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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협주곡 2-36] 과학기술계에 리더가 없는 이유
오피니언 김우재 (2019-04-04 10:45)

조동호 청문회, 과학기술계 리더의 민낯

조동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임명 철회됐다. 마땅한 구심점을 갖지 못한 과학기술계에서, 과기정통부장관은 과학기술인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최고권력 대통령에게 이를 전달할 수 있는 가장 큰 권력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후보자가 와셋/오믹스 등의 가짜학회에 참석했고, 그 사실이 밝혀지자마자, 문재인 정부는 정권 출범 이래 최초로 임명철회라는 강수를 뒀다. 좋게 보면 정부가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적 실천을 한 것이지만, 나쁘게 보면 과학기술계 리더에게 자진사퇴의 기회조차 주지 않고 과학기술계 전체를 무시한 것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이런 사태에 대해 과학기술계가 우울증에 걸렸다는 표현을 한다⁠1. 박희범 기자는 "우울증 걸린 과학기술계... 정부 책임은 없나"라는 기사를 통해 조동호 후보의 임명철회에서 청와대의 과오를 부각시킨다. 특히 조동호 후보처럼 과학기술계에서 신망이 두터운 인물이 낙마했기에, 그런 감정 표출이 일견 이해가 가기도 한다. 하지만, 조동호 후보가 보여준 이번 청문회는 조동호 후보 개인에 대한 지지와 비판 이전에, 그동안 과학기술계가 피상적으로만 생각하던 현실을 일깨우는 계기로 해석할 필요가 있고, 그러는 편이 훨씬 건설적이다. 그건 바로 과학기술계에 당장 대통령 후보로 나가도 괜찮을 리더가 단 한명도 없고, 그런 리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적도 없다는 사실이다.

중간계급이라는 낙인

얼마 전 문재인 정부의 과학자로 불러도 될 염한웅 과기자문회의 부의장의 동아일보 인터뷰를 읽었다⁠2. 인터뷰의 핵심은 문재인 정부에서 과기자문회의의 자문을 요청하지 않는다는 푸념이다. 문재인 정부의 과학기술정책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구호부터 시작해서 박기영 과학기술혁신본부장 후보 지명, 박성진 중소벤처과학기술부장관 후보 지명 등을 통해 이미 여러 번 논란에 올랐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문재인 정부의 과학기술정책에서 중장기적 비전과 철학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는 미국에서 유행하는 신기술을 따라잡거나, 제대로 검증도 되지 않은 수소경제 등으로 가장 철저하게 검증하고 고민해야할 과학기술정책에서 벌써 크게 실기한 것으로 평가된다.

염한웅 부의장은 아마 이런 점을 비판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염한웅 부의장이 현재 국가로부터 받은 그 권한과 지위를 이용해 도대체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알고 싶다. 단순히 회의를 진행하고 관료들에게 주도면밀하게 제어 당한 것 이외에, 염한웅 부의장이 그 사이를 뚫고 어떻게든 과학기술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할 방법을 마련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느냐를 묻는 것이다. 과기자문회의 부의장이라는 자리는, 과기정통부 장관처럼 막강하지는 않지만, 대통령을 의장으로 둔 국가자문회의이며, 이를 통해 국가의 수장은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실천할 의무를 지게 된다. 그런 자리의 부의장까지 임명된 이가, 고작 신문사 인터뷰를 통해 대통령을 국민에게 고자질하고 있다면, 과학기술계 리더로서의 자격은 없다. 연구자로 우수했다는 근거가, 리더쉽에서도 우수하다는 근거가 되지 않는다.

언젠가 박성래라는 과학사가는 과학기술인들에게 중인의식에서 벗어나라는 제안을 한 적이 있다⁠3. 그는 이렇게 말한다.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우리나라에 군사정권이 들어선 것에 대해 매우 창피한 생각이 들곤 했어요. 그 후 우리나라 과학기술자들은 정치사회적 문제에 왜 관심이 없는가에 대해 의문을 갖고 살펴보니 조선시대 중인의식에서 그 연원을 찾게 되었습니다. 어느 사회든 인문사회계와 이공계의 문화가 약간 다르긴 한데 우리나라 과학기술자들에게는 이 중인의식까지 겹쳐 여러 사회 모순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자들도 과학기술사를 주의 깊게 살펴보면서 사회 현상에 깊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과학기술인이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중인처럼 취급받고 있다는 해석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런 중인의식이 과학기술인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지긋지긋한 중인계급을 벗어나 한국사회의 리더가 되려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생각한다.

정치를 두려워하는 유일한 전문가 집단

20세기 초의 영국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부딪히고, 세계대전으로 혼란스러운 사회였다. 아마 한국의 군사독재 시절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기에 영국의 캠브리지를 중심으로 한 과학기술인들은 사회를 향해 발언하고, 과학기술을 통해 사회를 건강하게 발전시키는 실천에 게으르지 않았다. 과학자라는 단어로 우리는 겨우 아인슈타인, 뉴턴, 다윈, 왓슨과 크릭을 떠올리지만, 20세기 초중반의 영국에서 과학자는 존 데스몬드 버널, 존 홀데인, 랜슬롯 호그벤, 하이먼 레비, 조지프 니덤, 패트릭 블래킷 등을 상징했다⁠4. 이들은 영국에서 68운동의 영향을 받아 시작된 급진 과학 운동에 영향을 주었고, 영국에서 저명한 과학자들이 과학과 관련된 다양한 사회 문제에 개입하는 전통을 확립했다. 과학자는 사회문제와 정치를 외면하는 상아탑의 지식인이 아니라, 과학기술인으로서의 훈련을 통해 그 문제에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활동가였던 셈이다.

이제 눈을 돌려 한국을 보자. 한국의 과학기술인에겐 커다란 족쇄가 하나 있다. 그건 정치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암묵적인 학계의 동의다. 과학기술인의 훈련 속에는, 과학기술 연구의 내용이 정치 등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워야 하며, 진실만을 추구해야 한다는 원리가 들어 있다. 과학기술 연구의 내용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왜곡하는 건 당연히 피해야할 비윤리적 행위다. 하지만, 국가의 과학기술이 건강하게 발전하고, 과학기술 현장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되고, 한국사회가 좀 더 과학적으로 합리적인 공간이 되도록 노력하는 정치적 행위까지 금지된 건 아니다. 연구에서의 정치적 행위와, 과학기술계의 이익을 위한 정치적 행위 사이에는 교집합이 없다. 그래서 정치인을 위해 연구를 왜곡한 4대강 종사 과학기술자나 옥시라는 기업의 이익을 위해 데이터를 조작한 과학기술자들은 정치가 아니라 그저 위법을 저질렀을 뿐이다.

한국의 과학기술이 20세기 후반부터 급속히 발전한건 모두가 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과학기술계는 그에 걸맞은 리더쉽을 준비하지 못했다. 그건 과학을 정치의 도구로 사용한 박정희 정부의 향수에, 여전히 한국 과학기술계 원로들이 젖어 있다는 걸 보면 잘 알 수 있다. 과학기술인은 정부가 주는 그 알량한 돈에 만족하며, 길들여진 개로 살아갈 필요가 없다. 과학기술이 한국사회를 발전시킨 것만큼의 정치적 권력을 요구해야 하며, 그런 권력을 사회적으로 책임질 정무적 감각과 윤리적 기준을 세워야 한다.

한국사회에서도 이제 유명한 과학자들이 대중매체에 노출되고 있고, 이들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과학대중화에 감사하고 있지만, 여전히 이들은 '정치'라는 키워드 앞에서 무력하다. 왜냐하면 과학기술인은 상아탑에서 밤을 세우며 국가 발전을 위해 연구에나 매진하던가, 아니면 국민 눈높이에 맞는 쉬운 과학으로 그들을 즐겁게 해주는데에나 필요한 존재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걸 타파하자고 한 두명의 과학기술계 인사를 국회 비례대표로 임명하는 행위 또한 정치권력이 던져주는 떡을 받아먹는 꼴에 지나지 않는다.

당당한 사회 속의 시민이 되기

중요한 것은 주인의식이다. 한국사회는 과학기술의 발전 없이는 지속가능할 수 없다. 과학기술인은 바로 그 발전의 주인공이며, 그 권리를 요청할 충분한 자격이 있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준비되었는지는 한번 물어볼 필요가 있다. 당당하게 정부를 비판하고, 정당한 정치적 발언을 서슴지 않고, 등을 보이며 앞에 서서 과학기술인의 이해를 대변하는 원로과학기술인을 본 적 있는가. 이미 과학기술계 원로의 이미지란 한 뼘도 되지 않는 연구실에서 대학원생의 연구비를 가로채고, 성희롱, 성폭행, 자녀논문 대필 등으로 얼룩져버렸다. 과학기술계의 우울증을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는 얼마나 젊은 과학기술인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했고, 우리의 리더를 뽑아 과학기술계를 위한 다양한 실천 활동을 해왔는지 반성해 봐야 한다.

당장 대통령 후보로 내세워도 될 과학기술인이 보이지  않는다면, 지금이라도 시작해야 한다. 누구도 과학기술계의 이해를, 과학기술인보다 더 잘 대변할 수 없다. 새로운 리더쉽을 원한다면, 과학기술계가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성찰하고 실천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나 정권의 입맛에 맞는, 과학기술계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에만 관심이 많은 그런 버러지 같은 리더나 갖게 될 뿐이다. 과학기술인이 먼저 시민사회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누구도 우리를 지켜주지 않을 것이다.

※주석 
1. http://m.s-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1932
2. http://news.donga.com/3/all/20190312/94493649/1
3. https://www.sciencetimes.co.kr/?news=%EA%B3%BC%ED%95%99%EA%B8%B0%EC%88%A0%EC%9D%B8-%EC%A4%91%EC%9D%B8%EC%9D%98%EC%8B%9D-%EB%B2%97%EC%96%B4%EB%82%98%EB%9D%BC
이를 비판한 내 칼럼도 참고할 것,
http://saesayon.org/2010/08/13/10136/
4. 이들의 일대기를 다룬 책 두 권이 번역되어 있다. <과학, 좌파>, <과학과 사회주의>

 

김우재

 김우재 – 급진적 생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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