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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토픽] 올리버 색스, 『모든 것은 그 자리에』 - 첫사랑부터 마지막 이야기까지
오피니언 양병찬 (2019-04-17 09:22)

사후에 출판되는 에세이집 『모든 것은 그 자리에』는, 신경학자 올리버 색스가 과학작가의 판테온(pantheon)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더욱 공고히 해준다.

올리버 색스, 『모든 것은 그 자리에』 - 첫사랑부터 마지막 이야기까지

올리버 색스가 세상을 떠난 지도 어언 3년이 넘었다. 영국의 신경학자이자 작가인 그는 2015년 8월, 9년 전 포도막흑색종(uveal melanoma)으로 시작된 전이암(metastatic cancer)에 끝내 무릎을 꿇었다. 그는 이미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고 전의를 상실한 듯 싶었다. 그러나 그의 비전(vision)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오는 4월 23일 미국(참고 1)과 한국(참고 2)에서 동시에 발간되는 에세이집 『모든 것은 그 자리에』에서, 색스는 살아생전 82년 동안 경험한 기쁨과 절망을 상세히 설명한다.

과학의 대중화에 앞장선 인물들 중에서도, 색스는 늘 자신의 저술에 '피'와 '삶'과 '역사'를 가득 채우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산문체(prose)라는 현미경을 이용하여, 먼저 자신의 삶에서 긴박한 순간을 클로즈업한 후 서서히 줌아웃하며 삶과 과학 전체를 담아내는 명민함은, 이번에 출판되는 최신작에서 절정을 이룬다. 예컨대 "화학의 시인, 험프리 데이비"에서, 그는 어린 시절 유명한 영국의 사상가에게 매료된 이유를 자세히 설명한 후 독자들에게 자신의 '보편적인 보석'을 선사한다: "그러나 과학은 하나부터 열까지 인간이 하는 일로, 갑작스러운 분출과 정지, 낯선 일탈을 동반하며 유기적·진화적·인간적으로 성장한다. 과거의 티를 벗고 성장하지만 과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않는다. 우리가 어른이 되어도 유년기에서 완전히 탈피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다양한 잡지에 이미 출판되었거나 일부 미발표 저술들이 포함되어 있는 이 책의 진행과 레이아웃을 살펴보면, 색스의 전형적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매력적인 필치를 과시하는 것은 물론 '어쩌면 제목과 편제(編制)가 이처럼 잘 들어맞을까!'라는 감탄을 자아낸다. 에세이, 서평, 회고록이라는 다양한 장르의 저술들로 구성된 컬렉션은, 모든 저술들을 세 개의 섹션("첫사랑", "병실에서", "삶은 계속된다")으로 나눠 '진정한 그 자리에' 배치함으로써, 색스의 생애를 세 가지 주요시기로 나눈다. 그리고 각각의 광범위한 섹션에서, 모든 소품들은 '긴 안목의 자기성찰'에서 '간결하고 효과적인 비네트(vignette)'로 리드미컬에서 흘러간다.

늘 그렇듯, 색스는 자신의 전문분야인 신경과학 영역 밖의 과학분야에 대해 사색하는 것을 겁내지 않는다. "거기 누구 없소?"에서, 좋아하는 책에서 읽은 '외계생명 탐색'과 관련된 사고방식에 기반하여 우주생물학 주제에 대한 문학적 소양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나로 말하자면, 성격이 급해서 간혹 과학소설을 들여다본다. 그러고는 특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웰스의 소설책을 들춰보게 된다. 비록 100년도 더 전에 쓰였지만, '달의 아침'에는 신새벽의 신선한 느낌이 오롯이 담겨 있어, 나는 그 부분을 읽을 때마다 맨 처음 읽었을 때 품었던 무척 시적인 생각을 떠올리곤 한다. 마침내 외계생명체를 만난다면 어떤 기분일까?"

색스의 팬들은 『모든 것은 그 자리에』에 실린 미발표 저술에 관심이 쏠릴 것이다. 그렇다면 걱정일랑 붙들어매기 바란다, 그런 호기심은 충족되고도 남음이 있을 테니. 예컨대 "삶은 계속된다"에서, 색스는 자신의 운명을 지근거리에서 소상하게 설명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앗아갈 암(癌)과 씨름하고 있었던 데다,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가 프라이버시와 친밀한 인간관계를 앗아가는 현실에 당혹하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냉혹함'에서 '희망'으로 기어를 변속하여, 색스는 '물리적 종말'이라는 암흑을 비틀어 한줄기 빛을 이끌어낸다. 지구의 기후와 인류의 집단기억 및 상호작용이 침식되고 있음을 한탄한 후, 그는 거의 불가능할 정도의 따뜻한 마음(tender heart)을 일별하게 해준다. "나는 좋은 글쓰기·미술·음악을 높이 평가하지만, 품위, 상식, 선견지명, 불행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에 대한 관심 같은 인간의 미덕을 바탕으로 수렁에 빠진 세상에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은 과학뿐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을 하직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나는 다음과 같은 점을 신뢰한다. 인류와 지구는 생존할 것이고, 삶은 지속될 것이며, 지금이 인류의 마지막 시간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왕성한 글쓰기 경력이 우리 문화에 깊숙이 각인된 지 오래지만, 색스는 이번 에세이집을 통해 자신의 전설을 더욱 강화한다. <뉴욕타임스>에서는 1990년 '임상적 색채를 띤 책들'을 거시적으로 리뷰하여(참고 3), 색스를 일컬어 "현대의학의 계관시인(poet laureate)"이라고 한 것으로 유명하다. 외람된 말이지만, 나는 색스에게는 그보다 위대한 묘비명(epitaph)이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과학저술의 셰익스피어'라고 해도 충분하지만, 색스와 비교될 저자들은 지금껏 없었고 현재에도 없다고 생각한다. 암이 그의 신체를 앗아갔을망정, 그의 음성만큼은 여전히 독자들의 귓가에 쟁쟁하게 울리고 있음을 기쁘게 생각한다.

※ 참고문헌
1. https://www.penguinrandomhouse.com/books/538576/everything-in-its-place-by-oliver-sacks/9780451492890/
2.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88307607
3. https://www.nytimes.com/1990/04/01/books/good-books-abut-being-sick.html

※ 출처: The Scientist https://www.the-scientist.com/reading-frames/a-review-of-everything-in-its-place--first-loves-and-last-tales-65654

 

아름다움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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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병찬 (약사, 번역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은행, 증권사, 대기업 기획조정실 등에서 일하다가, 진로를 바꿔 중앙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약사면허를 취득한 이색경력의 소유자다. 현재 서울 구로구에서 거주하며 낮에는 약사로, 밤에는 전문 번역가와 과학 리포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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