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스토리를 담고 있는 연재를 만나보세요.
[생명윤리를 배우다] 3회 - 마블 히어로를 욕망하나요 (뇌신경과학적 연구를 활용한 인간 강화(Human Inhancement)에 관하여)
Bio통신원(박수경)
캡틴 마블(2019) 영화 포스터 일부, 구글 출처
시계 태엽 인간
2015년 여름,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무척 재미있게 보았고, 작년 겨울 다시 보게 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영화에서는 주인공 여자아이의 뇌 속에 있는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이의 활동을 통해 주인공에게 일어나는 감정과 행위를 위트 있게 묘사하였습니다. 5가지의 감정 주도자는 구슬 같은 곳에 기억을 담고 그 기억들을 다양한 곳에 보관합니다. 그 기억이 사람의 뇌의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서, 즉 주요중추기관인지, 소각장과 같은 쓰레기 더미에 있는지에 따라 주인공의 감정이 형성됩니다. 그런데 그 다음이 이상하다고 생각되었는데 감정 중추의 활동과 기억에 따라 주인공의 행동이 조정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에는 주인공의 인생항로까지도 변경될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저는 마치 기계론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인간이 태엽 감는 시계가 되어 태엽에 의해 조정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생명을 물질로 보는 기계론적 세계관이 존재하고, 이런 세계관을 기반으로 일부 학자들은 분자생물학이나 유전학, 뇌신경과학, 여러 생물학의 분과들을 공부합니다. 이러한 공부들은 결국 생명 탐구를 위한 수단일 것입니다. 일부의 사실을 전체를 결정하는 논리로 가는 것은 진리를 탐구하는 과학자라면 단연 경계하는 부분이 아닌가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우려스러웠던 것은 뇌신경과학적 현상이 인간 행위 전체로 묘사되는 것 같았기에, 어린아이들이 보는 영화인데 아이들에게 은연중에 인간을 기계론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이미지를 심어주지는 않을까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보편적 이성이나, 인간 행위를 결정하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복합적인 무수한 잠재적 현상에 대한 묘사는 찾기 어려웠습니다.
저마다의 안경으로 보는 생명
뇌 신경과학의 영역이 발견되고 연구가 진행되면서 뇌의 신경 작용으로 인해 나타날 수 있는 결과들이 인간의 모든 언어, 감정, 행위를 통제하는 것처럼 묘사되곤 합니다. 왜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되는 것일까요? 주로 생명과학의 많은 연구들이 사례, 실험으로부터 가설을 추정하여 결론을 이끌어 내는 귀납적 추론입니다. 일부 연구의 경우 이러한 실험이 전체를 본 것처럼 호도되어 그런 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사례를 통해 전체에 관한 단서를 얻을 수는 있지만 전체 모두를 설명할 수는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떠한 신경인자가 작동하는 기전을 유전학적으로 규명해내는 일은 참 의미 있는 연구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생물학에서는 유전자가 인간생명의 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유전학연구를 통해 다양한 질병이 치료될 것으로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만약 우울증이나 알츠하이머, 희귀 뇌신경질환과 같은 질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이라면, 유전자치료 혹은 신경조절인자에 관한 약물치료를 통해 삶의 질이 꽤 향상될 수 있을 수도 있다는 연구결과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 저 또한 매우 기쁩니다.
뇌신경과학에서의 인간 강화(Human Inhancement)
여기서 몇 가지 질문들을 던져봅니다. 질병 치료와 크게 관계는 없어 보이지만 약물이 사용될 수 있는 상황을 생각해봅시다. 수능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들이나 대사를 외우는 배우들에게 기억력 강화 약물을 투여하는 일은 어떨까요? 대한민국 수험생이라는 특수한 환경에 처한 대상이 불안과 함께 ADHD를 잠시 겪을 수 있으니, 정신과 의사에게 처방 받아 기억력 강화 약을 먹고 수능을 치른다 한들 이해할 수 있는 일 아닐까요? 반대의 일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 연인과의 사랑의 아픔을 잊고 새로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기억력 약화 약물을 투여하는 일은 어떨까요? 이럴 경우에는 의학적 치료로 인정해주어야 할까요?
뇌 기억력 강화 약물의 파급효과로 나타나는 사회적 평등과 계급 발생의 문제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만약 유전자 치료제를 두뇌에 투여해서 기억력이 크게 강화된 유전인자가 후대에 전달되어 약을 쓴 집단과 아닌 집단이 계층이 구분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을까요? 그렇다고 가정한다면 현대 사회에서 기회를 동일하게 주는 평등의 정의(justice)는 의미가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요? 이러한 첨단 생명공학의 연구 결과물을 누릴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있는 계층과 없는 계층 사이에 일어나는 불평등의 문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마지막으로 약물이나 유전적 강화를 통해 어떠한 행위가 유발된다고 할 때, 그 행위가 사회적인 해악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행위의 책임에 대한 법적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 것일까요? 그 행위를 일으키도록 자극을 준 어떠한 약물, 그리고 유전적 인자로 어쩔 수 없이 숙명처럼 그런 행위를 하게 되는 것이기에 현행 법률에서의 심신미약을 적용해서 범죄사항을 정상참작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마블히어로를 욕망하나요
유전자와 신경조절물질의 관계, 그리고 행위로 이어지는 과정에는 일면 상당한 개연성이 있는 근거가 있다고 인정합니다. 다만, 이러한 연구 결과에 단편적으로 매몰되어 강화된 인간을 소망할 때, 우리는 쉽게 행위에 있어 사람을 책임으로부터 회피하도록 만드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스마트폰으로 사람을 키우고 마을을 만들어 내듯, 인간을 코드화하여 조정하고 강화시키고자 하는 욕망을 반영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염려도 있습니다. 또 하나 발견하게 되는 것은 우리가 강화된 신체나 정신을 욕망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맘대로 우리의 의지와 행위가 잘 변하지 않기 때문에 마치 마블히어로에 전세계가 열광하듯 강화된 인간을 꿈꾸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어쩌면 우리는 더 본질적인 부분을 좀 더 생각해봐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그 좁은 실험실 안경의 틀로만 인간을 재고 규칙화시키고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반성해봅니다. 생명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목적으로 복잡한 것들을 쉽게 풀어내기 위해 다양한 사례와 근거들을 만들어내고 성급하게 이론화하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인생에는 생각보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많이 있습니다. 수많은 남자와 여자 중 한 쌍의 배우자가 서로 만나고, 몇 억 개의 정자 중 일부가 난자를 만나 태어나서 지금 여기 살아가고 있는 예측할 수 없었던 한 인간, 자신의 존재만 지그시 바라보아도 우리는 그 예측불가능성이 쉽게 납득됩니다. 저는 인류를 위한 뇌신경과학적 유전학 연구가 더 계속적으로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다만, 과학함에 있어 저마다의 분야가 전체의 그림에서 하나의 퍼즐일 수 있다는 태도로 과학하기를 소망해봅니다.
참고자료
인사이드아웃(2015)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2009), 마이클샌델, 동녘
이중원(2012.04.29.), <자연을 기계로 보지 말라>, 경향신문
김준혁(2019.02.08.), <집중력 강화 약물, 우리아이 성적 올릴 수 있을까>,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881330.html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기사 오류 신고하기]
<생명윤리를 배우다>는 생명과학(Biology)을 전공하고 생명윤리학(Bioethics) 박사수료생으로, 인간의 존엄과 생명 가치를 존중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써의 생명윤리학의 다양한 주제들을 다룹니다. 저자는 생명윤리교육, 유전자윤리, ELSI(Ethical, Legal, Social Implication) 연구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으며 이 연재에서는 누구나 마주하기 쉬운 생명의료기술과 관련된 생명윤리 주제들을 편안한 글을 통해 살펴보고 연구자 및 대중들과 함께 생각하는 장을 제공해 보고자 합니다.
다른 연재기사 보기
전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