마치고 포스닥 초봉이 (경력 말고 신입이다) 많은 경우 대략 연봉 3000만원~4000만원 사이로 나온다. 석사급 (신입) 연구원은 거기서 연봉을 500만원 정도 빼면 대략 비슷하리라 본다. 그런데 요즘 한국의 웬만한 대기업 학부 4학년 마친 직후의 대졸 초임 연봉이 얼마인지는… “크래딧잡” 같은 기업 정보 사이트에서 직접 한 번 검색해 보시라. (연봉 5만불 넘게 주는 미국 포닥은 일단 생각하지 말아보자.)
결국 “수요-공급의 법칙” 따위 들먹일 것도 없이 현재의 기업 수요에 비해 기초과학 전공의 석박사급 인력들이 지나치게 많기 때문에 고령의 고학력 저임금 노동자가 양산되는 악순환은 당분간 끊어지기 어려울 것 같다는 암울한 소리나 해야 할 것 같다. 학교도 애초에 연구과제 금액부터 충분치 않다 보니 참여 연구원(대학원생)들에게 많은 월급을 주기 어렵다. 생활 유지가 어려울 만큼의 박봉에 불만을 표하느냐, 아니면 수익 창출도 못하고 일도 서투른데 그 정도 주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 해야 하느냐의 키배질 따위는 다른 이들의 몫으로 둔다 하더라도.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기사 오류 신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