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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생명과학 이야기] 우리 사회에도 체크포인트를
Bio통신원(곽민준)
“최근 한국 교육은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자유학기제가 시행되기 시작했으며, 토론, 프로젝트 학습 등이 위주가 되는 새로운 교육방식이 도입되고 있다. 얼마 전 교육부에서 바뀐 교육방식으로 공부한 학생들을 평가하기에는 객관식 지필고사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이번 정부 들어 수능 정시 비율을 높이기 위한 여러 정책을 시행 중인데, 객관식 평가가 적절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것에 조금 의아해졌다.”
대한민국 교육 제도는 여러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십여 년간 다양한 시도가 이어졌으나, 아직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지는 못하고 있다. 이전 정부들은 획일화된 암기, 주입식 교육에서 탈피하기 위해 평가제도를 손봤다. 대학입시에서 수시 비중을 많이 증가시켰고, 그 결과 논술, 학생부 종합 전형 등이 새로운 형태의 대입 전형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확실한 합격 기준이 없는 수시 전형의 빈틈을 노린 입시부정행위가 등장한 것이다. 여러 사건을 겪으며 입학사정관 혹은 학생부 종합 전형은 학생과 학부모의 신뢰를 잃었고, 정시 확대를 요구하는 여론이 대세가 되기에 이르렀다. 정부도 이에 보답해 정시로 선발한 학생이 30%를 넘지 않는 대학에 대한 재정 지원을 줄이겠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이런 교육 정책의 변화를 살펴보며, 필자는 뜬금없이 세포주기를 조절하는 단백질인 CDK1이 떠올랐다. CDK1은 세포주기 중 M기의 핵심 조절인자다. CDK1이 활성화되어야만 세포분열이 가능하며, 세포분열 후기의 염색체 분리 과정 역시 CDK1의 조절을 받는다. 따라서 CDK1의 활성은 매우 정확하게 오류 없이 조절되어야 한다. 잘못했다가는 세포의 무분별한 분열이 일어나 암을 비롯한 심각한 문제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CDK1의 활성은 한 반응이 아닌 여러 단계의 가역적인 반응을 통해 조절된다(그림 1). 인산화 효소 하나와의 반응을 통해 활성이 조절된다면 단백질의 상태가 쉽게 변할 수 있어 CDK1의 농도를 상황에 맞게 조절하는 것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교육 개혁에서 평가제도 변화의 중요성은 세포주기에서 CDK1의 활성화 조절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래서 제대로 된 평가제도의 정착은 한 번의 정치적 판단으로 쉽게 결정 내릴 수 없는 사안이라 생각한다. CDK1의 활성화가 여러 효소의 도움으로 여러 단계를 거쳐 일어나는 것처럼 제대로 된 평가제도의 정착 역시 시간적 여유를 두고 다양한 관점에서의 판단을 통해 여러 단계를 거쳐 진행되어야 한다.
[그림 1] CDK1의 활성화는 여러 단계를 거친다1).
획일화된 교육을 줄이겠다는 이상적인 목표로 시행된 수시 전형의 증가가 많은 부작용을 낳고, 결국에는 여론이 정시 확대로 돌아서게 된 것은 정부의 정책 결정이 CDK1의 활성화처럼 세심하게 조절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학입시의 변화는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는 일인 만큼 시행착오나 부작용에 대한 검증과 준비가 충분해야 했는데, 결론적으로 이전의 정책들은 그러지 못했다. 객관식 평가에서 벗어나면 사교육에 대한 의존도가 떨어질 것으로 판단했지만, 학원들은 오히려 논술특강, 학생부 컨설팅 및 면접 대비 수업까지 개설하며 학생들을 끌어들였다. 입시 전형이 다양해지며 정보싸움이 치열해졌고, 사회적 지위, 경제력 차이에 의한 불공정한 싸움은 더욱 심해졌다. 따라서 앞으로의 정책들은 훨씬 신중하게 시행되어야 한다. CDK1의 활성화 과정에서 배울 수 있는 것처럼 여러 단계를 거쳐 천천히 교육 제도의 개편이 일어나야 한다. 정책이 결정되기 이전에 국민의 의견, 특히 현장의 학생, 선생님, 학부모 등의 생각을 경청하고 이를 토대로 정책의 방향을 정한 후, 여러 차례의 검증을 통해 제도를 수정하며 확대해나가는 방향으로 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문제가 발생했을 때 즉시 멈추고 이를 새롭게 검토하는 것이다. 마치 체크포인트에서 세포주기의 진행 여부가 결정되는 것처럼 말이다. 앞서 얘기했듯이 세포분열의 정확한 조절은 생명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다. 따라서 분열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환경에서 세포는 세포주기의 진행을 멈추는데, 이때 세포가 분열을 진행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지점들을 체크포인트라 부른다. 필자는 대학입시 평가 방식처럼 사회적 영향이 큰 결정을 하는 과정 도중에 이런 체크포인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SAC(Spindle Assembly Checkpoint) 라고 불리는 체크포인트는 모든 염색체의 모든 동원체(kinetochore)가 방추사와 정확히 연결됐을 때에만 염색체 분리가 일어나도록 한다. 만약 연결이 잘못되었거나 동원체 중 방추사와 연결 안 된 것이 남아있다면, 다시 수정되어 제대로 결합할 때까지 세포분열을 진행하지 않고 기다린다. 세포는 이 과정을 통해 잘못된 분열과 그로 인한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
[그림 2] SAC의 세포주기 진행 조절2)
만약 우리 사회의 정책 결정 과정에도 이와 같은 체크포인트를 둔다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예방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대학입시 평가제도의 경우라면, ‘공정한 평가가 가능한가?’,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에 영향을 적게 받는가?’, ‘현실성 있는 대안인가?’ 등의 질문이 체크포인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아니오’라면 정책 시행이 조금 늦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을 때까지 제도를 철저히 검증하고 수정해야 한다. SAC에서 동원체와 방추사의 연결이 정확하지 않으면 세포분열이 잠시 중단되어 제대로 된 결합을 기다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지금까지는 이런 충분한 검증과 제도의 개선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체크리스트는 있었는지 몰라도 제도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를 해결할 때까지 이후의 과정을 잠시 멈추는 체크포인트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정착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문제가 있다면 이를 확실히 수정하고 진행해야 하는데, 다들 눈에 보이는 성과에 집착하다 보니 빠른 정책 시행에만 초점을 맞춰 온 것이다.
교육은 국가의 백년대계라고들 말한다. 그런 만큼 교육 제도의 개혁은 오랜 기간 심각하고 신중하게 고민되어야 할 문제다. 잘못된 결정을 했다가는 사회가 엄청난 혼란에 빠질 수 있으므로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최대한 좋은 방향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노력해야만 한다. 필자는 그 방법의 하나로 우리 몸의 세포가 신중한 결정을 위해 이용하는 체크포인트를 활용해보기를 제안한다. 어쩌면 효율적인 생명 시스템의 전략이 인간 사회 문제해결에도 그대로 적용될지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참조]
1) George Plopper et al. “Lewin’s cells”, Burlington, Mass(2015).
2) Joana Barbosa et al. “The spindle assembly checkpoint: Perspectives in tumorigenesis and cancer therapy”, Front. Biol.(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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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통해 나의 지식과 생각을 표현하는 게 즐거운 평범한 생명과학도입니다. "일상 속 생명과학 이야기" 를 통해 일상생활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는 말과 행동에서 비롯된 생물학적 물음에 대한 답과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생활의 지혜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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