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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생명과학 이야기] 살기 좋은 사회에 살고 있나요?
오피니언 곽민준 (2019-04-17 09:34)

살기 좋은 사회에 살고 있나요?

“인터넷을 보던 중 40대 자폐증 아들을 살해한 어머니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의 비극적인 결과가 오롯이 피고인에게 그 모든 책임을 전가할만한 성격의 것이 아니라는 사정을 고려하여야 한다’고 판결의 근거를 덧붙였다. 장애인에 대한 보호와 지원이 부족한 우리 사회의 현실이 안타까운 사건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사건의 잘잘못과 판결의 올바름 여부를 떠나 21세기 사회에 아직도 소외되고 차별받는 이들이 존재하는 것이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 사건의 판결에 대해 재판부는 구체적으로 “장애인복지법과 장애인 건강권 및 의료접근성 보장에 관한 법률은 발달 장애인과 그 가족의 보호와 지원을 위한 각종 규정을 두고 있으나, 이 사건 기록상 발달 장애인인 피해자와 그 가족인 피고인이 이들 규정에 따른 충분한 보호와 지원을 받았음을 인정하기 어렵고, 위와 같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의무가 단지 선언적인 것에 그치지 아니함은 명백한데, 결국 위와 같은 사정이 피고인으로 하여금 막다른 골목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함에 있어, 영향력을 미쳤을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추단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사회가 법률에 보장된 만큼 발달 장애인과 그 가족들에 대한 보호와 지원에 애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위의 안타까운 사건이다. 우리가 사회를 구성해 살아가는 것은 결국 그 안에서 더 많은 이익을 얻고 더 행복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위의 사건을 보면 모두가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생물의 모든 이타적인 행동은 따지고 보면 결국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이기적 행동이라는 사실은 이제 중고등학생들도 아는 상식이 됐다. 그럼 이타적 행동, 특히 협력과 사회적 행동은 개인에게 어떻게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 지구상에 다세포 생물이 등장하기 이전, 단세포 생물들은 서로 군체를 이루며 생활했다. 이로 인해 개체들은 군체 내에서 번식 가능성을 높일 수 있었고, 군체의 다른 개체들 옆에 숨는 효과를 통해 포식자에게 잡아먹힐 확률도 낮췄다. 게다가 군체는 구성원들의 먹이 저장에도 큰 도움이 됐다. 이처럼 단체생활을 통해 단세포 생물은 생존율과 번식률을 높일 수 있었고, 결국 세포 간 연접을 통해 하나의 개체로 진화하기에 이르렀다. 단세포 생물들의 협력이 생존과 번식의 측면에서 개체에 이익이 된 것처럼 사회 역시 다양한 방법을 통해 구성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조금 매정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결국 우리가 사회를 구성해 살아가는 것은 사회적 행동과 협력이 주는 장점들 때문이고 말이다. 

 흥미롭게도 사회적 행동과 협력은 생존에 불리한 환경에 처했을 때 더 효과적이다. 아래의 왼쪽 그림은 잔디가 쉽게 자라는 환경에서 협력하는 소들과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소들의 생존율을 비교한 그래프다. 초반에는 협력하는 소들이 더 잘 살아남지만, 집단의 대부분이 협력할 때,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소들의 생존 가능성이 급격히 증가하고 결국에는 이기적인 소들만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편 오른쪽 그림은 잔디가 자랄 수 있는 조건을 두 배 더 엄격하게 했을 때 두 그룹의 생존율을 비교한 그래프다. 앞의 결과와는 달리 서식지의 환경이 생존에 불리하게 작용하자 이번에는 협력하는 소들이 훨씬 살아남기에 유리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시뮬레이션 결과는 서로서로 돕는 사회적 행동은 위기에 처했을 때 특히 효과적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잔디가 쉽게 자라는 환경에서 협력하는 소들과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소들의 생존율을 비교한 그래프  

 이번에는 협력과 사회적 행동의 또 다른 효과를 알아보기 위해 뻐꾸기의 양육 전략을 살펴보자. 뻐꾸기의 한 종인 Crotophaga major는 기본적으로 협력하여 알을 키운다. 여러 마리의 암컷들이 같이 알을 품고 서로의 새끼에게 먹이를 먹이며 양육한다. 그러나 모든 개체가 아름다운 양육 품앗이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개체들은 협력하는 대신 다른 암컷들을 속여 자신의 새끼를 키우게 하는 전략을 사용한다. 이들은 몰래 다른 개체의 둥지에 자신의 알을 낳아 둥지의 주인이 그 알을 자신의 새끼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협력할 때와는 달리 새끼의 양육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 이런 차별화된 속임수 전략은 conspecific brood parasitism(CBP)이라 불린다.

 많은 과학자는 한 종 내에서 협력과 CBP 두 가지 상반된 새끼 양육 전략이 공존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해해 왔다. 그러던 지난 3월 한 연구팀이 CBP는 포식자에 의해 둥지가 파괴된 경우에만 나타나는 특이한 행동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팀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번식기 초반에는 모든 개체가 함께 협력하여 새끼를 키운다. 그러나 포식자가 나타나 일부 둥지를 파괴하고 새끼를 잡아먹게 되면 상황이 바뀐다. 새끼를 낳을 기회를 잃은 새 중 어떤 개체들은 정직하게 다음 기회를 기다리지만, 어떤 개체들은 다른 새들의 둥지에 자신의 알을 낳는 이기적인 행동을 보인다. 연구자들은 관찰 결과를 토대로 두 양육 전략의 공존을 설명하는 여러 가설 중 ‘CBP는 암컷이 극단적인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행하는 마지막 선택’이라는 설명이 맞는 답인 듯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가설이 맞는다면 모든 새는 협력하여 새끼를 키우는 행동을 첫 번째 원칙으로 여긴다. 그러나 포식자에 의해 둥지가 파괴되는 것과 같은 돌발상황이 발생해 자식계획에 차질이 생기면 일부 개체들은 전략을 바꾼다. 다른 개체에 자신의 새끼를 몰래 맡기고 키우게 하는 배신과 속임수로 말이다. 

CBP는 포식자에 의해 둥지가 파괴된 경우에만 나타나는 특이한 행동

(출처: Nature News&View) 

앞서 소개한 소의 협력 행동에 관한 시뮬레이션 결과와 바로 전 문단의 관찰 결과는 모두 생존에 불리한 극단적인 환경에 처했을 때 동물의 대응 생존전략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전략의 방향은 정반대다. 첫 번째 예시에서 소들은 사회적 행동을 통해 답을 찾았다. 반대로 두 번째 예시 속 뻐꾸기들은 속임수를 통해 답을 찾았다. 다시 말해 소에게는 사회가 답을 줬고, 뻐꾸기에게는 사회를 벗어나 배신하는 행동이 답을 줬다.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살아남기 힘든 상황에 부닥쳤을 때 답을 줄 수 있는 사회인가, 아니면 구성원들을 살아남기 힘든 상황으로 내몰고 결국은 배신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사회인가? 다시 처음의 사례로 돌아가 생각해보자. 재판부는 어머니가 자폐증 아들을 살해한 사건의 책임이 우리 사회에게도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사회 속에서 답을 찾지 못한 사건의 가해자 어머니가 선택한 방법은 모두가 약속한 법을 어기는 행위, 그중에서도 가장 잔인한 살인이었다. 적어도 이 사례에서 우리 사회는 궁지에 처한 자들에게 답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약속을 어기고 도망쳐 나올 수밖에 없는 좋지 못한 사회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참 안타깝게도 말이다.

 힘들 때 옆에 있어 주는 친구가 진짜 좋은 친구라고들 말한다. 사회도 마찬가지 아닐까. 힘들고 극단적인 상황에 부닥쳤을 때 구성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회야말로 정말 살기 좋은 사회일 것이다. 힘들 때 도망쳐야 하는 사회가 아닌, 힘들수록 더 의지하고 믿게 되는 살기 좋은 사회로 나아갈 방안에 대해 고민하며 그래도 힘차게 하루를 시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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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민준 (POSTECH 생명과학과)
글을 통해 나의 지식과 생각을 표현하는 게 즐거운 평범한 생명과학도입니다. "일상 속 생명과학 이야기" 를 통해 일상생활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는 말과 행동에서 비롯된 생물학적 물음에 대한 답과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생활의 지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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